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셸리 윌리아의 『에드워드 사이드와 역사 쓰기』(이제이북스, 2003, ICON BOOKS15)를 읽다. - 에드워드 사이드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문학비평가로 평가받지만 많은 탈구조주의 이론가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다양한 학제를 넘나들었다. 이 얇은 책의 의도는 제목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탈본질주의 역사가로 사이드를 조명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문학이론가와 탈식민주의 이론가는 물론이고 저항 담론을 구축하고자 했던 저항 이론가로서의 사이드를 망라한 작업이 되고 말았다.
사이드는 자신에 선행했던 다음의 이론이나 인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ⅰ)사이드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의 불투명한 특성과 진리를 형성하고 결정하는 권력 체계(담론)에 의문을 제기한 미셸 푸코·롤랑 바르트·자크 데리다와 같은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자들로부터 ‘역사 다시 쓰기’의 이론적 바탕을 얻었다. ⅱ)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은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 이론을 구성하는 데 있어 유용했다. 소수의 지배 권력(계급)이 대중의 동의와 협력을 구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문화적·상징적 조작을 한다는 게 헤게모니론이라면, 사이드는 그람시가 설정한 ‘소수의 지배 권력(계급)’에 ‘서양’을 놓고 ‘대중’의 자리에 ‘동양’을 놓았다. ⅲ)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문화이론으로부터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는 폭넓은 문화읽기(세속 비평)의 지평과 비판정신을 배웠다. ⅳ) 촘스키의 비판적 정치 참여는 공동체의 정치적 활동에 대해 발언할 수 있도록 사이드에게 용기를 주었다.
위에 거론된 이론과 인물 중에서 사이드는 푸코·그람시·촘스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특히 권력과 지식이 서로 통합되어 있으며 진리·지식·질서·안정성·권위는 통치 제도의 기본 개념이자 통치 제도의 산물이라는 푸코의 영향은 결정적이다. 사이드는 정치학·문학·언어학·민속지학·역사로부터 다양한 텍스트를 끌어내어 오리엔탈리즘 담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푸코의 작업을 이용한다.
‘담론 권력’을 해체하는 열쇠를 푸코로부터 건네받기는 했지만, 사이드는 “권력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의식적인 힘의 존재를 부정”하는 푸코의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푸코는 주체와 그들의 역사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권력의 작동에 있어서 ‘비개인적 요소’를 강조하는 반면 사이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대신에 사이드는 서구의 동양 지배 이면에는 의식적인을 계획과 의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작가, 개인들은 그러한 전략들에 대한 단순한 수동적 대리인들이 아니다. (…) 따라서 극복될 수 없는 일방적인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푸코에 대한 사이드의 불만은 ‘저자의 죽음’이나 ‘주체의 죽음’을 주장하는 후기구조주의 일반에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문학 비평가는 자신을 사회적 맥락 안에 논쟁적으로 위치 지우는 한편으로 고정된 기원들에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그 맥락을 넘어서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확실히 사이드는 모든 기원을 거부하는 후기구조주의자들처럼 완고한 것은 아니다. 『시작: 의도와 방법』에서 사이드는 모든 문학적 텍스트들은 고유한 ‘시작점’을 가지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이드가 생각하기에 작가는 결코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비록 사회적 압력들이 그에게 가해지기는 하지만 구체적인 의도와 더불어 언제나 현존한다.”
후기구조주의자들에게 영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참여 부족’을 타박했듯이, 사이드는 또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당파성 없음(회의주의)’을 비판한다: “사이드는 ‘삐딱하게 읽기’를 비판적 방법론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함으로써 전 세계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문학 연구 방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비판적 방법론은 한편으로는 포스트모던적 사고와 화해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이론가들에게 잘못된 회의주의 관점에서 극단적인 상대주의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사이드가 문학비평가이면서 역사이론가일 수 있는 것은, 역사는 실체가 아니라 언어적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역사학계의 ‘언어적 전회’와 함께 이해하면 납득이 쉽다. 역사학계의 언어적 전회란, ⅰ) 과거를 그 자체의 실재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ⅱ) 모든 재구성은 임시적이고 다양한 해석들에 의존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실 자체를 말할 수 없으며 ⅲ) 역사가 문학적 가공물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가 “문학적이고 수사적”임을 인정한다면, 반대로 문학 작품을 역사로 읽을 수 있는 역전도 가능하다. 예컨대 “소설과 제국은 동시에 탄생했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그것으로, 영국의 제국주의가 부흥하던 시절의 소설과 여행기는 그 시대의 헤게모니와 무의식을 캐는 훌륭한 역사 문서가 될 수 있다.
지은이에 따르면 사이드의 “최종 목표는 서구의 모든 문학적 성과물에 내포된 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론적 관심은 “문학적 맥락 안에서 이데올로기적 입장과 마르크스 미학을 다루는” 것이었지만, 그람시의 영향을 받아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그람시에게 역사는 ‘예정된’ 것이 아니다. 역사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사상의 영향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와 사이드 모두 보편적 사상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데, 모든 사건들과 사상들은 특정 시간과 장소 안에서 역사화되고 맥락을 가진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