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1493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황금의 땅’의 발견은 유럽인에겐 기회였지만, 그곳 원주민들에겐 참상의 시작이었다. 백인 정복자들에게 학살된 원주민 수는 역사가들마다 다르지만, 사망자 비율에 대해서는 대체로 합의하고 있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약 50~60년 사이에 원주민 인구는 90퍼센트 감소했다.
신대륙 정복에 앞장선 유럽 제국의 왕실은 탐욕에 눈먼 장사꾼과 그들에게 고용된 용병을 내세워 조세 수입을 늘렸다. 그리고 왕정과 함께 근세의 또 다른 축을 이루고 있었던 교회(가톨릭) 역시 종교개혁으로 쇠퇴해가는 구교회의 체면을 신대륙 선교라는 출구로부터 찾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십자가와 호상豪商 세력은 윤리적·군사적으로 서로를 엄호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려갔다.
장 클로드 카리에르의 『바야돌리드 논쟁』(샘터, 2007)은 소설로 발표되었지만, 허구의 몫은 고작 이야기를 구성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소설을 ‘팩션’이라고 부르지만, 내 생각에 팩션이란 소설도 못 되고 논픽션도 못 되는 엉성한 읽을거리에 붙여진 상업적인 ‘광고 문안’일 뿐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은 팩션이라 불리는 엉성한 읽을거리의 상업적인 간책을 뛰어넘는다.
1550년, 에스파냐 국왕의 별장이 있는 바야돌리드에서 역사적인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당사자는 훗날 ‘에스파냐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게 될 라스카사스 신부와, 당대에 ‘에스파냐의 키케로’로 불렸던 학자 세풀베다다. 국왕이 두 사람에게 ‘끝장 토론’을 명한 까닭은 에스파냐인들의 원주민 참살에 대한 유럽인들의 조롱이 비등한 이유도 있었지만, 폭력적인 원주민 수탈과 선교에 대한 왕실과 교회의 입장 정리가 한 번은 이루어져야 할 필요에서였다.
바야돌리드 논쟁의 가장 큰 쟁점은 ‘인디오들에게 영혼이 있느냐?’ 즉 ‘인디오도 인간인가?’로 좁혀진다. 이 논쟁에서 호상의 이익을 대변했던 국수주의자 세풀베다는 30여 년 가까이 남아메리카의 비참을 목격하고 그보다 더 긴 세월 동안 원주민 생존을 위해 바쳤던 라스카사스와의 논쟁에서 그야말로 ‘떡실신’이 된다.
그러긴 했지만, 당대의 에스파냐인들은 라스카사스를 “둥지를 더럽히는 자”로 사갈시했고, 그의 묘지는 여러 차례 훼손된 끝에 현재는 유골의 행방조차 모른다. ‘그때-거기’에서뿐 아니라, 인종·종교·문화·계층이 다른 사람에 대해 아무런 공감 능력이 가동되지 않는다거나, 여러 층위의 내부 고발자에 대한 핍박은 ‘지금- 여기’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2월 9일
장 클로드 카이에르의 『바야돌리드 논쟁』은 실재에서 취재한 소설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소설을 가리켜 ‘팩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팩션이란 소설도 논픽션도 되지 못하는 엉성한 읽을거리에 붙여진 상업적 ‘광고 문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예수가 낳은 아이가 살아 있다’거나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믿거나 말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역사적 기상奇相을 죽어가는 소설 문학의 출구로 여기는 분들이 있다.
1550년, 에스파냐 국왕의 별장이 있는 바야돌리드에서 역사적인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당사자는 “평화를 추구하는 비둘기” 라스카사스 신부와 “이득을 추구하는 매”로 불렸던 학자 세풀베다다. 두 사람은 신대륙에서 벌어진 폭력적인 식민지 경영과 선교를 주제로 국익과 인권이라는 엇갈린 관점에서 장시간의 설전을 벌였다.
에스파냐 국왕이 명한 그날의 ‘끝장 토론’에서 승리한 사람은 30여 년 가까이 남아메리카의 비참을 목격하고, 그보다 더 긴 세월을 원주민 인권에 헌신했던 라스카사스였다. 논쟁이 끝난 직후 ‘인디오는 영혼이 없으며, 고로 말살해도 좋다’는 주장을 담은 세풀베다의 저서는 에스파냐어로 번역되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저서들이 수거되어 불태워졌다.
‘인디오들에게 영혼이 있는가?’라는 물음이 자연스레 들렸을 뿐 아니라, 그런 주장이 백인 유럽인의 인간다움을 한껏 입증해 주었던 시절에 ‘인디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고 외쳤던 라스카사스의 노력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그래서 현존하는 뛰어난 역사가 가운데 한 사람인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는 『아메리카의 역사』(을유문화사, 2007)를 쓰면서 “모든 부류의 인간은 인류”라는 라스카사스의 획기적인 발언에 의해 “인종이나 문화와 관계없이 인권의 보편성과 모든 인간의 평등에 관한 일관된 주장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에 이르렀다”는 상찬을 바친 것이다.
소설 속의 논쟁을 심판한 추기경은 인디오의 인권을 보장하는 대신, 에스파냐의 국익을 위해 흑인을 노예로 부릴 것을 타협안으로 내놓는다. 거기에 걸맞게 소설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일꾼이 장시간 동안 논쟁이 벌어졌던 회의실을 청소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옮긴이가 별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마지막 장면의 역설을 섬뜩하게 실감하기 위해서는 『바야돌리드 논쟁』이 번역된 다음 해에 출간된 박설호의 『라스카사스의 혀를 빌려 고백하다』(울력, 2008)를 함께 읽는 게 필수적이다.
라스카사스는 에스파냐 호상과 그들에게 매수된 용병들에게 1,500만 명이나 살육된 인디오들을 지키기 위해 인디오들의 신체적 약점을 강조하며 “힘센 흑인 노예에 관한 정보를 간접적으로 제공”했다. 무심결에 내뱉은 그의 말은 “씨”가 되어 노예 상인들은 라스카사스의 발언을 흑인 노예 매매를 위한 구실로 교활하게 악용했다. 라스카사스는 말년의 저서에서 자신이 아프리카인을 신대륙으로 데려오게 한 장본인이었으며, “흑인의 권리는 인디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며 자신의 주장을 참담한 심경으로 후회했다.
사족: 박설호의 책은 “바르톨로메 드 라스카사스는 마르틴 루터·토마스 뮌처와 함께 유럽의 3대 종교 개혁가로 손꼽히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인물이다. 루터는 성서 번역 등으로 인하여 세계적 명성을 떨치고 있지만, 토마스 뮌처와 라스카사스는 기이하게도 남한에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오래 효력을 떨쳤던 반공 이데올로기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란 말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은 논거가 더 필요한 대목이라, 본문을 세심히 읽었지만,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 첫 문장은 본문 속에 강조되고 반복될 주제를 골라 써야 한다. 서두의 한 문장이 곧, 본문 전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