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원고지 4만 장에 '뭇생명' 담고… 박경리는 그렇게 '불멸'이 되었다/오정희
1969년 발표를 시작한 '토지'는 1994년 8월 15일 집필이 끝났다. 새벽 2시였다고 한다. 25년의 세월을 바친, 원고지 4만 장의 이 대하소설은 영웅호걸도 순교자도 내세움 없이 그야말로 '뭇생명'들의 구체적 삶을 통해 미래지향적 소망이라는 독특한 한(恨)의 미학과 그 의미를 완성한다. '토지'1부를 끝내면서 '어찌하여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하여야 하는가'라고, 죄없이 극심한 고통을 겪은 욥에 비유하며 탄식하고 언어의 한계,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에의 전율을 토로하던 작가는 마침내 자신의 글쓰기란 바로 생명과 삶에의 다함 없는 외경과 연민임을, 더불어 '토지'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소설임을 고백한다.
조선일보
2012-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