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깃든 검은 영혼의 신비 - 전시 도록 서문을 대신하여
아프리카 미술이라는 낙뢰가 제 심장에 와 박히면서 사지를 마비시켰던 게, 전 세계가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새천년을 맞을 준비를 하던 무렵, 그러니까 벌써 10년 가까이 되는 일입니다. 인류가 맞이한다는 세 번째 밀레니엄. 뭔지 모르지만 어떤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우리 덮칠 것이라는, 그리하여 우리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전개되리라는 막연한 몽상이 지구를 덮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우연히 접하게 된 쇼나조각이라는 바이러스를 통해 아프리카 미술의 열병에 감염되고 말았던 겁니다. 그것은 흡사 무병(巫病)과도 같았습니다.
문학과 출판 사이를 오가며 밥벌이를 하던 제게는 느닷없고 뜬금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 후로 저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거나 퀭한 눈으로 아프리카 미술의 낯설고 기괴한 이미지들 속을 헤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을 뒤지며 쇼나조각에 대한 자료를 구했으나, 당시 국내에는 책자의 형태로 된 자료는 고사하고 쇼나조각으로는 검색되는 내용이 아예 전무했습니다. 할 수 없이 인터넷의 힘을 빌었습니다. 물론 해외 포털사이트를 통해 자료를 입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마법의 힘이라도 작용하고 있는 듯, 쇼나조각은 서서히 눈을 떠갈수록 더욱 강렬한 흡인력으로 저를 매혹했습니다.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된 형태, 그 형태 속을 섬세하게 흐르는 선과 면, 부분적으로 거칠 게 다듬어져 있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묘하게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고 있는 탁월한 조형 감각,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현대적 조형에 대한 조화로운 이해, 자연에 대한 순응과 폭발적인 생명력의 표현, 무엇보다도 작품 속에 스며 있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와 포용의 정신이 나를 매료시켰던 것입니다.
제게는 쇼나조각이 흥분으로 가득한 기대였으며, 막연한 몽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대와 몽상은 마침내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 사표까지 내는 사태를 불러오고야 말았습니다. 그 기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마, 내가 아닌 누군가 그 일을 했더라면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내가 만난 화단의 어떤 이들도 쇼나조각에 대해서는 그 존재조차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와 관련한 나의 중대한 선택이 알려지자 주변으로부터 우려의 말들이 들려왔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쇼나조각의 미학적 완성도와 문화적 의미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면부지의 땅 아프리카로 향했습니다.
‘돌에 깃든 검은 영혼의 신비’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프리카 쇼나 현대조각 전』(2001, 성곡미술관)은 그렇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지만, 당시 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이었던 전준엽 화백은 두 달에 이르는 전시기간과 미술관 본관 전실을 흔쾌히 내주었습니다. 미술관으로서도 기대가 큰 전시라고 했습니다. 기획안 한 장과 경험 없는 얼치기 기획자의 의지만 확인하고 전시 계약을 하게 되었던 건 크나큰 배려였습니다. 전시에 대한 화단과 미디어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관람객 또한 연일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쇼나조각에 대한 저의 기대와 몽상, 확신이 그대로 적중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확인했던 쇼나조각의 현장은 첨단의 도시문명 속에 젖어 있던 아시아의 한 청년에게 감동으로 와 닿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작품에 임하는 자신들만의 신념과 재료를 다루는 방식은 제가 알고 있던 조각의 제작 방식과는 판이한 것이었습니다.
쇼나조각은 전적으로 작가의 수작업에 의해 제작되는데,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수십만 번의 망치질과 사포질이 요구됩니다. 제대로 된 망치질에 손톱만큼의 돌조각이 떨어져 나갈 뿐이며, 돌을 연마하는 것은 오직 사포(sandpaper)뿐입니다. 그러니 작품 하나하나가 집약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디자인은 철저하게 작가의 직관에 의해 이루어지며 밑그림 또한 없습니다. 따라서 누가 작품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에게 조각은 오로지 자신의 직관과 노동, 전적인 작가적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고독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돌조각은 작가의 아이디어와 디자인만 있으면 나머지 작업은 기계에 의존하거나 전문 제작자에게 일임해도 무방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것은 쇼나조각가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에게 조각의 재료가 되는 돌은 매우 신성한 물질입니다.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는 겁니다. 쇼나조각이 이루어지고 있는 짐바브웨라는 나라는 국호 자체가 ‘돌로 만든 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화폐와 공문서에는 새 형상의 돌조각과 밸런싱 록(Balancing Rock)이라는 신령스러운 바위의 모습이 박혀 있다는 것은 그들이 돌을 어떻게 생각하며 다루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쇼나조각의 작업에는 세 가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첫째, 서로 다른 돌을 접착하거나 연결하지 않는다. 둘째, 돌을 조각함에 있어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 셋째, 돌 조각에 착색(着色)을 하지 않는다. 이 원칙들은 그 안에 신령함을 담고 있는 돌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인 예의에 속합니다. 인위적 조작을 최대한 배제하며 돌의 물성을 배반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쇼나조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으며, 쇼나조각의 자연스럽고 순수한 아름다움이 거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쇼나조각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미덕 가운데 하나는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또 다른 하나의 시각을 제공했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서구인의 눈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의 저널과 비평가, 컬렉터들은 쇼나조각에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보내왔습니다. 지난 세기 중후반부터의 일입니다. 아직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모든 고정관념들을 버리고 벌거벗은 눈으로 이 조각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왜 그렇게 마티스와 피카소가 아프리카에 열광했는지, 아프리카 미술이 왜 20세기 현대미술의 정신적 원천이라고 일컫는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부디 바라건대, 이 작품들을 바라볼 때 마음을 활짝 열어두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아프리카에 대한 모든 지식과 이미지들을 지워버리고 아이들의 눈으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전시관에 머무는 동안 핸드폰은 잠시 꺼두시기 바라고, 도록과 전시를 통해 이제껏 보아온 작품들에 대한 느낌과 현대예술에 대한 이론들도 잠시 가방에 넣어두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텅 빈 마음속에 작품들이 채워주는 것에 귀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무언가 들려온다면 대화를 나누셔도 좋습니다. 남부 아프리카의 한 나라의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삶,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새봄 들머리
터치아프리카 작업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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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