서귀포 자연휴양림
“골짜기 마을 사람들한테는 저마다 ‘나의 나무’로 정한 나무가 숲의 높은 곳에 있다. 사람의 혼은 그 ‘나의 나무’의 뿌리에서 골짜기로 내려와 인간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죽을 때에는 몸이 없어질 뿐이고 혼은 자기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오에 겐자부로, 『나의 나무 아래서』
잠시 뭍에 나갔다가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이제 돌아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니 반은 제주 사람이 된 것인가. 몸이야 정착을 모르지만 어쩌면 마음의 반쯤은 늘 제주에 머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중문에서 서귀포 자연휴양림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저지대의 숲은 상록수와 낙엽수들이 뒤섞여 두 겹의 색채로 덧칠해져 있다. 푸른 잎이 성성한 삼나무와 소나무들, 마른 풀과 가지뿐인 겨울나무들. 제주의 겨울 숲은 생과 사의 중간에 위치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숲. 겨울 숲은 침묵의 말씀으로 생사불이의 법문을 들려주는 선지식이다. 버스는 자연휴양림 입구에 나그네 혼자만 내려주고 1천1백 고지를 향해 질주한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은 7백 고지 무렵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자연휴양림 일대가 화전민촌이었다. 중산간지대로 갈수록 제주의 숲은 메마른 겨울 색으로 짙어간다.
겨울 오후의 숲은 적막하다. 탐방객은 눈에 띄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고 숲이 일렁인다. 오늘 이 겨울 숲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검은 옷의 전령들. 까마귀들은 떼 지어 날기도 하고 삼나무나 소나무 가지에 앉아 경계를 살피기도 한다. “까악까악.” 까마귀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숲의 고요를 깬다. 저 소리는 무슨 징조일까. 뭍에서라면 까마귀 소리는 나쁜 징조다. 그러나 제주의 까마귀는 흉조가 아니다. 제주의 까마귀는 신들의 소식을 전해주는 영매와 같다. 제주에서는 까마귀가 기쁜 소식도, 불길한 소식도 모두 전하는 새라고 믿는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까마귀를 깊이 존경한다. 까마귀는 검은 옷의 심방이다. 옛 제주에서는 까마귀가 동쪽 방향으로 울면 재물 운이 있고 서쪽을 향해 울면 집안에 병환이 있을 징조로 여겼다. 남쪽 방향으로 울면 귀신이 들고 북쪽 방향을 향해 울면 손재수(損財數)가 생긴다고 여겼다. 또 급하게 울면 나쁜 일이 있을 징조고 한가롭게 울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여겼다. 까마귀는 신의 전령이자 점술가이기도 했다. 지금 까마귀가 사방을 향해 울어대고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재물운도 손재수도, 모든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언일까. 이 세상에서는 무엇이든 다 일어날 수 있다는 전언일까.
서귀포 자연휴양림은 인공림이 아닌 자연림이라 숲의 식생이 다양하다고 자연스럽다. 자연휴양림의 숲은 극상림이다. 햇빛에 민감한 소나무보다 햇빛을 적게 받아도 생존이 가능한 단풍나무, 졸참나무, 서어나무들이 우점종이다. 지금 숲은 서어나무가 대세다. 감탕나무와 사스레피나무 등 상록수도 더러 눈에 띄지만 그보다는 비목나무와 당단풍나무, 참꽃나무, 나도밤나무, 채진목, 때죽나무 등 낙엽수들이 더 우세하다. 빈 공간으로 쏟아지는 빛. 겨울 햇살에 은빛 가지들이 반짝인다. 헐벗은 겨울나무들, 저 나무들에 겨울은 단지 통과의례처럼 지나가는 하나의 계절은 아닐 것이다. 저들 모두 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겨울나무들은 찬바람 한 자락에도 생사가 걸렸다. 나무들은 생사의 경계에 서서 비가역적인 시간을 가역한다. 생사의 길목이 아득하다.
오늘 나는 어째서 화려한 꽃도 채색의 단풍도 없는 겨울 숲에 왔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늘 저 나무들보다는 나무들이 피워 올리는 꽃을 보기 위해 자주 산을 찾았다. 일생을 통하여 단 한 번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시들어버리는 많은 인생들처럼 나 또한 쓰린 가슴 쓸며 해마다 꽃피는 시절을 기다리며 꽃을 찾아다녔다. 벚꽃을 보러 대흥사와 쌍계사로 갔고, 매화를 취하러 선암사와 악양으로 갔다. 또 꽃피운 산수유를 보기 위해 산동 마을까지 갔었다. 나는 언제나 꽃만 쫓아다녔다. 그러나 오늘 나는 꽃이 아니라 헐벗은 겨울나무를 찾아 이 고적한 겨울 숲으로 왔다.
잎을 다 떨어뜨리고 서 있는 겨울나무들. 빈 몸의 겨울나무에게서 나는 무상함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 갱신의 마음을 본다. 참으로 혹독한 시련의 계절. 모든 것을 다 버려야만 겨우 목숨 하나 부지할 수 있는 절명의 시간. 그런 겨울의 시간을 견뎌낸 나무만이 마침내 따뜻한 봄 햇살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다. 사람 또한 그러할 것이다. 서귀포의 겨울 숲, 오늘에야 나는 사람이 꽃보다 잎이 지는 나무와 가깝다는 것을 알겠다. 화려한 꽃들보다 헐벗은 겨울나무가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겠다.
왕은 숲으로 갔다
겨울 숲을 거닐며 나는 문득 인도의 한 왕을 떠올린다. 인도출신의 평화운동가 사티쉬 쿠마르의 자서전 『사티쉬 쿠마르』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 인도 어느 나라에 현군으로 이름난 바트리 하리 왕이 살았다. 왕의 궁전에는 오랫동안 고행과 명상 수행을 해온 구루가 있었다. 어느 날 비슈누 신이 나타나 수행에 대한 보답으로 영생불멸의 열매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구루는 자신이 영생불멸의 열매를 먹지 않기로 했다. 구루는 자신이 영생을 누리기보다는 현명하고 자비로운 바트리 하리 왕이 영생을 누리며 나라를 통치하는 것이 백성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구루는 영생불멸의 열매를 바트리 하리 왕에게 바쳤다.
영생불멸의 열매를 얻은 왕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왕에게는 자기 목숨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왕비 핀글라가 있었다. 왕비는 젊고 아름다웠다. 왕은 생각했다. ‘왕비가 죽고 난 뒤 혼자만 영원히 살게 된다면 그 삶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것이다.’ 그래서 왕은 왕비에게 영생의 열매를 건넸다. 하지만 열매를 받은 왕비도 그것을 먹지 않았다. 왕비는 영원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왕비는 젊고 잘생긴 왕의 호위병을 사랑하고 있었다. 왕비는 왕에게 받은 영생의 열매를 애인에게 주었다.
그러나 왕비의 애인 또한 영생의 열매를 자신이 먹지 않았다. 왕비의 애인인 호위병은 보석보다 빛나는 젊은 여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왕의 시녀였다. 왕비의 애인은 시녀에게 열매를 건넸다. 그러나 시녀 또한 영생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 시녀는 자신이 모시는 바트리 하리 왕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영생의 열매를 바트리 하리 왕에게 바쳤다. 왕비에게 건넨 영생의 열매가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아오자 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문득 왕은 ‘꿈’에서 깨어나 숲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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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강제윤
시인,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89년 첫 시집을 낸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사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떠나 있었다. 3년 2개월간의 투옥생활 이후 군사정권시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조작간첩'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인권활동을 했고 이들은 후일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보길도로 낙향한 후에는 보길도 자연하천을 시멘트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시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시킬 대규모 댐 건설을 막아냈다. 2005년 다시 고향을 떠나 집 없는 유랑자가 됐다. 10년 동안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 모두를 걸어서 순례할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은 여전히 섬을 걷고 있다. 지금은 가장 큰 섬 제주에서 1년 남짓 장기 체류하며 제주 땅과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그동안 제주에서 만난 생각과 사람과 사랑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저서로 『섬을 걷다』, 『파시』,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