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가르침으로부터, 스승들한테서 내가 배우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이며, 너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그들이 도저히 가르쳐줄 수 없었던 것이 무엇이지? (…) 나는 바로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바로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였던 것이며, 바로 그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고자 하였던 것이다. 나는 바로 자아로부터 빠져나오려 하였던 것이며, 바로 그 자아를 나는 극복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 없었고, 그것을 단지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고, 그것으로부터 단지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그것에 맞서지 못하고 단지 몸을 숨길 수 있을 따름이었다. (…)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60~61쪽.
융은 뉴멕시코의 인디언들, 그중에서도 푸에블로 인디언을 찾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융은 처음으로 유럽인이 아닌 사람, 백인이 아닌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행운’을 누려보았다고 한다. 그는 타오스 푸에블로의 추장으로서, 그의 이름은 옥비에 비아노(‘산의 호수’라는 뜻의 이름)였다. 옥비에는 융에게 이렇게 말한다.
“백인들이 얼마나 사납게 생겼는지요. 그들의 입술은 얇고, 코는 날카롭고, 얼굴은 주름졌고, 눈은 완고한 눈초리를 하고 있소. 그들은 항상 뭔가를 찾고 있소. 무엇을 찾는 거지요? 또한 백인들은 항상 뭔가를 원하며 언제나 불안하고 차분하지 못하오.”
그는 백인들은 ‘넋이 나간 사람들’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한다. 융은 옥비에의 말을 좀 이상하다고 여기며, 왜 백인들이 넋이 나갔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들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하오.”
융은 놀라서 물었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당신은 어디서 생각하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하오.”
인디언 추장은 자신의 심장을 가리켰다. 융은 생각에 잠겼다. 생전 처음으로 누군가가 진정한 백인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느꼈다. “이 인디언은 우리의 아픈 데를 찔렀으며 우리가 눈이 멀어 보지 못하는 부분을 건드렸다.”(융, <기억, 꿈, 사상>, 조성기 옮김, 김영사, 2008, 442~443쪽)
인디언 추장은 백인들의 눈빛과 표정, 몸짓을 바라보며 자신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포착해낸다. 끊임없이 분석하고, 계산하고, 비교하고, 경쟁하고, 쟁취하려는 문명인의 광기, 바로 합리주의라는 이름의 위험한 광기를 본 것이다. 융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인디언이 가슴으로, 심장으로, 온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백인들의 합리주의가 얼마나 공허한지를 깨달았던 것이다. 만약 그가 ‘백인이 어느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에 빠져있었다면,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으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낳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인디언과의 대화는 파국으로 치달았을 수도 있었다. 융은 인디언과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나 바깥에서 나를 볼 수 있는 자유를 누린 것이다. 그것은 아프지만 눈부신 자유, ‘나’라는 존재를 나 바깥에서 볼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자유였다.
싯다르타 또한 처음으로 ‘나 바깥에서 나를 보는 자유’를 누린다. 그러나 싯다르타에게 이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지만 고빈다를 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고빈다가 늘 그림자처럼 붙어다녔기 때문에 그는 진정으로 ‘혼자 있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믿었지만 아직 깨닫지 못했던 그 무엇’을 깨닫게 된다. 자신은 어딜 가도 아버지의 아들이었고, 높은 신분의 바라문이라는 것, 자신이 원래 떠나온 자리로부터 자신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가족과 재산과 명예를 모두 버렸다고 믿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속세에 대한 희미한 미련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빈다는 바로 그 속세와의 마지막 연결고리였던 것이다. 그는 고빈다를 떠나자마자 홀로 힘겹게 방랑하며 뼈아프게 혼자라는 것을 느낀다. 그는 부처를 떠남으로써 부처의 깨달음을 오히려 더 잘 이해하게 되었지만, 깨달음의 희열과 함께 외로움의 고통이 그를 사로잡은 것이다.
속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침잠 상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며, 높은 신분의 바라문이었으며, 정신적 존재였다. 이제 그는 단지 깨달은 자 싯다르타에 불과하였으며 더 이상 그 밖의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으며, 한 순간 몸이 얼어붙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느 누구도 그만큼 외로운 사람은 없었다. 귀족치고 귀족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직공치고 다른 직공과 어울려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피난처를 찾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귀족이든 직공이든 자기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통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