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야 마을 이야기 1회
아프리카 방문할 때마다 늘 문제가 되는 게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방문 경험이 늘어나면서 자주 들르게 되는 도시들은 골목 풍경까지 훤히 꿰고 있지만, 누군가를 찾아가서 만나는 일은 경험의 많고 적음과도 무관하다.
먼저 도시를 벗어나면 지도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리고 어렵게 지도를 구하거나 누군가가 그려준 약도를 보고 찾아가더라도 길만 휑하니 있을 뿐 이정표 찾기가 쉽지 않다. 도시만 벗어나면 문자로 된 이정표는 사라지고 커다란 나무나 바위, 다리, 우물 같은 자연물이나 인공구조물들이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따금 길가에 과일 열댓 개 정도를 올려놓고 좌판을 벌이는 여인네들이 있다면 물론 길 찾는 게 한결 수월해지기는 하지만…
결국 아프리카에선 물어물어 길을 찾는 게 상책인데, 거기에도 함정이 하나 있다. 길을 물어보면 누구나 자신 있게 알려주지만 대게 그 정보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평생 급하게 살아본 적이 없어, 아니면 돌아간다는 마인드로 무장한 사람들이라 너무 쉽게 대답해 버리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간에 대한 조급증을 앓고 있으며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한 인종이란 걸 그들이 알 리 없다. 한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찾아갔다가 그 길을 다시 되돌아와야 할 경우, 우리가 헤어나기 힘든 절망감에 빠져버린다는 것까지 그들이 헤아릴 리 없다. 먼 곳까지 찾아온 얼굴색이 다른 인종에게 환영의 뜻과 함께 친절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 잘 모르면 그냥 방긋 웃어주기만 해도 좋으련만…, 하는 마음을 우리가 또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러니 그냥 문화의 차이려니 생각하고 두 사람 이상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 발을 옮기면 큰 무리가 없다.
■ 한적한 길거리에 벌여놓은 과일 좌판, 저걸 다 팔면 얼마나 될까 싶은데 주인은 자릴 비운 채 근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정말 난감한 것은 그렇게 어렵게 찾아간 곳에 정작 만나야 할 사람이 부재중인 경우이다. 곧 돌아온다고는 해도 그 ‘곧’ 이라는 걸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 받아들였다간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그들에게는 반나절도 곧 이다. 자,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먼저 시계를 풀고 그들의 시간관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늘 좋은 곳에서 한숨 자다 보면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길을 찾을 때는 두 가지만 마음에 담고 있으면 된다. 하쿠나마타타(hakuna matata)와 뽈레뽈레(pole pole)! 무슨 일이든 염려 붙들어 매고 놀멘놀멘 하면 된다는 말씀이다.
남부아프리카를 헤매고 돌아다닐 때, 불현듯 내 기억 속을 전설처럼 희미하게 떠돌던 ‘웨야 (Weya) 아트’의 실체를 확인하고픈 욕망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요하네스버그 공항 카페테리아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때우다 만난 백인 영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정보의 전부였으나, 그나마도 군데군데가 정확히 해독되지 않아 무슨 고대의 전설처럼 가물가물 들리는 그런 이야기였다.
먼저 짐바브웨에 있는 조각가 친구에게 전화를 넣었다. “모잠비크 국경 가까운 어딘가에 웨야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는데 나랑 거기 좀 다녀올 일이 있어. 차 한 대 수배해서 공항에서 기다리고. 참, 차는 근사한 걸루…” 어디에서건 궁하면 통하기 마련이다. 특히 아프리카에선. 그리하여 나는 조수석 유리창을 비닐로 붙인 폐차 직전의 차로 물어물어 웨야라고 하는 시골 작은 마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웨야는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서 동쪽으로 두 시간을 달리다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비포장으로 두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였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그 작은 시골 마을을 큰 고생 없이 찾아갔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뭐, 불미스러운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다.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다 겪게 마련이다. 아프리카 여행의 노하우란 결국 예상하지 못했던 일에 대처하는 능력이다.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아니면 아프리카의 시골 길은 당연히 비포장이다. 그런 길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라 웬만한 비포장 길은 낮잠을 즐기는 데 전혀 방해가 안 되었지만, 웨야로 가는 길은 결코 웬만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멀쩡한 몸으로 무사히 일을 마칠 수 있다면 비포장이면 어떻고 진흙길이면 어떤가. 출발할 때부터 쉽지 않은 여정이 되리라 마음먹은 것도 있으니 말이다.
심하게 요동을 치는 비포장 길을 한 시간 이상 들어섰을 무렵, 결국 문제가 하나 발생하고야 말았으니,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기 마련인 건 아프리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바퀴에 바람이 빠져버려 오도 가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스페어타이어도 없는 상황에서 펑크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긴 했지만 이 산골에서 타이어의 공기압을 어떻게 채운단 말인가. 카센터는 고사하고 차가 한 대 지나가기만 해도 구경거리가 되는 상황이라면 이 동네의 사정을 상상하실지 모르겠다. 이대로 해가 저물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하면 사나흘 발이 묶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대로 된 숙소가 있을 리 만무한 이 산중에서 말이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차를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옮기려면 일단 차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고 했는데, 그 말은 곧 내가 뙤약볕 아래서 짐을 짊어지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한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난감한 표정으로 짐을 챙겨 차를 나서는 내게 친구는 배시시 웃으며 한 마디 덧붙인다.
“디스 이즈 아프리카.”
씩씩거리며 사오십 분을 걸어 집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들어서자 청년 몇이 키득거리며 다가온다. 친구와 쇼나 부족의 언어로 몇 마디 주고받더니 한 청년이 집으로 달려가는데, 뭔가 그리 즐거운지 남아있던 청년들은 연신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그렇잖아도 죽을 맛인데 이놈들이 날 가지고 노는군, 망할… 애꿎은 담배만 축내고 있자니 내 생각에도 내 꼬락서니가 한심스러워보였다.
세 번째 담배를 발로 비벼 끌 때쯤 집으로 달려갔던 청년이 손에 뭔가를 들고 달려온다. 유심히 보니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자전거펌프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손사래를 치며 장난할 기분이 아니라고 얼굴을 붉히니 청년들이 연실 키득거리며 되받는다.
“헤이 브라더, 돈 워리. 하쿠나마타타!”
■ 자전거 펌프로 타이어에 공기를 채우고 있는 마을 청년. 카메라를 들이대자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지어 보이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다.
난 정말 처음 알았다. 자전거펌프로 차바퀴에 바람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따지고 보면 어떻게든 공기만 채우면 되는 일인데, 나는 왜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까. 카센터에서 보아온 고압 콤프레셔만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을까. 이게 문명의 오만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기계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기계가 없으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바보가 되고 만다는 걸 몸소 체험을 하고 나서야 깨닫다니, 순간 부끄러움이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달아났다.
청년들에게 콜라 한 병씩을 돌리고 떠날 때쯤, 왜 내 가슴 한구석에 아프리카가 박혀있는지,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이 왜 자꾸만 나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들이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엔 또 어떤 일로 내게 유쾌한 감동을 던져줄 것인가. 설마 빨대로 자동차 바퀴에 바람을 넣지는 않겠지. 푸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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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