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루 평원의 밤하늘을 지배하던 수만의 별 무리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그 빛이 바래져 갈 무렵 전방 우측 차창에선 뭔가 희미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곧 동이 터 오르리라는 신호였다. 먹을 풀어놓은 듯했던 하늘은 물기를 머금은 듯 점차 옅어지는 농담의 그라데이션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이내 짙푸른 빛이 감돈다. 평원의 하늘은 황급히 열린다. 새벽빛은 다시 붉은 쪽으로 기울고 그 한가운데 폭발하기 직전의 분화구처럼 강렬히 꿈틀거리던 지점에서 태양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빛이 어떤 보석보다 눈부시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건 삽시간의 일이다. 단순하지만 어디 한군데 가식을 숨기지 않는 솔직하고 담백한 일출이다. 별들은 이미 부시먼의 믿음대로 하늘을 비워주고 모래사막으로 내려와 개미사자(antlion, 명주잠자리의 유충)가 된 지 오래다.
차를 세우고 잠시 기지개를 켠다. 몸 어디선가 으드득, 하며 비틀어진 골격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치 앞을 분하기 어려웠던 안개지대를 지나 불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을 운전해오는 내내 긴장을 멈추지 않았던 탓이다. 더구나 차장으로 떨어져 내리는 황홀한 별똥별들이 집요하게 운전을 방해해대지 않았던가. 평원은 고요하고 드넓었고 그 광활한 만큼이나 막막했다. 뭔가 소리를 질러보려다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야- 하고 외쳐보았다. 어디선가 왜- 하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평원을 지나면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개밋둑과 되새들의 둥지이다. 개밋둑은 어린애들 키만큼이나 높게 솟아 있어, 저것들이 개미들이 흙을 퍼날러 만든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개미들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저런 둑을 쌓을 수 있을까. 드문드문 선 채로 아침 바람에 가볍게 몸을 흔들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마다 되새 둥지들이 메론 류 과일들처럼 매달려 있다. 이따금씩 되새들의 아파트라도 되는 양 늙은 호박만큼 크게 지어진 것들도 눈에 띈다. 플레트폰테인 농장에서 만난 한 부시먼 청년이 되새 둥지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알과 새끼들은 모두 위쪽에 있다고 말해준 적이 있다. 이유인즉슨 뱀이 접근하면 그 무게로 인해 위쪽 구멍이 자동적으로 닫혀 뱀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뱀은 늘 아래쪽 빈방만을 보고 그냥 가버린다는 것이다.
“숲은 우리의 교과서이며 백과사전입니다. 숲에는 우리들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정보들이 빼곡하게 들어가 있지요. 언뜻 복잡하고 난해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듯 숲이 가지고 있는 자연의 정보들을 해독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부시먼의 삶은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수백만 년 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 수백만 년이 지나도 부시먼과 자연 사이에는 이렇다 할만한 갈등도 변화도 없을 것이다. 외부의 영향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말이다. 그들의 생체리듬과 존재의 방식이 자연의 순환구조와 닮아있는 까닭이다. 부시먼 청년의 말처럼 그들이 자연의 일부이기에 가능한 것이기는 하지만, 자연을 읽어내는 그들의 동물적 감각은 놀라움을 넘어서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들은 개미들이 누 떼에 짓밟힌 집을 복구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나 폭풍에 쓰러졌던 풀잎이 다시 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 먹구름이 비를 몰고 산을 넘어오기까지의 시간, 거미가 거미줄을 다시 치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정확히 읽어낸다. 구름의 형태와 움직임, 나뭇잎의 미세한 떨림이나 짐승의 울음소리, 곤충들의 행동들도 그들에게는 모두 해독 가능한 자연의 정보들이다.
부시먼은 짐승의 발자국만 보아도 그 짐승이 어떤 종류의 것이며 암컷인지 수컷인지,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건강상태와 이동방향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심리상태까지도 정확히 설명해 낸다. 발자국 옆에 배설물까지 남아 있다면, 부시먼은 소설을 읽듯 짐승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냥할 때도 활로 동물들을 쏜 뒤 곧바로 추격하지 않는다. 짐승들이 서 있던 곳으로 가서 그 흔적들을 확인하고 짐승이 쓰러질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쫓기만 하면 된다. 동물의 추적에는 엄청난 기술과 지식이 동원되지만, 그들이 화살에 맞은 짐승을 찾아내는 데 실패란 없다. 사자 같은 맹수들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짐승은 여지없이 그들의 식량이 된다.
이동 중인 누는 대게 넓은 평야 지역에 그 흔적을 남기며 쿠두 영양은 언제나 빽빽한 덤불숲에 배설물을 남긴다는 것, 한낮 큰 나무 숲에 어른거리는 건 일런드이기 십상이고, 사슴영양이 풀이 많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빛을 반사하는 회색 털을 가졌기 때문이며, 생김새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겜스복 영양이 넓은 평야에서도 발견되기도 하는 것은 태양열에 잘 적응하기 때문이라는 것, 배설물 속에 섬유질이 많을수록 소화기능이 약한 늙은 놈이라는 사실은 수렵에 처음 따라나서는 열댓 살 먹은 애송이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태곳적부터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삶을 지탱해온 부시먼의 존재 방식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빙하기의 도래와 더불어 괴멸의 길로 들어선 공룡의 처지나 다를 바 없다. 다만 그들에게 빙하기는 자연의 대전환이 아니라 문명의 패러다임이며 시대의 요구이다. 요컨대 변화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석기시대 이래로 그들은 스스로 진화를 거부해왔다. 자연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들 곁에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들을 품었던 자연을 등지고 문명의 옷을 입을 것인가, 문명으로의 개종을 거부하고 괴멸의 길을 걸을 것인가. 그들은 지금 존재와 가치를 붙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마치 아프리카의 깊은 늪에서 진화를 거부한 채 간신히 버티고 있는 폐어(肺魚)처럼.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땅속을 파고들어
한 이태쯤 늘어지게 잠이라도 자고 싶다
부질없는 욕망들 다 게워낸 다음
심장의 박동을 멈추고, 깊은 어느 지층
딱딱한 유선형 흑벽돌로 박히고 싶다
잠시 이승을 베고 누운 내 몸 위로
세상을 흔들며 들소 떼가 달려가고
그 뒤를 사바나 푸른 초원을 휩쓸며
해일 같은 불길이 쫓아가고
밀렵꾼이 목을 축이며 지나가고
반정부군의 낡은 지프가 지나가고
내전이 지나가고, 꿈이 지나가고
개 같은 날들이 지나가고
덜 익은 희망이 지나가고
철없는 사랑이 지나가고
널 몹시 아프게 했던 상처가 지나가고
최루탄과 화염병이, 욕설과 연민이, 권태와 욕정과 술주정이 지나가고
행렬을 이탈한 난민들이 지나가겠지
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엔
쥐라기 이전부터 앓아온 열병의
유전자는 플랑크톤이 되고
고독은 화석이 되고
의식은 호박 속에 갇히겠지
우기가 시작되면
풀리는 진흙 속에서 나는 눈뜨겠지만
이 폐허의 수심을 떠나진 못하리라
폐허…, 폐― 하고 발음했을 때
터져 나오는 그 파열음의 허무를, 파열하는 허무를, 허무의 파열을
썩어가는 폐를 가진 자들은 안다
- 拙詩 「아프리카 폐어를 위하여」 全文
* 폐어(肺魚) -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물고기. 폐호흡을 하며 중생대까지 널리 분포하였으나 급격히 쇠퇴하여 현재 아프리카와 일부 지역에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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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