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는 바버라 킹솔버의 에세이집 『작은 경이』에서 글 한 편을 발췌해 에세이로 소개합니다. 저명한 영양학자 조앤 다이 거소우(Joan Dye Gussow)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의 꽃가루가 자연산 옥수수 품종을 오염시키기 시작하자 이렇게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이건 하느님의 면전에 휘두르는 주먹(a fist in the eye of God)이에요. 저는 별로 종교적인 사람도 아니지만요.” 킹솔버가 이 에세이의 제목을 거소우의 인터뷰에서 따온 맥락은 아래 본문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내 부엌 창밖에 있는 은매화나무의 가녀린 어깨에 벌새 한 마리가 둥지를 틀었다. 때는 4월. 나야 싱크대에서 아침 설거지를 하는 처지였지만 철은 꽃눈이 트고 구애 행동이 활발한, 가장 섹시한 달이었다. 그때 문득 나는 바깥에서 어른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정처 없이 공중을 맴도는 벌새였다. 녀석은 부리 끝에 거미줄 한 다발을 물고 있었는데, 어찌나 작은지 그것을 나뭇가지에 조심스럽게 놓기까지는 뭔지 알 수 없었다. 녀석은 사라졌다가 1분이 안 되어 다시 돌아왔는데 이번에도 조그만 다발을 물고 와서 처음 것 위에 쌓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오가기를 반복하니 가지 위에 하얀 덩이가 아주 조금씩 커졌다. 나는 이곳 땅 어디에서 그렇게 거미줄을 많이 걷어오는지 경이로워서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바깥에서 살림을 하는 동안 씻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아내어가며 자리를 지켰다. 덩이가 제법 커지자(작은 뇌 속에 있는 유전 기제가 “그 정도면 됐어”라고 한 모양이었다) 벌새는 모아오기를 그만두더니 그 위에 앉아 날개와 조그맣고 둥근 배를 떨듯 저으며 덩이를 컵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컵처럼 오므린 내 손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작았다. 이윽고 새는 날아올라 이쪽저쪽을 살피더니 내려앉아 뒤뚱뒤뚱 걸으며 아주 열심히 챙겨보고는 다시 날아올라 좀 더 살피다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다 다시 돌아올 때는 가늘게 찢어진 나무껍질 올을 물어와 거미줄 덩이에다 마른 잎이나 이끼 조각과 함께 엮어 둥그런 바깥 면을 다졌다. 이렇게 해서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컵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나자, 녀석은 가장 놀라운 작업을 했다. 그 위에 앉아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믿기지 않도록 긴 혀를 내밀어 둥지를 바닥부터 위쪽 언저리까지 ‘핥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각도를 조금 돌려 앞으로 숙이더니 다시 둥지를 핥았다. 나는 녀석이 한 바퀴를 빙 돌면서 둥지를 전부 아래위로 핥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천천히 돌아 정확히 원점으로 돌아오기까지 10분은 걸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할머니의 할머니 이전부터 전해내려온 벌새 머릿속의 유전자 지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둥지 틀기 작업을 하나하나 다 지시해주었다. 그러다 문득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바쁘고 급한 일이 끝나자 벌새는 알을 낳고 품는 오랜 정적의 시간에 들기 시작했다.
당신도 나처럼 부엌 창가에 서서 이 모든 경이로움을 지켜보았다면,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을 것이다. “아, 하느님!” 그 모든 것의 완벽함이란. 둥지며, 그 조그만 혀며, 벌새가 꽃꿀을 빨아내고 꽃가루를 나름으로써 자신을 먹여 살리는 꽃의 수정을 완결하도록 기다란 꽃에 맞추어 부리가 긴 것하며, 이 모든 것의 완벽함을 보노라면 ‘아 하느님’ 소리가 절로 난다. 그것은 사람과 비슷한 형상의 신이 4004년 전에(혹자들의 성경 연대 추정에 따라) 일주일 만에 세상을 창조한 구체적 과정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난 10억 년 동안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에 어김없이 적용되는 자연선택의 과정에 대한 경외감일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엔 후자의 경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볼거리이며,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예배의 감정인 것 같다. 나는 종교적인 경외감과 생명 창조의 원리에 대한 이해가 공존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찰스 다윈이야말로 자연을 미세하게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인내력을(그리고 그 모든 것을 종합할 수 있을 만큼의 수명과 천재성을) 타고난 사람이면서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생명활동을 연구하면서 다음의 네 가지 원리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지금의 우리도 충분히 관찰해보면 수긍할 수 있는 것이다.
1. 모든 유기체는 성년에 이르기까지 생존할 수 있는 수보다 많은 씨앗이나 자손을 퍼뜨린다.
2. 이들 씨앗이나 자손 가운데는 변이가 있다.
3. 형질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4. 각 세대마다 살아남는 생존자들은 그렇지 못한 다른 개체들보다 유리한 형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으며, 살아남기 때문에 그 유리한 형질을 다음 세대에 물려준다. 따라서 시간이 흐를수록 개체군 내에 그런 형질의 발현은 늘어나게 된다.
와! 생명의 작용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이보다 더 간단하고 놀랍고 멋지게 설명하는 논리가 있을까. 이것은 논박할 수 없는,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하는 원리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게 결국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더욱이, 아이들에게 ‘그건 이론일 뿐’이니 그런 이야기는 듣지도 말라고 하는 부모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한다. 과학에서 이론이란 여러 가지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 사용되는 일련의 조리 있는 원리다. 따라서 중력이론은 역시나 ‘이론일 뿐’임에도 물체의 낙하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다. 다윈의 이론은 생물과학 역사상 가장 확실하고 통합적인 설명으로 입증되었다. 당대의 과학자들이 유전에 대해 전혀 모르던 때에 다윈이 그토록 정확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한 세기 반이 지나는 동안 유전학, 지질학, 고생물학 등의 온갖 자연과학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지금도 계속해서 그의 단순한 논리는 우리가 연구해온 모든 생명체의 존재와 행동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예측하게 한다. 자연과학의 통합 원리로서 그의 이론은 물리학자들이 중력이론을 의심하지 않듯 현대 생물학자들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요즘 번지고 있는 괴상한 유행에 따라 많은 주에서는 고등학교에서 진화론 가르치기를 제한하거나 아예 금지하는 일을 벌이고 있으며, 온 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많은 교과서가 겁을 내고 진화론을 아예 다루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한 세대의 학생 전부가 우수한 과학을 이해하거나 전공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대학에 들어가고 있다. 내가 아는 상당수 과학교사는 냉전시대에도 적어도 하나는 좋은 점이 있었다고 그리워한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로 우리는 아이들을 특정 몽상가들의 불안을 달래주도록 멍한 상태로 방치하는 대신 제대로 과학교육을 시키는 진지한 과업에 힘쓰게 되었다.
멍하니 방치하면 그만한 위험이 따른다. 과학에 대한 문맹 탓에 상당수 사람은 우리가 대기에, 서식지에, 그리고 우리 입에 들어가는 먹을거리에 얼마나 해를 주는지 제대로 논하거나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학교에서 미생물학보다는 영문학이 적성에 맞았던 내 친구들(나도 쉽게 그럴 뻔했지만)이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내가 왜 유전자조작 때문에 걱정해야 하는지 200단어 이하로 설명해줄 수 있니?”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차 한 잔 마시자. 내가 살게. 그리고 200단어가 넘어도 들어줘.”
핵심만 요약적으로 말하는 문화로는 과학을 제대로 논할 수 없다. 생물의 다양성이 줄어들 때 우리가 잃는 게 정확히 무엇인가,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는 저녁 시간대의 간추린 뉴스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면에 유전자조작 식품을 옹호하는 주장은 위험할 정도로 단순하다. 일례로 어느 다국적 농기업에서 ‘비타민을 유전적으로 조작한 우리 쌀을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먹이는’ 자비로운 계획을 잡지광고로 선전한다. 이에 대해 나는 ‘헤로인 첫 주사분을 공짜로 놓아주는 게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면…’이라고 응수하고 싶다. 그렇지만 동의 여부를 마땅히 결정하기도 전에 500단어나 1,000단어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차 한 잔을 마시며 앉아 내 이야기를 참고 들어주시기 바란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
다윈은 모든 것의 뿌리에 경이로운 것 중에서도 경이로운 것, 즉 유전적 다양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신은 당신의 누이와 같지 않고, 한 배에서 난 강아지들은 모두 제각각이며, 밀밭의 밀알들은 모두 그 배(胚) 안에 조금씩 다른 운명을 간직하고 있다. 씨앗을 땅에 뿌려 그것이 자랄 때까지는 차이를 알 수 없겠지만, 확실히 어떤 것은 더 크게 자라고 어떤 것은 작게 자라며, 어떤 것은 더 튼튼하게 자라고 어떤 것은 약하게 자란다. 조건이 좋은 해에는 전부 또는 대부분이 잘 자라 밀알을 내놓을 것이다. 반면에 조건이 나쁜 해에는 모진 바람이라도 한 번 몰아치면 큰 줄기들은 다 쓰러지고 수확기엔 키 작은 유전자를 가진 10퍼센트의 작물만 남아 있다고 하자. 이 밀이 당신의 겨울 식량이 되고, 더구나 이듬해에 기를 작물의 유일한 종자라면, 당신은 그만한 수확이라도 거두었음을 매우 다행으로 여길 것이다. 유전적 다양성은 야생종뿐 아니라 길든 종의 경우에도 자연의 유일한 보험이다.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비가 많은 해에 이어 가뭄이 닥칠 수 있고, 호수가 말라붙을 수 있고, 화산이 폭발할 수 있으며, 빙하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조그만 DNA에게 바깥세상은 크고 험하다. 하지만 동종 개체들이 다양한 유전자 깊은 곳에 어떤 사태에도 대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세월이 흘러도 그 개체군은 살아남을 것이다. 바람이 거센 해가 10년 동안 지속된다면 밀 개체군은 키 작은 형질이 우세할 것이나, 작물이 다양성을 유지한다면 키 큰 열성 형질이 때를 기다리며 어딘가에 계속해서 잠복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성은 어떻게 유지될까? 그것은 수정이라는 마술에 달려 있다. 어떤 씨앗이든 부모가 있게 마련이다. 식물은 수정에 필요한 꽃가루를 바람에, 벌새의 혀에, 벌의 다리에 내맡긴다. 그 과정에서 부모 양쪽은 각자의 유전자를 내어주며, 그 결과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유전자 조합에 따라 자손이 생긴다. 저마다 ‘무언가’에 대비하여 나름의 새로운 채비를 갖출 것이며, 개체군 전체로 보자면 ‘무엇에든’ 대처할 준비를 갖출 것이다. 개체는 죽게 마련인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그런 건 아니고 한 유기체가 ‘가진’ 것과 ‘요구되는’ 것 사이의 치명적인 부조화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개체군 전체는 계속 살아남되 언제나 적응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것은 누가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적응해야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좌우를 가릴 것 없이 이런 진실을 불만스러워 했다. 일찍이 어느 영국 대사의 아내는 남편에게 이렇게 선언한 바 있다. “여보, 우리 다윈 씨가 옳지 않기를 바라기로 해요. 만일 그가 옳다면 아무도 그 사실을 발견하지 않기를 바라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개체의 의지와 별 상관없이 개체군 전체의 적응이 중요하다는 이 시나리오를 대하면 불편해지는 모양이다. 그런 그들은 스탈린이 정반대의 이유로 소련의 대학에서 유전학과 진화론을 금지시키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개체 수준에서만 작용하는 자연선택설을 공산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보고 공격했다. 그런 일들을 겪었지만 진화의 작은 엔진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계속 돌아가면서, 정치나 사람의 생각에 상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오면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했다.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대단히 놀라운 과학자였으며, 아마도 사상 최고의 식물탐험가였을 것이다. 그는 7개 국어를 구사했으며 푸시킨의 책을 줄줄 외는 사람이었다. 1916년부터 1940년까지 64개국을 여행하는 동안, 그는 그 누구보다 많은 작물의 다양성을 목격했으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자를 소장했다.
바빌로프는 여러 대륙을 다니며 다양한 토착 작물을 찾아보다가 한 가지 패턴을 발견했다. 그것은 유전적 변이가 고르게 분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에티오피아의 한 작은 지역에서 그는 그 지역에만 알려진 토종 밀을 수백 가지나 발견했다. 신세계의 어느 고원은 옥수수 종류가 놀랍도록 풍부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감자 종류가 대단히 많았다. 바빌로프는 발견한 사실을 지도에 표기하고는, 작물의 다양성 정도를 보면 그 작물이 해당 지역에서 얼마나 오래 자랐는지 알 수 있다는 이론을 세웠다. 그것은 농민들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씨앗을 보존해온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농민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더 다양한 ‘유형’의 씨앗을 보존하기도 했다. 예컨대, 여러 세기에 걸쳐 하나의 옥수수 품종에서 팝콘이나 토르티야†나 구이 등에 쓰이는 색깔과 질감이 제각각인 다양한 옥수수를 얻어낸 것이었다. 각 작물의 유형 내에서 볼 때, 여러 세대에 걸친 자연선택은 그 세월 동안 마주친 온갖 종류의 해충과 날씨에 폭넓은 저항력을 보여주었다. 바빌로프는 그 나름의 유전학이라는 렌즈를 통하여 세계에서 인류 농업의 원류가 된 곳들을 집어내기 시작했다. 좀 더 현대에 진행한 유전학 연구는 재래종이라고 하는 가장 다양하고 오래된 작물 유형이 발견되는 장소들에서(근동, 중국 북부, 중앙아메리카, 에티오피아에 있는 곳들이다) 독자적으로 농업이 발현하기 시작했다는 그의 가설을 대부분 입증한 바 있다.
산업사회는 우리가 지금 제3세계라 부르는(하지만 실은 1세계인) 세계로부터 수입한 작물과 경작법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서 기르고 있는 작물은 옛 전통에서 크게 이탈한, 유전적으로 극히 획일적인 것들이다. 이는 우리 농업이 주로 상대적으로 적은 종류의 씨앗만 취급하는 소수의 대규모 농기업의 손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종자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빈약한 종자은행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안다. 전 국토에 하나뿐인 작물의 품종이 전부 다 새로운 병에 죽어버린다면(1970년에 우리 옥수수가 그랬다) 연구자들은 좀 더 다양한 본래의 품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재래종의 유전적 다양성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보험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는 것이며, 그런 재래종은 우리 작물 대부분이 나기 시작한 가난한 지역의 농민들이 아직도 해마다 손으로 뿌리고 손으로 거두는 것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지금 그런 보험을 해약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은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 당신이 토종 밀을 기르는 에티오피아 농민이라고 하자. 이 작물은 당신 집안에서 수백 년 동안 길러온, 야생성이 강하고 튼튼한 잡종이다. 언제나 바람이나 고약한 날씨 탓에 일부를 잃지만, 그 나머지는 매년 얼마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 당신은 지금 기르는 품종보다 여섯 배나 알곡이 크게 자라고 거두기 쉬우며 보통 밀에는 없는 여러 가지 비타민이 들어 있는 일종의 ‘마법의 밀’ 소식을 접한다. 더구나 그것은 놀랍게도 정부의 특별 조처에 따라 공짜다.
환상적인 동화를 조금이라도 아는 독자라면, 이 이야기에 문제의 씨앗이 있다는 것을 벌써 감지할 것이다. 이 ‘마법의 밀’은 첫해에는 잘 자라지만, 빠르고 너무 싱싱하게 자라기 때문에 해충이 엄청나게 몰려든다. 당신은 전에는 밀을 먹는다는 소리를 도무지 들어보지 못한 벌레들이 끼는 것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볼수록 걱정이 들면서 작물을 제대로 거두려면 살충제를 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의 특별한 조처에 따라 당신에게 종자를 제공해준 회사가 이번엔 필요한 살충제를 판다는 사실을 안 당신은 별로 놀라지 않는다. 살충제는 약효가 뛰어나며 미국에서 다 쓰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한테 없는 돈이 들며, 그 때문에 당신은 이듬해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 돈을 빌려야 한다.
이듬해에 지독한 가뭄이 닥치자 작물이 수확 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밀이 다 쓰러져 죽어버린다. 미국에서 온 ‘마법의 밀’은 에티오피아의 가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그러면 끝이다.
그나마 가뭄이 두 번째 해에 닥쳐 끝장이 빨리 났다면, 이 실제의 환상 동화에서 당신은 대단한 행운아다. 집안에서 전해내려온 종자가 어느 정도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가뭄이 팔구 년이 지나서 닥쳐 작물이 알곡을 맺기도 전에 다 죽어버린다면, 그래서 종자가 전혀 남아 있지 않으면, 심각한 재앙이 된다. 종자은행은 만 년이 넘은 것이라도 선반 위에만 있으면 몇 년 이상 버틸 수 없다. 매년 작물로 기르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그러면 무수히 손이 가고 정성 들여 고른 종자가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저 악명 높은 감자 기근이나 남부의 옥수수 잎마름병이 원인이 되는 재앙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일이다. 전 국토에 유전적으로 단일한 품종을 심을 정도로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그럴 수밖에 없도록 가난하다면(아일랜드에서 그랬다) 말이다.
농기업들이 기존 작물의 특정 유전물질을 매입하고 보유하고 특허를 얻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토종처럼 습도나 포식자나 온도가 아주 다양한 조건하에서 유연성이 뛰어난 작물을 유전적으로 조작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유전공학은 방정식에서 야생이라는 변수를 제거하기 때문에 다양성과는 상극을 이룬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새로운 마법의 탄환이다. 우리는 하나의 게놈(genome)에서 유전자 하나의 자리를 바꿈으로써 초고속 성장이나 쌀 속의 비타민 A 같은, 자연에는 없는 특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말 그대로 우리는 양의 가죽을 뒤집어쓴 늑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업문제를 이런 식으로 푸는 것은 선택과 교배를 거쳐 다양한 유전자를 이용하는 재래식 해법의 광범위한 효과보다 효능이 훨씬 떨어진다. 작물의 포식자는 빠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진화하는 반면, 유전자 접합은 한 번에 하나의 방법만 쓴다. 그것은 인기만화 루니툰 시리즈의 코요테가 매번 기발한 장치를 주문해 로드러너를 골탕먹이려 하지만 언제나 한수 위인 코요테한테 당하고는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뛰어난 위트를 구사하는 작가 웬델 베리는 유전자 조작 전반, 특히 복제에 대해 이렇게 쓴 바 있다. “그것은 양을 훔치는 새로운 방법이자 양을 예측 가능한 뻔한 것으로 만들려는 애처로운 시도일 뿐이다. 하지만 이는 진실에 대한 모욕이다. 양치기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양을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과학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한수 위의 누군가에게 당하기 딱 좋은 상대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보다 식견이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인간이 가축이나 작물을 선택적으로 교배하면서 유전자를 마음대로 다루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유전자조작 문제에 대해 위안을 삼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멘델이 유전자조합을 처음 한 이래로…”라는 말을 용감하게 인용하는 사람의 얘기도 읽어본 적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문제가 무언지 감을 못 잡고 있는데, 그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어린 학생들의 교과서에서 기초 생물학을 도려내는 광신자들을 탓하는 것이다. 멘델은 유전자를 접합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아무것도 통제하지 않았다. 단지 콩의 유전적 재조합이 작동하는지 자연 그대로의 방식을 알고 싶어 관찰했을 뿐이다. 한 해 농사를 위해 가장 좋은 낟알이나 양을 고르는 농부는 선택이라는 진화의 힘을 빌려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얻은 모든 것은 품종의 다양성이나 포식자나 병충해에 대한 저항 등 자연 진화라는 맥락 속에 있다. 반면에 하느님의 실험 원칙이라고나 할 견제와 균형의 틀을 벗어나서 유전자를 만지작거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그것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으며, 그 결과는 치명적일 수 있다.
일례를 들자면, 어떤 박테리아를 어느 옥수수 품종에 접합하는 유전자조작이 있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좋은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박테리아는 애벌레의 위장을 부풀어 터지게 하는 ‘바실러스 투린지엔시스(Bt)’라는 세균이었다. 이 세균은 사람에게도 새에도 심지어 무당벌레나 벌에도 해를 주지 않아서 우리가 지금껏 발견한 살충제 가운데 가장 유익한 것으로 여겨졌다.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은 이 세균이 사는 흙에서 ‘Bt’ 홀씨가 자연 발생하여 자기들이 기르는 식물에 가는 길을 촉진하기 위해 여러 해 동안 애써왔다. 이런 세균은 종묘상에서 캔에 든 것을 살 수 있으며, 이걸 토마토 작물에 뿌려주면 애벌레를 죽인 다음 원래 살던 흙 속으로 되돌아간다. 농민들은 언제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자연법칙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상대적으로 느린 방법을 구사함으로써 자연을 이용해왔다. 그런데 유전공학은 엄청나게 큰 걸음을 내디디며 이 세균의 DNA 일부를 옥수수의 DNA 사슬에 접합시켰고, 그 결과 이 옥수수 품종은 자라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애벌레를 죽이는 이 세균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이 옥수수의 꽃가루는 입자 하나하나가 해충(옥수수수염을 타고 내려가 작물을 망치는 것들)을 박멸하는 비밀병기를 갖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괜찮다고 하자.
문제는 모든 옥수수가 그렇듯 이른바 ‘Bt 옥수수’도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면(옥수수는 벌이 아니라 바람을 이용해 가루받이를 한다) 농장 주변의 모든 나무와 풀숲에 미세한 Bt 꽃가루 먼지가 내려앉게 된다. 옥수수는 인기가 좋아서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는 중이기도 한데, 그 과정에서 이 꽃가루는 나비 유충의 위장이란 위장은 닥치는 대로 불러터지게 할 수 있다. 철마다 멕시코까지 이주하는, 작지만 용감한 순례자인 제왕나비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예를 들어 겨울을 나는 멕시코의 숲이 자꾸 불타 없어지고 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위를 터뜨리는 가루를 사용해 이 나비들을 덮어버리는 게 도움이 되리라 주장할 수 없을 것이다. 같은 이유에서 다른 나비들도 줄어들고 있을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해 있다. 그래도 심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만 기다려볼 일이다. 그 사람의 먹을거리에 꽃가루받이를 해주고 그 아래 토양을 조성해주는 무언가도 곧 멸종할 처지니 말이다. 한편으로 또 하나의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이제 해당 옥수수 품종의 모든 세포에 함유된 Bt에 광범위하게 노출되다 보니, 이 장기적 효과를 보이는 살충제에 면역이 생긴 소수를 제외한 모든 포식자가 죽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엄청난 저항력을 가진 돌연변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지나친 항생제 노출이 인체 내에 항생제 저항성 병균의 진화를 촉진시키는 것과 정확히 같은 이치다.
훨씬 큰 것들이 바로 무대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이 엄청난 환경 교란이라는 맥락으로 볼 때, 유전자조작을 반대하는 목소리 가운데 우리가 가장 많이 듣는 게 인체의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은 다소 놀랍다. DNA의 새로운 조합이 우리가 아직 삼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단백질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확실하다. 유전자조작이 된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인체의 질환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으나 이미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수준이다. 유전자조작이 인체 내부에서 시작되어 우리가 사는 곳과 우리의 먹을거리 전반을 황폐화할 우려는 매우 크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앓는 알레르기는 재채기에 불과하고 환경의 변화는 암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다. 유전자조작이 된 생명체들이 자연의 많은 개체군으로 풀려난다면 종 전체의 운명을 결정지을 정도로 유전자를 빠르게 바꾸어버릴 수 있다. 그런 시나리오 중 하나로 엄청나게 빠른 성장을 위한 유전자를 갖게 된 ‘괴물 연어’를 들 수 있는데, 이것들은 지금 언제든 잘못해서 바다로 풀려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그보다는 덜 극적이지만 위험성이 훨씬 광범위한 시나리오는, 문제 작물의 꽃가루가 방출되어 손을 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어디서나 자라는 새로운 잡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조작된 유전자는 30억 년 동안(아니면 기호에 따라 4004년 동안) 생명을 지배해온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이긴다는 것은 승자 아닌 패자가 모든 걸 갖는다는 뜻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정치적으로 큰 의문이 남는다. 그것은 극소수 농기업들이 갈수록 빈약해져가는 종자은행을 통제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다국적기업들과 짜고 농민들에게 유전자조작 작물을 기르도록 유도하는 개발도상국에서 농민들이 화학농법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어떤가? 유전자의 특허와 소유권을 얻는다는 건 어떤가? 그렇게 된다면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기르겠다는 사람들의 절박한 염려는 어떻게 되는가? 세상이 이런데 자급적인 식량 조달시스템을 포기하고 시장 세계화에 의존하는 게 ‘안전’한 일일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이라면 평생 단 한 푼도 양보해본 적 없는 이가 말쑥한 양복을 입고 나타나 당신을 위해 만든 마법의 밀을 ‘공짜로’ 주겠다고 하면 믿겠는가?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들이 분기 실적을 올리는 데 가장 유리한 일만 한다는 사실을 안다. 정부가 궁극적으로 자기 국민에게 가장 유리한 것만 한다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면, 그는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이건 가벼이 다룰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다국적 농기업이 초래한 지진의 진원지에 서서 주변의 세상을 향해 “도대체 왜들 우릴 미워하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농업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관한 미국 국민들의 전반적인 무지는 확실한 식량 공급체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다른 지역, 그러니까 우리보다 먹을거리를 더 많이 기르고, TV를 덜 보고, 기아의 위기에 직면할 위험이 대체로 더 높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개 더 잘 안다. 인도에서는 농민들이 시험삼아 재배해보라는 유전자조작 면화를 계속해서 태워버리곤 하며, 몬산토 사(社)의 ‘터미네이터 기술’을 금지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 이 기술은 식물이 자기 배(胚)를 스스로 파괴함으로써 다음 세대에 심을 수 있는 생명력 있는 씨앗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하는 기술이다(그 때문에 농민들은 씨앗을 새로 사야 한다). 세계의 많은 나라는 유전자조작이 된 먹을거리나 씨앗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것을 이미 거부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의 압력 탓에 가장 무시무시한 대변환 속에 식량 공급체계가 재편되는 것을 거부하는 나라들이 점점 줄고 있다.
도덕적이거나 정치적인 문제를 떠난다 해도(과학자가 무엇을 발견할 것인가 하는 정치문제와 무관하게 어떤 주장을 펴는 게 가능하다면) 과학의 차원에서 충분한 의문점이 있다. 과학에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던 결과가 있을 수 있다. 널리 알려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인간의 염색체 지도를 완성하자,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심란한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지금의 우리이기 위해 합성해야 하는 단백질 수를 근거로 10만 개 이상의 유전자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3만 개 정도만 있었던 것이다. 이는 겨자 풀의 유전자와 같은 수였다. 이는 유전자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대한 기본 원리를 훼손하는 증거였다. 그 원리란 각각의 유전자와 그것이 통제하는 특성을 일대일로 대응시켜주는 뚜렷한 사슬이 있다는 가정이었다. 그에 반해 유전자 발현의 기제는 1953년에 왓슨과 크릭이 DNA 구조를 발견한 이후로 생각해온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 보인다. 유전자의 발현은 가까이 있는 염색체 상의 다른 유전자들이라는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유전자조작은 그보다 단순한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가정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유전자조작이 된 한 유기체 안에서 이식된 유전자는 흔히 아주 뜻밖의 행동을 하여 그 유기체 자체뿐 아니라 가까이 있는 다른 유기체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 좀 더 최근의 발견에 따라서, 유전자에 손을 대는 일은 어두운 데서 총을 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 점차 인정받고 있다. 퀸스칼리지의 ‘자연계 생물학 센터’의 수석 연구원인 배리 코머너는 업계 과학자들 대부분이 공중(公衆)의 우려를 비합리적이거나 무지한 것으로 무시하는 것을 한탄한다. 그런가 하면 생명공학 업계는 ‘DNA 유전자 하나를 두 종 사이에 이식하는 일의 잠재적 결과를 우려할 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같은 분야의 최근 연구 결과까지 간단히 무시해버린다고 한다.
최근에 나는 에너지, 경제, 세계화된 식량생산의 불합리성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는 조앤 다이 거소우가 이런 문제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녀는 유전자조작을 한 옥수수의 꽃가루가 다른 옥수수 품종을 너무 빨리 오염시키고 있어 머지않아 미국에는 자연산 옥수수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언급했다. “이건 하느님의 면전에 휘두르는 주먹이에요. 저는 별로 종교적인 사람도 아니지만요.” 살짝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음성엔 우수가 배어 있었다. 당신이 믿는 게 무엇이든(당신의 하느님이 이 세상의 복잡한 운행을 7일 또는 7천억 년 만에 조립한 시계 제조공이든 아니든) 이 주먹의 비유를 명심하는 게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과학 교실에는 종교가 설 자리가 없다. 종교 때문에 학생들이 과학의 방법론, 발견, 설명적 가설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종교의 자리는 과학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있다. 윤리는 실험 결과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되겠지만, 우선 질문을 던지고 그다음엔 응용할 수 있는 유용한 부수적 역할을 할 수는 있다(이를테면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하느님이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지에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과학의 전당에서는 흔히 말은 하지 않아도 도덕과 객관이 한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 둘은 언제나 공존해왔다. 성별, 인종, 공동선, 협동, 경쟁, 물질적 이득, 그 밖의 무수한 문제에 관한 사회적 규범과 판단은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 있으며, 그래서 인간이 해온 모든 실험 가까이 어딘가에는 그것들이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과학이 이중맹검법(double-blind, 二重盲檢法)을 고안해낸 것이다. 예를 들면, 이 실험법에선 실험 대상이 자기가 진짜 약을 먹는지 가짜 약을 먹는지 알 수 없도록 하고 그 반응을 기록하는 과학자도 그 사실을 알 수 없게 하여 결과에 대한 심리적 편견을 배제한다. 그러나 실험 자체에 대한 애초의 접근이나 그 결과를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이중맹검법을 쓰는 게 불가능하다. 좀 더 큰 의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대하기보다는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는 게 과학적으로 더 건설적인 일인지 모른다. 유전공학 문제에 관하여, 나는 어느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이윤적 동기보다는 윤리를 택하겠다.
나는 생물학자로서 훈련받은 사람으로, 유전자를 고립시키고 이해하고 조작하는 일의 도전성과 기술적 완전성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유전공학자로서 내 자신이 해봄 직한 환상적인 것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단 일 분만이라도 가만히 서서 벌새가 3천만 년 동안 진화한 결과가 바로 눈앞에서 둥지와 알로 성스럽게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노라면, 나는 내 분수를 알게 된다. 나는 자라서 수확물을 내고 자체의 배아(胚芽)를 죽이도록 유전자조작이 된 식물의 세균을 내 손에 들고 있던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부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의 중심에 있는 악덕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소로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한 알의 씨앗에 대한 나의 믿음은 크다. 어디 한 알의 씨앗이 확실히 있다고 하자. 나는 온갖 경이로움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부여된 힘에 의지하여 그런 믿음에서 떨어지지 말자. 나는 창조의 문에 들어서면서 사자 조련사의 채찍과 의자를 들고 가기보다는 전통적으로 인류가 경배의 장소에 들어설 때 불러일으키던 경외의 마음을 품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다. 신전이든 모스크든 성당이든, 시간 그 자체만큼이나 오래되고 신성한 숲에 들어서는 자의 마음가짐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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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인의 주식으로, 옥수수를 갈아 만든 얇고 둥글넓적한 빵 - 옮긴이 주
『작은 경이』에서 전재 (바버라 킹솔버, 한겨레출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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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바버라 킹솔버(Barbara Kingsolver)
바버라 킹솔버는 장편소설, 단편소설, 시, 에세이, 구술사에 걸쳐 열 몇 권의 책을 썼다. 그녀의 작품은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킹솔버는 남편 스티븐 호프와 함께 자연사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고, 재즈를 연주하고, 텃밭을 가꾸며, 두 딸을 키운다. 그녀의 가족은 애리조나 투손과 애팔래치아 산맥 남쪽의 농가를 오가며 살고 있다. 작품으로는 소설 『콩나무』(The Bean Tree), 『천국의 돼지』(Pigs in Heaven), 『동물의 꿈』(Animal Dreams), 시집 『또 다른 미국』(Another America), 논픽션 『자연과 함께한 1년』(Animal, Vegetable, Miracle)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이한중
전문번역가. 지속가능한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생태, 환경과 관련한 책을 주로 번역했다. 옮긴책으로 『울지 않는 늑대』, 『인간 없는 세상』, 『핸드메이드 라이프』, 『너무 더운 지구』, 『6도의 악몽』, 『행복한 집구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