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라고 말한 건 말라르메가 처음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라고 갈파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그 책의 단지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여행은 독서이다.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가장 정실한 독법, 그게 여행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가슴에 새겼을 법한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도서관에 들어앉아 일생을 산다고 해도 책은 넘쳐나며, 아무리 많은 곳을 헤매고 다녀도 길은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이고, 세계와 인생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여행하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보다 식견이 넓다거나 생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여행지 정보에 대한 잡다한 지식이라면 몰라도. 『국화와 칼』을 쓴 루드 베네딕트 여사는 단 한 번도 일본에 가본 적이 없으나, 이 책은 출판 이후 반세기 동안이나 일본에 관한 최고의 저작으로 추앙받으며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다. 독일에서 최초로 자연지리학을 강의했던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고향인 괴니히스베르크로부터 100마일 이상을 여행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얘기다. 그는 오직 자신의 서재에서 독일 관념철학의 기초를 놓았다. 해외를 자유롭게 여행하기 시작한 지 고작 20년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에게 여행은 어쩌면 막연한 기대와 몽상인지도 모른다.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는 배낭족의 바이블 『론리플래닛』의 창업자 토니 휠러는 평생 여행을 즐기면서 굴지의 사업체를 일군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입니까’라는 질문에 ‘공항의 출국장이요’라고 다소 엉뚱한 대답을 한다. 질문을 한 사람은 적이 당황했겠지만, 나는 무릎을 쳤다. 내게 여행은 곧 떠날 여행에 대한 기대와 동경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동조자가 한 명 더 있다. 얼마 전 영국 히스로 공항에 머물며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펴내 화제를 모았던 알랭 드 보통. 그는 자신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에서 ‘집에 눌러앉아 얇은 종이로 만든 브리티시 항공 비행 시간표의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면서 상상력의 자극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여행은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썼다.
중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영어사전에서는 여행을 ‘travel’, ‘trip’, ‘tour’, ‘journey’ 등으로 표기한다. 관광이나 유람 등 여행에 근접한 우리말은 ‘sightseeing’에 가깝다. 아마도 여행에 관한 한 서양이 우리보다 구체적이었던 것 같다. 여행(旅行)은 말 그대로 나그네의 행각이고 나그네의 발길은 정처 없기 마련이다. 유람(遊覽) 또한 노닐거나 떠돌며 보는 것이다. ‘旅’와 ‘遊’가 일찍이 선인들이 성현의 고상한 아취와 지고한 덕목으로 여겼던 풍류의 영향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우리에게 여행은 구체적 목적이나 행위보다는 완전한 자유의 실현으로 이해되지 않았나 싶다. 나의 경우는 확실한 목적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편이다. ‘旅’보다는 ‘行’에 방점이 찍힌다고 할까. 그래서 아프리카는 수없이 다녔어도 동남아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왜 떠나는지를 생각하고 떠날 것.’ 토니 휠러가 말하는 여행의 제1계명이다.
그러면 여행지로서 아프리카는 어떨까. 어느 곳이나 그렇듯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지만, 아프리카는 우리와 다르다. 달라도 많이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다. 그냥 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프리카가 우리와 다르다는 차이의 인식에 대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세계지도에서는 경계를 표시할 수조차 없지만 경상도와 전라도에도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곳과 여기가, 그들과 우리가 ‘같다’라는 동질적 인식이다. 다른 것으로만 생각하자면, 아프리카는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불편하고 해괴한 곳이다. 동질적 인식은 기대 이상의 아프리카를 경험하고 돌아올 수 있는 아리아드네의 붉은 실이다. 그러니 그걸 놓지 말자. 이것이 나의 아프리카 여행 제1계명이다.
나의 사적인 경험과 견해를 토대로 아프리카 여행의 참고 사항을 몇 가지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시계를 과신하지 말자. 아프리카의 시계는 앞으로만 가는 게 아니고 뒤로도 간다. 물론 기계가 그럴 리는 없고 그들의 시간관이 그렇다는 것이다. 나이로비에서 오후 7시에 출발해 이튿날 오전 8시 몸바사 도착 예정인 야간열차는 두세 시간 정차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교통편을 연결할 때 시간을 빠듯하게 정하면 낭패를 당할 수 있으니, 늘 유격 시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은 사람이 씩 웃으며 나타나 오는 길에 소가 도망가서 잡아 붙들어 매고 오느라 늦었단다. 그걸 어쩌겠는가. 절대 시간 가지고 스트레스받지 말 일이다. 혹 당신이 늦거든 미소를 머금고 사정을 얘기하면, 상대가 쉽게 ‘노 프로브럼!’ 할지도 모른다.
길은 반드시 두 사람 이상에게 물어보라. 언젠가 한 얘기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친절은 정확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소통 자체에 있은 듯하다. 아니면 멀리서 온 이에게 뭔가를 일러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거시기’처럼 모호하다. 차를 타고 길을 물어보면 자신의 행선지가 그 방향이라며 같이 가잔다. 목적지에 내려주고 일러준 대로 한참을 가다 보니 아까 그 사람을 태웠던 곳이 다시 나온다. 이런 일로도 절대 스트레스받지 말자. 안 그러면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두통이 찾아온다. 두 사람 이상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 그 정보의 정확도는 90% 이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지도가 눈에 띄거든 무조건 챙겨라. 아프리카에선 도심을 벗어나면 투어리스트 인포메이션을 찾기 힘들다. 서점에 가도 지도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지도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니라 대부분 지도 제작 자체가 이루어져 있지 않은 경우다. 반드시 지도가 필요한 경우 가까운 곳에 호텔이 있다면 지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호텔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곳이 시골일 경우 말이 잘 통하고 지리에 밝은 사람을 찾아 귀찮아할 정도로 물어서 지도를 그리는 편이 낳다. 그렇게 그린 지도는 다른 이에게 한 번 감수를 받는 것이 실패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선글라스는 선택, 외투는 필수. 최대한 간소하면서 편리한 복장은 아프리카 여행의 불문율이다. 핫 시즌엔 면티에 반바지, 걷기에 적합한 운동화와 가벼운 외투가 최적의 패션 아이템이다. 추운 계절에는 거기에 바지와 외투를 교체하면 되는데, 건조한 지역에선 해가 떨어지면 선선해지고 밤이 되면 제법 스산하기까지 하다. 객지에서 감기로 고생하지 않으려면 밤이고 낮이고 아프리카가 더울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아프리카에는 열대야로 인해 잠을 설치는 일이 없다. 개인적인 편차야 있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더위는 온도보다 습도의 영향을 더 받는다. 나의 경우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들르게 되는 싱가포르나 홍콩의 날씨가 더 참을 수 없다.
여행 지역의 언어로 인사를 해보라. 그러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건 당신과 당신 부족의 문화를 존중하며 친분과 우정을 나누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성미가 고약한 사람이라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내가 자주 찾는 쇼나 부족의 마을에선 ‘마가디!(안녕하세요)’하고 외치면 사람들이 악수를 청해오고, 마을을 빠져나오며 ‘사라자카나가!(안녕히 계세요)’하고 외치면 인근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인사를 할 때 물론 발음은 중요하지 않다. 외국인이 우리에게 ‘안녕하슈’ 한다고 해서 기분 상할 일은 아니니까. 이는 간혹 예기치 않은 일로 몰린 난감한 처지에서 의외로 쉽게 빠져나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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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