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면적의 7할이 바다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물이 존재하는 물의 행성이다. 어떤 필연성이 숨겨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인체 또한 7할이 물이다. 그런가 하면 물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중에 고체와 액체, 기체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며 존재하는 유일한 물질이며, 모든 생명들을 보듬고 키워내는 신비의 물질이기도 하다. 이쯤이면 시대와 출신지역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상가들이 물을 화두로 삼지 않았을 리 없다.
고대의 서양철학은 자연에 대한 통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자연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존재의 원리로 파악했던 이 자연주의 철학자들은 수없이 변화하는 자연현상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그 변화들을 이끄는 본질을 추구했는데, 그것을 원질(原質) 즉 아르케(arche)라 한다는 게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졸음을 참아가며 들어온 얘기다. 그들에게는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구하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셈이다. 그 질문에 탈레스는 단호하게 ‘물!’이라고 답하지 않았던가.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에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일반적인 의미의 형태적 상상력 외에 존재의 근원을 파고들어가 영원하고 원초적인 것을 존재 속에서 탐구하는 물질적 상상력이 있으며, 그 물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물이다. 원초적이며 영원한 존재인 물의 이미지는 태아를 감싸고 있던 양수에서 모유로 이어지고 나아가 바다에 도달한다. 여기서 좀 더 상상을 밀고 나가면, 물의 이미지는 최종적으로 순화(純化)에 닿는다. 바다는 더러워진 물을 스스로 자신의 몸 안에서 정화시키며, 다시 깊은 계곡의 맑은 샘물로 되돌리기 때문이다.
물(水)이 흐르는(去) 방식이 법(法)이라고 했다. 불가에서는 법이 부처님의 가르침, 다시 말해 ‘진리’를 의미한다. 인류는 동서를 막론하고 물을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내며, 마침내 생명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궁극의 물질로 여겨온 듯하다. 그러나 물은 근대를 거치면서 화학식으로 H2O, 즉 두 개의 수소와 한 개의 산소로 이루어진 단순한 물질로 치환되면서 그 숭고함은 사라지고 만다. 엄밀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근대적 세계관은 수치와 기호에 의해 분석되지 않고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는 이미지에 의한 인식을 과학의 영역 밖 아득히 먼 곳으로 추방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아프리카로 가보자. 무릇 물은 생명의 본질이거늘, 아프리카에서 물의 인문학적 배경을 두고 고담준론을 펼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물질로서 물이기 때문이다. 물 부족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호환, 마마, 에이즈보다 더 무섭다. 펌프 하나에 1,500명 정도가 매달려 산다면 그 고통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을까. 참 빠뜨린 게 있다. 물 없이 살 수 없는 건 인간만이 아니어서, 집계 불가능한 수의 가축들도 그 펌프에 기대어 산다. 인구 1인에게 공급되는 물의 양은 남미의 25% 정도 수준으로 아프리카는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한 지역이다. 아프리카 자연재해의 대부분은 가뭄과 관련된 것들이며, 물 부족으로 고통을 겪는 나라의 아낙네와 어린아이들은 물을 찾아 길어오는 데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을 바쳐야 한다.
다시 아프리카 남부의 칼라하리로 가보자. 칼라하리가 사막의 이름이니 이곳에서 물이 얼마나 귀한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칼라하리에서 부시먼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동식물들이 서식하는 곳은 초원지대이다. 사계절이 우리처럼 분명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도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따라 자연은 반응하게 마련이다. 눈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변화는 미묘하고도 정확하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때가 되면 꽃들은 어김없이 망울을 터뜨리며 애벌레들이 꿈틀거리고 동물들은 제 짝을 찾아 번식에 나선다. 그 변화와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단연 비다. 우기와 건기는 칼라하리 초원지대의 모든 계절의 시작이며 끝이다.
거대한 구름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낮게 몰려와 뺨에 그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느낌을 전해준다면, 거기에 맞춰 작은 짐승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면 곧 비가 올 거라는 얘기다. 그리고 그 구름들이 사자의 코 고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그 비가 제법 큰 비일 거라는 얘기다. 어떤 부시먼들은 굵은 빗방울들이 대지를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떨어지는 비를 ‘여자 비’라 하고, 장대비처럼 세차게 퍼붓는 비를 ‘남자 비’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여자와 남자의 일이 각각 채집과 수렵인 점을 감안하면 퍽이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여자 비든 남자 비든 메마른 땅에 빗물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칼라하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 돌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갈라졌던 진흙 바닥에 물이 고여 흐르기 시작하고 개구리들은 나무 위로 올라가 서둘러 짝짓기를 시작한다. 빗물이 흐르던 물줄기는 좀 더 낮은 곳에서 실개천을 이루고 그 하천을 따라 온갖 생명의 씨앗들이 이동을 한다. 제법 물이 고인 물웅덩이의 바닥이 진흙으로 풀어지면 그 속에서 보이지 않던 생명체가 느닷없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난 우기의 끝에서 진흙 바닥을 파고들어 거푸집을 만들고 기나긴 건기를 버틴 아프리카폐어의 장엄한 부활이다. 식물의 뿌리들은 젖을 빠는 아기의 힘으로 물기를 발아 올려 덩굴을 자라게 하며 꽃을 피우고, 머지않아 수분을 머금고 있는 열매들과 단맛이 나는 과일들을 키워낼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부시먼 아낙네들은 어디에서든 큰 수고 없이 식량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가 잦아들고 생명의 축제였던 우기가 끝나면, 얼마 동안은 대지에 선선한 기운이 감돌겠지만 칼라하리의 모든 동식물들은 그 기간이 결코 길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으며, 혹독한 메마름을 견뎌온 저마다의 지혜로 살아갈 준비를 서두른다. 애벌레들은 누에고치와 번데기 속에 머물 것이며 일제히 날개를 버린 개미들은 땅속 개미굴로 기어들 것이다. 철새들은 호수를 버리고 먼 여행을 떠날 것이며 물웅덩이의 작은 새들도 어디론가 종적을 감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초원에 생명의 그림자가 걷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동식물들은 오래전부터 적은 물로도 생명을 이어가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기린은 나뭇잎에서 섭취하는 수분으로도 살 수 있으며, 영양들과 타조는 몇 모금의 물로도 거뜬히 건기를 넘긴다. 물웅덩이의 바닥이 갈라져도 멜론류의 과일이나 아침이슬로 섭취하는 수분으로도 충분하다. 떨기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은 땅속 수분이 있는 곳까지 뿌리를 뻗거나, 덩이식물들은 알뿌리나 뿌리줄기의 형태로 수분을 함유한 채 땅속에 묻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존재방식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그런대로 견딜 만한 수준의 생장조건은 아니다. 부시먼들 또한 타조 알을 이용해 물을 저장하거나 동물적인 감각으로 찾아내는 덩이식물들을 통해 수분을 얻는다고는 해도 목마름을 해결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부시먼들이 이 악조건의 땅에 뿌리내렸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악조건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아갈 수 있었지만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살 수 없었으므로 어떤 이민족들도 함부로 그들을 약탈하거나 귀찮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민족들을 불러들여 결국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 좀 더 편리해지기 위해 팠던 우물 때문이었다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시먼에게 활 다음에 가장 중요한 물건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 타조 알일 것이다. 칼라하리에 타조가 살지 않았더라면 부시먼들은 부시먼은 일찍이 멸종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타조라고 하는 날지도 못하는 커다란 새가 그곳에 살고 있어서 그들에게 생존의 가장 중요한 도구를 주었는지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타조 알은 자연이 가져다준 최고의 선물이다.
부시먼이 타조 알을 활용하는 방법은 이렇다. 타조가 없는 틈을 타 알을 훔친다. 타조에게 들켰을 경우 타조 알을 얌전히 내려놓고 빛의 속도로 달아나야 한다. 타조는 100㎏을 훌쩍 넘는 몸으로 시속 60㎏ 이상의 속도를 내며, 발에 걷어채면 내장이 파열될 수도 있는 위험한 동물이다. 훔친 알에 날카로운 돌로 구멍을 내고 돌을 돌려가며 구멍을 다듬는다. 나뭇가지를 구멍에 넣어 휘휘 저은 다음 부족한 단백질을 채운다. 유의해야 할 점은 혼자서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양이 많다는 거다. 빈 공간에 물을 채우고 나뭇잎을 돌돌 말아 마개로 삼으면 훌륭한 물병이 어지간한 충격에는 깨지지도 않는 훌륭한 물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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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