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그에게 가자 했다. 어데요? 경상도 억양이 억수로 억세던 택시 기사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 이렇게 설명하면 다 알 거라고 하셨는데. 다급한 마음에 그에게 전화를 건다. 수화기 너머 친절한 성복씨의 집요한 길 안내가 이어진다. 백 원어치의 요금도 샐 틈 없이 택시가 곧 멈춰 선다. 저기 한눈에도 참 이성복스러운 한 남자가 서 있다. 말잠자리 눈 같은 까만 선글라스로 일단 가릴 건 다 가린 눈이었다지만 선생님, 모가지가 부러지도록 호들갑스럽게 인사부터 하고 보는 나다. 멋쩍어 따라 웃고 보는 그다. 이거 뭔지 모를 안심이다. 어떤 낯가림 같은 게 선글라스 쓰고 벗는 일처럼 만만해진다. 그가 손수 커피를 타고 구미에서 가장 맛있다는 카스텔라를 자르는 동안 나는 그의 뒤에 바싹 붙어 졸졸 따라다니며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이것저것 묻기 바쁘다. 그가 싱크대 찬장에 붙여놓은 르네 샤르의 시를 불어로 읽어준다. 또 해주세요, 하니까 리바이벌도 한다. 그가 현관문에 뚫린 우유 구멍을 막고 있던 청년 랭보의 얼굴을 떼어온다. 저 주세요, 하니까 부끄러워도 한다. 그와 내가 동시에 봉투 찢는 작은 칼 하나를 본다. 청하기도 전에 까짓것, 선심도 쓴다. 마시고 씹는 주제에 또 묻는다. 이건 뭐예요? 점 보는 거라. 점이요? 내가 주역했잖아, 그걸로 박사 논문 썼잖아. 선생님, 저도 한번 봐주시면 안 돼요? 그래 한번 뽑아봐라, 가만있어보자… 위는 산이고 아래는 산불이라…
김민정(이하 김)│손에 쥐고 계신 그 연필, 꽤 오래된 것 같아요.
이성복(이하 이)│우리 딸이 어렸을 때 쓰던 거야. 이수유. 이름 예쁘지? 내가 가장 잘 지은 이름이라고 생각해. 이게 말이야, 한자가 더 예뻐. 산수유 수茱에 산수유 유萸. 걔 낳기 전에 서정주의 시에서 산수유를 봤는데 그게 너무 예쁜 거라. 우리 딸은 사회학과 나왔는데 제 이름처럼 수유연구소라고 있지, 거기 다녔어. 요새는 영화 찍는다나 뭐라나 아무튼 재밌게 사는 거 같아.
김│1952년 경북 상주 출생이라는 선생님의 이력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이│하하, 그래? 가만, 민정씨가 용띠지? 나랑 띠동갑이구나. 올해 우리 학교에 특기생이 하나 들어왔는데 시를 곧잘 써. 그래서 내가 몇 년생이니 하니까 나보다 서른아홉 살이 아래더라고. 슬쩍 연배로 따지고 보면 나와 김소월 정도의 차이거든. 나는 얘랑 거의 친구처럼 지내는데 얘는 나를 어찌 보겠나, 거 웃기지? 나만 웃긴가? 아무튼 나도 곧 환갑이라.
김│이 작업실에 계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예요? 단출하니 정말 아무것도 없네요. 절간 같아요.
이│한 2, 3년 되었나.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15만 원. 싸다고? 싼가, 싸지! 낮엔 주로 여기서 작업을 하거나 낮잠을 자고 밤에는 집으로 가지. 내년이면 결혼 30주년이네. 하긴 뭘 해, 안 싸우면 그걸로 다행이지.
김│『주역』은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신 건가요?
이│내가 대구 계명대에 취직한 것이 1982년이었으니까 만 서른 살이었어. 그러다 1984년에 불란서에 갔지. 보들레르 생각하고 여기가 고향이겠구나, 했는데 완전 푸대접이었던 거라, 그 무시 정도가. 어쨌든 한국 돌아와서 다시 읽은 게 김소월과 한용운이야. 그때 주변 선생들이 한문 공부 한번 해봐라 권하셨어. 그래서 계명대 앞에 계명한의원이라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아주 점잖은 양반이 거기 계셨는데 가서 『주역』 배우고 싶다 그랬더니 『대학』이랑 『중용』을 먼저 하자시대. 그 두 책을 한두 달 만에 다 떼고, 『주역』을 1년 8개월에 마쳤는데 아주 신이 나서 매일 공부를 하러 갔던 기억이 나.
김│헉,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떼요? 뗀다는 의미라면?
이│그거 뭐 짧잖아. 기본적으로 술술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주석풀이를 해야 해. 아니야, 별로 어렵지 않아. 한자는 좀 알아야겠지. 어쨌거나 그렇게 매일매일 가니까 하루는 선생이 그래. 이교수, 우리 일요일에는 좀 쉽시다. 해서 일주일에 하루 쉬고 거의 6일을 갔어. 그때 학교 중문과 선생들과 『논어』도 했는데 그 수업도 한 번을 안 빠졌어. 어떻게 안 빠질 수가 있나. 노하우가 있지. 내가 빠지는 날은 수업을 아예 못하게 했으니까, 하하. 그렇게 『논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해서 1년 만에 뗐어.
김│고교 시절 이성복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이│내가 경기고 나왔잖아. 실은 정치하려고 간 거거든. 어린 마음에 출세할 생각을 먹었던 거지. 그래서 국회의원 딸에게 편지도 쓰고 웅변부 반장도 하고. 그럼 웅변 원고도 직접 썼지. 3천 명 앞에서 일등도 한 적이 있어. 주제? 빤하지 뭐. 외제품 써서 되겠나, 우리 물건 쓰자 뭐 그랬던. 아무튼 나 고3 때는 일체 공부 안 했어. 만날 뒤에서 엎드려 잤어.
김│에이, 말도 안 돼요. 공부 안 했는데 어떻게 서울대 불문과에 들어가요?
이│경기고가 공부를 잘했던 학교잖아. 480명 중에 430명이 서울대를 갔어. 물론 재수생들이 그 절반은 되었던 것 같고. 아무튼 내가 고2 때부터 예술, 사상 그런 거에 푹 빠진 거라. 그때 이상적인 모델로 삼은 게 루소였어. 만날 귀족 부인들이나 꼬시고, 폼 재고, 그거 좋잖아, 사상가. 그런데 어느 날 친구들이 『데미안』이나 『이방인』 얘기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 그래서 불문과 공부도 좋지만 일단 좀 책을 보자 했지. 대학교 1, 2학년 시절부터 외국 문학, 철학 읽기 시작해서 군대 가서도 도서 목록 카드 만들어서 그거 차례대로 지워가면서 독서를 했어. 내가 공부할 때 보면 좀 집요한 데가 있어.
김│특별히 불문과를 택하신 이유가 있으셨나요?
이│원래는 철학과에 가고 싶었어. 근데 집에서는 철학이라고 하니까 사주관상 뭐 이런 걸로 알아. 내가 불문과에 간 이유는 고등학교 때까지 독어를 하다 보니 워낙에 질렸고, 또 하나는 불문과에 여자가 많다고 하잖아. 난 말이야, 여자를 밝혀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다가 여자들하고 있는 게 편해. 명절 때도 난 주로 부엌에서 누나와 노가리 까는 게 좋지, 매형은 어휴. 이게 참, 출세할 상이 못 돼. 시험 감독 들어가서도 남학생들 쫙 깔려 있으면 가슴이 팍 답답해진다니까. 내가 본질적으로 그렇게 여자인 거라.
김│그런데 어떻게 웅변부 반장은 하셨어요?
이│그래도 내가 깡다구가 세거든. 한번 물면 절대로 안 놔. 어른들도 아주 식겁하지. 그러니까 다 양면성이 있는 거라.
김│선생님에게 문학은 처음에 어떻게 다가왔나요?
이│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 같은 사람들을 무지하게 쳐줬지.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했거든, 난 이념형이었으니까. 그래서 플로베르 같은 사람을 왜 위대한 작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 난 늘 신과 철학을 생각했거든. 『마담 보바리』를 보라고. 거기에 무슨 신과 철학이 있는지. 플로베르를 인정하게 된 건 군대 다녀와서야.
김│고등학교 때 시를 쓰지는 않으셨나요?
이│그때 내가 나도 뭔 소리인지 모르는 그런 시를 끼적이기도 했어. 내가 「꽃핀 아유자의 노래」라는 시를 경기고등학교 화동문학상에 투고를 했거든. 그걸 본 이인성이가 낙선된 작품이지만 교지에 싣자고 하는 거라. 이인성이가 문예반 반장이었는데 워낙에 날렸어. 암튼 그게 장시였는데, 여기서 ‘아유자’는 아첨하는 자란 뜻이고, 내용은 뭐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데 남한에서 죽은 간첩의 시체에서 사과나무가 자란다는, 초현실주의 냄새가 짙은 시였는데, 하여간 이인성이가 그 작품의 일부를 잘라 교지에 싣고 나머지만 날 줬거든. 1969년이나 1970년 교지 보면 있을 것도 같은데.
김│아, 정말요? 이번에 경기고에 갈 일이 있는데 한번 찾아볼까요?
이│그래줄 수 있겠어? 나 그거 참 보고 싶은데.
김│다시 돌아가서요, 플로베르를 위대한 작가로 인정하게 되신 건 어떤 연유에서였나요.
이│문학에 대한 생각 자체가 변하게 되었거든. 어떤 이념에 대해 입을 닫는 게 문학이다, 라는 걸 후에 알게 된 거지. 지금까지 내 문제는 인생의 문제야. 요즘 내가 『현대문학』에 「타오르는 물」을 연재하고 있잖아. 그게 내 나름대로 인생에 대해서 배우고 느낀 걸 몰아서 하고 있는 거거든. 내가 서양 철학에서 문학을 시작했기 때문에 김수영은 알았지만 김소월이나 한용운은 저게 시냐, 그랬었다고. 그런데 난 지금 김소월이 무지 대단하다고 생각해.
김│김소월이요?
이│응, 김소월.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이 있다고 생각해. 그 당시에 연애시를 읽으면서 동양의 음양 사상 있잖아, 연애라는 게 음양이잖아. 그래서 주역도 하고 그 다음에 불교 쪽을 접한 거야. 불교 기초 강좌부터 불교 기초 경전, 유마경, 원각경에서 선불교하고 티베트 불교, 인도 사상 뭐 이렇게 연결해서 조금, 조금씩 공부해나갔던 거라. 근데 나는 전문가가 아니잖아. 내 인생에 필요하다 싶은 부분을 그저 섭취하는 정도랄까. 그러다 정신분석으로 넘어가서 프로이트 읽기 시작했지. 불어 원문으로 시작해서 한 절반은 그렇게 읽은 것 같아. 연결해서 후기 구조주의 넘어갔다가 내가 한참 재미나게 본 것이 생물학이야. 특히 짝짓기에 관심이 많지. 거기 모든 것이 걸려 있거든. 그리고 인류학, 요 근래에는 현대 물리학. 그런 식으로 대충이야. 봐, 지금은 나 책 별로 없잖아.
김│생물의 짝짓기 중에 가장 신기한 경우를 예로 들어주시면요.
이│물고기 중에 이런 게 있어. 왕이 여자고 나머지는 남자들이야. 근데 이 왕이 나이가 들어 비실비실하잖아. 그러면 밑에 똘마니들이 도전을 해서 이기잖아. 그러면 그 왕이 남자로 바뀌어. 신기하지? 달팽이 같은 것도 그렇거든. 짝짓기를 할 때 내가 한번 여자 해주면 다음에는 네가 여자 해줘야 해 하는 식이야. 왜냐면 달팽이가 짝짓기를 할 때가 되면 애인을 찾으러 가는데 이놈아가 하루 종일 가도 1년에 하나 만날까 말까 하거든.
김│생물학과 인류학이라는 게 사실 참 큰 공부입니다.
이│우리 생명체라는 건 사실 종족의 생명을 전달하는 매체야. 아예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해마다 나뭇잎이 나기만 하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봐. 사람도 마찬가지잖아. 개체의 생명은 종족의 생명을 전달하고 빠져줘야 돼. 그게 릴레이하고 같아. 내가 한 바퀴 돌고 바통을 넘기면 그걸 받아 다른 놈이 쓱 나가야 하는데 전부 돌고 있으면 그거 개판 5분 전이 되는 거라. 그런데 우리는 죽는 걸 두려워하잖아.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지만 인간의 인프라 자체가 40년 내지 50년이야. 30년 하고도 생명체가 살아남은 이유는 자기가 낳은 생명체가 활동할 준비를 해주는 거거든. 그게 빠지면 빠져줘야 돼. 이 원리는 말이야, 수레바퀴와 같아. 수레바퀴는 돌아, 도는데 나가잖아. 파도와도 같아. 파도가 온다고 태평양에서 여기까지 물이 오는 게 아니거든. 그런데 종교에서 부활이 어떻고 그러잖아. 그놈들 다 부활시키면 이 세상은 쓰레기 천지가 될 것 아니야. 총알이 나가면 탄피는 떨어지는 거라. 개체가 같이 나가려고 하면 거기서 힘이 떨어지는 거라. 그걸 모르면 힘이 들어. 고통을 없앨 수 없는 거라. 문제는 모든 인간들이 고통을 뻥튀기한다는 거라. 인간으로 태어나서 고통은 안 받을 수가 없는 거라. 그건 기도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
김│선생님도 한때는 천주교 신자였다고 들었어요.
이│한 3, 4년 열심히 나갔지. 세례명은 바오로. 근데 요즘엔 안 나가. 우리 집사람은 되게 열심히 나가. 매일 미사하지. 이런 얘기 하면 마누라가 웃지. 독실하니까. 어쨌거나 그러거나 인간이 참 맹목적인 거라. 우리 둘째 아이 반에 되게 멍청한 애가 한 놈 있는데 현충일에 선생님이 “조기 다세요” 했더니 “조기? 생선 말이가?” 이랬대. 그건 릴레이를 하는데 바통을 주고 나서 저쪽으로 또 달리고 있는 꼴이야. 어리석은 거지. 무엇보다 이 원리는 시에서도 마찬가지야. 시는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돌아가주는 거라. 그러면서 메시지는 간접적으로 나아가는 거라. 계속 이미지를 꼬듯 새끼를 꼬아야 힘이 생기잖아. 전선도 꼬여 있잖아. 꼬려면 어떻게 하지? 침 뱉어서 계속 비벼주지. 그런데 새끼는 계속 올라가지.
김│시는 좀 쓰고 계신지요. 간간 발표하신 작품을 본 것도 같은데요.
이│안 써. 별로 필요를 못 느껴. 기억나는 게 ‘뚝지’라고 물고기로 시 쓴 거 있는데 아주 비참해. 내가 동물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래, 기억하려. 나는 기억이거든. 왜냐면 기억하고 증언하기 위함이지. 시를 쓰기 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거든. 시라는 건 그렇게 모르기 때문에 쓰는 거야. 지금 내가 도달한 지점은 한마디로 불가능이야. 지금까지 내가 쓰고 생각하고 공부해왔던 모든 것을 한마디로 똘똘 뭉쳐 말하자면 불가능이라고.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야. 시라는 건 불가능의 언어, 불가능을 표현하는 언어이지만 동시에 언어의 불가능이야. 그 지점이 되면 주체와 언어가 함께 사라지지. 나는 거기까지는 갈 수 있어. 그 다음은 알 부분이 아닌 것이지. 그래서 그 부분을 계속 찌르는 거야. 계속해서 쑤시는 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는 거지.
김│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라…
이│시라는 건 우리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야. 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하는 거, 말하자면 그게 시지. 아주 깊은 물에 돌멩이 하나 던졌을 때 아무 느낌도 없는 그 느낌을 일으키는 거, 말하자면 그게 시지. 혹은 바다에 내리는 눈 같은 거.
김│선생님이 처음 시를 쓰셨을 때도 그런 생각이셨나요.
이│아니. 그때는 왜 사는가, 하는 문제에 매달려 있었지. 카프카식으로 말하자면 원죄이고, 노자식으로 말하자면 천지불인天地不人이야. 집사람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 왜 이리 빤한 것을 사람들은 얘기하지 않을까. 인간을 말하면서 인간의 생물학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 것일까. 왜 군홧발에 밟혀 죽는 사람은 얘기하고 개 죽는 건 왜 얘기하지 않는가. 나는 보다 근본적인 거라. 말하자면 윤리라는 건 행동이거든. 나나 남에게 오는 괴로움을 줄이는 것. 쓸데없이 잘못된 환상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줄이는 것. 만약 그걸 안 하고 환상 속으로 들어가면 비 맞는 거라. 비를 안 맞으려면 간단해. 오두막으로 들어가면 돼. 그러나 비를 안 오게 할 수는 없는 거라. 그래서 비를 덜 맞거나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거라. ‘법등명자등명’이라고 부처가 말했어. 법을 등불로 삼고 너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고. 걸레 빠는 것도 비슷해. 걸레를 빨 때 새 물이 들어오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나가잖아. 바로는 안 빨리지. 그렇다고 걸레가 원래대로 되지는 않아. 괴로움을 없애는 게 아니라 줄이는 것이야.
김│아, 점점 헷갈려요. 어려워요. 시를 어떻게 써야할까요?
이│내가 20대 후반에 시를 참 많이 썼어. 지금은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아무튼 그 이후에는 다 억지로 쓴 것 같아. 내가 얼마 전에 존 치버라는 사람의 단편을 봤는데 참 좋더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는데, 거기 뒤에 수상 연설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 ‘잘 쓰인 한 페이지는 무지무지하게 힘이 든다.’ 맞잖아. 시인의 경우 한 행을 보면 시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있고, 작가의 경우 한 문단을 보면 알아. 왜 강호순 같은 사람들 DNA 보면 전체 정보 다 나오잖아. 그 사람의 한 행을 보면 칼이 어느 방향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있어. 중요한 건 칼이 들어가야 할 데가 아닌 곳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얘기지.
김│어떤 걸 보면 시다, 시라고 느끼시나요?
이│나는 시가 이미지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고, 요 근래 드는 생각은 어조 같아. 말하자면 산문은 유선 케이블이고 시는 무선이라. 아무 매개도 없이 툭, 건너가는 거야. 전에는 발견인 줄 알았거든. 스크래치 안에 형형색색의 아름다움,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김소월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아. 예를 들어 ‘그래도 못 잊으면 그땐 어떻게 하지요’ 하고 싹 꼬부릴 때의 느낌에서 팍 올라오거든. 그렇다고 발견이 아니란 얘기는 아니고. 시는 어조라서 불붙은 전선의 뜨거움이 순간적으로 읽는 사람에게 옮겨 붙어 화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닌가, 아무튼 잘 생각해봐. 아 근데 머리 아프다, 안 아프나.
김│테니스도 배드민턴도 즐기셨던 걸로 알아요. 요새는 어떤 운동 하세요?
이│연습장에서 가끔 골프를 쳐. 원래가 내가 운동을 못해. 테니스 오래 했는데 할매들한테도 져. 허리가 안 돌아가. 내가 군대 가서 많이 맞았다고. 훈련 받을 때 구령을 붙이는데 팔다리가 같이 올라가는 거야. 내가 해군 다녀왔잖아. 근데도 수영을 못해. 수영 강습소도 다녔는데 결국 못 떴어. 골프도 선생이 시키는 대로 안 하고 가르쳐주면 다음 날 딴짓하는 거라. 공부 같은 정신적인 일에서는 통했는데 몸은 안 통하는 거지.
김│옆에서 뵈니까요 선생님, 정말 카프카와 닮았어요. 특히나 속눈썹이 정말 끝내줘요. 그런 얘기 종종 들으셨죠?
이│카프카는 기본적으로 예쁜 사람이야. 참 예쁘게 얘기해. ‘무엇이든 거칠게 대하면 거칠게 대하는 사람이 더러워진다. 그렇지만 만약 우리가 대상들을 초대받은 손님처럼 대한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품위를 잃는 일이 없고 고귀할 것이다.’ 카, 참 좋잖아? 모든 의미는 의미화된 거야. 이 말을 틱낫한식으로 빗대보면 평화란 평화로 가는 길이야. 내가 평화를 생각하면 평화이고 내가 진실을 생각하면 진실이라는 거지. 거룩한 건 거룩하게 하는 것이야. 거룩한 건 낮아진다는 것이지. 민정이를 높게 하려면 내가 낮아져야지, 대상을 높일 수는 없는 거라. 거룩하다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낮아진다는 것이지.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공부야.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라고.
김│결국 또다시 공부군요. 지금도 늦지 않았을까요? 선생님 말 듣고 있으니 저 완전 김바보예요.
이│서른넷이면 공부 슬슬 시작해야지. 안 늦었어. 시작하기 딱 좋을 나이야. 일단은 하라고. 자꾸 하다 보면 결국 시로 가게 되어 있어. 사람은 거기로 들어갈 수 없어. 녹아버려. 바다에 내리는 눈이라고 했잖아. 언제든지 그 입구에서만 말할 수 있어. 시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시야. 혹은 여자로 치면 구멍이 세 개인 거라. 처음에는 총각들이 오줌 구멍을 그 구멍으로 생각해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그건 안 들어가는 거라. 항문에 집어넣으면 그건 더러워지는 거고, 밖에서 보면 구멍이 거의 하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건지 저건지 항상 근처에 가서 딴 데 집어넣는 거라. 그러니까 늘 깨어 있어야 해. 그러다 갑자기 손이 확 들어와서 화들짝 놀라는 시를 써야 해. 그러려면 지가 먼저 싸면 안 돼. 대상이 만족할 때까지 조금 기다릴 줄 알아야 해. 이렇게 시 얘기 하는 사람, 아마 나밖에 없을걸?
김│네. 근데 아주 이해가 쏙쏙 돼요. 헤헤.
이│아마 그게 그럴 것이야. 이리 와봐라, 요 내 수첩이다.
김│어머 이게 뭐예요?
이│좋은 구절이 있으면 여기다 적어둬. 아도르노, 피카소, 브레송… 한번 읽어줄까? 자 베케트, ‘집착에서 벗어나 몸을 내맡기고 판단하지 말고 그냥 쓰거라.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실패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실패하는 것이다.’ 굿, 정말 굿이라. 그리고 요새 내가 관심을 가지는 블랑쇼.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언어, 중심이 없는 언어, 그리고 물을 드러내는 언어에 속하는 것이 작가다.’ 브레송, ‘밤에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가 남는다’, 죽이잖아. 요거 하는 게 작가인 거라, 시인인 거라. 도무지 엄살할 여가가 없다니까. 공부는 양이 아니라 오히려 구멍인 거라.
김│요새 젊은 시인들의 시는 보고 계신지요.
이│와리바시라고, 나무젓가락 있지. 벌려야 뭘 끼우잖아. 시는 벌리는 거거든. 너무 넓게 벌려도 좁게 벌려도 안 되는 거라. 이 벌림을 정말 잘해야 하거든. 접속사로 치면 ‘그리고’는 안 돼. 각이 안 생겨, 각도를 만들어야 해, 징검돌로 치면 다닥다닥 붙은 거라. ‘그러나’는 각도를 완전히 꺾는 거거든. 가장 적당한 건 ‘그런데’야. 백석의 장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서는 각을 서서히 주고, 정현종의 「섬」 같은 시에서는 두 행이니까 팍 꺾잖아. 요즘 젊은 사람들 보면 막 벌려. 스케이트 타는 거라면 십중팔구 다 넘어져.
김│결국 긴장이라는 지점이군요.
이│초등학교 운동회 때 뒷짐 지고 과자 입으로 따먹는 경기 있지, 그게 힘들고 불편하니까 다 손으로 따먹고 있는 거라. 또 박래품이라고 하지. 외국에서 온 거 희한한 거에 맛을 들이면 놓쳐. 사랑이라는 게 가까운 사람한테 잘하는 거야. 문제는 울림이 없어. 울림통을 가져야 해. 울림통이 뭐냐면, 찡 아프게 끝나 고 나서도 남는 그것을 해야지 지금은 딱 때리면 땡이거든. 거기 의존하면 안 돼.
김│글이 안 될 때는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이│글을 못 쓸 때는 글을 못 쓴다는 것을 글로 쓰면 글이 돼. 글을 쓰기 위해 딴것을 찾으면 글을 못 써. 글을 못 쓸 때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가, 왜 난 콕 찌르고도 피 한 방울 안 흐르는 글을 쓰는가, 그러면 그게 글인 거라. 시는 왜 시가 안 되는가를 얘기하면 시가 되지만 시인 것을 찾으면 백발백중 딴거라. 단적인 예가 김수영이지. 김수영이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나는 왜 늘 이 모양인가 하잖아. 그래도 시가 되잖아. 「성」도 그렇잖아. 시는 누구 때문에 쓰나, 나 자신 때문에 써. 그걸 늘 명심해.
김│누구 때문에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해본 적 없었어요.
이│항상 중심을 자기한테 둬야 해. 마라톤할 때 뒤돌아보는 놈은 못 가. 중심이 바깥에 있는 놈은 엎어지면 일어날 줄 몰라. 중심이 흔들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중심이 안에 있지 못하니까 넘어지면 석 달 열흘 못 일어나. 오뚝이 같은 거 봐봐. 넘어지자마자 바로 일어나잖아. 자기 안에 시를 쓰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김│학생들은 매 수업마다 선생님과 이런 시 얘기를 나누겠지요. 부러워요.
이│나는 학생들하고 있을 때가 제일 즐거워. 내가 사랑받는 느낌을 잘 알거든. 그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거니까. 내 말이 마른땅에 비 오듯 사람들한테 스미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행복하지. 일단은 나이가 20년 이상 차이가 나잖아. 나는 뭐든지 가져와도 버무려서 뭘 만들어내잖아. 진짜 부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돈 물려주는 게 아니라 돈 버는 방법을 일러주잖아. 학생들에게 나는 말해. 중요한 건 글의 소재가 아니라 만드는 방식이라고. 글의 소재는 딴거 없어. 압바스 키아스로타미가 그랬어. ‘당신의 영화 주인공을 멀리서 찾지 마라. 어느 날 문을 열고 나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 당신 영화의 주인공일 수 있다’고. 나는 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어. 나는 친하면 남자나 여자나 그런 구별 없어. 말 까자는 얘기는 아니고, 밤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나면 어차피 우리는 에스컬레이터 탄 거랑 마찬가지인 거라. 그러나 우리가 사라져도 에스컬레이터 탄 것은 남잖아. 우리는 빠져나가도 우리가 있던 공간은 남잖아. 말하자면 영원인 거라.
김│내내 시시詩詩거렸는데도 자꾸만 시에 대해 묻습니다.
이│채석장 같은 데 퍼런 비닐 덮어놨을 때 그 느낌 있지, 그걸 뭐라고 설명할 거야. 시를 다 쓰고 나서 돌을 던졌을 때 아무 응답이 없는 그 느낌 있지, 그걸 뭐라고 설명할 거야. 혹은 아이가 악 소리 내며 울었다가 잠깐 멈췄을 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그 느낌 있지, 그걸 뭐라고 설명할 거냐고.
김│불시 번역은 안 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좀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이│보들레르 하다가 때려치웠어. 내가 누구 좋은 일 시키려고. 안 한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김│선생님. 키가 혹시 몇이세요?
이│167센티미터. 근데 왜?
‘해군海軍 찝차를 보면 경례! 붙이고 싶다’던 그처럼 나는 왜 요즘 어른들을 만나면 다짜고짜 키부터 묻는 것일까. 1996년형 프라이드, 예의 없는 나를 태우고도 성 한번 내지 않은 채 잘도 달린다. 도로를 벗어나 산으로 산길을 오른다. 새끼를 꼬듯이 계속 산을 비벼가며 오른다. 나는 느티나무를 보면 늘 감탄해. 거의 모든 느티나무가 잘생겼어. 거의 모든 느티나무가 경제적이야. 거의 모든 느티나무가 아래로 향해 있어. 그러고 보니 그의 어법에 묘한 데가 있다. 그의 말마따나 싹 꼬부려야 할 말의 순간이 있다면 그걸 확 낚아채 반복하는 재주다.
종알종알 떠들어대기 바빴던 내 말수가 어느새 팍 줄어 있다. 하던 대로 하라고. 말도 글도 참으라는 얘기가 아니야. 근데 풋도 언젠가는 철이 들어야 할 거 아니야. 왜 물속에서 숨 참는 거 있지, 남들이 3분에 일어나면 나는 3분 3초, 그게 사람을 만드는 거라. 백 미터 달리기 선수들이 다 10초대로 달리지. 근데 챔피언은 0.02초에서 품질이 달라지잖아. 다시금 끝도 없이 비유가 이어진다. 정말이지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진정한 비유의 달인 같다.
기차 안에서 그의 시집을 펼친다. 언젠가 내가 한 신문지면을 빌려 그에 관해 썼던 글이 거기 끼워져 있다. “이 문장 너머 저 문장 아래 연필로 흐릿하게 밑줄 긋고는 느낌표 쾅! 밀어 넣던 망치질의 흔적, 그 행복한 항복의 순간이 참으로 여럿이다. ‘이 새낀 때릴 데가 없네’라는 구절 아래 내가 패러디한 한 구절이 눈에 띈다. ‘이 시는 버릴 데가 없네’ 그래, 이 마음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질투겠지. 한 사물이 시의 어떤 발상으로 새롭게 포착될 때 그는 촘촘히 거미줄을 치고 숨죽여 기다리는 한 마리의 거미를 닮았다. 매운 만큼 정교한 바느질 솜씨로 침묵 속에 한복을 짓는 침선장針線匠, 그도 제격이다. 시가 안 될 땐 내 시에서 나와 남의 시나 읽으라던 그의 말을 내가 너무 따랐나.”
아픈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나,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근데 해줄 수 있는 게 있긴 있지. 옆에 조금 더 있어주는 거. 그런 의미에서 또 와. (*)
이성복 | 1977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금산』, 『그 여름의 끝』, 『호랑가시나무의 기억』,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산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꽃핀 나무의 괴로움』, 『오름 오르다』 등과 시선집 『정든 유곽에서』, 잠언집 『그대에게 가는 먼 길』, 문학앨범 『사랑으로 가는 먼 길』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명대 문에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