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 높은
부츠와
퓨마
운동화가
만났을 때
글_풋,
사진_백다흠
∠ 먼저 와 있는 건 김유진이었다. 그녀는 흡사 무용수처럼 타이트한 검정 쫄티에 굽이 높은 검은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 10분쯤 지났을까, 종아리를 타이트하게 조이는 니삭스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정한아가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그래도 좋을 만큼 그녀의 검은 퓨마 운동화는 아직 새것인 듯싶었다. 처음이던가 두 번째던가, 그렇게 얼굴 마주한 횟수를 손에 꼽을 정도니 서로에 대해 겉말할 바 뭐 그리 많을까. 다만 서로에 대한 속말은 조밀했고, 내밀했으며, 가끔 흘러넘치기도 하였는데 이는 언뜻언뜻 서로의 가방 속에서 살짝살짝 엿보이던 서로의 소설 뭉치로 어림짐작해볼 수밖에…
Debut
김유진(이하 유진)│2004년이니까, 스물네 살 때네요.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받았어요. 제가 원래 시를 썼거든요. 그런데 덜컥, 소설이 된 거예요. 처음에는 장난전화인 줄 알고 알겠습니다, 이러고는 아무에게도 말 못했어요. 당선되기 전에 소설을 아마 한 편인가 써봤을걸요. 곰곰이 이 사태를 어찌해야 하나 생각만 하다가 일주일쯤 지나서 교수님들께 전화를 드렸어요.
정한아(이하 한아)│2005년에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은 게 시작이었으니까 저도 스물네 살 때에요. 그리고 『달의 바다』가 2007년이니까 스물여섯 살 때 ‘문학동네작가상’을 받았고요. 본격적으로 소설을 쓴 건 스물두 살 때부터인데 대산에 당선된 게 아마 다섯 번째 소설쯤 될 거예요. 학교 다닐 때는 각 대학 문학상을 좀 탔고요. 근데 문창과 출신이 아니어서인지 주변 반응은 그저 그랬어요.
Thirties
한아│예전에 김인숙 선생님이 어떤 문학잡지에 하셨던 얘기가 떠올라요. 젊어서 신데렐라처럼 작가가 되었는데 당신의 20대는 불을 지필 장작이 없어서 매일 장작 주우러 다닌 기억밖에 없다고. 요즘에 저는 그런 몸 쓰는 일은 하지도 않고 급조에만 급급하니 큰일이에요. 30대에는 제발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할 텐데.
유진│삼십대라… 실은 별생각이 없어요. 데뷔가 일러서 그런지 어느 순간 정체된 기분이기도 하고. 아, 그건 있어요. 청탁 오면 소설 쓰는 게 꼭 카드깡 하는 것 같아서 제발 좀 안 그래야지 하는 거.
Childhood
유진│저는 별로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였어요. 중학교 때까지는 피아노를 쳤고, 고등학교 때는 미술을 했는데 전공으로 삼기에는 재능이 안 되니까 그때부터 논 것 같아요. 피아노요? 다 떼고 작품집 들어갈 때 관뒀어요. 돈도 많이 들고 경쟁률도 세고 제가 또 덩치가 작잖아요. 그러다 수능을 한두 달 남겨놨을 때였나, 대학에 가야겠더라고요. 정규 교육을 12년이나 받았는데 여러모로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수능 치르고 점수 보고는 가장 덜 지루할 것 같은 학교를 골랐어요. 문창과란 학과가 뭘 하는 곳인지 백일장이 뭘 하는 대회인지 아무 것도 몰랐어요. 특히 백일장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한아│저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책 보고 글 쓰는 걸 좋아했어요. 국문과도 그래서 당연히 택했던 거고요. 그런데 대학을 1학년까지만 다니고 휴학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생각했던 국문과가 전혀 아니었던 거예요. 우울증이 생겨가지고 한 3개월 동안 방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 데도 가기 싫었어요. 그렇게 한 학기 동안 고민을 해봤는데 그래봤자 죽든지 살든지 둘 중 하나인데 만약 살게 되면 글을 써야겠다, 확고해지더라고요. 그래서 털고 일어났는데 감쪽같이 몸이 아프지 않았어요. 그때 처음 썼던 소설이라 음, 유치한데, 제목이 ‘그의 붉은 손’이었나. 아휴 부끄러워요.
Off
유진│저는 대학에 가서야 글이란 걸 처음 써봤어요. 책을 좋아했지만 소설을 열심히 읽은 건 아니니까 처음부터 책 읽는 걸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었지요. 그때 학교 가서 놀란 건 백일장을 휩쓸다 온 친구들을 만나고서에요. 걔네들과 수준 차이가 엄청났거든요. 열등감이오? 근데 전 그런 게 아예 없었어요. 비교할 만한 뭐가 있어야 불안감도 느꼈을 거 아니에요. 가진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 무식해서 그런지 두려움도 없더라고요.
한아│저는 언니랑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성신여고를 나왔는데 그때 백일장 휩쓰는 친구들 보면서 열등감에 크게 사로잡히곤 했어요. 왜냐면 전 백일장에 나가는 족족 다 떨어졌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상도 받고 이름도 나고 으쓱하는데 나는 안 되나 보다, 일찌감치 패배의식에 깊이 빠져버렸죠. 그럴 때마다 책을 읽었어요. 특히나 최윤 선생님 생각. 「저기 소리 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를 읽었을 때 아 이거다! 했던 기억. 아, 근데 뭘 많이 읽어서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운이 좋아 우연히 집어 든 게 명작이었던 것뿐이지.
Being
유진│전 별로 존재감 있는 학생이 아니었어요. 시키는 말에 대답은 하는데 늘 먼 산 바라보고 딴생각만 하는 학생이랄까. 프랑스에 갈 때 학적부를 떼어봤는데 ‘조용하고 얌전하나 협동심이 부족하다’, 선생님이 그렇게 적어놓으셨더라고요.
한아│전 비교적 활발한 학생이었어요. 반장이었고, 오락부장 같은 거 도맡았고, 리더십이 있는 편이었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원만하고. 근데 참 문학적이지는 않네요, 제가 봐도 어휴.
Subject
유진│그나마 국어를 잘했어요. 근데 워낙 공부가 바닥을 쳐서. 교과서에서 읽은 것 중에서는 「학마을 사람들」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한아│잘하기보다 저는 국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육사의 「청포도」였나, 그 시 읽고 무지 감동받아서 눈물 흘렸던 거 생각나요, 이미지가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Hopelessness
한아│『달의 바다』 나오고 한 6개월 동안은 정말로 암흑기였어요. 딱히 말로 상처 준 사람도 없는데 스스로 주눅이 들고 의기소침해져서 도무지 회복이 안 되는 거예요. 한 예로 『창작과비평』에 「아프리카」라는 단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실수로 최종 교정을 보낼 때 한 단락을 빼먹은 거예요. 그것도 모르고 책 나오자마자 서점가서 찾아보고는 깜짝 놀라서 편집부의 실수일까, 아니면 별로여서 편집부가 다 뺀 걸까, 집에 와 밤새 운 적이 있어요. 소설 전체로 놓고 보자면 그다지 중요한 부분도 아닌데 그 밤에 이제 나는 작가가 될 수 없을 거다, 다시는 청탁도 오지 않을 것이다, 별의별 생각으로 한잠도 못 잤던 기억이 나요.
유진│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소설 잘 모르면 막 쓰거든요. 초반에 한 서너 편은 하루나 이틀 만에도 썼어요. 데뷔작도 하루 만에 쓴 거니까, 처음에는 되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저도 소설가니까 이것저것 책이라도 찾아봤을 거 아니에요. 아, 그랬더니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문장이 안 쓰이는 거예요. 프랑스에 있을 때 「움」이라는 단편을 썼는데 하루에 꼬박 열다섯 시간을 앉아 있기도 했어요. 속 터져서 계속 울다가 나중에는 제가 노래를 다 부르더라고요. 문장 한 줄을 못 만드는데 소설을 써도 되나. 애초부터 소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안 했던 게 뒤로 와 크게 닥쳤던 거죠. 거의 회복이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질질 그래요. 힘들어요, 소설.
Escape
유진│처음에는 몇 달만이라도 도망칠 마음으로 프랑스로 갔는데 거기서 1년이나 머물다 왔어요. 막상 있어보니까요,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아요. 여행이랑 사는 건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살기 위해서는 자질구레한 일상들이 많은데 그게 비루할 적이 많았어요. 집 구하고, 전기세 내고, 컴퓨터와 인터넷 연결에 각종 서류들까지 사실 거기서도 죄다 머리 아픈 일뿐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 시절 참 아름다웠어요. 지금 가라면 아 못 가요, 못 가. 외로워서.
한아│전 어릴 때 가족들과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 왔어요. 아버지 사업차였는데 일곱 살 때 나갔다가 열 살 때 돌아왔어요. 그 나라 말은 다 까먹었지만 한마디로 그곳은 아 그래요, 천국! 천국이었어요. 스물두 살에 처음으로 유럽여행 다녀온 이후부터는 방학 때마다 나가고 있어요. 여행이든 그게 고행이든 안 나가면 이제 죽을 것 같아요.
Journey
유진│몇 나라 안 돼요.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시리아 정도? 어학원 다닐 때 시리아 출신의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하루는 수업시간에 그 친구가 자기네 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거예요. 시리아라니, 이름 참 예쁘구나 하는 정도였는데 어느날 소설 마감을 하고 혼자 맥주를 마시다 약간 취했는데 내가 나한테 상을 줘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덜컥 시리아행 비행기를 예약했죠. 다음날 자고 일어나 기억을 떠올려보니까 이거 큰일났구나 싶어요. 지도를 펼쳤죠. 시리아란 나라가 이라크랑 레바논 사이에 붙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때 한참 바그다드에서 폭탄 테러 발생하고 그랬거든요. 아무튼 가보니까 시리아는 모래먼지가 엄청난 나라였어요. 제가 8일 동안 그곳에 머물렀는데 동양인이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러니 다 쳐다봐요. 애나 어른이나 마구들 몰려와서 이름이 뭐냐 만져보고 찌르고 저 완전 스타였다니까요, 하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한 4일, 파미르에서도 한 4일, 거기 베드윈이라고 천막 치고 사는 유목민들이 있거든요. 그들에게 놀러 가서 저녁도 얻어먹고 그랬어요.
한아│저는 꽤 다닌 것 같아요.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이탈리아, 체코, 스페인, 이집트, 터키, 러시아, 탄자니아, 케냐, 베트남, 일본 정도 될까나. 소설 쓸 때 전 항상 자의식에 시달려요, 나르시시즘적인. 그게 사람을 너무 병들게 해요. 외국에 나가면 좀 떨어져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약이 돼요. 그래서 여행 갈 땐 절대로 컴퓨터 안 가져가요. 메모만 해요. 외국인들과는, 비교적 쉽게 친해지는 편인데 아, 근데 저 그렇게 친화적인 성격은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들한테만 그래요.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는 않아요. 외국어도 그냥 제멋대로 할뿐인데… 계속 연락하는 친구들이요? 있긴 해요. 참, 올해 초에는 일본 유후인 가서 한번 심하게 질러주고 왔어요. 완전 좋아요, 대박 예쁜 것도 많고 아무튼 한번 가보세요. 올해에 더는 계획 없어요. 흑흑, 가고 싶어도 돈 없어서 못 가요.
Money
한아│『달의 바다』로 받은 상금은 할아버지께 다 드렸어요. 그런데 다행히 영화 판권이 팔렸어요. 그게 좀 컸죠.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 돈 다 펑펑 쓰고 지금은 엄마에게 꽉! 업혔어요. 전 상금으로 큰돈이 생겼던 특이한 케이스였잖아요. 뭐랄까 그 패턴이라는 게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야 현실을 깨닫고 있어요. 진짜 소설가로서의 가난한 삶이랄까. 돈 쓰는 게 습관이 되어서 나중에는 정말 힘들 것 같아요.
유진│전 어차피 처음부터 없이 살았던 터라서 별 스트레스 없이 지내요. 조금씩 벌고 조금씩 써요. 번역하는 거 옆에서 보조하고, 가끔씩 쉬운 드라마 번역 같은 건 직접 하기도 하고. 소설 써서 받는 원고료 수입으로 한두 달은 사는 것 같아요. 책은 자주 사지 않고, 대신 옷을 사죠. 에이, 똑같은 옷처럼 보여도 이 검은 티셔츠 조금씩 다 다른 거라니까요.
Novel
유진│한아씨 소설은 무지 재밌어요. 처음에는 ‘세계일주시리즈’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나라들이 소설 속에 나오는데 그 현실 세계를 소설 속으로 끌어내려 일상화시키는 재주랄까, 미묘한 게 있어요. 끊임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관계를 이어나가고, 감정을 토로하는 솜씨가 감탄스러웠어요. 무엇보다 맛깔스런 대화랄까, 저랑 가장 크게 다른 게 예를 들어 이런 대사요. 할머니가 늦게 오는 걸 보고 ‘너는 팔꿈치로 기어서 왔냐?’ 하시는데 전 절대로 못하는 거거든요. 소소한데 소중한 것들이 아주 예쁘게, 예쁘게 잘 들어가 있어요.
한아│언니는 제가 콤플렉스로 삼고 있는 부분을 다 갖고 있어요. 제 콤플렉스가 뭐냐면, 정면승부하려고 하지 않는 거거든요. 음, 설명하기 참 힘든데 전 있잖아요, 세상을 날것으로 바라볼 용기가 없어요. 젊은 작가라면 가질 수 있는 그 어떤 것, 에너지랄까 패기랄까 그게 저한테는 없어요. 소설가로 한평생을 산다 할 때 젊은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소설들이 있잖아요. 언니는 그것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이 꼭 시처럼 느껴져요. 부러워요 무지.
Incentive
유진 │주로 외적인 것들에 자극을 받아요. 이를테면 거대한 자연환경이나 숲, 호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런 걸 보면 감정적으로 심하게 동요가 일어요. 아니면 음악?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새로운 음악을 들었을 때 그걸 글로 옮겨오고 싶은 욕심이 생겨요.
한아│저는 슬플 때 그래요. 슬플 때, 우울할 때 책상에 앉아요. 그럴 때 뭔가 자꾸만 해명하고 싶어져요.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는 게 억울하고 싫어서요.
First
한아│이번 첫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요, 완전 소중! 그 자체에요. 첫 책도 아닌데 『달의 바다』 때와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그건 수상할 줄도 몰랐고, 그러니 책이 나올 줄도 몰랐고, 그러니까 제가 별 준비도 못했고, 말마따나 뚝딱! 그래서 아직 그거 내 거 아니거든 뒷걸음질친 것도 사실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소설집은 누가 뭐래도 제 시절이잖아요. 떨리고 설레고 기대되고 실은 좋아죽겠어요.
유진│전 별 감흥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밋밋하게 답했나요? 책이 한 권 있으면 구차스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자꾸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하게 될 때 안 해도 되니까 편하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들뿐이에요. 아무튼 모두가 『늑대의 문장』만 얘기해요. 다른 소설들은 다 어찌해야할지 그 걱정이 좀 앞서기도 해요.
Alcohol
한아│항상 취하려고 마셔요. 술을 즐긴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어요. 술 취하면 해롱해롱, 붕 뜨는 느낌 같은 게 신나요.
유진│전 술 자체가 그냥 좋아요. 비 오면 혼자 정종 마시고, 맥주 마시고, 아침저녁 안 가려요. 지금도 작업실에는 항상 술을 사다 놔요.
Workroom
유진│미술하는 친구랑 같이 얻어 쓴 적이 있어요. 30만 원씩 나눠 내서 쓰는 작업실이오. 근데 저는 주로 PC방이나 카페에서 글을 써요. 되게 잘 쓰여요. PC방이 좋은 게 뭐냐면 일단 졸리지가 않아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럴수록 집중이 잘되거든요. 그리고 카페도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데 가야 더 잘 쓰여요.
한아│저도 최근에 월세 30만원 내는 작업실을 하나 얻었어요. 근데 가서도 별 일 안 해요. 도시락 싸가지고 가서 먹고, 책 읽고, 자고 그러면서 놀다 와요. 저도 언니처럼 카페에서 글 많이 썼어요. 이 카페 저 카페 돌아다니면서 쓰는 게 일이 잘돼요. 무엇보다 외롭지 않아서 좋고요.
Xray
유진│도저히 감출 수 없는 거라면 잠, 잠이요. 전 잠을 못 참아요. 그러니까 길게 너무 자는 문제가 아니라 아예 잠 자체를 못 참아요. 마감이 있다 그러면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계속 졸린 거예요. 소설과의 싸움이 아니라 잠과의 싸움. 제 평생의 큰 숙제가 될 것 같아요.
한아│앗! 언니는 정말 저와 반대네요. 전 스트레스 받으면 잠을 통 못 자거든요. 지금도 그래요. 글을 쓰고 있어서가 아니라 써야 할 글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는 거죠. 대신 식욕을 못 참아요. 어떻게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가 없어요, 그놈의 식탐.
Ugly
한아│나하고 남을 비교할 때요. 저 끝까지 가요. 내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드는 거, 돌려 말하면 무지 교만한 거거든요. 내가 더 잘나야 하는데 그것밖에 안 된다는 거잖아요. 아 진짜 추해요, 나.
유진│추하다… 나 언제 추하지? 오빠, 나 언제 추해?(사진 찍고 있는 본지 에디터 백다흠에게 물으니 그가 그런다. 아침에 맥주 사러 편의점 갈 때 아니냐고. 참고로, 이 둘은 한 대학 동아리 선후배 사이다.) 근데 그거 추한 거야? 아침에 맥주 마시고 싶은 때도 있지 않나? 나만 그런가?
Zoo
유진│동물원에 가본 지가 꽤 되었는데 뭐랑 닮았을까요. 언뜻 떠오르는 게 타조요. 좀 지저분하고 눈이 크고 입이 튀어나온 게 영락없이 저 같은데요.
한아│오리요. 통통하고 뒤뚱거리고 물에서도 땅에서도 살고 가끔 날기도 하잖아요. 얼굴도 ‘데이지덕’ 닮았다는 소리 종종 들어요. 근데 저의 ‘도널드덕’은 어디에 있을까요?
Keyword
유진│‘금세’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써요. 금세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런 식으로 빈번히 쓰더라고요.
한아│‘미소 짓는 거’랑 ‘바라보는 거요. 습관적이에요.
Question
유진│요즘 제 화두는 서사예요. 전에는 이야기를 생산해내려는 욕구가 많지 않았어요. 서사가 과연 필요한가, 최소한의 서사만으로도 소설을 쓰겠다, 차라리 문장에 더 신경을 쓰지 그랬는데 이제는 시도해요. 아니, 시도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제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요. 거기 들어가면 그동안 제가 돌보지 못해 쓰러진 애들이 있어요. 앞으로는 걔네들을 일으켜 세우는 작업을 한번 해보려고 해요.
한아│저는 반대로 타자요. 소설이 촉발될 때 슬픔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슬픈 게 자존심 상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런데 왜 슬픈가 생각을 해보면요, 타자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요즘엔 그쪽 공부도 하고 책도 찾아 읽고 그래요.
Yoga
유진│한아씨는 강사 자격증도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소질 있대요. 자세가 워낙에 안 좋아서 의사가 가보라고 권했던 건데 요가가 제게 딱 맞는 운동이더라구요. 몸이요, 펴질 수밖에 없어요. 안 쓰는 몸을 다 쓰게 만드는 거니까요. 그전에요? 조깅했거든요, 아침저녁으로 그냥 막 뛰어다녔어요.
한아│전요, 우울증을 요가로 털었어요. 대학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꽤 오래된 거죠, 그쵸? 그냥 좀 유연했으면 좋겠다 싶어서 내 발로 찾아갔던 건데 인생 전반에 큰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호기심이 무척 많은 편인데 그런 걸 보면 저요, 소설 쓰면서 여러모로 단순해진 것 같아요.
Like
한아│언니는 제가 정말 부러워하는 스타일이에요. 소설이 좀 차가운 것도 매력이에요. 저도 언니처럼 시크하게 소설 쓰고 싶어요.
유진│한아씨는 일단 너무 밝잖아요. 친구도 너무 많을 것 같고. 외향적이지만 안으로 퍽 깊어 보이는 거, 그런 어른스러움을 저도 닮고 싶어요.
God
한아│매주 일요일마다 삼일교회 나가요. 모태신앙이었는데 진짜 믿음이 시작된 건 한 2, 3년쯤 되었을 거예요. 어느 순간 종교라는 게요, 내가 가는 게 아니라 내게 오는 거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어요.
유진│전 무교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절에 다니셔서 그런지 가장 가깝기로는 불교예요.
Read
유진│데뷔 즈음에 좋아했던 작가는 파스칼 키냐르였어요. 그 후에 박상륭 선생님 소설들 찾아 읽었고, 요즘엔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고 있어요. 이런 소설 정말 쓰고 싶다, 그러면서.
한아│아, 그 소설 정말 재밌죠? 전 플로베르 되게 좋아해요. 스타일리스트라서, 그건 제가 못하는 거라서 더 그래요. 요즘에 저는 토니 모리슨 잡고 있어요. 읽은 게 없어서 『빌러비드』부터 읽고 있는데, 짱이에요!
Plan
유진│올해는 정말 장편소설 쓰고 싶어요. 오래 구상만 했는데 더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고요. 그런데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건 스릴러물이에요.
한아│저도 장편소설 하나 준비하고 있어요. 취재는 오래 했는데… 내년에는 꼭 내고 싶어요. 어떤 얘기냐면, 그냥 타자에 관한 얘기예요. 그 다음은 쉬잇!
victory
무엇보다 두 분의 행운을 빌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