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야 마을 이야기 3회
치포 무갓자(Chipo Mugadza)는 아트 커뮤니티의 대표를 맡고 있는 풍채가 아기 코끼리만 한 여자다. 그냥 여자라기보다는 우리 식으로 아주머니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인상의 소유자다. 작가들 중에서 한눈에 보기에도 뭔가 있어 보임 직한 카리스마를 풍기더라니, 이 아주머니 자신을 대표라고 소개하자마자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덥석 내 손을 끌어 잡는다. 손마디와 손끝에서 투박함과 까칠함이 느껴지는 손이다. 어림짐작해본 연배로 보나 얼핏 받는 인상으로 보나 동료 작가들 사이에서는 왕언니로서의 지위를 확고하게 굳히고 있을 것만 같은데, 의외로 가늘고 섬세한 목소리에 상냥한 태도를 갖추었다.
이야기 주머니를 하나만 더 열어보자. 치포 무갓자의 작품으로 우리가 말하는 작품 사이즈로는 200호가 넘는 대작이다. 가능한 원문 그대로를 옮겨보자.
치포 무갓자(Chipo Mugadza)ㅣ아프리카 결혼식(African Marriage)ㅣ194X149cmㅣsadza&dye
여자와 남자는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은 남자의 고모에게 처음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얘기했는데, 그때 마침 외양간에서 돌아온 고모부도 함께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은 곧 마을에 퍼졌다. 결혼을 앞둔 이들이 친척집을 방문하고 있고, 친척집에서는 이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 중이다. 남자의 고모가 남자의 집으로 와 남자의 아버지와 이들의 새로운 식구에 대해 상의를 한다. 상의가 끝난 후 남자의 고모는 심부름꾼을 데리고 결혼 지참금을 신부의 집에 전한다.
남자의 고모는 남자와 함께 다시 신부의 집으로 가서 새 신부를 맞이하게 된 데 대한 기쁨의 표시로 선물을 전하고,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이제 이 새 커플은 그들의 신방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신부가 임신하면, 남자의 고모는 늙은 소와 빈 바구니와 나머지 결혼 지참금을 들고 임신한 신부를 신부의 집에 데려다 준다. 신부의 가족은 신부가 아기를 낳을 때까지 물을 길었고 정원에 물도 주고 요리를 하는 등 집안일을 돌본다.
신부가 해산하면, 신랑의 고모와 신부의 어머니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암탉과 바구니에 밀가루를 가득 채워 들고 신랑의 가족에게 데려간다. 이제 두 사람은 새 보금자리를 가졌다. 남편은 그의 아기와 놀아주며 돌보는 것이 무척 행복하다.
이야기 속에 주요 등장인물인 ‘남자의 고모’는 작가 자신이다. 불행하게도 조카에게는 인륜지대사를 챙겨줄 모친이 계시지 않아 자신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한사코 자신을 남자의 고모라고 남 얘기하듯 말하고 있을까. 짐작건대 그것은 이 그림의 주제가 조카의 결혼과 출산에 이르는 과정이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화자를 자신으로 설정할 경우 조카의 행복한 결혼생활은 배경이 되며 그 축복의 의미 또한 빛이 바랜다. 작가는 자신을 타자화함으로써 조카의 혼인을 축복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를 포함한 커뮤니티의 모든 작가들에게 고도의 미학적 전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심지어 정확한 문법조차 그들에게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다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공동체와 존재의 근원적인 의미에 대해 소박하게 질문하면서 스스로 대답하고 있을 뿐이다. 선량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모든 관계는 아름다울 수 있는 거라고. 그리하여 그들에게는 자연 또한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저 단순한 그림과 소박한 이야기가 온갖 장치들로 복잡하게 계산된 작품들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왜일까.
그림은 결혼 전 조카 내외의 연애하는 모습에서부터 조카가 애를 안고 어르며 좋아라하는 모습까지 이야기의 모든 장면들을 담고 있다. 심지어는 아담하게 꾸며진 신방의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까지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 작가의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야기를 더듬어가면서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라. 잘 못 찾겠거든 가장 바빠 보이는 여인을 찾으면 된다. 그녀는 조카를 위해 양가를 뻔질나게 오가는 중이다.
“당신이 그림 속에 담고자 하는 것은 주로 어떤 이야기들이죠?”
■ 웨야의 여인들(좌)ㅣ(우)삿자(sadza). 고추장이 진가를 발휘할 때가 바로 이런 음식을 먹을 때이다.
“여성의 일에 대한 그림을 주로 그립니다. 그건 내가 여자이고, 여성이 하는 일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그럼 다른 작가들은?”
“그건 작가마다 다른데, 가령 두 번째 부인을 얻은 남편을 자주 등장시키는 내 친구처럼, 개인이 직면한 문제에 대해 그리는 작가들도 있죠.”
“그것 역시 그 사람의 일상일 텐데, 여기 아티스트들은 주로 일상을 그리나요?
“우리에겐 조상들로부터 들어온 이야기나 민담, 꿈속에 들려온 이야기도 다 일상입니다. 그 속에서 살지요. 우리 그림들이 미술관에 걸린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그 그림들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치포의 설명에 의하면, 그림에는 일상과 전통, 주변의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아주 사적이거나 금기시되어왔던 부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긴다. 예를 들어 로볼라(lobola, 결혼지참금), 바리카(barika, 일부다처제), 무투포(mutupo, 동성 간의 결혼, 남아선호사상)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까지도 다룬다는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특유의 발음과 짧은 독해력으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달링톤 덕분이었다. 그는 이미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요령을 터득하고 있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달링턴 치타테는 짐바브웨의 조각가로 한국을 세 번이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친구다.
“삿자는 음식인데, 왜 이 그림들에 삿자 페인팅이란 이름이 붙은 거죠?”
“처음엔 삿자를 그림에 이용했거든요. 언제던가, 대기근으로 온 나라가 곤욕을 치른 뒤론 사용하지 않지만.”
스와힐리어를 쓰는 동부 아프리카에서는 우갈리로 불리고 말라위에서는 은씨마로, 남아공에서는 밀리팝으로 불리는 삿자는 아프리카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음식으로 짐바브웨의 주식이기도 하다. 옥수수 가루를 끓이고 개어서 만든 묽은 반죽 형태의 이 음식은 굳이 비교하자면 간이 안 된 백설기와 흡사한 맛을 낸다. 현지인들은 스튜나 닭고기 등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이 삿자를 풀로 끓여 염색용 안료와 더불어 채색하는 과정을 수차례 거쳐 작품을 제작해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으며, 최근에는 대부분 염료만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윤곽선이 두드러지는 삿자 페인팅의 독특한 스타일은 삿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가면서 만들어진 웨야 마을만의 독창적인 회화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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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