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레 도심의 분주한 거리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오는 수상한 사내들이 있다. 이 부류의 셋 중 둘은 미화를 짐바브웨달러로 바꿔준다는 암달러상들이다. 물론 불법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암묵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불법이기도 하다. 은행에서 적용하는 공식 환율은 이 검은 시장의 환율엔 비하면 가치가 턱없이 헐하다. 그러니 반드시 은행을 거쳐야 하는 거래가 아니라면 누가 이 검은 시장의 유혹을 마다하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은밀히 이 블랙마켓을 이용하고 또 그 시장이 얼마만큼이나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는지는 이 나라에선 쥐도 알고 새도 아는 사실이다.
공식 환율과 비공식 환율의 차이가 클수록 그곳에는 강한 흡인력으로 돈을 빨아들이고 내뱉는 커다란 블랙홀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 블랙홀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공간이다. 정치적 꼼수들에 많이 노출되어본 사람들이라면 재빠르게 이런 생각이 스쳐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의도적인 방치와 보이지 않는 관리가 작용할 수도 있을 거라는. 어쨌거나 항목과 수치로 잡히지 않는 엄청난 돈다발들이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러다니고 있는데 그 귀착점이 어디인지에 대해선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길거리의 암달러상들이 제시하는 거래의 조건은 저마다 다르다. 공식 환율도 오전과 오후가 다르니 암시장이 널뛰듯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거래 조건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따라갔다간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 환전을 원한다는 것은 많든 적든 당신의 허리춤에 달러 뭉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이 돈을 교환하는 장소라는 게 어두컴컴한 건물의 지하이거나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집일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껑충한 허우대에 대낮임에도 충혈이 가시지 않은 눈들을 하고 있는, 한눈에 보기에도 자질구레한 범죄들을 섭렵해온 듯한 인상의 청년 네 명이 타고 있는 차에 혼자 올라탄 적이 있다. 그것도 미화를 현지 달러로 바꾸려고. 차를 빠져나올 때까지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지 등줄기를 타고 떨어져 내리는 식은땀이 팬티를 적실 정도였다. 차는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주차되어 있었고, 녀석들 중 한 명이 나를 차로 데려갔는데 아뿔싸! 그 안에 여섯 개의 붉은 눈이 번득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를 데려간 녀석은 나를 안쪽으로 밀어 넣고 자신의 몸을 비좁은 차 안으로 구겨 넣은 다음 문을 닫았다.
그 짧은 순간 머릿속 회로들이 마구 얽혀 스파크를 일으키고 목덜미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마른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침착! 침착하고 침착해야 한다’라고 수도 없이 주문을 걸었다. 조수석에 앉은 녀석이 돈을 확인하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사방으로 눈알을 굴려가며 나와 주변의 동태를 살폈다. 내게 접근했던 녀석에게 요구했던 금액이 크지 않았음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옥에서 보낸 하루 같았던 몇 분이 지나고 무사히 하차할 수 있었는데, 바지춤에 슬그머니 손바닥을 훔치고 짐짓 호기를 부리며 뒷골목식 악수를 할 때 내 손이 떨리고 있었던 것과 바지춤에 숨겨두고 있는 돈뭉치로 인해 내내 가슴 졸였던 속내까지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나를 내려놓자 차는 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사라졌다. 만약 차가 나를 태운 채 그냥 출발했더라면 어땠을까. 차가 떠나자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 한동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어야만 했다. 이 아슬아슬한 거래는 달링턴 치타테라는 친구를 만나면서부터 다소 안정적인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얼마 전부터 정부가 자국의 화폐를 포기함으로써 이제는 지나가버린 한때의 얘기로만 남게 되었다.
거리를 배회하다 보면 달러 브로커와는 사뭇 다른 포즈로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치들이거나 ‘혹시 차하고 드라이버 필요하지 않냐?’하고 말을 걸어오는 축이다. 예전에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나라시’라고 불렀다. 우리에게는 불법영업이지만 그들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에선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수시로 바뀌는 법령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경찰국가 특유의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법해석 앞에선 누구든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그런가 하면 들려오는 풍문으로는 인맥이 확실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꼬인 일이 의외로 쉬이 해결될 수도 있다고 한다. 액수를 알 수 없으나 뒷돈이 필요함은 물론이겠고. 남의 나라 얘기를 너무 쉽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야에 관한 한 우리 또한 개도국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거니와, 저개발국가에 대한 일방적인 폄하와 경멸을 담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걸 확실히 하고 싶다.
어떤 종류의 일이건 아프리카에서 금전이 오가는 거래를 한다면 굳이 단번에 결정할 필요는 없다. 시간과 다리품, 인내심을 투자할수록 거래의 조건이 좋아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 거래가 약간 음성적인 경우라면, 긴장의 끈을 놓지 않되 긴장하지 않은 척할수록 좋다.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잠깐 부연을 하자. 몇 해 전 짐바브웨 정부는 거리미화를 빌미로 도심에서 걸인들과 행상들을 강제로 내몰았는데, 이후 소소한 물건들로 좌판을 벌이거나 행인에게 판매행위를 하는 것 모두가 불법이며 이들과의 거래 자체가 음성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긴장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거래에서 속으로는 애간장이 녹아도 겉으로는 절대 티를 내지 말 것! 이것은 불문율에 가깝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들지 않는 선에서 아프리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라는 티를 팍팍 내줘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약간 어설퍼 보이더라도 능청스런 유머까지 가미한다면 금상첨화!
“선글라스를 끼면 용감해지거든. 최소한 초조함이나 어색함은 감출 수 있지. 그거 감추려고 억지 미소 머금어봐야 남들에게는 빤히 보여. 나 같은 소심한 인간들에게는 마법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물건이지.”
오래전에 소설 쓰는 한 친구가 해준 말이다. 그 친구는 한동안 크고 까만 선글라스에 집착했는데 언젠가는 한 상갓집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그 친구와 마주쳤던 일도 있다. 햇빛도 유난히 눈부시지만 아프리카에선 정말 용감해야 할 순간들이 많다. 그저 덤덤하게 들렸던 그 친구의 말이 제법 그럴법하게 와 닿기 시작했을 무렵 면세점에서 큰맘 먹고 짙은 색의 고글형 선글라스 하나 장만했다. 그 친구의 말은 사실이었다. 훈련소의 교관들이 맘 약해질까 봐 선글라스를 쓴다는 것도 맞는 얘기였던 것 같다. 용감무쌍, 가장 나쁘게는 후안무치! 강한 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것 외에 까만 색안경에서 발견해낸 새로운 기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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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정해종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 『내 안의 열대우림』, 아프리카 미술기행집 『터치아프리카』를 출간했다. 출판기획자로 활동하다 새천년의 시작과 더불어 아프리카 미술 전시기획자로 활동했다. 현재 아프리카 미술 전시 기획사 ‘터치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전히 출판계에 몸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