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는 조국 교수의 『보노보 찬가』 프롤로그를 에세이로 소개합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병폐에 대한 은유적 대안으로 조국 교수가 제안한 보노보 식(式) 공생법은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의 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 편집자
‘파니스쿠스(paniscus)’라는 종명(種名)을 가진 보노보는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지대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트로글로디테스(troglodytes)’라는 종명을 가진 침팬지와 구별되는 영장류 동물이다. 유인원 전문가인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대중적 차원에서 보노보는 여전히 ‘난쟁이 침팬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필자의 전공도 아닌 이야기를 감히 꺼내는 이유는 보노보가 보이는 특별한 행동양식 때문이다. 여러 침팬지 연구는 침팬지가 수컷 중심의 수직적 서열구조를 가지고 있고, 폭력을 수반하는 내부의 치열한 권력투쟁, 다른 침팬지 집단과의 잔혹한 전쟁, 성인 수컷에 의한 유아살해 등의 행태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구는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 권력투쟁, 전쟁, 학살, 남성지배 등의 생물학적 기원을 바로 인간의 ‘사촌’인 침팬지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함의를 던지고 있다.
그런데 보노보라는 인간의 다른 ‘사촌’은 침팬지와 전혀 다른 삶을 꾸리며 살아간다. 보노보에 대한 우리나라 백과사전의 소개나 흥미위주의 글들을 보면, 다른 동물과 달리 ‘프렌치 키스’를 한다, 성교시에 인간처럼 수컷과 암컷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정상위’를 취한다, 종종 같은 성끼리도 서로 성기를 문지르는 ‘동성애’적 모습을 보인다 등을 특이점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보노보의 종적 특징은 이러한 ‘에로틱한’ 사항에만 있지 않다.
보노보의 경우 암컷끼리의 연대가 매우 강하고, 수컷이 암컷을 지배하지 못하며, 공동체 내에서 부자보다 모자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점에서 보노보 무리는 암컷 중심의 사회이다. 보노보는 엄격한 수직적 서열을 만들지 않으며 상당히 평등한 문화를 유지한다. 보노보는 무리 내 병자나 약자를 소외시키거나 구박하지 않고 그들을 보살피고 끌어안는다. 보노보 무리 내부에서 성은 일방적 지배나 욕망해소의 수단이 아니라 상호적 기쁨과 유대를 위한 놀이다. 한 보노보 무리가 다른 무리와 부딪힐 경우에도 이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는 대신 서로 애정표현이나 섹스를 나누면서 긴장을 풀고 평화를 유지한다. 보노보 무리에서는 유아살해가 관찰되지 않는다.
물론 보노보 무리에서도 권력, 지배, 경쟁이 존재하지만, 그것이 발현하고 작동하는 구조와 문화는 분명 침팬지 무리와 구별된다. 마치 보노보는 남녀평등과 여성연대를 강조하고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중시하는 페미니즘의 정신, 사회·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를 제창한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正義論), 관용을 제일의 덕목으로 삼는 ‘상시적 소수자의 자유주의’를 정립한 주디스 슈클라(Judith N. Shklar)의 철학, 복지·참여·연대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오랜 전통, 공존·돌봄·협력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창한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사상, “전쟁이 아니라 연애를 하자(Make Love, Not War)”라는 1960년대 반전평화운동의 슬로건 등을 이미 실천하는 듯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이러한 보노보의 행태와 문화는 전 세계 영장류학계는 물론, 인류학계, 사회학계, 여성학계에 크나큰 충격파를 던졌다. 인류가 ‘자연법칙’으로 수용하는 침팬지식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보노보식 삶의 방식이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류의 유전자에는 침팬지만이 아니라 보노보의 속성도 들어 있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정글’을 들어다보면 여전히 침팬지가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농단(壟斷)’에 올라앉아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고 위세를 부리는 ‘천장부(賤丈夫)’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정치영역에서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최고의 행동준칙이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한자리를 차지하겠다는 음모와 술수, 권력투쟁이 경쟁 정당 사이는 물론, 같은 당 내에서도 죽자 살자 벌어진다. 진실보다 당파적 이익이 우선하기에 제 눈의 들보는 가리고 남의 눈의 티를 맹공하는 자가 대우받는다. 정치적 대의나 도의를 내팽겨치고 ‘추세식언(趨勢食言)’을 하더라도 많은 정치자금을 동원하는 자가 실력자 행세를 한다. ‘박연차 리스트’가 보여주었던 권력층과 그 주변에 기생하는 똥파리 또는 부나방들의 공생은 바로 이 순간에도 진행되고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사회·경제영역에서는 준법이니 공정이니 신경 쓰지 말고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 버는 것이 장땡이 되었다. ‘기업가정신’에 충실하기보다는 권력과의 유착을 통해 이권과 특혜를 받으려는 기업인들이 허다하다.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비용으로 계상(計上)되고,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것은 효율을 낮추는 나이브한 사고 또는 사치스러운 발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억울하면 부자되라”고?
소수의 ‘알파 걸’과 ‘골드 미스’가 활약하고 있지만, 한국 여성의 전반적 지위와 처지는 여전히 취약하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월급은 남성의 60퍼센트 수준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다수는 여성이고, 구조조정 시 해고의 일차대상도 여성이다. 여성을 자신의 성욕과 지배욕 충족대상으로만 보고, 성폭력이나 성매매를 범하는 침팬지류의 남성은 곳곳에 깔려 있다. ‘장자연 리스트’에서 드러난 수컷들의 폭력적 욕정은 재생산되고 있다. “억울하면 남자로 태어나라”고?
이 속에서 아이들도 침팬지로 키워지고 있다. 이미 ‘지옥’이 되어 있는 입시경쟁이 더욱 격화되면서 아이들은 친구를 밟고 나가야 자신이 산다는 원리를 체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국제중 신설과 자사고, 특목고 증설 등으로 학교서열화는 더욱 세밀화되고 있다. 계급으로 사람을 서열화하는 군대문화가 전 사회에 퍼져 심지어 초등학생 사이에도 후배가 선배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으면 혼이 나고, 다수자가 학교 내 약자를 집단 ‘왕따’시키는 일이 벌어진다. 어린이에게 주식·부동산·펀드 투자를 가르치는 재테크 캠프가 열리고, 서점에는 ‘어린이 처세술’에 관한 책이 깔려 있다. 2008년 ‘한국투명성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10억 원을 주면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부패를 저지르겠다고 답한 청소년이 17.7퍼센트에 이르렀다.
아, 언제까지 우리는 계속 침팬지처럼만 살아야 하는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동물의 왕국’이 되어버렸다고 야유한 바 있다. 이 ‘동물의 왕국’에서 우리 속의 보노보는 약탈적 ‘사냥꾼 유인원’인 침팬지가 발기발기 찢어 먹어버렸는가.
한편 휴전선 북쪽에도 다른 형태의 침팬지 세상이 있다. “혁명의 혈통”을 계승한다며 3대에 걸친 권력세습이 준비되고 있고,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하는 특정집단이 국가와 사회의 모든 재화를 움켜쥐고 있다. 사회 전체가 ‘병영’처럼 운영되고, 체제와 정치지도자에 대한 비판은 ‘반혁명적’ 행위로 간주되어 엄혹하게 처벌된다. 굶주린 ‘꽃제비’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군사력 증강을 중심에 놓는 ‘선군(先軍)정치’가 계속된다. 충성맹세 의식은 시도 때도 없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진다. 사회주의적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선전되지만 노동당원 남성이 집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여성은―북한 가수 리분희의 노래 〈여성은 꽃이라네〉의 가사를 빌리면―“한 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 “아들 딸 영웅으로 키우는 꽃”으로 규정된다.
남북의 침팬지 우두머리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고 내부결속을 높이기 위하여 종종 서로를 자극하고 기꺼이 유혈충돌을 불사하고자 한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침팬지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를 바꾸려는 보노보들의 활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강상중 교수의 익살스런 표현을 빌리면, “할리 데이비슨 위에 걸터앉아 뻔뻔한 태도로 김정일의 머리에 알밤이라도 먹이고” 싶지만, 여의치 못하다. 그리하여 남측의 보노보들은 남측의 ‘생태계’를 바꾸는 일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침팬지 공산주의자’와 ‘침팬지 자본주의자’들이 설칠 기회와 공간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개성공단 같은 ‘생태계’를 지키고 확산시켜야 한다. 무조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하며, 남북 간의 공생적·호혜적 협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2007년 경향신문 유병선 논설위원은 외국의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들의 활약을 소개하는 『보노보혁명』을 펴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사회적 기업’이 생겨나고 있다. 재활용품을 수거·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 발달장애인이 세계수준의 모자를 만드는 모자생산업체 ‘동천모자’, 정신지체장애인이 우리밀 과자를 생산하는 ‘위 캔’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보노보의 활약은 기업경영의 영역에 한정되어선 안 된다. 유 논설위원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침팬지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바꾸려는 보노보들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많아져야 하며, 그들의 “아름다운 반란”은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는 이미 침팬지가 너무도 많다. 이제 우리 자신과 사회 속에 움츠려 있는 보노보를 찾고 키울 시간이다. 침팬지의 속성과 침팬지 세상의 원리를 정확히 직시하는 보노보, 침팬지의 공격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로 받아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보노보, 이와 동시에 보노보적 법·제도·문화를 구상하고 모색하는 보노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노보들의 즐거운 어울림과 신나는 연대가 필요하다.
보노보여, 깨어나서 노래하라!
보노보여, 손을 잡고 어깨 걸고 춤을 춰라!!
어느 곳에도 없는 그리고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보노보 세상을 몽상하느냐고 비웃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도 없다는 뜻의 영어 단어 ‘nowhere’를 달리 읽어보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know+where’―바로 지금 여기에서 ―‘now+here’―새로운 실천을 시작하면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다. 설사 그 결실을 당대에 따먹지 못하더라도 그 또한 어떠랴!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의 침팬지와 예비 보노보들에게 존 레논(John Lennon)의 노래 〈상상해보세요(Imagine)〉의 한 소절을 들려주고 싶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랍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에게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예요. (*)
『보노보 찬가』에서 전재 (조국, 생각의나무,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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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국
서울대 법학과 교수. 2000년 이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과 소장을 역임하면서 시민운동에 참여했으며, 여러 언론매체의 칼럼니스트와 법 관련 국가기관의 자문을 맡고 있다. 전공인 법학연구를 삶의 중심에 넣으면서도 여력이 되는 대로 전공 밖의 세상일에 관여하고 있다. 저서로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형사법의 성편향』,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 『성찰하는 진보』, 『배신』, 『떼법은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