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재래시장 올레
“우리는 아마도 불멸의 모험을 하겠다는 정신으로 가장 짧은 산보에 나서서 결코 되돌아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쓸쓸한 왕국의 유물로서 미라가 된 우리들의 심장만을 되돌려 보낼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부모 형제와 처자와 친구를 작별하고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결심이 되어 있다면―빚을 갚고 유언장을 작성하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그래서 자유인이 되었다면―당신은 산보를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소로우 〈산보〉)
서귀포 구시가지에 방을 얻어 살아가는 장기 올레꾼이 된 지 오래다. 오늘도 나그네는 이중섭 미술관 뜨락을 거닐다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서귀포 시장을 찾는다. 식당에서 만 원이 넘는 고등어구이. 시장에서는 2천5백 원이면 기름진 고등어 한 마리를 사다 구워먹을 수도 있다. 보도블록 교체 공사로 어수선한 이중섭 길 언덕을 오른다. 서귀포 재래시장 올레로 가는 길이다. 이중섭 거주지 담벼락에 붙은 카페 미루나무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새끼 회를 파는 중섭식당은 오늘도 손님이 없다. 중섭식당은 그 퇴락하고 쓸쓸한 분위기 때문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은 곳이지만 육고기를 먹지 않는 까닭에 늘 지나치기만 한다.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서귀포 관광극장, 전시용이지만 옛날 영화 포스터들이 여전히 붙어 있어 길 가는 나그네의 향수를 자극한다.
우생당 서점을 지나면 동의당 약국, 그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귀포 아케이드 상가, 이곳이 바로 서귀포 재래시장이다. 시장 앞길은 늘 사람들 행렬이 끊이지 않지만 그리 북적이지도 않는다. 시장의 초입은 군밤과 붕어빵 노점이다. 군밤 장수 여인은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손수레도 함께 운영하지만 사가는 손님은 거의 없다. 하루 한 장도 팔리지 않는 날이 허다하다. 그러나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다른 품목의 장사를 하려면 다시 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는 까닭이다. 그다음은 과일 노점. 시장 골목 가운데 길은 손수레나 대야에 물건을 담아놓고 파는 노점들이지만 양옆의 상가건물 점포들은 번듯하다.
할머니 한 분이 대야 가득 미쓰이까(무늬오징어)를 담아두고 손님을 기다린다. 회로 먹거나 삶아 먹어도 맛있는 오징어지만 혼자 먹기에는 너무 크다. 1킬로그램에 1만 2천 원 받던 것을 만 원에 주겠다고 하시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 지팡이를 짚고 가던 할아버지 한 분이 할머니 앞에 멈춰 선다.
"이거는 얼마나 하오."
"못 잡솨, 아저씨는 사지 맙서. 이빨이 없어서 못 잡솨."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몇 번을 뒤돌아보다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치과 건물 앞은 국화빵 노점. 그 다음은 통닭집과 정육점. 시장 통 사거리 옥돔 좌판에서는 옥돔이 여섯 마리에 2만 원인데 두 마리를 더 얹어서 주겠다고 사란다. 수입산이다. 다른 생선들도 비슷하지만 옥돔은 수입산과 제주산의 가격 차이가 세 배 이상이다. 제주산 말린 옥돔이 1킬로그램에 5만 원이면 수입산은 1만 5천 원이다. 나그네가 자주 들르는 털보 두부 집에서는 두부와 순두부, 비지, 도토리묵 등을 그날그날 만들어 판다. 두부는 국산 콩으로 만든 것이 6백50그램 한모에 2천 원, 수입산은 천 원이다. 나그네가 이 집을 즐겨 찾는 것은 순전히 순두부 때문이다. 1.5킬로그램 한 봉지에 단돈 천 원. 한 봉지 사다 놓으면 2~3일은 국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반찬가게들에서는 배추와 열무김치, 얼갈이김치, 파김치, 나박김치, 오이소박이 등 온갖 종류의 김치를 날마다 새로 담가서 내놓는다. 김치 2천~3천 원어치씩만 사가면 일주일도 넘게 먹는다. 맛 또한 집에서 담근 김치 못지않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마트의 김치는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맛이다. 하루는 저 많은 김치들을 담그려면 힘들겠다 싶어 주인 할머니에게 매일 담그느냐고 물었다가 핀잔만 들었다.
"놈의 돈 먹기가 어디 쉬운가."
털보 두부집 골목은 어물전이 많다. 포유류나 조류 같은 육류를 먹지 않는 나그네도 생선이나 해산물 없이는 하루도 못산다. 태생이 ‘섬놈’인 까닭이다. 뭍사람들은 두 끼 연달아 생선 반찬이 나오면 거북해하지만 나그네는 날마다 매 끼니마다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날것도 익힌 것도 말린 것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 어물전 앞을 어찌 그냥 지나랴. 사람은 누구나 어려서 먹었던 식습관을 따라간다. 나그네의 고향에서는 옥돔이 나지 않았으니 어려서 먹어본 적이 없다. 아무리 비싸고 귀해도 나그네의 입맛은 아니다. 제주 사람들이 제일로 치는 옥돔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참돔처럼 생긴 뱅고돔은 빛깔이 예쁘지만 향이 짙어서 별로다. 좋아하는 어종은 고등어나 갈치, 장어나 참돔 따위다. 하지만 가장 값싸고 푸짐한 것은 고등어다. 간고등어는 큰 것이 세 마리에 만 원. 작은 것은 보통 네 마리에 만 원. 제주산이나 노르웨이산이나 값은 같다. 나그네 입맛에는 퍽퍽하지 않은 노르웨이산이 더 맛있다.
갈치나 돔은 가격이 높아 좀 부담스럽다. 참조기도 한 광주리에 만 원. 제주 사람들은 참조기보다 수조기를 윗길로 친다. 제사상에도 수조기를 올린다. 옛날에는 제주에 참조기가 나지 않아 입맛을 들이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삼치도, 고들맹이도, 각재기(전갱이)도 다들 한 광주리 만 원. 은대구는 한 마리 5천 원, 값이 좀 세다. 데친 물미역이나 톳도 나왔다. 달치도 있다. 몸에 달 모양의 둥근 무늬가 있어 달치라 이름이 붙여진 물고기. 달치는 비린내가 없어 김치찌개에 넣어 먹으면 일품이다. 값도 고등어나 각재기만큼 싸다. 나그네는 5천 원으로 고등어 두 마리를 산다. 며칠 먹을 반찬으로 충분하다. 생선회를 떠서 판매하는 가게들 앞에도 손님이 붐빈다. 주로 올레길을 걷는 여행객들이다.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방어철. 히라스나 잿방어, 방어 등 방어류는 자연산이지만 다른 생선들에 비해 값도 싸고 푸짐하다. 쫄깃한 맛을 선호하면 히라스가 좋고 부드러운 맛을 원하면 방어가 제격이다. 나그네는 히라스에 한 표. 만 원짜리 한 접시면 두 사람이 먹기에 충분하다. 히라스나 방어처럼 어떤 음식이든 제철에 나는 것이 맛도 영양도 최고다.
"밀감이나 한 개 잡수고 갑써"
시장 길을 빠져나오니 할머니 한 분 작은 좌판 하나 앞에 두고 마늘을 까고 계시다. 좌판은 초라하다. 고구마와 감자 조금, 마늘, 밀감 한 소쿠리가 전부. 마늘 까는 손이 시리시겠다. 주춤거리며 잠시 기웃거리는데 할머니가 먼저 말을 걸어오신다.
"관광 왔수꽈?"
"네"
"밀감이나 한 개 잡수고 갑써."
할머니는 팔려고 내놓으신 밀감 광주리를 손짓하며 어서 집어 가란다.
"할머니 저는 됐어요. 파셔야죠.
"어디서 왔수꽈?"
"인천서 왔습니다."
"혼자서."
"예, 할머니 집이 이 근처세요?."
"저기 촌에 살아. 법환 너머 강정, 풍림콘도 앞에."
할머니는 몸이 편찮아 많이 걷지 못하고 들일도 못하신다. 그래서 고구마는 동네 사람들에게 사왔다.
"많이 팔리나요?"
"잘 팔리지 안 햄수다"
대형 마트들이 들어선 뒤 서귀포 재래시장의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올레길이 생기고 올레꾼이 시장을 찾기 시작하면서 재래시장의 매출이 2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시장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에 배낭을 메고 시장을 서성이는 사람은 거의 올레꾼이다. 하지만 오늘은 오일장 날이라 시장 손님들이 대부분 그곳으로들 갔다. 재래시장은 한가하다. 그래도 할머니는 자리를 지키러 오셨다.
"미깡이나 먹지, 심심한데."
할머니는 다시 밀감을 먹으라고 권하신다.
"먹어봅써, 어서 먹어봅써."
밀감은 동네 사람이 할머니 드시라고 준 것을 들고 나오셨다. 할머니는 끝내 밀감을 한 움큼 집어 주신다. 나그네는 하나만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눈자위가 시큰거려서 먹을 수가 없다. 길 가는 나그네도 걱정해주시는 할머니 마음에 그만 목에 맨다.
"건강합써, 할망."
"갑써, 어서 갑써."
할머니는 나그네가 서둘러 일어나는 것이 못내 서운한 눈치다. 물건도 손님도 없는 좌판을 놓고 종일 앉아 계시려니 외로우셨던 거다.
---------------------------
필자 소개
강제윤
시인, 1988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1989년 첫 시집을 낸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혁명가로, 인권운동가로 사느라 오랫동안 글쓰기를 떠나 있었다. 3년 2개월간의 투옥생활 이후 군사정권시대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조작된 '조작간첩'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인권활동을 했고 이들은 후일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8년 보길도로 낙향한 후에는 보길도 자연하천을 시멘트구조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시켰고 33일간의 단식 끝에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훼손시킬 대규모 댐 건설을 막아냈다. 2005년 다시 고향을 떠나 집 없는 유랑자가 됐다. 10년 동안 한국의 사람 사는 섬 500개 모두를 걸어서 순례할 서원을 세우고 지금까지 150여 개의 섬을 걸었다. 시인은 여전히 섬을 걷고 있다. 지금은 가장 큰 섬 제주에서 1년 남짓 장기 체류하며 제주 땅과 올레길을 걷는 중이다. 제주에서의 시간은 단지 여행이 아니라 현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연재물은 그동안 제주에서 만난 생각과 사람과 사랑과 생활에 관한 이야기들이 될 것이다. 저서로 『섬을 걷다』, 『파시』,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숨어사는 즐거움』, 『보길도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