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끝나고 수도원 예배당 안이 조용해지자 골드문트는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있었다. 그의 가슴은 김하게 울렁거렸다. 간밤에는 많은 꿈을 꾸었다. 어떻게든 과거지사를 청산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삶을 바꾸어보고 싶었다. 왜 그런지 까닭은 알 수 없었다. (…) 고해성사를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수없이 많은 자잘한 죄와 패륜을 고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 죽은 빅토르의 죽음이 무엇보다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는 신부님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잘못에 대해, 특히 불쌍한 빅토르의 목덜미와 등허리에 칼을 찌른 일에 대해 고백했다. (…) 그런데 고해신부는 떠돌이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놀라지 않고 조용히 귀를 기울였으며, 진지하고도 친절하게 꾸짖고 경고는 했지만 그 어떤 저주도 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31쪽.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에서 융은 ‘악에 대한 성찰’이야말로 인간이 스스로의 무의식을 깨닫는 결정적인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악이 단순한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진지한 성찰의 대상임을 강조한다. 악행으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몰라도, ‘악의 상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악을 무조건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인간의 양면적 본성을 직시하는 마음의 눈. 그것이야말로 성찰적 지성의 시작이 아닐까. 골드문트는 이제 자기 안의 악을 직시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절박한 자기방어였다 해도 용서받지 못할 죄임을 인식한다. 아무리 빅토르가 그를 죽이려고 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살인의 기억은 골드문트를 끝없이 괴롭히지만, 그는 죄책감으로 자신을 고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나르치스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골드문트의 고독한 영혼이 진정으로 해방되는 길도 바로 그 죄를 투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기나긴 방랑 끝에 우연히 발견한 한 교회 안의 조각상을 보며, 골드문트는 ‘이제 그만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낀다. 방랑을 청산하고, 여성편력에도 종말을 고하고, 진정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일에 투신하고 싶은 열망. 그것은 바로 예술을 향한 열정이었다.
골드문트는 니클라우스가 빚어낸 성모마리아의 조각상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모든 죄를 털어놓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그가 성모마리아의 조각상을 보며 느낀 아름다움은 리제를 비롯한 수많은 여인들을 통해 발견했던 관능적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릎 꿇고 싶고, 털어놓고 싶고, 가슴에 안겨 흐느끼고 싶은 아름다움이었다. 골드문트에게 성모마리아는 절망에 빠진 영혼의 지친 어깨를 어루만지는 구원의 가능성으로 다가왔다. 골드문트는 이제 자신의 죄를 투명하게 인식한다. 그는 드디어 신부님 앞에서 자신의 모든 죄를 고해하기 시작한다. 고해는 타인의 귀를 빌어 자기 마음의 귀를 여는 행위이다. 외부의 음향에만 열려 있던 육체의 귀를 내면의 음성에 귀기울일 수 있도록 스스로 단련하는 것. 그것이 고해의 심리학적 힘이 아닐까. 골드문트는 신부님께 자신의 모든 죄를 낱낱이 고백함으로써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조용히 듣기 시작한다.
골드문트가 지금까지 돌보지 못했던 ‘내면의 예술가’는 새로운 자아로의 재탄생을 꿈꾸고 있었다. 단지 느끼고 감상하고 동경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 아름다움의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주체적 창조자가 되고 싶은 열망. 골드문트는 이제 엄청난 수련을 통해 ‘예술’의 프리즘으로 구원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그는 오랜 숙련과 번민의 시간을 거쳐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의 감성으로 승화시키는 데 도달한다.
그것은 목각으로 된 성모 마리아 상이었다. 마리아 상은 너무나 우아하고 부드럽게 몸을 숙인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가냘픈 어깨에서 푸른 옷자락이 흘러내리는 모습이나 소녀처럼 고운 손을 내미는 모습, 괴로워하는 입 모양과 그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시선, 그리고 자애로운 이마가 동그랗게 솟아나온 모습, 그 모든 것은 여지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노무나 생기 있고 아름다웠으며 또 너무나 다정해 보이고 마치 영혼이 깃들여 있는 것 같았다. (…) 골드문트는 자신이 곧잘 동경해 왔고 또 이미 꿈과 예감으로 종종 보아왔던 어떤 존재가 서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 헤르만 헤세, 임홍배 옮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