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것,
한글!
● 캘리그래피(Calligraphy) :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말로
직역을 하자면 아름다운Calli 글씨graphy라는 뜻이 된다.
ㄱ l 강병인
저는 글씨를 쓰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붓을 잡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씨 쓰는 걸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운명이랄까요, 군대에 가서도 새벽에 먹을 갈고 글씨를 쓸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처음에는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때 광고를 만들었는데, 로고나 타이틀 같은 건 붓이나 펜으로 직접 쓰기도 했습니다. 솜씨 없다는 말은 안 들은 것 같아요. 본격적인 시작은 2002년부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캘리그래퍼를 직업으로 인식하지 않을 때였어요. 한 발은 디자인에, 또 한 발은 캘리그래퍼에 걸칠 수밖에 없었지요.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그러다 어떤 교회의 전도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으로 돈을 받고 글씨를 쓰게 된 것이었죠. 다행히 포스터가 참 멋있었습니다. 게다가 모델이 김혜자 선생님이셔서 이름이 더 났던 모양이에요. 그 뒤로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쌓아나갔어요. 대표작이라… 아침햇살, 풀무원, 참이슬, 산사춘, 엄마가 뿔났다, 대왕세종, 내 남자의 여자, 아름다운 마무리, 떨림, 버디… 너무 많아 일일이 다 불러오지는 못하겠네요.
ㄴ l 노력
안 한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금방 탄로가 나거든요. 나이를 좀 먹으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면 절대로 잘할 수 없다는 걸 알겠더군요. 왜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이 있죠. 미친듯이 빠지지 않고서는 현실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길 수 없어요. 물론 저는 아직 반밖에는 못 미쳤지만요. 간절히 원한다면 평생을 걸어라! 이것이 제 모토입니다.
ㄷ l 단련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까, 전환점이 된 계기가 있었어요. 바로 IMF입니다. 그때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폭삭 주저앉아버렸어요. 충격이 컸습니다. 그 후로 한 5년을 신용불량자로 살았어요. 억울했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남을 속인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한 것뿐인데 왜 하필 나인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를 신용불량자에서 풀어준 것이 무언가 하니 바로 글씨였어요. 이름이 알려지면서도 일도 밀려들어오고 생활도 되고. 그런 일을 겪으니 사람이 제법 커져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 맞더군요 정말.
ㄹ l 룰
저는 고집이 좀 센 편입니다. 아마 제게 스승님이 계셨다면 그의 비법은 따랐겠지만 그의 글꼴은 절대 따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창작이거든요. 아시겠지만 글씨는 정말 따라 쓰기 쉬워요. 그래도 좋은 작품이라면 공부하는 의미에서 꼭 찾아봅니다.
ㅁ l 민체
한자가 다양한 양식으로 발전해온 반면 한글은 판본에서 궁서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러니 한글이 다양화될 수 없었지요. 민체는, 이름에도 들어 있듯 대중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는 글자입니다. 역동적이고 자유롭죠. 민체를 재발견하는 일, 그 감수성을 살리고 싶은 게 제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ㅂ l 붓
붓은 제 수족이죠, 제3의 팔. 수도자 같은 얘기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붓 다루는 일에 서툽니다. 저는 독학으로 글씨를 썼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하고 혼자 터득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늦지만 대신 꼼꼼히 다지고 가는 게 있어요. 붓도 그런 편이지요. 붓만 잘 다룰 수 있다면 다른 도구들이 무슨 문제겠어요. 가끔 나뭇가지 같은 도구로 글씨를 쓰기도 합니다. 이번에 나온 법정스님의 책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뭇가지로 써봤어요. 스님의 삶과 부러진 나뭇가지가 어딘가 닮았다는 생각에서요.
ㅅ l 손글씨
너도나도 써보자, 쓰겠다, 쓸 수 있다, 보편화가 되었던 건 애초에 손글씨가 가졌던 특이성이랄까, 독특한 멋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람의 혼이 들어감으로써 타 제품에 비해 차별화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사람의 개성이 제각각 다르듯이 제품의 특성도 모두 다릅니다. 그걸 이해하고 그때그때 맞춤 글씨를 쓸 줄 알아야 좋은 손글씨꾼이라 할 수 있어요.
o l 아름다움
제가 유난히 봄을 좋아해요. 젊었을 때는 겨울 산에 올라가서 소주 한잔하는 걸 그렇게도 즐겼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야장천 봄만 쓰더라구요. 사실 ‘봄’의 의미보다 ‘봄’이라는 글자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봄이라는 글자 써본 적 있으시죠? 그런데 글씨를 쓰면서 글씨에다 봄을 넣어봐야겠다, 그런 생각 해보신 적은 없으시죠? 꽃이 피고, 아지랑이가 일고,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그런 풍경을 상상하면서 글씨를 쓰면요, 봄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획들이 순식간에 다 바뀌어버려요. ‘봄’이요, 쓰면 쓸수록 참 어려워요. 지나치게 회화적으로 가도 안 되고, 주관적이어도 안 되고, 봄이 좋아 봄날체를 폰트로 만들어 상용화시키기도 했는데요,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책임을 계속 느껴요.
ㅈ l 진정성
‘엄마가 뿔났다’의 경우 한달음에 썼습니다. 물론 일필휘지의 개념은 아니고요. 콘셉트를 오래 잡긴 했어요. 결국 중요한 건 해석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연기자도 감정 이입이 충분치 않으면 배역에 대한 연기 논란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글씨를 쓸 때도 그래요. 드라마의 기획 의도와 그 주제에 감정을 몽땅 얹습니다. 결국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건 상상력이에요. 지름길이라면 책 읽고 여행 다니는 것 정도랄까. 자기만의 시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야 몰입할 수 있어요. ‘엄마가 뿔났다’의 경우에도 희생과 봉사와 헌신의 어머니상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소’를 떠올리게 되었어요. 쌍비읍에 가로를 연결하면 뿔이 되겠다, 쌍비읍은 뿔이 싸우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겠다… 결국 우직한 소의 근성이 어머니의 숨은 힘으로 표출된 거지요.
ㅊ l 책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정리를 해봤더니 그간 작업한 게 얼추 2백 권은 넘더군요. 첫 직장이 ‘예서원’이라고,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였는데 그래서인지 의도치 않았음에도 책 타이틀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경우에 따라 규모가 작은 출판사가 의뢰하러 오면 돈과 상관없이 써주기도 했어요.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책의 운명 같은 게 있는지… 아 그나저나 이건 업계 비밀이긴 한데.
ㅋ l 캘리그래퍼
따지고 보면 글씨는 다 그게 그거예요. 그러나 평생을 해도 다할 수 없는 게 또 글씨지요. 캘리그래퍼가 되기 위해서는 서예학원에 가서 붓 잡는 법과 궁서라든지 판본이라든지 기본적인 쓰기 훈련을 해놓는 것이 좋아요. 물론 디자인적인 감각이나 아이디어는 기본이고요. 글씨는 인간과 자연을 담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감흥을 일으켜야 하잖아요. 글씨는 완벽한데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다면 그건 벌 나비가 날아들지 않는 향기 없는 꽃과 같죠. 기능이냐, 기예냐,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추사 선생님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글이 가진 의미를 고스란히 살려낸 글꼴로 감흥을 일으키거든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최고의 서예가이자 캘리그래퍼가 아닌가 해요. 중국에 유명한 서예가가 많았음에도 선생님의 글씨를 사갔다고 하잖아요.
ㅌ l 타협
작업 의뢰가 오면 시안은 두 개 정도 줍니다. 웬만하면 저는 클라이언트를 믿고 그의 말을 듣습니다. 가능하면 제품의 특징을 완벽하게 파악해서 글꼴이 나올 때까지 씁니다.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빠르면 하루에도 나오기도 하는데 ‘대왕세종’의 경우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부담도 컸고, 캐릭터도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서 글꼴 잡기가 만만치 않았거든요. 기간도 한두 달 이상 걸렸지요, 아마. 제가 원하는 게 채택되지 않으면 아쉬움은 당연하지만 미련 갖지 않아요. 적어도 저보다는 제품에 더 큰 애정을 가지신 분들의 판단을 믿는 거죠.
ㅍ l 팔자
사실 초등학교 때 제 꿈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글씨를 쓰는 것이었지요. 미술반은 예쁜여자 선생님, 서예반은 연세가 지긋하신 남자선생님이 맡고 계셨는데 자랑 같지만 두 분이 서로 절 데려가려고 하셨어요. 가운데서 고민을 했죠. 그런데 서예선생님이 글씨를 쓰면 꿀을 주신다는 거예요. 시골학교라 선생님이 직접 양봉을 하셨거든요. 결국 그 달달한 꿀맛에 붓을 쥐게 되었는데요, 꿀이 아니었어도 붓을 쥐지 않았을까 싶어요. ‘영묵’이라는 호도 중학교 때 영원히 먹과 함께 산다는 의미로 제가 지은 것이니 피해갈 운명은 아니라고 봐요. 하기야 글씨 쓰는 일이 이렇게 즐겁고, 이렇게 즐거운 일로 먹고사는 게 해결되니, 이보다 더 행복한 팔자가 어디 있겠어요.
ㅎ l 한글
디자이너들이 흔히 그래요. 한글은 촌스러워서 작업하기 힘든 문자라고. 영문이나 한자에 비해 그렇다는 얘기겠죠. 일단 우리말이잖아요. 영문은 폰트가 다양하고 바로 읽히지 않으니까 어떤 아우라가 있어 보이죠. 그건 일본어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에 가서 간판을 보면 글자가 그림처럼 예쁘고 멋있게 읽히는데 그게 실은 한자와 섞여서 그렇거든요. 한글은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 만들어진 글자예요. 달리 말하면 자연과 사람을 담아내는 데 가장 좋은 글꼴이라는 얘기도 됩니다. 예를 들어 한자 ‘日’을 보세요. 갇혀 있잖아요. 한글 ‘날’은 어디로든 뻗어갈 수 있어요. 춤도 출 수 있어요. 굉장히 자유로워요. 지난 한글날에 전시를 했는데 외국인들이 ‘꽃’이나 ‘봄’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온대요. 봄은 봄처럼 꽃은 꽃처럼 글자 스스로 사람을 밀고 들어오는 힘, 그 순간적인 아름다움. 저는 한글의 아름다움이 온 세상에 퍼지는 그날까지 한글에 미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다행히 저보다 앞서 산이 되신 분이 계세요, 추사라고. 그를 좇으려 오늘도 저는 산에 가는 수고로움을 즐기고 있답니다.
여담餘談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니 의문이 하나 생긴다. 강병인과 같은 캘리그래피 작가들을 우리는 뭐라 불러야 하나. 캘리그래퍼, 캘리그라퍼, 캘리그라피스트 등 찾아보니 모두 제각각이다. 사전을 뒤적거린다.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쓰고 있다. 검색을 해본다. 캘리그래피라는 일에 대한 정의 한번 다양하다. “도안한 폰트나 기성의 문자 출력 시스템이 아닌 즉흥적인 프리핸드 서체를 통칭”(『필름2.0』 2002. 8. 7), “고딕, 명조 등 디지털 활자 대신 붓을 잡고 손으로 쓴 글씨를 디자인에 활용”(동아일보 2004. 6. 25), “손멋글씨, 능필, 붓글씨체”(매일신문 2007. 7. 3), “서예에서 비롯된 손글씨”(조선일보 2007. 10. 13), “손으로 직접 쓴 손글씨 디자인”(매경이코노미 2007. 11. 28)… 그런데 빠짐없이 ‘손글씨’란 말이 들어 있다. 손글씨, 손글씨라.
그렇다면 이렇게 통칭해보는 건 어떨까. 일명 ‘손글씨바치’. ‘바치’라 함은 옛말로 재인才人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이름씨에 붙어 그 직업에 종사하거나 그를 직접 만드는 자를 뜻하는 말이므로 ‘손글씨바치’를 풀면 ‘손글씨장인’ 정도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바치’는 중인 계급이 아니던가. 이는 ‘궁서’를 쓰는 양반들보다는 ‘민서’를 쓰던 서민들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바이기도 하니 말이다.
물론 나만의 의견이니 이게 정답이라 극구 우길 마음은 없다. 다만 김춘수 선생의 시를 떠올릴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라고 하였으니 꽃 볼 욕심에, 그러니까 그저 이름 부를 목청이나 함께 가다듬어 보자는 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