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위웨는 내가 처음 짐바브웨라는 나라를 방문했을 때, 묵을 곳이 마땅치 않아 한동안 신세를 졌던 한국인 태권도 사범, ‘마스터 리’의 집에서 집안일을 하던 가정부였다. 성품이 부지런하고 싹싹한 데다 일 처리가 야무져서 집주인 내외의 신임을 얻고 있던 터였다.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왜 다 거기서 거기쯤으로 보이는지, 당시에는 현지인들과 어울리거나 말을 섞어본 경험이 적어 물어서 확인하기 전에는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게가 좀 나이가 들어 보이는 편이긴 했지만, 그런 점까지 감안해서 어림해 본 나이와 실제 확인해 본 수치 사이에는 늘 적지 않은 오차가 생기기 일쑤였다. 집안 허드렛일들을 하고 있다고 해서, 숙녀의 나이를 함부로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치위웨는 그냥 스물서넛쯤 되지 않았을까 짐작만 하고 있던 처자였다.
치위웨는 한 번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빨래를 한 바구니씩 쏟아내는 내게 단 한 번도 불평 섞인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거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거나 살짝 돌려 시선을 피하면서도 살짝 웃어주었다. 짐바브웨가 잠깐씩이긴 하지만 자주 비가 내리는 우기를 제외하면 연중 볕이 좋고 건조하기까지 해 빨래가 마르는데 더없이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는 했다. 빨래의 물기를 짜내고 탈탈 털어 널어놓으면 청바지가 마르는 데도 두어 시간이면 족하다. 치위웨의 일과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게 빨래를 하고 옷가지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매일 아침청소 후에는 세탁실에 던져놓은 빨랫거리들을 분류해 세탁해 널고 오후에 거두어들인다. 그리고 저녁 식사 후에 다림질해 잠들기 전에 세탁물의 주인 방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는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머나먼 객지에 나와, 내 나라에서도 입어보지 못했던 다림질한 속옷을 입고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치위웨 덕이었다. 치위웨는 팬티와 양말까지도 광목 같은 천을 덮고 다리미로 각을 잡아 침대 머리맡에 올려놓았다. 불필요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민망하기도 해서 속옷까지 다릴 필요는 없다고 했으나, 치위웨는 오래전부터 해와 몸에 익은 일이라는 듯 못 들은 척 그냥 웃어넘겼다. 다림질한 속옷은 속살에 닿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좋았다는 얘기다. 남의 집에 잠시 묵어가는 뜨내기에 불과했지만, 대접받는다는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다림질한 속옷을 입어본 건 그 이전과 이후를 통틀어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호사였다.
응고마는 치위웨와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동네 친구였다. 실업률이 70%에 달하던 당시에 그 7할의 인구에 속해 일정한 수입 없이 날품을 팔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응고마는 집주인에게 신임을 얻고 있던 치위웨의 추천으로 이 집의 정원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훌륭한 직장은 못되었지만 그래도 푼돈벌이로 일을 찾아 헤매던 때에 비하면 훨씬 안정적인 일터였다. 집이 있던 에메랄드 힐은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오래된 부촌으로 집들의 규모가 에이커 단위로 나뉜다. 이를테면 원 에이커, 투 에이커 하는 식으로. 내가 묵던 집은 원 에이커, 그러니까 우리가 쓰던 평수 개념으로는 1,200평을 조금 웃돈다. 그게 개인 주택의 넓이라니, 우리로서는 입이 떡 벌어지는 면적이었지만, 그들에게 서울의 30평대 아파트 가격을 일러주면 아마 아예 턱이 빠져버릴 수도 있다. 마스터 리의 집은 그 동네에서 작은 규모의 주택에 속했지만, 그래도 정원에는 큰 고목들이 아침마다 온갖 새들을 불러 모으는 제법 운치 있는 집이었다.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대문 옆의 큰 개에게 밥을 챙겨 주는 일, 집 뒷마당에 있는 조그만 풀장에 떨어진 나뭇잎들을 건져내거나 정원의 풀을 깎는 일 등이 응고마의 일이었다. 아침에 잠을 깨우는 건 정원을 둘러싸고 있는 고목의 우듬지로 날아드는 종류를 알 수 없는 새들이다. 치위웨가 미리 내려놓은 커피를 마신 후 동네를 한 바퀴 뛰고 들어오는 일을 일과의 시작으로 삼았는데, 이 일이 응고마에게는 전에 없던 번거로운 일이었다. 내가 일어날 때쯤 정원에 나와 있다가 문을 열어주고 들어올 때에 맞춰 다시 문을 열어주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제 딴에는 눈치껏 일한다는 생각으로 드나드는 시간에 맞춰 미리 정원에 나와 있었다. 난 그게 늘 마음에 걸렸다.
쾌적한 공기 탓인지 단순한 일상 탓인지 이곳에선 눈을 뜨면 잠자리에서 꾸물거릴 새도 없이 정신이 맑아진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고 해서 뜀박질에 나섰던 것인데, 여지없이 응고마는 미리 정원에 나와 있다. 특이한 점 하나는 응고마가 나와 마주칠 때 늘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양인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익숙지 않아 그런 줄 알았는데,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야 그 시선이 뭔가를 응시하는 것이란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친구가 내가 신고 있던 운동화에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너, 이 운동화 맘에 들어? 갈 때 주고 갈까?’라고 묻자 바로 입이 귀에 걸린다. 걸어야 할 일이 많아 여벌의 운동화를 챙겨왔으니, 주고 가도 문제는 안 되었지만 신고 있던 걸 벗어준다는 게 여간 찜찜하지 않았다. 그 후로는 이 넉살 좋은 친구가 시선을 운동화에 맞춘 다음 아예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린다. 그리고 간혹 출국일까지 확인을 하는 것이다. ‘너, 며칠 남았지?’ 치위웨가 깨끗이 세탁해 놓은 운동화는 마침내 응고마의 손에 쥐어졌고, 나는 루이보스 차 한 통을 선물로 받았다.
두 해쯤 흘러 마스터 리의 이사한 집을 찾았을 때, 치위웨와 응고마는 없었다. 그 대신 응고마의 친구라고 하는 침바가 마당을 지키고 있었다. 치위웨는 결혼을 했고 응고마는 어디론가 떠났다고 했다. 그 자리에 침바와 침바의 여자 친구가 들어와 일했는데, 지금은 침바의 여자 친구도 일을 그만둔 상태이며, 격일제로 일하는 아주머니가 집안일을 보고 있다고 했다. 마스터 리의 말에 의하면 침바의 여자 친구는 동네 청년과 바람이 났다. 뭐, 결혼한 것도 아니니 바람은 아니고 변심이겠지만, 어쨌든 그 일로 침바는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침바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며,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는 흔해빠진 일이기도 하다. 인간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애정문제에 동서와 고금의 차이가 있을 리도 없다.
침바의 경우가 좀 특별해 보이는 건 전 여자 친구의 새로운 상대가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간혹 마당을 쓸고 있거나 개밥을 챙겨주고 있을 때, 대문 밖으로 그 커플이 손을 잡고 지나가기도 한다는 것, 그럴 때마다 빗자루나 개밥그릇을 들고 망연히 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침바가 정원에 물을 뿌리고 있던 어느 늦은 오후, 동네 청년이 침바의 전 여자 친구를 자전거에 태우고 뒤뚱거리며 장난스럽게 대문 앞을 오가는 장면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문제의 커플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방 낄낄거리고 있었고 침바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호스 끝을 눌러 물을 더 멀리 가도록 뿌려대고 있었다. 그 커플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도 몹시 거슬렸다.
“침바, 넌 배알도 없냐? 쟤네들 멀리 가서 놀게 물이라도 확 뿌려! 아님 다시 뺏어오던지.”
고개를 들어 지그시 먼 하늘을 바라보던 침바가 불어터진 면발 같은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그게 인생이야.”
“…머 …머? 인생?”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입 밖으로 무슨 말이 튀어 나가려고 하는데, 내뱉어야 할 말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괜히 멋쩍어진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에라이~ 등신 같은 놈’하고 녀석의 엉덩이를 차주어야 하는지, ‘형님!’하고 넙죽 큰 절을 올려야 하는지, 분명 둘 중 하나일 것 같은데 답이 떠오르지 않는 거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모르겠다. 녀석이 바보였는지 도인이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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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