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와라 마스크(Tyi wara Masks)
바마나(Bamana) 또는 밤바라(Bambara)족은 현재 말리 인구의 1/3을 점유하고 있는 대표부족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미술은 농경사회에서 꽃을 피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마나 족의 티와라 마스크 또한 그런 아프리카 농경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바마나 족은 사하라 사막 남부에 접한 건조한 사바나 지역에 거주한다. 이 지역은 건기와 우기에 따르는 날씨변화가 거주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곳이다. 우기가 적당한 시기에 시작되는가, 곡물의 성장기 동안 충분한 강수량이 유지되는가 등에 따라 한 해 먹을 충분한 곡식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달려 있다. 만약 우기에 강수량이 절대치에 이르지 못하면 한 해를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바마나 사람들의 생존과 생명은 날씨의 변화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몇 달이 지나고 대개 5월경이면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때 농부들은 밭을 경작하기 시작한다.
바마나의 고대신화에는 문화적 영웅의 원형격인 반인반수의 선조가 등장한다. 이 조상이 창조자의 명을 받아 바마나 사람들에게 밭을 경작하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마법의 힘으로 씨앗에서 옥수수와 보리를 만들어냈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티와라(Tyi wara, 직역하면 ‘농경의 야생동물a wild animal of farming’)이다. 바마나 사회에서는 자신의 밭을 성실하게 경작해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올리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히 높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사회이념과 전통의 계승자들인 셈이며, 티와라의 현생이기도 하다. 티와라 마스크는 이들에 의해 농업의 탄생에 대한 신화를 재연하는 의식에 주로 사용되었다.
들판에서 행해지는 풍요제는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의 생존수단과 부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규율과 관습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마나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하마 또는 들소를 형상화한 것으로 여겨지는 볼리(boli) 상을 모신 제단에서 티와라 마스크를 한 젊은 농부들은 영양의 몸짓을 흉내 내어 춤을 춘다. 씨앗을 뿌린 후엔 풍작을 기원하며 춤을 추고 곡물을 수확한 후엔 감사의 춤을 춘다. 개인과 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이 신성한 의식은 점차로 노래와 악기 연주가 곁들여진 흥겨운 축제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으나, 본질적인 의미에서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티와라 마스크의 머리장식은 암수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암수가 각각 오릭스 영양(oryx antelope)의 가늘고 길며 뾰족한 뿔과 힘센 론 영양(roan antelope)의 우람하면서 뒤로 구부러진 뿔로 표현되고 있다. 어떤 것은 암영양의 등에 작은 새끼 영양이 앉아 있는 것도 있는데, 그 형태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변주되는 것은 농본사회의 특성이기도 한 다산성과 부족의 영속성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하필 영양일까? 그들이 살고 있는 건조한 사바나 지대에선 영양처럼 재빠르고 힘세며 위협적이지 않은 초식성의 동물도 없다. 추측건대 영양의 이러한 특징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와 근면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 농부인 그들과 동일시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동물이었을 것이다.
암수의 구분을 서로 다른 종의 영양을 택함으로 해결한 것은 영양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겠지만, 같은 종으로 설정할 경우 외양에서 암수의 구별이 쉽지 않다. 말하자면 두 종의 영양이 갖는 서로 다른 외양은 성(性)의 대비를 극대화하는 요소로 차용되기에도 적절한 것이다. 론 영양의 갈기가 달린 넓은 목과 기다란 귀를 가진 위풍당당한 머리가 남성성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오릭스 영양의 섬세하고 우아한 목과 머리는 여성성의 상징이라고 하겠다. 마스크가 평면적으로 제작되어 있는 것은 춤을 출 때 옆모습과 앞모습의 변화를 통해 다이내믹하면서도 환상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키시 은콘디(nkisi nkondi)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지는 동물의 뼈나 특이한 돌, 또는 조각상을 두고 페티시(fetish)라고 하는데, 서아프리카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포르투갈 선원들이 요루바족과 도곤족의 조각들을 접하면서 만들어낸 단어이다. 특히 아프리카에선 이 페티시가 조상 숭배와 많은 관련이 있으며, ‘은키시 은콘디’는 콩고의 욤베(Yombe)족에 의해 사용되어온 전형적인 페티시이다. 바콩고(Bakongo)라고도 불리는 콩고의 욤베족은 부족 왕의 신성한 권력이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통치자들은 이러한 치유의 능력을 사용하여 자신과 백성들을 위협하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왔다는 것이 그들의 오래된 믿음이다. 이 위대한 힘을 가진 조각상들이 은콘디이며 그중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이 은키시 은콘디이다. 본래 은콘디는 ‘손톱’을 뜻하는데, 조각상에 박아 넣은 못과 칼날 또는 그 물질들이 박혀 있는 조각상 자체를 의미하며, 은키시는 치료의식, 보호주술 등을 가리킨다. 신성한 힘으로 가득 차 있는 조각상들은 통치자의 즉위식 때 새로 등극한 왕을 보호함과 동시에, 자손들이 선조들의 법을 계속해서 따르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은키시 은콘디는 아프리카 예술품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고 매력적인 조각상이다. 칼을 높이 치켜들고 있거나 양손을 엉덩이에 올려놓고 있는 젊은이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부족의 규율을 집행하는 자의 위엄과 자신감을 보여주면서 그 선조들로부터 이어온 규율의 절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몸체는 긴장으로 가득 차 있지만, 엄격한 대칭과 정면성으로 인해 육체의 내부에 용암이 끓어오르는 화산을 품고 있는 듯한 힘의 증폭을 보여주고 있다. 못과 쇳조각들이 수도 없이 박혀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고통과 두려움도 담고 있지 않는 의연한 자세는 끊임없이 부족을 위협하고 있는 사악한 기운들에 맞서 물리치고 있는 통치자의 모습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크게 부릅뜬 눈과 드러난 치아, 두꺼운 입술과 단호한 표정 또한 부족의 수호자로서 갖추어야 할 외양으로 손색이 없다.
기본적으로 은콘디는 힘의 원천이 되는 물질, 혹은 약제를 담는 그릇을 나타냈다. 동물 혹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은콘디의 등, 배, 머리 등의 빈 공간은 약제로 채워졌던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은콘디들은 부족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을 주었던 치료사이자 주술사인 은강가(nganga)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덩치가 큰 은키시 은콘디는 마을 전체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졌을 거라 추정된다. 마을신으로서 중대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거나, 마을 사이의 평화조약을 맺는 자리에서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법적 협정이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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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