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DC국제환경단체를 위한 옥외광고 현수막. 총이 그려진 현수막 한 장이 굴뚝 아래 붙어 있다.
그림 잘 쓰는 사람으로
평생 광고에 들이댈 거예요
“한국에는 세계적인 스타 디자이너가 없다. 왜일까? 작업 좀 한다 싶으면 정치인이 되거나, 작업 좀 한다 싶으면 장사꾼이 되니까. 장사를 하려면 MBA로 갔어야 하고, 정치를 하려면 청와대로 갔어야 한다. 나는 기본과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원칙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 연필은 잘 쓰이는 게 좋은 연필이고, 의자는 앉아서 편히 쉴 수 있는 게 좋은 의자이다. 축구 선수는 축구를 잘해야 축구 선수이고,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가수이다. 세상에서 기본이 가장 쉽고, 또 가장 어렵다. 작가는 좋은 작업을 할 때 가장 작가다운 것이다. 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광고쟁이가 될 것이다.” ─ 이제석
뉴욕에 있다는 그였다. 이메일 몇 통을 주고받는 사이 한국에 들러준 그였다. 늦은 밤 압구정의 한 제과점에서 짧지만 진한 수다를 떨었다. 달변이고, 꾸밈없이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천진을 알았으며, 무엇보다 자만과 자신을 구분할 줄 아는 당당함이 귀했다. 1982년에 태어나 올해 스물여덟이 된 대구 청년 이제석, 그는 현재 뉴욕 굴지의 광고회사에서 아트디렉터로 맹활약 중이다. 전 세계 광고 공모전을 거의 다 휩쓸어 이제 받지 않아 남은 상이 무엇이 있나 그걸 따져보는 게 빠를 정도라면 그에 대한 수식이 되려나. 누나 소주 한 잔이오, 기약을 하고 미국으로 간 그로부터 또다시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광고계의 오스카라 불리는 ‘클리오 어워즈’에서 광고 포스터 부문 금상을 거머쥐었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이름도 생소한 뉴욕 ‘원 쇼One Show 페스티벌’, 영국 최고 권위의 광고 디자인 공모전 D&AD에서 본상, 뉴욕 페스티벌에서도 이미 수상이 확정됐다니, 뭐 이런 ‘아해’가 다 있나 싶은 마음이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01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원래부터 광고를 하고 싶었는데 원하는 회사마다 줄줄이 떨어졌어요. 지방대 나왔는데 정말 취직하기 힘들더라고요. 국내 공모전도 계속 낙방이었어요. 그래서 내가 별로 재능이 없구나, 근데 좋은 걸 어떻게 하냐 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거예요. 돈요? 당연히 없지요. 뉴욕이 먹고살기 힘들지만 악착같이 살면 또 살아져요. 유학 준비하는 동안 포트폴리오 쌓고, 미군 부대 가서 그림 가르치는 대신 영어 배우고, 아무튼 학교도 장학금 받고 간 거예요.
■ ‘담배가 늘수록 생일잔치는 줄어듭니다.’
미국 폐건강협회의 금연 캠페인을 위해 특수 제작된 성냥갑 디자인. 담배 하나 태우려고 성냥을 뜯을 때마다 생일 케이크 위에 꽂힌 초는 사라져간다. 호주 영건스 동상, 아트디렉터스클럽 은상, 그래피스 및 국제광고공모전 다수 수상작.
02 미국 가서 정말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저를 한번 보세요. 아무리 일본 사람으로 봐도 동양인은 마이너예요. 키도 작고 얼굴도 떨어지고 영어도 서툴고 채용하려면 변호사에 뭐에 돈 들고. 그래서 제가 생각했던 전략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추성훈씨가 그 얘기를 하더라고요. ‘불공정한 판정에서는 한판승으로 이겨라.’ 예를 들어 한국 빵집에서 같은 조건이면 우리나라 사람 쓰지 파키스탄 사람 안 쓰잖아요. 방법은 하나, 파키스탄 사람이 빵을 정말 잘 만들면 쓰잖아요. 그래서 검증을 받자, 어떻게 받냐,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공모전에서 AS 딱지를 받자, 상장이랑 포트폴리오를 함께 내밀면 날 써주겠지, 해서 유명한 공모전만 쏙쏙 골라 근 50개가 넘는 상을 받게 된 거예요.
03 저는 미국에서 학교 다닐 때 스승들을 몹시 존경했어요. 그게 억지로가 아니라 진심이었어요. 외국 애들은요, 다 지가 잘나서 그러는 줄 아는지 한 학기 수업이 끝났는데 땡큐도 안 하고 그냥 가버려요. 전 근데 정말 고마웠어요. 쥐뿔도 없었는데 그들이 가르쳐줘서 상도 받고 취직도 하고 완전히 내 이력을, 내 인생을 바꿔놓은 거잖아요. 제 은사님이 두 분 계세요. 그중 이탈리아 출신의 선생님께는 한 시상식 자리에서였는데 올라오시라고 해서 함께 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후에 성함 박은 상패까지 드렸더니 완전 감동! 하하, 제가 할배들에게 좀 잘해요.
■ ‘오늘 밤 누군가는 이 신문을 이불로 써야 합니다.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세요. - 대한적십자사’
영남일보 2009 글로컬 캠페인 ‘이제석의 좋은세상 만들기’ 제1탄
‘당신에게 딱 맞는 가구를 찾으세요.’ ■
이케아 가구를 위한 옥외 광고. 실물 사이즈의 가구가 빌보드 벽면에 부착되고 테트리스 게임처럼 보이도록 전시된다. ANDY 국제광고제 학생부 은상 수상, 아트디렉터스클럽 특선 등 다수의 수상작
■ ‘오레오는 우유에 찍어 먹어야 더 맛있어요.’
회사가 위치하고 있는 뉴욕 맨해튼 몰의 엘리베이터에 두 장의 스티커를 부착했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쿠키가 우유컵 속에 잠기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애드 오브 더 월드가 뽑은 최고의 옥외 광고 선정작.
■ ‘고양이는 고양치럼 생겨먹어야지.’
아이앰스 다이어트 동물 사료를 위한 인쇄 광고. 그래피스 수상작.
04 한국 광고 보면 많이 아쉽죠. 요렇게 딱, 손뼉을 치는 순간이 있다면 딱, 거기서 끝나요. 사람의 뒤통수를 치고 가슴을 흔들어야 하는데 거기까지 못 오는 거죠. 왜 중국 무술 보면 외상은 없는데 내상을 입히는 그런 기술 있잖아요. 그게 안 되니까 세뇌시키는 거예요. 돈도 시간도 많이 드는 거예요. 반복 학습 앞에 당할 자가 없듯이 한국 오면 광고 스트레스예요. 나는 허접하지만, 뭔가 어눌하지만, 한 번 보고 집에 가서 계속 떠오르는 그런 광고를 생각해요. 이건 제 필살기인데 좋은 광고라는 건요, 왼손으로 사인펜을 쥐고 그려도 좋고 발가락에 볼펜을 끼고 그려도 좋아요.
05 제 소원은 국가 브랜드를 만드는 거예요. 지금 제가 영남일보에서 ‘이제석의 좋은세상 만들기’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물론 무보수죠. 제게 신문 전면을 준다는데 그게 얼마나 영광이에요. 시사나 정치, 공익에 관한 광고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독도 수호 게릴라 캠페인’이나 일본 역사 교과서를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이베이에 올렸던 캠페인 등도 다 그러한 맥락에서였어요. 아주 소박한 애국심이랄까. 앞으로도 계속해볼 예정이에요.
06 전 지금 굉장히 행복해요. 이 행복 찾느라고 딱 10년 걸렸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착이란 단어는 평생 쓰지 않을 것 같아요. 70대 넘어 파파 할배가 되어도 이 작업 계속할 거니까요. 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전 남들이 가는 정상적인 코스는 안 밟을 거예요. 이부장, 이과장이 아니라 ‘광고쟁이 이제석, 광고꾼 이제석 ’으로 영원히 남고 싶어요. 글 잘 쓰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 잘 쓰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전 그렇게 평생 광고에 들이댈 거예요. (*)
■ ‘누군가에게는 이 계단이 에베레스트로 느껴집니다.’
미국 장애인협회를 위한 옥외 광고. 히말라야 산맥의 이미지가 뉴욕 지하철 계단에 부착된다. 2007년 클리오 어워드 수상작.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이 됩시다.’ ■
환경단체를 위한 옥외광고. 뉴욕 거리에 비치된 쓰레기통 아래 포스터가 부착된다.
인터뷰이 이제석은 뉴욕 원 쇼 페스티벌, 클리오 어워드, 애디 어워드, 영건스 국제 광고 공모전 등 전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을 휩쓸고 있다. 현재 FCB 뉴욕의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