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始原)으로의 여행 - 최초의 아티스트들을 찾아서
이른 새벽에 차 시동을 건다. 케이프타운 외곽의 살가웠던 풍경들이 짙은 안갯속에 잠겨 가무스름하다. 길은 열 걸음 앞을 보여줄 뿐 먼발치를 보여주지 못한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안개등마저 삼켜버릴 정도로 자욱하다. 습기를 머금은 안개는 연기처럼 위로 향하지 못하고 바닥으로만 가라앉는다. 예상치 않았던 복병이다. 안개를 감안하지 않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도착하리라 생각했던 먼 길이다. 지난번처럼 엔진을 태워 먹지 않으려면 평균 속도를 줄이고 나도 차도 충분히 쉬어가야만 한다. 갑자기 마음이 안개보다 무거워진다. 와이퍼로 차창에 들러붙는 안개를 걷어내며 점점 깊어지는 안개의 터널 속으로 진입한다. 서울로 향하는 자유로에서 이런 안개를 만난 적이 있다. 안개는 이정표의 큼지막한 글씨들을 죄다 지워버렸고 희미하게 보이는 차선에 의지해 달팽이처럼 도로를 기어야만 했다. 그러길 한 시간 남짓, 뭔가 찜찜한 느낌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살펴보니 차는 인천공항을 향하고 있었다. 그땐 약속을 작파하고 을왕리까지 가서 바람을 쐬다 왔어도 무방했지만, 지금은 여러모로 사정이 다르다. 나는 지금 부시먼 암각화(Rock Art)를 보기 위해 킴벌리 시 인근 플래트폰테인 농장을 다시 찾아가는 중이다.
안개지대를 빠져나오자 칠흑 같은 어둠이 주위를 감싼다. 칠흑, 정말 옻칠만큼이나 깜깜하지만 안개가 걷혔다는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따금 케이프타운으로 물건을 싣고 들어오는 트럭들과 마주칠 뿐, 도로는 텅 비어 있고 주위는 적막하기만 하다. 새벽 동이 트기까지는 아직 두 시간 정도가 더 지나야 한다.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의 흔적은 드물어지고 길은 평평해진다. 카루(karroo) 평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케이프타운에서 요하네스버그를 잇는 하이웨이 N1은 두 도시를 최단거리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얼추 서울에서 부산의 네 배를 넘지만, 두 도시 사이가 대부분 광활한 평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말이지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킴벌리에 들어서기까지의 길은 급한 커브 한 번 없이 직진만으로 일관하는 길이다.
세상에 저와 나뿐인데도, 평원은 아무런 말이 없다. 어둠의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중일 것이다. 그 잠이 깊디깊어서 내가 헤드라이트를 하이 빔으로 놓고 소음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바람마저 사위어든 이른 새벽의 카루. 강산은 이를 데 없이 적막하기만 한데 허공을 지천으로 채우고 있는 별들이 저희들만의 언어로 수런거리고 있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수만의 별 무리다. 그러고 보니 허공이 칠 할인데, 어쩌자고 별똥별은 눈높이에서 자꾸 떨어져 내리는지. 비스듬한 오르막에선 별들은 또 어쩌자고 핸들 위에 걸려 있는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지상의 길인지 허공의 길인지. 도무지 종잡을 길 없는 멀고 먼 길이다.
수백만 년 전에 별들이 보낸 빛을 이제야 내가 받아본다. 저 별들 중 몇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부시먼들이 남겨놓은 수만 년 전의 흔적들을 찾아가고 있다. 오늘날 아프리카 미술의 가장 위대한 유산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부시먼들의 암각화들 또한 풍화와 파괴에 의해 상당 부분 사라져갔다. 그것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면 저 허공의 별들만큼이나 무수하게 지상에서 빛을 발하고 있으리라. 해독되지 않는 별들의 언어처럼 넓고 부드러운 바위의 표면에 아로새겨진 부시먼들의 이야기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옛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옛 그림이 보인다면 부시먼들의 암각화들은 부시먼의 눈으로 보아야 할 터인데, 부시먼의 마음 또한 종잡을 길이 없다.
부시먼은 16세기부터 아프리카 남단에 정착하기 시작한 보어(네덜란드계 백인)인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수풀(bush) 속에 사는 사람’이라는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산(San)족으로 통칭하며, 그들과 인종적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코이코이(호텐토트)족과 더불어 코이산(Khoisan)족이라 불리기도 한다. 혈통적으로 그들과 가장 가까운 코이코이 족에게선 이렇다 할 문화적 유산들을 찾아보기 힘든 반면, 산족은 원시미술의 가장 훌륭한 모델들을 유산으로 남겨왔는데, 현재 남부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주변에 잔재하는 암각화들이 모두 부시먼들의 손에서 나온 것들이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시먼 암각화는 남아공에만 1만 5천 점 정도가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프리카 남부지역 전체로는 5만 점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양이지만 부시먼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인 점을 감안하면 많은 양의 암각화가 전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없으리라. 암각화는 특성상 풍화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것들도 보존상태가 양호하지는 않으며, 정확한 제작연대를 측정하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현재까지의 측정 결과 부시먼의 암각화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나미비아의 한 동굴에서 발굴된 석판(石板) 그림으로 돌판 위에 목탄으로 그린 것이다. 목탄의 탄소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2만 5천년에서 2만 8천년 경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부시먼의 암각화는 대부분 부족의 문화적 전통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지혜를 후세에 전달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동굴 벽을 장식하거나 수렵채집 같은 일상을 묘사하기 위해 그려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며, 우리식으로 표기하자면 용산(龍山)이라고 할 수 있는 남아공 드라켄스버그(Drakensberg) 지역의 암각화에서는 타 지역의 암각화에서 흔히 발견되는 영양 같은 동물들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부시먼의 식량이었던 동물들이 배제되었다는 것은 이는 이 지역의 암각화들이 일상의 국면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암각화들은 강력한 종교의식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부시먼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주술 행위는 묘사와 상징을 통해 표현되었는데, 학자들은 이러한 상징해석을 통해 코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의 그림이 막 영혼의 세계로 들어선 주술사의 모습이며, 반수반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사람 또한 동물의 초자연적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 분장한 주술사의 모습임을 설명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그 의미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동물들은 각기 다른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하마는 비를 내리게 하는 힘을 상징하며, 코끼리는 조상의 영혼을 상징하고, 영양은 초자연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그림 속의 이미지들이 의미전달을 위한 일종의 기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해석은 관찰자들의 추정일 뿐이다. 부시먼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그들의 그림도 해독할 수 없다. 문명으로의 개종을 강요한 서구인들에게 태곳적부터 전해온 부시먼들의 언어는 해독되지 않는 별들의 언어와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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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