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0일
남상순의 『동백나무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하늘재, 2007)을 읽다. - 하느물 명물은 동백나무다. 하느물의 “동백나무는 단순한 가로수가 아”(177쪽)”니다. 긴급조치에 따른 휴교령으로 고향에 내려온 대학생 현규의 말을 들어보면 “하느물이라는 마을을 하나의 거대한 저택으로 보만 동백나무 가로수는 그 집의 중심을 향해 뻗어 있는 영락없는 정원수의 형상이라요. 세상의 좋은 기운, 지혜로움이 동백꽃 가로수 길을 통해 하느물로 들어오고 이곳 사람들의 뜻이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것도 동백나무 길을 통해서”(176쪽)다. 때문에 “이런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린다는 거는 하느물의 기운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모두 죽어버리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177쪽)다. 하느물의 동백나무는 “흙이 만병통치약”(185족)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의식)와 하늘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이다.
하지만 하느물 사람들은 몇백 년째 마을 입구를 지켜온, 백 그루도 넘는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모조리 베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 어른이 온다”는 소문 탓이다. 그 어른은 그러면 누군가? “그 어른이란 군인 출신으로 이 나라 최고 실력자가 된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었고 이 나라를 가난에서 구해준 민족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그가 두어 달 후에 고향을 방문할 예정이고 내친김에 남쪽 땅을 죽 둘러본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하느물 앞을 지나가게 되어 있다고 했다.(…)그러니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새마을운동의 흔적과 성과가 성공적으로 드러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30쪽)
『동백나무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어린 화자가 자기 가족을 소개하는 1장을 지나, 소설의 2장은 동네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상여집을 허는 논의부터 시작한다.
정오가 조금 못 된 시각, 지난번 비에 무너진 곳을 손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부역을 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이 보막이 공사를 하고 있는 틈에 끼어 이것저것 잔소리를 일삼던 노인들이 이 빠진 소리를 내며 처음으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참, 상여집이 헐린다민서?”
“예, 보기에 이렇게 좋지가 않아서…….”
마을 이장이 대답했다.
“이만하면 됐지, 상여집이 뭔 대궐 겉애야 되나?”
노인의 이마 한쪽에 새겨진 넓적한 흉터가 도드라지며 주름이 잡혔다. 기분이 언짢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까짓 추레하고 으스스하기만 한 상여집이 어찌 되든 무슨 상관이라고 저러는 걸까.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을 앞 산기슭 쪽에 있는 상여집은 정말 허름하였다.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사용하는 장례 도구들을 그 안에 보관하다가 필요한 집이 생기면 언제든지 가져다 썼다. 마을의 공동재산인데도 관리는 소홀한 편이었다.
새마을운동이랍시고 집집마다 빚을 내어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슬레이트를 이었지만 상여집 만은 여전히 초가였다. 벽도 여기저기가 패이고 갈라져 곧 허물어질 것 같은 형상이었다. 가끔 너구리 같은 짐승들이 그 안에서 튀어나와 산을 향해 달아날 때도 있었다.[…]그런데 마침 그 상여집이 헐릴 위기에 처하다니, 나는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하였다. 해묵은 체증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23∼24쪽)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다(이 소설 말미에 붙은 해설 가운데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에 국가부역에의 동원이 얼마나 강제적이었는지는 따로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것은 해설자의 착각이다. 새마을운동은 1971년부터 시작됐다). 위의 인용을 보면 하느물 마을도 초가지붕을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꾸고 상여집을 허무는 등, 국가주도의 새마을운동에 부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하느물에 들릴지 안 들리지도 모르는 ‘그 어른’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동네의 자랑이고 우리나라의 자랑”(65쪽)인 마을의 동백나무 가로수를 베어내야 한다니? 그것도 “동백은 새마을운동에 어긋나는 거”(64쪽)라니? 마을 노인의 말을 빌자면 “허 참. 뭔 새마을이 그래, 동백나무도 안 된다는 새마을이 다 있나 그래?”(70쪽)
동백나무는 마을의 위안이었고 개인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동백나무가 진정한 위기를 맞은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도 상여집이나 나무다리 때와는 사뭇 달랐다. 목소리에는 불만이 배어 있었다.
“동백나무가 우째서 거기 있시만 안 된다는 것인가?”
“그 어른이 지나가다가 볼 거 아니라요?”
조합에 다니는 상식이 아버지는 뻔한 걸 뭘 물어보냐는 투였다. 그 어른이라는 말에 듣고 있던 몇 사람이 찔끔 놀라면서 새삼스레 자세를 가다듬었다. 나 역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동백을 없앤다는 것은 분명히 말도 안 되는데 그 어른이라는 말에는 기가 질리는 느낌이었다. 속수무책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인들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꼬치꼬치 따지면 물고 늘어졌다. 누구보다도 그 어른을 반기는 입장인데도 그랬다.
“그 어른이 보면 우때서?”
“그 어른 기분이 상할 테니까요.”
“왜? 그 어른이 꽃을 싫어하시나?”
이도 없는 노인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을 때 몇 사람이 키득거리며 웃었다.(64쪽)
고작 국민(초등)학교 5학년생에 불과한 이 소설의 화자 이선민이 생각하기에도 새마을운동과 하느물의 동백나무를 베는 건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동백나무 베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의 노인들에게 상식이 아버지가 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그 하나는 나라의 방침이 “가로수는 뿌라따나스”(68쪽)로 정했기 때문이라는데, 두 번째는 “아이 참,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를 봐요. 그것도 나라에서 부르면 안 된다고 해서 요새는 텔레비전에도 안 나옵니다. 동백은 새마을운동하고 상극이라요”(66쪽)라니, 엉뚱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그 어른’이 <동백 아가씨>를 혐오해서 금지처분을 내렸다지만 동백나무와 무슨 원수가 졌더란 말인가?
거기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 날 저녁에 이장이 나누어준 <군민의 소리>라는 신문에 잘 나와 있다. 이 소설 120∼121쪽에 실려 있는 기사의 제목은 「일본 관리가 심은 하느물의 동백나무, 과연 이대로 두어도 좋은가?」: “그동안 무릉군의 자랑거리로 알려져 온 하느물의 동백나무가 실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 관리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심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대학교 식물학과 염모 교수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과는 달리 하느물의 동백나무는 순수한 대한민국산이 아니라 일본산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한일합방 전후하여 한 일본인이 고향에서 동백나무 20그루를 배로 직접 실어와 하느물에 심었다는 것이다.(…)염 교수는 지금이라도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다는 의미에서 하느물에서 자라고 있는 일본산 동백나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심각히 재고해보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대해 이 소설의 해설자는 “동백나무는 박정희의 정치적 전략의 하나였던 새마을운동 속에서는 쓸모없는 ‘왜색倭色’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물의 동백나무는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어서 제거해야 하며,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가 금지곡이 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된다. 나무가 왜색이라고 해서 모두 잘라야 한다는 것은 일본 엔카(戀歌)와 곡풍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금지한 처사와 하등 다를 바 없는 경직된 정치적 상상력일 뿐이다. 그러나 1970년대의 정치적 분위기는 국가적 통제가 국민정신 개조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졌으므로, 비논리적 정치적 상상력의 현실화는 비일비재했다. <동백 아가씨>가 금지곡이 된 진짜 이유가 독일 간첩단 조직사건이었던 동백림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보면, 권력자에게서 분출되는 정치적 상상력은 그 자체가 국가적 규율로 작동했던 셈이다. 동백림사건, 동백 아가씨, 동백나무, 빨갱이… 이런 ‘비논리적’ 연상 작용에 의한 정치적 상상력 역시 ‘논리적’으로 통했던 것이 당시의 정치적 상상력이었으니 말이다”라고 쓴다.
해설자는 박정희의 정치적 상상력이 비논리적이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어른’은 일본군 장교라는 자신의 반민족적인 전력 앞에 떳떳하지 못했으며, 그것을 떨쳐버리기 위한 강박이 그의 ‘민족주의’ 정책이고, 그가 전력했던 ‘반동적 민족주의’의 논리적 끝이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유신체제다.
이 소설의 화자는 국민학교 5학년생인 여자아이다. 그래서 역사가 전경화 되어 있지 않은 대신, 해설자가 ‘물활론적인 시선’이라고 칭한,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의 윤리적 직관이 두드러진다. “저 동백은 몹쓸 꽃나무라”는 이장 아들의 말에 이선민은 속으로 “동백이 더 이상 순수하지 않다는 말도 견디기 힘든데 몹쓸 꽃이라니, 그렇다면 그곳을 놀이터 삼아 놀던 우리는 누구고 거기에 대고 사랑을 맹세한 사람은 무어란 말인가”(125쪽)라고 저항하며, “설사 마을 앞의 동백을 정말 일본인이 심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은 지나치게 옹졸한 처사”(147쪽)라고 생각한다. 이 어린 화자의 속마음에 화답하는 마을 어른의 한 마디는, 박정희식의 배타적이고 자기기만적인 민족주의와는 완전한 대척점에 이 소설을 갖다 놓으면서, 엘리트 역사학자들의 일제청산론(또는 지배찬양론)과는 완전히 다를 수도 있는 일반 민중(subaltern)의 일제 식민지관을 엿보게도 해준다: “일본 사람이 심었는지 안 심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게 사실이라면 고마운 일이지 뭐라. 그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해코지한 것은 해코지한 것이고 잘한 일은 잘한 일이지 않은가? 나는 백번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렇지 않은가?”(144쪽) 이런 태도는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 일본 나무 한국 나무가 따로 있을 수 없다”던 대학생 현규에게서도 보인다. 그 시절, 대부분의 대학생들이 사로잡혀 있던 또 다른 반일 민족주의 풍조와 전혀 다른 의견이다.
화자는 아니지만, 이선민과 함께 이 소설을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의 윤리적 직관의 세계로 채색하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이선민의 또래인 두섭이다. 약간 ‘둔박한’ 아이인 두섭의 생모는 하느물 마을과 장터에 자주 나타나곤 하던 떠돌이 광녀였다. 그녀는 산일이 되어 하느물 상여집서 두섭을 낳은 채 죽었고, 마을 사람들에게 우연히 발견된 두섭은 산 밑에서 무당 흉내를 내며 살던 여자가 데려다 키웠다. 벌레가 갉아먹은 나뭇잎 구멍을 통해 사람과 사물을 보면서 이해되지 않는 말들을 하기도 하는 두섭은, 하느물 구성원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동백나무를 지키고자 했다. 이 어린 소년은 마을 사람들이 술과 고기를 가지고 온 군수의 회유에 넘어가 동백나무 뿌리를 괭이로 파헤치기 시작하자 양팔을 벌리고 나서며 “도, 동백이 없으면 이 동네는 망합니다”(165쪽)고 저지한다.
동백이 모두 뽑혀 나가자 두섭은 며칠째 찌그러진 주전자로 봇도랑의 물을 퍼서 메마른 그루터기에 뿌린다. 서울로 이사하게 될 이선민이 주전자를 가지고 나간 날이었다: “녀석은 물을 주지는 않고 넋 나간 듯 길바닥에 퍼드러진 채 앉아 있었다. 땀이 흙먼지로 얼룩진 얼굴은 가관이었다. 손톱 새에도 흙먼지가 끼어 있었다. 주전자가 워낙 작아서 자주 물을 뜨러 가야만 하는 게 번거로웠을 텐데도 두섭이는 큰 주전자를 든 나를 보고서도 별로 반가워하는 기색이 아니었다.”(212쪽) 그러고 난 며칠 뒤, 두섭은 동백나무 가로수가 있던 도로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화자는 그 상황을 “그런데 사람들을 놀라자빠지게 한 것은 두섭의 손가락이었다. 녀석의 손가락 몇 개는 끝 부분의 살점이 예리하게 베어져 나간 상태였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두섭이의 얼굴은 온통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모습이었다”고 묘사하는데, 두섭이 단지斷指를 한 까닭을 아는 사람은 이선민밖에 없었다: “옛날에 오래 누워 있던 환자에게 마지막 방편으로 단지를 하여 핏방울을 입 안에 떨어뜨려 넣었듯이 두섭이가 손가락을 베어 죽어가는 동백나무에다 한 점 한 점 마음을 다해 뿌리고 있는 모습이 우중충하고 빛바랜 사진의 한 조각처럼 눈앞에 펼쳐졌다.”(223쪽)
두섭의 생모는 “동백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마을로 들어온 여자가 주로 시간을 보낸 곳은 동백나무 아래였다. 거기서 동네 사람들의 나눠준 음식을 먹고 잠을 잤을 뿐 아니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그러다가 기분이 내키면 말끔하게 풀을 뽑아 가로수 길을 깨끗하게 단장”(46족)했다던 부연이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동백나무에 대한 두섭의 애착과 동백나무 가로수 길에서의 죽음을 온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또 이선민은 몸이 허약한 이모와 대학생 현규가 사랑을 맹세했던 동백나무가 모조리 뽑혀 나가면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온전할 수 있겠는가”라는 조바심 때문에 어른들이 지키지도 못하는 동백나무에 그처럼 애착을 갖게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두 주인공이 동백나무에 애착을 품게 된 까닭은 그들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과 관련되며, 그것은 다시 하느물에 동백나무가 심겨진 전설과 상관된다.
인근 시나 읍에도 없는 동백나무가 하느물에만 있다는 것을 궁금히 여긴 이선민이 외할머니에게 “동백나무를 심은 사람은 누구라요?”(90쪽)라고 물었을 때, 외할머니는 “옛날에 아주 잘난 선비”, “공부도 많이 하고 벼슬도 높았던 어른”(91쪽)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것은 확인되지 않은 전설이라서, 하느물 사람들은 “선비가 누구냐”라는 대목에서 “저마다 자기 조상을 들”먹였다. “지조 있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던 선비는 말하는 아이에 따라 박씨가 되기도 하고 윤씨가 되기도 했으며 또 어느 틈엔가 김씨로 돌변”(97쪽)했다.
바람을 피운 아버지, 배다른 형제를 낳은 아버지를 미워한 이선민은 “바른말 하다가 억울하게 귀양살이”(109쪽)를 했던 선비가 심었다는 동백나무를 공상의 아버지로 삼는다. 그게 이선민이 동백나무에 애착을 보인 이유라면, 두섭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아비 없는 고아인 그에게 동백나무는 든든한 방풍림防風林의 모습을 한 신화적 아버지였다.
하느물에서 동백나무를 지키고자 했던 세력은 이선민이나 두섭처럼 어리거나, 연로한 노인들뿐이다(여기에 정치적으로 거세된 대학생 현규까지 더하면 그들의 전선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동백나무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연로한 노인들이었다는 사실만큼, 새마을운동의 사회적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도 또 없다. 새마을운동은 노인들이 마을의 어른 역할을 하던 전통적인 공동체질서를 완전히 전복하고, 상대적으로 젊은 청·장년층이 마을의 주도권을 쥐었다.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던 농촌에까지 국가권력이 파고들게 된 것도 새마을운동의 성과로, 작중에 나오는 이장이 행한 역할이 그런 것이다.
‘그 어른’은 끝내 하느물을 지나쳐 가지 않았다. 공연히 동백나무만 잘라낸 거였다. 마을 아이들은 옛날, 임금의 사약을 피해 하느물에 숨어들었던 선비(역적)가 “결국은 사약을 받은 거”라고 조잘거렸다. “임금님이 내린 사약을 선비가 마시지 않아서 동백나무가 이제야 대신 받은 거라고.”(186쪽) 그 아이들은 모르지만, ‘사약’을 받은 것은 동백나무만이 아니다. 상여집을 허물기 직전에 하느물에서는 재래감자(자주감자) 대신 면에서 나누어준 개량종 감자 씨를 심었던 일이 있는데, 면의 독촉으로 바꿔 심은 개량종 씨앗은 움도 트지 못한 채 땅속에서 다 썩어버렸다. 이모의 약혼자인 대학생 현규는 감자밭에 망연자실해 있는 이선민의 외삼촌을 사진기로 찍어 어느 잡지에 사진을 발표했는데, 그게 사단이 되어 여태껏 행방불명인 것이다.
작가 남상순은 첫 장편이자 제1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흰 뱀을 찾아서』(민음사, 1993)에서부터 유년 시절에 맞닥뜨린 아버지와의 갈등을 서사의 줄거리로 삼아왔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화해하는 듯하면서, 국가라는 또 다른 상징적 부권에 파괴당하는 유년을 그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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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