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연준(시인) 사진_백다흠(풋, 에디터)
▦ 어느 날 침대가 딱딱한 몸으로 나를 끊임없이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 몸이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수평을 유지한 채 허공에 머무를 수 있을까? 나는 침대의 은밀한 거부 때문에, 나를 받아들여 삼키지 않고 ‘밀어내는 힘’ 때문에 매일 밤 잠들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는 이렇게 밀어내는 힘, 부정하는 힘으로 인해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인터뷰 전날 밤, 나는 침대 위에 엎드려 『소설을 쓰자』와 『이별의 재구성』, 이 두 권의 시집을 가지런히 놓고 앞에서 이야기한 ‘침대’를 떠올렸다. 두 권 모두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는 성격의 시집은 아니었다. 여러 번 내 발은 그 속으로 불쑥 삽입될 뻔도 하였으나 대체로 그들은 나를 밀어내면서, 동시에 받쳐주었다. 그건 말言의 힘 때문일까? 나를 밀어내듯 받쳐주던 묵직한 다리는 말言의 다리였을까? 힘줄이 불끈 튀어나온 다리가 아니라 걸어가다 이따금 아무렇지 않게-실족하기도 하는, 다족류의, 아름다운 다리였을까?
9월 9일, 가을은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쨍쨍 시끄러운 햇볕이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고 호기롭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공기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해 보였다. 나는 안현미 시인이 일하고 있는 ‘연희문학창작촌’으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해보니 나무 그늘 아래서 김언 시인이 후배 시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김언 시인과는 초면이었는데 시집에 찍힌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따뜻해 보였다. 면바지와 편안한 티셔츠 차림의 김언 시인이 우리를 안내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창 업무를 보느라 바쁜 현미 언니가 보였다. 언니는 오늘 좌담한다고 새 옷을 사입고 왔단다. 그러고는 말끝에 언니만의 독특한 웃음소리(으하하하핫~)를 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현미 언니의 웃음소리는 들을수록 귀에 익는다. 문장 끝에 오는 마침표처럼 언니의 말 뒤에 꼭 따라와야 안심이 되고 즐거워지는 이 웃음소리에서 묘한 힘이 니껴졌다.
박연준(이하 연준)│일단 언 선배님 미당문학상 받은 거 축하드려요.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근데 좀 당황스러우셨죠? 소감 좀 말씀해주세요.
김언(이하 언)│아유, 안 당황스러우면 진짜 뻔뻔한 거죠. (웃음)
안현미(이하 현미)│축하해요. 주위 젊은 시인들도 많이 기뻐하더라고. 놀라기도 하고. (웃음)
연준│당선 통보 받았을 때 어땠어요?
언│제가 지금 명지대 대회홍보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명지대 학생 기자들을 데리고 남이섬에 놀러 갔어요. 내가 놀러 간 게 아니고 나는 인솔자로 간 거라 챙겨야 할 게 많았어요. 그때 전화를 받아 많이 얼떨떨했죠.
현미│정말 예상하지 못한 수상이라 놀랍기도 했지만 젊은 시인들 입장에서 보면 기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파격적인 심사잖아.
언│기자도 장고長考의 시간을 겪었다고 말하던데, 목소리가 지쳐 보이더라고요. 나도 엄청 정신이 없을 때 전화를 받아서.
연준│수상작이 뭐예요?
언│「기하학적인 삶」이라고 시집에는 실리지 않았고, 『현대문학』에 발표한 거예요.
연준│정말 축하드려요. 현미 언니도 두 번째 시집 『이별의 재구성』 나온 거 축하드려요. 첫 시집 낼 때랑 어떻게 달라요? 어려운 거 없었어요?
현미│전 어려울 사이가 없었어요. 연희문학창작촌이 10월에 개관하는데, 그거 준비하느라 교정지도 거의 못 보고 넘겼어요. 오히려 첫 번째 시집 준비할 때는 피곤할 정도로 붙잡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출판사에 다 일임했어요. 딱 두 가지만 부탁하고. 표4는 김정환 시인께 부탁할 것, 그리고 올해 안에 내줄 것. 근데 둘 다 충족됐네. (웃음)
연준│두 분 다 지금 일을 하고 계시는데, 시 쓰는 시간이 전에 비해 줄지 않았어요?
현미│삶에 치여 시 쓰는 시간은 짧아졌어요. 전체적으로 보아 작년엔 스무편 썼다면 올핸 한 다섯 편 썼나? 이런 식으로 변해가는 것 같아요. 근데 그건 특수할 수도 있고요. 제가 직장을 그사이 두 번이나 옮겼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과 적응하는 시간, 일에 적응하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언│나도 전에는 일을 안 하다 올해부터 출퇴근을 하는데, 힘들더라고.
현미│전엔 SK텔레콤 다녔는데 그때가 제일 좋았어요. 거기는 영화 <모던 타임스>에 나오는, 왜 나사만 계속 꽂으면 되는 일 있잖아요. 그냥 나에게 주어진 일만 딱 하면 되는 거요. 퇴근도 칼퇴근이고, 페이는 제일 높고. (웃음) 그렇게 5년을 다녔는데, 그래도 내 전공과 맞는 일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페이를 좀 깎아서 문학나눔으로 옮겼지요. 지금은 거기보다 더 깎아 연희문학창작촌에 와 있고.
연준│일하는 건 어때요? 여기가 더 힘드시죠?
현미│네. 여기가 공무원 조직이라 되게 타이트하고, 일이 많아요. 주말에도 나와야 할 때가 많고.
연준│연희문학창작촌 얘기 좀 더 해주세요.
현미│연희문화창작촌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학 집필실이에요. 이번에 서울시에서 ‘아트팩토리’, ‘컬처노믹스’ 이런 개념 아래 ‘문래예술공장’ ‘성북예술창작센터’ 등 다섯 군데가 생겼는데 그중 하나가 연희문학창작촌이에요. 이전에 만해문학관이나 토지문학관도 있지만, 일단 연희문학창작촌은 도시 속에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총면적이 2천 평 정도 되고 집필실은 스무 개, 뒤편에 산책로도 있어요. 밥도 해먹을 수 있게 해놓았고. 지원한 작가들은 심사 통과가 되면 평당 5천 원의 관리비만 내고 생활하는 거죠. 이런저런 관리를 제가 하는 거고요.
언│서울에 있다는 게 매력적이네.
연준│선배님도 신청하셨어요?
언│아니, 나는 몰라서 지원을 못했어요.
연준│이번에 입주하는 작가 많아요?
현미│한 열일곱 명 있어요. 이시영 선생님, 신달자 선생님, 은희경 선생님, 김경주, 신용목, 김근…
연준│작가 명단이 화려하네요. 선배님은 명지대 홍보실에서 일하신다고 했는데 어떤 일 하는 거예요?
언│학교 기사 나가는 거 홈페이지에 보도자료 올리고 그리고 이것저것 잡다한 일이죠. 이쪽도 일은 많은 편이에요. 올해부터 출퇴근을 한 거고, 예전에는 『오늘의 문예비평』이란 잡지 편집일을 했었는데, 그래봤자 한 달에 3, 40만 원 나오는 거지만. 그때는 희한하게 잘 살았어요. 그러면서도 매달 엄마한테 50만 원씩 부치고 그랬으니까.
현미│어떻게 3, 40을 버는데 50만 원을 보내?
언│글쎄, 뭘 했나. 마약 밀매를 했나? (웃음)
연준│등단이 두 분 다 10여 년 됐잖아요.
현미│전 안 됐어요.
연준│아, 언니 ‘약’이오, 약 10년.
언│왜, 더 젊은 시인 하려고? (웃음)
연준│언니가 2001년, 언 선배가 1998년이죠?
현미│네. 나보다 연식이 한참 오래됐지.
언│뭐 활발히 활동 한 건 얼마 안 돼요. 이름만 올려놓고.
연준│선배님은 과가 산업공학과잖아요. 부산대. 부산대가 공부 잘하는 학교잖아요.
언│서울 오니까 전문대 나온 것만 못해. 특히나 문학 쪽은.
연준│공대생인데 시는 어떻게 쓰게 됐어요?
언│처음엔 소설을 쓰다가, 방위를 갔어요. 아버지가 안 계셔서 부父 사망 독자로. 근데 출퇴근하니까 시간이 끊어져서 소설을 쓸 수가 없잖아요. 쓰다 보니 시를 해볼 수도 있겠다 싶어서 했지요. 국문과 동아리 활동은 못 했고 그냥 혼자서 독학으로.
현미│나는 고등학교를 상고 다녀서 만날 주산·부기·타자 학원 다니고… 그때 내가 왕따라기보다는, 세상을 나 혼자 왕따시킨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왕따지. 문예부 활동도 했었고. 중학교 때는 공부를 꽤 잘했는데, 고등학교 공부가 너무 안 맞으니까 공부는 열심히 안 했죠. 중학교 때 CA도 문예반이었는데, 왜냐하면 뭐 사오라는 것도 없고, 그냥 종이하고 펜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졸업식 때, 졸업해도 계속 시 쓰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와보니 여기는 졸업하면 직장에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대학 동아리들처럼 동아리가 되게 많은 거야. 그때 문예반 들려고 ‘비’에 관한 산문을 썼는데 16: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게 됐어요. (웃음)
연준│그땐 어떤 시를 읽었어요? 자극을 받은 작품 같은 것.
현미│문예반에 갔더니 선배들이 기형도 시를 읽고 있더라고. 약간 충격이었지.
언│나는 대학 때 국문과 친구 통해서 이것저것 듣고 시집도 구해 읽었는데. 처음에 정말 놀랐던 게 황지우 시집. 공대생이란 걸 감안하고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교과서 단계에서 바로 황지우 단계로 갔을 때 시가 정말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구나, 느꼈어요. 그 외에도 황지우 세대나 그전 세대, 이후 세대까지 좋은 시인들, 하나하나 탐독해가며 읽을 만한 시들이 많았지.
연준│두 분, 혹시 시가 좀 오래 안 된다 싶을 때 어떻게 하세요?
현미│안 쓰죠. 첫 시집을 내고 1년을 나에게 주는… 뭐랄까, 교수님들의 안식년 같은 거? 그런 시기를 가졌어요. 2006년 시집 내고, 2007년까지 거의 발표를 안 했어요. 일부러 그런 시기를 가졌어요. 의식적으로 그런 기간을 가졌기 때문에 그 이후엔 먹고사는 이유 때문에 못 쓰는 경우가 많지 안 쓰이는 경우는 없는 것 같아요.
언│나는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무조건 1년에 4, 50편씩은 썼던 것 같아요.
연준│무조건요?
언│시간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잡문을 아무리 많이 쓴다고 해도 출퇴근하는 시간에는 비할 게 아니더라고요. 해보니까 느끼겠어. 안 될 때도 쓰고 있고, 잘될 때도 쓰고 있고. 안 될 때 써놨던 것도 낭비가 아닌 것 같아요. 2군이 튼튼해야 할 것 같아, 2군이. 올해는 출퇴근하면서 대여섯 편밖에 못 썼어요. 그동안 재고로 버티고 있는데, 재고 떨어지고 나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죠.
연준│1년에 4, 50편이면 우아, 이건 뭐.
현미│이문재 선생님이 그러셨다던데. 눈 뜰 때 시를 생각하고, 눈 감을 때 시를 생각해라. (웃음)
연준│시는 어떤 식으로 쓰세요? 왜 시인들마다 쓰는 방식이나 과정이 다를 수 있잖아요.
언│어떤 틀을 잡고 쓰지는 않고, 나오는 대로 쓰다가 길어지면 그게 시가 되고.
현미│와, 이태백이야.
언│한량이니까. 근데 출퇴근하니까 힘들더라고.
현미│좀 더 오래 직장 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얘기하자면(웃음) 나 같은 경우는 시간이 없으니까… 늘 머릿속 한쪽엔 문학이란 게 있는데, 이쪽엔 일이 있잖아. 근데 어느 순간에 탁 튀어오르는 단어들이 있어. 예를 들면 살림? 이런 단어들. 이걸 몇 날 며칠 계속 생각하는 거지. 그리고 청탁이 오면 쓰는 거지.
연준│저 같은 경우도 일을 하지만, 두 분은 특히 사람 많이 만나고, 복잡한 일들도 많으니까 더 힘드실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 기氣도 많이 빼앗기고 바쁘지만, 그 와중에 머릿속에 한번 잡힌 시상들을 놓칠 수는 없고, 또 놓치기 싫고, 어떻게든 빨리 써야 하니까요.
현미│맞아. 나도 그래.
언│난 이제 그래. (웃음)
연준│시 얘기 조금 더 해봐요. 언니, 두 번째 시집 『이별의 재구성』을 냈잖아요. 저는 언니 이번 시집 읽으면서 『곰곰』 때보다는 의도적으로 힘을 뺀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의미적인 측면이 아니라요. 그러니까 힘을 뺀 상태에서도 언술에 힘이 느껴지는.
현미│늙어서 그래요. (웃음)
연준│그건 아니고요, 어떻게 보면 여유가 좀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근데 언니는 프로야구 2년차의 두려움 같은 거 없었어요? 저는 사실 요새 고민이 많거든요.
현미│그게 전문 용어가 있는데, 뭐더라. 뭐지? 2년차 징크스인가? 하여간 영어로 무슨 용어가 있어요. 나도 그런 부담감이 있었는데 그래서 부러 힘을 뺀 게 있어요. 그리고 첫 시집에서 말장난에 대한 우려를 보인 평론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그런 건 거의 안 하려고 했어요.
연준│그런 말에 대해 의식하게 되나요?
현미│일단 나는 나라고 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나 문장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들으면… 신경을 쓰기보다는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하며 살게 되는 거지.
언│나는 안현미 시집에서 느껴지는 정성? 감정? 이런 게 좋았어. 시의 감정이라는 것이 밑으로 보면 통하는 부분이 다 있는데, 어떤 감정을 건드려주더라고. 이번에 안현미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단어가 ‘아름다움’이란 단어야. 아름다움이란 단어에서 제일 많이 밑줄을 치게 되고 좋았던 것 같아. “우리들은 미학자이나 생활은 미학이 아니다”─ 이런 구절을 보면 좀 많이 힘들어한다는 게 문득 드러나는데… 그러면서 아름다운 구절이란 생각이 들고, 와 닿더라고.
연준│언니 시집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섞인 게 안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프고. 슬픈데 웃음을 주기도 하고, 여자들이 등장하고, 청승은 분명 아닌, 어떤 우스운 슬픔이 안개처럼 흐릿하게 형상을 이루는 느낌?
언│안현미 시의 장점은 엄살이 없다는 거, 절절한 이야기에도 엄살이 없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현미│이제 『소설을 쓰자』 얘기해봐요. 상도 받았는데. (웃음)
연준│저는 처음에 읽는데, 머리를 쥐어뜯고… (웃음) 아마 제가 평범한 독자들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어서 그럴 거예요. 어려워서 뒤를 먼저 봤는데, 해설이 친절하게도 시집 사용 설명서더라고요. 처음엔 정말 어려워서 시집을 던질 뻔했어요.
언│(시집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여기, 멍든 것 같은데? (웃음)
연준│(웃음) 뭐랄까, 사용 방법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뭔가 나올 것 같은 기계를 저한테 준 것 같더라고요. 통조림으로 치면 따개를 안 주고 따먹어봐라, 하는 느낌? 처음엔 성질이 좀 나다가 자꾸 보니 이게 그냥 딱딱한 통조림이 아니라 누르면 모양이 변하기도 하고, 가끔가다 까줄까? 이러면서 확 열리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집이랑 친해지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나중에는 느낌을 알게 돼서 좋았지만.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언│말씀 그대로 하신 것 같은데. 좀 이물감을 느끼는 게 괜찮은 것 같아요. 욕이 나오든 신경질이 나오든 이물감을 느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물감을 느끼는 건 불편한 것이고, 불편한 게 새로운 건 아니지만 새로운 건 불편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새롭다, 라고는 내가 감히 얘기를 못하지만.
연준│제가 보기엔 두 분 다 시에 드러나는 말(언어)에 대한 집중과 긴장이 남다른 것 같아요.
현미│이 시집을 읽으면서 느꼈는데, 나도 약간 언어에 집착하는 면이 있거든요. 남들은 나를 서정시인이라고 생각하지만(웃음), 근데 어떤 부분에선 김언하고 나하고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연준│선배님 시 속에 종종 등장하는 과학자는 어떤 의미죠? 두 번째 시집에서도 “한 명의 과학자를 움직일 것. 백 명의 민중을 포기할 것” 이런 구절이 나오는데요.
언│우리나라에서 특히 시하고 과학자는 가장 거리가 먼 것 같아요. 결코 멀 필요가 없는데. 예전에 그리스 자연과학자들은 과학도 하면서 철학, 문학도 했잖아요. 그렇게 멀지가 않은데 시와 과학은 전혀 별개라고 생각을 하고. 그리고 세상일의 틀을 잡아가는 우리들 중 한 사람이 과학자예요.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 코페르니쿠스의 설 하나가 모든 걸 다 바꿔놓았잖아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고, 우주가 절대공간이란 개념에서 상대적인 공간으로 바뀌고. 그게 우리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못 받은 것 같지만 세상의 틀을 다 바꾼 거예요. 백 명의 민중을 포기할 건가─ 이런 구절은 민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시들이 이미 민중이 중요하단 얘기를 한 만큼… 저로서는 최고의 가치가 ‘세상의 틀을 바꿔놓은 과학자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시를 쓴다는 것. 이것이 제일 큰 가치로 다가오더라고요.
연준│두 분 닮은 점이 있다면?
언│그러고 보니 닮은 점이 많이 없는 것 같네. 다른 점이 훨씬 더 많다. 근데 그게 더 좋지 않나? 닮아서 뭐 하겠어요? 가슴만 아프지. (웃음)
현미│방식은 조금 다른 것 같지만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고민이 다른 시인들보다는 조금 많다는 거? 그 고민들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논다는 거?
연준│서로의 시집에 대해 짧게 한 줄로 평해주세요.
현미│끝내준다!
언│시집에 나온 구절로 말하자면, “일주일 내내 현명하고 아름다운 사람은 없”(「기타여」)지만, “친구여 너는 난청 지대에서도 여전히 아름답다”(「기타 등등」)라고 얘기하고 싶어지는 시집. 혹은 “나 스스로에게 ‘너는 왜 여기 서 있니? 왜?’라고 자꾸 되묻”게 만드는 시집.
연준│요즘 읽고 있는 책은 어떤 책들인가요?
언│올 들어 매일 출퇴근하느라 거의 못 읽고 있는 형편인데, 1년 가까이 시간 끌면서 조금씩 읽고 있는 책이 있어요.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눈의 탄생』 『기다림 망각』. 최근에 사서 또 시간 끌고 있는 책은 『언어의 진화-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인터넷 서점에서 어제 배송받은 책은 『뇌, 생각의 출현』. 이건 또 얼마나 시간을 끌지…
현미│저는 『위대한 열정』,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과 시인 폴 클로델 남매 이야기,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 박후기 시집이오.
연준│시 쓰기 외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요?
언│걷는 것. 걸으면서 생각하는 것.
현미│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
연준│‘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언│시를 쓰는 또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는 것.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시는 끝났다고 봐요. 지루해서 더는 못 쓰니까.
현미│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하루는 슬프다가 하루는 겸손해지다가 하루는 고요해지는 것.
연준│문단에서 친한 친구들 누가 있어요?
언│오은, 이영주를 제일 자주 보죠.
현미│난 일단 여덟 명의 불편들이 너무 좋고. 신동옥, 박장호, 장석남.
연준│우아, 인맥 넓다.
현미│서정춘? (웃음)
언│진짜 폭넓어. 심지어 뭐 고인하고도 친하고. 교감이 되니까. (웃음)
연준│언니, 아기가 이제 많이 컸죠?
현미│중2.
연준│벌써 중2? 첫 시집에서 마지막 부분에 아들이 쓴 시 보고 깜짝 놀랐는데.
현미│요새 야구하다 손가락 부러져서 깁스했어요.
연준│감수성 예민하죠? 시 쓴다고 안 해요?
현미│아니, 안 쓴대요. 시인들을 너무 많이 봤잖아. 엄마 친구들을. (웃음)
연준│선배님은 결혼 생활 어때요?
언│노코멘트.
현미│혹자는 이랬대. 위자료 줄 돈 드디어 생겼다고. (웃음)
연준│누가 그런 말을?
현미│본인이 그러던데?
연준│에이 설마, 고작 3천만 원을 받고요. (웃음)
언│이혼하려면 노벨상 받아야 할 것 같아. (웃음)
현미│우리 미션이 그거야. ‘연희’에 입주한 작가가 노벨상 받는 거. 이게 우리 미션이야.
언│네가 받는 게 빠르겠다.
연준│선배님, 근데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언│네.
연준│공부 계속하실 거예요?
언│네.
연준│박사까지?
언│한국 문학을 위해서! (웃음)
‘한국 문학을 위해서!’ 공부를 계속하겠다는 김언 시인과 문학 집필실 살림을 맡아 동분서주하는 안현미 시인을 뒤로하고 나오는 길. 등 뒤로 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것처럼 푸르고 곧은 기운이 느껴졌다.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손을 흔들고 있으리라. 그들의 뿌리가 날로 견고해지고 깊어질 것만 같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늘! 시간이 만들어주겠지. 우리 문학이 거처할 시원하고 근사한 그늘을!
김언ㅣ1998년 <시와사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숨쉬는 무던』, 『거인』, 『소설을 쓰자』가 있다.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안현미ㅣ2001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곰곰』, 『이별의 재구성』이 있다.
박연준ㅣ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