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레를 벗어나 외곽으로 차를 달릴 땐 으레 토마스 마푸모(Thomas Mapfumo)나 올리버 음투쿠지(Oliver Mtukudzi)의 카세트 테이프를 걸어놓는다. 자동차의 오디오 시스템이라고 해봐야 대부분 주파수가 잘 맞지 않아 직직거리거나 두 가지 방송이 섞여 들리기 일쑤인 라디오와 낡은 카세트가 전부이다. CD는 고급 자가용에나 장착 돼 있을 터, 달리는 자동차에서 CD의 좋은 음질을 감상한다는 건 대부분의 현지인들에겐 언감생심의 짓이다. 차로 이동할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이어서 나와 늘 붙어 다니는 조수석의 달링톤 치타테(Dallington Chitate)는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카세트 입속에 테이프를 밀어 넣고 고개를 돌려 씨익 웃곤 한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려 답하면 살짝 볼륨까지 높여주는 사려 깊은 친구다.
토머스 마푸모와 올리버 음투쿠지의 이름도 나와 달링톤만큼이나 붙어 다니는 경우가 잦다. 둘 사이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투쿠(Tuku, 올리버 음투쿠지의 예명)가 마푸모가 이끌던 밴드 웨건 휠스(Wagon Wheels)와 더불어 첫 공연을 펼쳤으며, 치무렝가(chimurenga)라고 하는 정치색이 강한 이 나라의 음악으로 월드뮤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본인들이란 점, 그리고 둘 다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을 만큼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들의 음악, 특히 마푸모의 음악에는 엄지 피아노라 불리는 음비라(Mbira) 연주가 빈번하게 곁들여지는데, 이 음비라는 조상신의 강림을 기원하는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악기로 동굴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처럼 청량감을 주지만, 반복적인 리듬은 다소 몽환적이며 주술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아프리카의 문화적 정체성과 민족성에 대한 강한 상징성으로 마푸모와 투쿠가 활동을 시작하던 식민지배 시절에는 음비라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저항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어쨌든 마림바와 음비라의 맑고 투명한 음률과 어우러진 깊고 허스키하며 소울풀한 음색은 오직 이 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정조를 자아내는데, 이후 난 이들의 음악 없이는 이 나라의 풍경을 떠올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두 뮤지션의 음악은 내게 있어 짐바브웨와 관련한 모든 기억들의 배경음악인 셈이다.
마푸모와 음투쿠지의 카세트 테이프는 시장 좌판에서라면 푼돈으로도 얼마든지 골라낼 수 있지만, 고난도의 기술이 요구되는 공산품들이 다 그렇듯 아프리카에선 CD 값 또한 만만치 않다. 자국 뮤지션을 국제적 스타로 키워낼 만한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고 음반 시장도 성숙되어 있지 않아서이며, 남아공 같은 나라에서 녹음된 것을 수입해 오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보로우데일의 레코드점과 벼룩시장 같은 곳을 오가며 사 모은 CD들은 게스트 하우스에나 가야 들어볼 수가 있다. 자주 들르곤 하는 아본데일 지역의 게스트하우스 ‘스몰 월드(원 이름은 It's a Small World)'의 셀프 카페테리아에는 나름 구색을 갖춘 오디오 시스템이 있어서 투숙객들이 제 구미에 맞는 음반을 걸어놓고 푹 꺼진 소파에 몸을 묻은 채 음악을 감상할 수가 있다. 저녁 늦은 시간에는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들과 대부분 배낭족들인 투숙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 병을 부딪쳐가며 어깨를 들썩이거나 분위기가 조금 더 무르익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취기에 몸을 맡기고 몸을 흐느적거리기도 한다. 누군가를 축하할 일이 있거나 통 큰 사람이 지갑을 활짝 열면 자리는 이내 왁자해지고 음악은 좀 더 비트가 강해지게 마련이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안개처럼 깔릴 때쯤 카페테리아는 이미 클럽이 되어 버린다. 여기저기 쓰러진 맥주병들이 나뒹굴고 바닥은 쏟은 맥주로 흥건하며 재떨이는 볼썽사납게 엎어진다. 이쯤 되면 앉아있는 사람보다 일어나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접신 중인 사람들이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 무아지경의 의식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춤은 안 되고 그렇다고 마냥 앉아 맥주만 축내는 것도 멋쩍고 해서 일어나 슬그머니 음악을 투쿠의 곡으로 바꾼 적이 있다. 은근히 환호성을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위협적이었다. 한참 강림 중인 신을 내쫓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건 취기에서 오는 일탈의 욕구는 늘 새롭고 자극적인 것에 목말라한다는 명백한 사실을 잠시 놓쳤던 거다. 말하자면 서태지 공연의 클라이맥스에 조용필을 등장시킨 셈인데, 하긴 투쿠가 나한테나 신선하지 30년 넘게 활동해오면서 50개 가까운 앨범을 발표한 그가 그들에겐 고전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이 일로 그 게스트하우스를 체크아웃 할 때까지 나는 그곳 스태프들과 투숙객들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투쿠의 음악이 좋다. 마푸모보다는 투쿠의 음악이 조금 더 와 닿는 편이다. 그가 음악을 시작했던 70년대 후반 식민체제하에서부터 환갑이 머지않은 지금까지 자신의 음악 세계를 일관성 있게 탐구하고 있는 살아있는 짐바브웨의 영혼 투쿠를 나는 사랑한다. 잠깐, 짐바브웨의 영혼이라는 수사는 내 애정의 산물이 아니라 세계의 음악계가 그의 업적을 기려 붙인 영예로운 호칭임을 밝혀둔다. 2003년에 제3세계의 인권과 외채탕감을 위해 비영어권 13개국의 월드뮤직 스타들이 모여 ‘빚을 내던져라!(Drop the Dept)'라는 음반을 낸 일이 있다. 열일곱 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이 앨범에서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짐바브웨의 올리버 음투쿠지와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의 맨발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그리고 한국의 양병집과 한대수이다. 한국의 아티스트가 두 트랙을 차지하고 있는 게 반갑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기뻤던 건 앨범에서 투쿠와 세자리아 에보라의 이름을 발견해낸 것이다. 지난해 세자리아 에보라의 내한 공연이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던 건 무척 아쉬웠지만, 머지않아 올리버 음투쿠지를 공연을 한국에서 접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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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