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쿠의 음악을 들으며 하라레를 빠져나와 무타레 로드(Mutare Rd.)를 달리다 보면 시야의 7할은 벌판이고 3할이 하늘이다. 대책 없이 파랗기만 그 하늘에 캐시밀론보다 하얀 구름들이 낮게 걸려 있다. 달링톤 치타테(Daillington Chitate)를 처음 만난 건 루와(Ruwa) 지역에 있는 아트 커뮤니티 워크숍에서였다. 커다란 유칼리나무 그늘 아래 콜라병을 들고 서 있던 그에게 지역 작가들에 대해 물었는데, 그가 마침 지역 아트 커뮤니티 소속 조각가였다. 차에 동승해 그의 안내로 작가들의 개인 작업장을 찾아다녔던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일을 도와줄 수 없겠냐는 제의를 그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내 빈번한 아프리카 출장의 충실한 가이드이자 어시스턴트이며, 든든한 동반자이면서 파트너이기도 했다. 쉽고 간단하게 말하면, 그냥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다.
얼핏 보기에 그는 모든 게 평범해 보였다. 좋던 그렇지 않던 특별히 강조할 만한 점이 없는 외모와 작품 수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꾸려나가고 있는 살림의 규모 또한 하라레 외곽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고만고만한 수준으로부터 크게 벗어나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붙임성 있는 성격과 성실성, 때론 놀라운 사교성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게 그가 가지고 있는 거의 유일해 보이는 장점이었는데, 내겐 무엇보다 그가 알아듣기 쉬운 영어를 구사한다는 게 더 매력적이었다. 달링톤 치타테, 한때 줄여서 ‘달링~’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부를 때마다 등짝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어 대신 ‘치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 별명은 장소를 이동할 때 주로 사용한다. ‘가자, 치타!’ 타잔에 나오는 원숭이의 이름이 치타였다는 걸 그는 모르는 것 같다.
그는 이곳의 여느 아이들처럼 크고 맑은 눈을 가지고 있는 두 여자 아이의 아버지였고,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알아온 한 여자의 반려이기도 했다. 건강하고 활달해 보이는 아이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몰라볼 만큼씩 커갔다. 그는 나보다는 다섯이 아래였으나, 아프리카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렇듯 일찌감치 동네 처녀와 눈 맞아 결혼해서 바로 아이 둘을 낳아 키우고 있었다.
그를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훌륭한 페인터라고 했다. ‘슈어?’ 그게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대화의 채널이 넘어갔으므로 그는 아버지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붙이지는 않았다. 난 그냥 지레짐작으로 그의 아버지가 순수한 예술혼을 지닌 화가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 느낌을 꽤 오래 가지고 있었다. 아마 순박한 그의 성품과 그의 가계(家系)에 대한 어떤 선입견 같은 게 반영되었던 것 같다. 아티스트 집안엔 뭔가 다른 피가 흐르고 있을 거라는. 나중에 문득 생각이 나서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네 아버지 작업장을 방문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당장 가도 상관없단다. 잠시 후 그는 나를 무슨 공사현장 같은 곳으로 안내했고, 한 건물을 가리키며 저게 자신의 아버지가 작업한 거라고 했다. 아버지는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란다. 그의 아버지는 조수 몇 명을 거느리고 있는 중견 페인트 공이었다.
그가 3년 동안 손수 지었다는 아담한 그의 집은 창고로 쓸 공간이 아직 미완성인 채로 남겨져 있었다. 돈이 모자라 남겨 두었는데 두 계절이 지나면 완성할 수 있을 거라며 머리를 긁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의 집을 마련한다는 건 일가를 이룬 어른으로서 또 식솔들을 거느린 가장으로서 거쳐야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이나, 벽촌의 초막이나 움막이 아닌 다음에야 아무리 아프리카라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물론 집의 개념이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도시 외곽 지역의 대부분의 주택들은 교육환경과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전적으로 주거만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일 따름이다. 인구밀도가 현저히 낮고 개발의 가능성 또한 희박해 번잡한 도시가 아니고서야 땅의 경제적 가치라는 것도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금액은 아니다.
달링톤이 집을 지었던 과정은 루와 지역의 젊은이들이 결혼해서 분가를 할 경우 집을 마련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들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은 대충 이렇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당연히 집을 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이다. 마침 루와에는 대형 신흥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길을 닦아놓고 전기를 끌어다 놓은 벌판이 있다. 그 한 귀퉁이에 땅을 확보한다. 이 과정까지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다음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지을 친구와 품앗이를 하기로 새끼손가락을 건다. 돈이 생기는 대로 벽돌을 사 모은다. 건축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이 벽돌값인데, 철거하는 건물에서 나오는 벽돌을 싼값에 사다가 틈틈이 벽돌에 달라붙어 있는 시멘트를 망치로 떼어내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집 모양새를 결정하고 시멘트와 창호, 지붕 마감에 필요한 재료와 목재 등을 사 모은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손가락을 건 친구와 양쪽 현장을 오가며 집을 지어가면 된다. 간단하다. 그런데 달링톤은 자신이 그래도 집을 빨리 지은 축에 속한단다. 실제 그 동네에는 수년째 겨우 방 한 칸 정도의 벽돌만 쌓아놓은 채 방치되고 있는 건물들이 숱하게 눈에 띄었다.
전시준비를 돕기 위해 달링톤이 한국에 머물고 있을 때, 세상물정에 대해 까막눈이나 다름없는 그를 혼자 있게 할 수 없어 어디를 가든 데리고 다녀야만 했다. 밤에 그를 태우고 강변도로를 달린 일이 있다. 그의 눈에 새롭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만 서울의 야경은 무척 인상적으로 비쳤던 것 같다. 저기 산 위의 불빛은 남산타워란 거고 강 건너 쪽이 남쪽인데 서울의 부자들이 사는 뉴타운이지, 뭐 그런 식으로 설명을 하는데 강 건너 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러 있다. 불빛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강변의 아파트 단지들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저 빌딩들은 뭐지?”
“그거, 아파트야. 저 불빛 하나가 원 패밀리지. 도시 사람들은 대부분 저런데 살아.”
아파트라는 주거문화가 그에겐 자못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하더니 겨우 입을 뗀다.
“… 꼭 벌 집 같다.”
벽돌 한 장 한 장에 진한 땀 냄새가 배어 있을 그의 작은 집에는 언제나 수줍음을 감추지 못하는 그의 아내와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두 딸이 산다. 마지막으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딸아이로부터 카드 한 장을 받았다. 색연필을 꾹꾹 눌러 쓴 카드에는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도 내가 아버지의 친구이길 바란다고 적혀 있었다. 그는 집에서도 종종 내 얘기를 꺼냈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아마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카드에 담았을 것이다. 다음에 그 아이를 만나면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다. 그게 바로 내 마음이기도 하다고.
--------------------
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