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타마는 번뇌와 번뇌의 유래, 그리고 그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에 대한 설법을 하였다. 그의 고요한 설법은 잔잔하고 맑게 흐르는 물처럼 거침이 없었다. 인생은 번뇌이며, 이 세상은 온통 번뇌로 가득 차 있는데, 그 번뇌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길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 부처는 설법을 할 때면 언제나 참을성 있게, 보기를 들어가며, 반복하여 가르쳤는데, 그때 그의 목소리는 마치 한 줄기 빛처럼,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처럼 설법을 듣는 사람들 머리 위에 여운을 남기면서 낭랑하고 고요하게 둥실둥실 떠다녔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48~49쪽.
살아있는 부처님, 고타마 싯다르타의 설법을 들으며 또 하나의 싯다르타, 그리고 그의 친구 고빈다는 완전한 깨달음의 경지를 목격한다. 고빈다는 완전히 매혹된다. 자신이 평생동안 찾아왔던 스승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고빈다는 당연히 싯다르타와 자신이 함께 부처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싯다르타가 그것을 거부할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처의 설법을 다 듣고 나서, 싯다르타는 고빈다에게 말한다. 자네는 반드시 성불할 것이라고. ‘자네는’이라는 표현에 묻은 의미를 알아들은 고빈다는 오열하고 만다. 이제 싯다르타가 자신을 떠날 것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부처의 가르침을 통해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뛰어난 스승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신의 문제가 스승이라는 존재의 부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게 된다. 부처는 최고의 가르침을 선사해주었고, 그 설법에는 부처가 생을 바쳐 도달해낸 뜨거운 진실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깨달은 사람’ 곁에 있는 것이 반드시 깨달음의 첩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는 다른 종류의 깨달음이, 다른 종류의 삶의 과정이 필요함을 그는 뚜렷하게 인식하게 된다.
융은 성인에게도 마음의 학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곳곳에서 ‘자기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인에게는 최소한의 자기인식의 학교가 필요하다 것. 자신에 대한 인식 없이는 타인과의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이론적으로는 분명히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 깊은 자기 인식을 향한 고난의 발걸음을 먼저 떼지 않으려 한다고. 자기 인식이 과학기술로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인간은 어떻게든 길을 발견했겠지만, 진정한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 즉 인간의 심혼과 인간적 관계이기 때문에 선생이나 학교도 없고 교재나 강의도 없다고. 자기인식의 커리큘럼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만의 방법으로 자기인식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스승은 중요하지만 최종단계의 자기인식에서는 스승조차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제 싯다르타는 고빈다를 떠나고, 부처를 떠남으로써, 더 커다란 유혹에 직면한다. 죽마고우 고빈다가 곁에 있음으로써 그는 치명적인 유혹이나 심각한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이제 곁을 지켜주는 고빈다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스승도 없어진 싯다르타는 이제 자신의 영혼밖에는 상대가 없어진다. 언뜻 의아할 수 있다. 최고의 스승을 만났는데, 깨달음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을 만났는데, 그는 왜 이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일까. 싯다르타는 머리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채 연못을 찾는 심정으로 절실하게 깨달음을 구하고 있었기에 그 깨달음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깨달은 자를 목격함으로써 깨달음의 개별성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깨달음은 깨달은 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염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깨달음은 오직 나만이 개척할 수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어야 했다. 그는 최고의 스승을 눈앞에 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깨달은 자를 매일 본다고 해서 깨달음 자체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최후의 순간에 필요한 것은 스승이 아니라 고독한 자기인식이므로.
도를 깨달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살고 악은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이토록 명백하고 이토록 존귀한 가르침이 빠뜨리고 있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세존께서 몸소 겪으셨던 것에 관한 비밀, 즉 수십만 명 가운데 혼자만 체험하셨던 그 비밀이 그 가르침 속에는 들어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가르침을 들었을 때 생각하였고 깨달았던 점입니다. 이 점에 바로 제가 편력의 길을 계속하려는 이유입니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을 찾기 위하여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다른 가르침, 더 나은 가르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가르침과 스승을 떠나서 홀로 목표에 도달하든가 아니면 죽든가 하겠지요.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5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