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안다. 눈뜨기 직전 지난밤 꿈속을 범람하던 드글드글한 욕망들이 포말이 되어 꺼지면서 시작되는 하루가 얼마나 허탈한 것인가를. 사회적 금기가 통하지 않는 욕망의 공간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육체는 에고의 관리 체제하에 들어오면서 힘없이 주저앉는다. 에고의 사회에선 허용의 범위를 넘어서는 개인의 욕망들을 일괄적으로 거세함으로써 통합 관리 시스템을 완성한다. 자명종이 울리는 순간 제멋대로 날뛰던 간밤의 위험한 짐승이 말쑥하고 온순한 교양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일상은 이렇게 무력하다. 옹색하고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으로 여는 다 큰 남자의 하루가 왠지 서글프다.
이 일상적인 서글픔에 유난히 적응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예술가들이다. 이들은 이드의 얄궂고 발칙하고 음탕하기까지 한 욕망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교묘하게 포장한다. 그 포장의 기술이 예술이다. 잘된 포장은 검색대를 거치지 않고 에고의 세계로 옮겨놓을 수가 있다. 합법적인 밀수인 셈인데, 때론 그 밀수품의 값이 천정부지로 뛰기도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거니와, 배를 곯다가 주변에 민폐를 끼치거나 우울증에 시달리다 성격파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불안하고 위험한 일이므로 그 값은 정당하다. 그게 바로 예술이라고 누군가는 얘기한다. 관리사회에선 예술가들을 고집 세고 철딱서니 없는 대다수와 나름의 전략으로 성공한 고상한 소수로 이루어진 별난 사람들의 집단으로 분류한다.
어쨌거나 일상은 무기력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 온갖 욕망을 자극하는 사건들과 사물들로 차고 넘치는 일상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한없이 온순해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내게 아프리카는 잠든 세포와 신경들을 깨우는 진정한 참살이의 공간이다. 하는 일도 없이 피로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이 없고, 눈을 뜨면 지난밤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또렷하다. 육체는 10년 전쯤으로 돌아간 듯하고 지능지수는 10쯤 높아진 것만 같다.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밋밋한 풍경 속에서 나는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고 싶고, 내가 원하는 일들에 투신하고픈 열망에 사로잡힌다. 이런 생각을 들게 하는 곳 중 하나가 남아공 웨스트 코스트 내셔널파크다.
케이프타운에서 북쪽으로, 그러니까 나미비아 방향의 국도 R27을 타고 한 시간 남짓 올라가면 좌측으로 웨스트 코스트 게이트가 나온다. 비슷비슷한 완만한 풍경 속에 그냥 작은 입간판 하나가 덜렁 걸려 있을 뿐, 국립공원임을 알리는 번듯한 표지판이 없어 자칫 지나치기가 쉽다. 케이프타운에서 그리 멀지 않으며 피로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좋은 장소여서 자주 찾는 곳이지만, 매번 게이트를 찾는 일이 신경 쓰이곤 한다. 게이트에 못 미쳐서 파이와 빌통(남아공 식 육포)이 싸고 맛있는 아담한 휴게소가 하나 있는데, 언제부턴가 이곳에서 요기를 해결하며 게이트 위치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게 순서가 되어버렸다.
게이트에서 입장료를 지불하면 지도를 받으며 간단한 설명을 듣는다. 북쪽 끝자락에는 몇 군데 브라이(남아공식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간단한 시설이 있으며, 필요하다면 숯이나 장작은 관리소에서 구입하면 된단다. 관리원은 말끝에 타조 같은 야생동물들을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거듭 부탁한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길을 가다보면 멀리서 돌멩이로 보였던 물체가 다가가보면 도로를 횡단 중인 거북이이고, 구릉의 바위로 보였던 것들이 움직인다싶으면 타조이고, 주변의 키 작은 나무들과 색이 좀 다른 것들이 꼬물거린다싶으면 임팔라 같은 사슴 류이다. 이 모든 동물들은 따로 먹이를 공급해 주지 않아도 이곳의 생태계 안에서 살고 있는 야생의 동물들이다. 이곳에 올 때마다 아쉬워지는 물건들이 있다. 아, 자전거와 망원경이 있었더라면…
대서양 쪽으로 돌출해있는 반도를 끼고 올라가 바다와 맞닿는 곳에 이르면 관리인이 말한 대로 고기를 구울 수 있는 화덕이 마련되어 있다. 장작에 불을 지펴놓고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돌 틈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 죄다 ‘섭’이라고 하는 자연산 홍합들이다. 반시간이면 씨알 좋은 놈들로 비닐 쇼핑백 하날 채울 수 있다. 절반은 장작불 위에 올리고 나머지는 요리에 쓰인다. 요리 이름은 따로 없다. 어느 날 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만들어 본 나만의 레시피다. 먼저 스튜용 포트를 뜨겁게 달군 뒤 손질한 홍합을 넣는다. 홍합이 입을 벌리면 적당량의 요리용 와인과 다진 마늘을 왕창 넣고 재료가 잘 섞이게 한 다음 뚜껑 닫고 5분만 기다리면 요리 끝. 홍합에 짭조름한 소금기가 남아있으므로 따로 간을 할 필요는 없으며, 있다면 버터와 후추를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홍합도 일정량 이상의 채취는 위법이라고 한다. 그 한도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 요리를 할 정도면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게 분명하다.
낮은 구릉들과 해변과 바다… 이곳의 풍경들은 하늘을 빼면 모두 눈 아래에서 펼쳐진다. 구릉과 구릉, 해변과 바다가 만나는 선들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같아서 이곳의 모든 생물체가 다 사납지 않을 것만 같다. 물론 풀숲에는 맹독을 지닌 독사들도 살고 있겠지만. 참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풍경인데, 나의 오감은 잃어버린 기능들을 되찾은 듯 미세한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치 가물가물하던 건전지를 새 것으로 갈아 끼운 카메라처럼 빠르고 선명하게 사물들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포착해낸다. 나의 사고와 감각을 방해하고 강요하던 불필요한 시청각 정보들로부터 해방이 된 탓이리라.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무한히 자유롭고 삶의 에너지들을 공급받는다.
9, 10월에는 이곳에도 봄이 오고 일대의 구릉들이 색색의 들꽃으로 뒤덮인다. 앙증스러운 꽃들이 종류별로 군락지를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습은 신의 카펫처럼 부드럽고 황홀하다. 누구의 손길도 닿아 있지 않지만 그 어느 황제의 정원보다 아름답다. 동물들이 주인인 대지와 풍부한 햇빛과 지난 계절의 비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서둘러 볼펜과 노트를 꺼내들고 너럭바위에 쭈그리고 앉아 시 한 편을 써내려간다.
소리소문없이 들꽃 피더니
들불처럼 들판을 점령한다
나는 겨우내 등이 가렵던 들판
이유 한 번 묻지 못하고
두손두발 다 든다
들꽃 폭탄 터진 자리마다
아지랑이 포연 무성하다
내 안에 식민정부가 들어서고
나는 들꽃의 제복을 입는다
밀항도 망명도 꿈꾸지 않겠다
미안하다 내 겨울의 동지들
나는 여기서 살아남아야겠다
― 「들꽃」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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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