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조선이 일제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1920년~1940년 사이, 인도는 조선에서 열화와 같은 주목을 받았다. 민족 언론을 표방했던 그 시절의 어느 신문은 1921년 한 해 동안만 무려 150건을 상회하는 인도 관련 기사를 실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물질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주의의 성지로 인도를 전유하기 훨씬 이전에, 조선의 ‘인도 붐’이 먼저 있었던 것이다. 이옥순의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푸른역사, 2006)는 80여 년 전의 ‘인도 붐’에 대한 흥미진진한 보고서다.
식민지 조선에서 인도가 빈번히 언급되고 관심의 대상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게 약자와 희생자로서의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 나아가 간디를 비롯한 인도 독립 운동가들의 활약은 독립을 희구하는 조선인들의 귀감이면서, 인도의 독립 운동을 빌어 대중들에게 조선의 독립 운동을 드러내 놓고 선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도 독립 운동가들이 벌인 스와지리(자주)와 스와데시(자급자족) 운동은 무력한 조선 민족운동의 역할모델이었고, 그런 상황에서 간디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됐다. 1930년 간디가 영국의 소금 전매법에 항거하여 ‘소금행진’을 했을 때 국내 신문은 23일간 매일 그 행진을 따라가며 보도할 정도였고, 조선의 민족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비폭력 운동의 방법적 적실성 논쟁이 덩달아 벌어졌다.
이렇듯 인도를 통한 우회적인 말하기를 통해 조선인이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을 전파할 때, 일본이 보여준 반응은 역설적이다. 인도의 반영투쟁이 서양 제국주의로부터 동양을 지켜야 한다는 일본의 대아시아주의 논리를 정당화해 주었던 때문에 인도 관련 기사는 은유적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검열을 통과했다. 근래에 전개된 티베트 사태에 대해 한국 언론이 동정적인데 반해 북한은 폭도라고 비난했듯이, 타자의 재현은 항상 정치적이다.
그 시대에 인도가 자주 운위된 또 다른 이유는 인도가 피식민 처지에 빠져 있던 조선의 열등감을 희석해주었기 때문이다. 조선인은 우리보다 못난 “또 다른 동양”을 창출함으로써 거세된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려고 했고, 때문에 인도는 상고시대의 문명을 간직한 무역사의 나라, 물질적으로 뒤떨어진 초세속적인 나라로 웃음거리가 됐다. 바로 그런 시각이야말로 인도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한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오리엔탈리즘 논리며,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복제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을 당대의 조선인들은 짚지 못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알고 있을까? 같은 지은이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유명 종교인·문인·여행가가 쓴 최근의 인도 관련 저작 속에서 한국인들이 품고 있는 ‘인도 이미지’를 분석한 바 있다. 식민 지배를 벗어버린 오늘의 한국인들은 80년 전의 이중적 태도보다 더 내재화된 ‘복제오리엔탈리즘’을 갖고 있으며, ‘우월한 서양’적 시각으로 ‘열등한 동양’을 바라보는데 길들어 있다.
2월 26일
이어령의 유일한 희곡집 『기적을 파는 백화점』(문학사상사, 2003)은 1984년 갑인출판사에서 초간된 바 있으나, 문학사상사에서 전집 형태의 ‘이어령 라이브러리’를 기획·발간하면서 재간되었다. 선생은 문학비평에서 문명론에 이르기까지 워낙 다양한 방면에서 지가紙價를 높여온 터라, ‘이어령이 희곡도 썼어?’라고 반문할 독자도 많을 듯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독자를 타박하지 않으련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한창 ‘문청’의 객기를 부리고 있던 고향 (대구)의 모 서점에서 초간된 이어령 희곡집을 발견하고서는 그렇게 느꼈으니까. 그리고 더욱 부끄러운 것은, 채만식(1902~1950) 선생의 희곡집이 있다는 것을 그 보다 훨씬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채만식·이어령 선생은 활동 연대와 장르가 확연히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을 거론할 때, 오랫동안 빠지지 않을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두 분의 극작을 제대로 읽어본 바가 없다. 까닭은 먼저 그들의 극작 활동에 지속해서 의미를 부여할 평론의 자리가 없다는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우리나라 문학 독자들의 상상력 속에는 평론가나 소설가·시인들이 희곡을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아예 소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위로는 최인훈에서부터 황석영·이문열 같은 일급의 소설가들과 황지우 같은 당대의 시인들이 각기 한 권씩의 희곡집을 내놓고 있지만, 평론가나 독자들의 관심은 그들의 시나 소설에 국한된다. 우리나라의 독자나 평론가들은 시인·소설가 또는 평론가들의 극작을 ‘본업에서 벗어난 심심풀이 외도’ 정도로 치부하면서,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서구의 작가들이 극작을 한 사실 앞에서는 ‘대단히 개방적인 문화 풍토와 다방면에 걸친 작가의 능력’을 감탄한다. 그런 독자가 있다면 내가 무척 좋아하는 폴 오스터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인기가 있는 아멜리아 노통브의 희곡이 번역·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을 덤으로 가르쳐 드린다.
『기적을 파는 백화점』은 표제작을 비롯 도합 다섯 편의 희곡이 실려져 있다. 공연 연보를 보니 1976년에 초연된 표제작에서부터 1979년에 초연된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까지 작가는 4년 남짓 극작에 몰두한 모양이다. 70년 중·후반의 한국(서울) 연극계가 어땠는지는 나 자신이 지방에서 청춘을 떠 보낸 촌놈인지라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의 작품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 작품들이 씌어지고 공연된 1976~1979년 사이의 서울 연극계에서 ‘이어령의 극작품은 일종의 이물질이 아니었을까?’라는 것이다.
이어령 희곡의 특징은 사실주의적인 전제를 거부하며 극적인 플롯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신 극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도저히 현실 같지 않은 관념적인 상황 제시와 언어유희다. 이 점은 당대의 한국 극계를 지배하고 있던 차범석 류의 잘 짜여진 플롯과 사실주의적인 극 전통과도 다르고, 우리나라 전통연희나 역사로부터 극의 형식과 소재를 찾아 실험하곤 했던 젊은 오태석과도 매우 다르다.
표제작은 말 그대로 ‘기적’을 파는 백화점이다. 거기서는 세 가지 상품이 팔리는데 그것은 시간·꿈(희망)·지식이다. 이 상품들은 사고파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품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시간·꿈·지식이야말로 우리가 사지 못해 안달하는 것들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시간·꿈·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 여러 기술을 돈 주고 배우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시時테크·진로상담·각종 학원들이 거기에 해당한다. 이런 뜻에서 기적을 파는 백화점은 그럴듯하지 않다고 여길 수 없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면서 현실의 유비나 다름없었던 기적의 백화점이, 어느 순간 유비와 은유를 벗으며, 낯선 것으로 표변한다. 아무도 시간·꿈·지식을 원하지 않거나, 그것들을 값어치 있게 사용하기 위해 사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간절해서 그 상품들을 샀던 사람들이 모두 불행해진다는 것. 이 작품은 이런 낯섦을 통해 현실의 얕은 유비를 벗어나, 반어反語적이 된다.
관념적인 상황 제시를 통해 현실의 모순이나 인간의 비극적 존재 양태를 보여주는 것은, 원래 부조리극 작가들의 특기였다. 이오네스코나 베케트의 극은 모두 그렇게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기적을 파는 백화점」은 부조리극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작품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 점을 더욱 확실히 보여주는 것은 시간·꿈·지식을 사간 사람만 파멸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엔 그것을 파는 두 명의 여자와 한 명의 남자 판매원이 모두 미치거나 자살하거나 절망에 빠진다는 결말이다. 이게 뜻하는 바는, 신의 죽음일 것이다. 그들은 인간에게 아무런 은총도 주지 못한다. 신이 죽어버린 현대인에게는 진정한 시간·꿈·지식의 가치는 사라지고, 비유하자면 24시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간편하고 값싼 시테크·진로상담·생존의 기술만 남는다.
이오네스코나 베케트의 극작은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관념적인 상황 제시와 함께 언어의 소통 가능성에 강한 의문을 병행한다. 까닭은 현실을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의 자명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며, 나아가 언어에 대한 불신이 여태껏 정상적으로 여겨온 모든 일상성을 마구 전복하고 해체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부조리 인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 가운데 하나는 언어에 대한 인식일 수밖에 없으며, 부조리극의 자장 안에 있는 이어령의 작품 역시 언어에 대한 불신과 유희가 두드러진다. 「기적을 파는 백화점」에 나오는 ‘나폴레옹의 사전’은 그 한 예다.
시종ㅣ폐하, 아무래도 사전 편찬을 다시 해야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꼭 증보판을 내셔야 합니다.
나폴레옹ㅣ또 그 소린가? 내 사전에는 절대로 불가능이란 말을 넣을 수 없다고 했잖어! 증보판을 내면 이미 그건 나폴레옹 사전이 아니란 말야. 불가능이란 말을 넣는 순간 나는 그 사전의 판권을 잃게 되는 거야. 재론하지 말게. (이때 1812년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들려온다)
나폴레옹ㅣ기분 나쁜 음악이군. 저 음악을 꺼라.
시종ㅣ예, 폐하 바로 저겁니다. 저것은 1812년 폐하가 모스크바에서 총퇴각을 하던 패전상황을 묘사한 음악입니다.
나폴레옹ㅣ그런데 왜 저렇게 우렁찬가.
시종ㅣ그야 승전한 러시아 놈들의 기쁨을 노래한 것이니까요. 그때에도 폐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말이 없으셨던가요.
나폴레옹ㅣ내가 그때 패망한 것은 오히려 불가능이란 없다는 말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러시아 쥐새끼들이 내 말을 표절하여 감히 그 불가능에 도전하기 시작한 거야. 나는 패했지만 패함으로써 불가능이 없다는 내 철학과 꿈은 증명된 것이다.
이름과 실체 사이의 괴리가 없었던 부조리 의식 이전에는, 언어와 대상이 1대 1로 상응했다. 아담이 모든 사물에 유일무이한 첫 이름을 지어 주었던 창세기創世記의 세계, 혹은 내가 꽃이라고 부르면 그렇게 호명된 대상이 곧바로 꽃이 되는 시의 세계는 부조리가 틈입하지 않은 낙원과 같았다. 그러나 앞의 인용이 보여주듯, 고작 한 사람의 권력가나 궤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게 사전이라면, 우리가 쓰는 언어 역시 그처럼 믿을 수 없는 게 되고 만다. 예를 덧보태자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환경부 장관에 내정되었던 모 인사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서는 구입할 수 없는 절대농지를 불법 취득하여 문제가 되자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석명을 내놓았다. 이런 식의 말이 횡행하게 되면, 먼 훗날 ‘사랑한다’는 말이나 행위는 불법을 방조하는 수식구나 같게 될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허위를 조장하는 불순하고 부정확한 것으로 화하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불화 의식도 증가한다. 그런 뜻에서 「기적을 파는 백화점」에 나오는 대학교수나 「사자와의 경주」에 나오는 아내가 단어를 거꾸로 읽는 놀이를 해 보이는 것은, 세상의 허위와 대면하고 세상에 만연한 부조리 의식을 간취看取하고자 하는 안간힘으로 해석된다. 물론 이 부조리한 세계를 극복하는 데는 언어유희만 가지고서는 부족하다. 두 작품의 주인공만 아니라, 이 작품집의 모든 주인공이 실패하는 이유다.
다섯 편의 희곡 가운데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와 「당신들이 내리지 않는 역」은 잘 짜여진 플롯이 작동하고 있으나, 표제작과 「사자와의 경주」·「오! 나의 얼굴」은 유희하는 언어를 위해 플롯이 뒤로 물러나 있는 형국이다. 이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부조리한 상황에 쫓겨 언어유희에 몰두하게 되거나, 언어에 대한 불신을 통해 현실의 부조리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교차 반복한다.
사족이다. 앞서 「기적을 파는 백화점」을 읽으면서 ‘신의 죽음’이 돌연 강조되었지만, 실은 이 작품집에 실린 모든 작품은 그보다는 ‘인간(주체)의 죽음’이 더 자주 선언된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신의 죽음’보다는 더 부조리극다운 세계관이다.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는 일찍이 신을 죽인 인간이 어떤 우상을 섬기게 됐으며, 그 우상에 의해 인간이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이번 희곡집을 몇 십여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한국에서의 부조리극의 수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부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은 가외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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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한 이래로,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