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일상답게 살기의 어려움
『논어』 ‘향당’ 편에는 공자의 일상생활이 카메라로 찍듯 잘 묘사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공자는 밥 먹을 때는 말이 없었고, 잠을 잘 때도 말이 없었다.” (食不語, 寢不言)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잤다는 뜻이다.
처음 이 구절을 접했을 때는, 밥상머리에서 떠들면 꾸중듣던 우리 식사습관이 여기 공자의 생활태도에서 비롯되었구나 하는 ‘인류학적’ 감회에 머물렀다. 한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속에 든 뜻이 새삼스러워진다. 최근에는 이 말을, 먹고 자는 일에 오롯이 하나가 되어, 먹을 때는 ‘먹는 사람’이 되고 잠잘 때는 ‘잠자는 사람’이 될 뿐이라는 뜻으로 새기기에 이르렀다. 먹고 자는 일이 나(의 건강이나 업무)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완결되었다는 것.
그러자 공자의 공자다움도 무엇을 ‘위하여’ 살지 않았던 데 있을 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면 나를 위하여 먹고 자지도 않은 사람이, 즉 내 몸이나 일을 위하여 먹고 자지 않은 사람이 과연 남을 위하여 살 겨를인들 있었으랴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仁)이니 덕(德)이니 하는 그의 주장도 천하를 위하라거나 나라를 위하라는 게 아니요, 또 남을 위하라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인과 덕 그 자체가 사람다움의 발현이라는 뜻이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음식을 무엇을 ‘위하여’ 먹는다. 암보다 무섭다는 비만을 막기 위해 적게 먹고,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하여 보약을 먹는다. 잠도 마찬가지다. 내일 치를 시험을 위하여 잠을 줄이고, 피로를 풀기 위하여 아침나절을 잠으로 채운다. 숙면클리닉이니 ‘숙면베개’라느니, 숙면장애니 숙면조절이라느니 하는 말들은 잠자기 자체가 아닌 나(건강)를 위한 수단이 된 잠자기의 처지를 거꾸로 보여준다. 우리네 먹기와 잠자기는 나로부터 분리되어 있고 또 소외되어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잠을 잘 때는 잠만 잤다”는 공자에게 식사시간은 밥 먹는 것이 주인인 시간이요, 수면시간은 잠이 주인공인 시간이 된다. 하나 어디 공자뿐이랴. 불교 쪽에서도 같은 뜻을 품은 말이 있다.
어느 선사에게 누가 물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
“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도 닦는 게 그런 거라면, 아무나 도를 닦고 있다고 하겠군요.”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
(한형조 번역)
먹기와 잠자기는 누구나 다 언제나 행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비근한 일이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고, 잠자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먹고 잠자기는 삶의 기본이요 일상 자체다. 한데 우리는 이 너무나 일상적인 먹기와 잠자기를 소외시키고 무엇을 ‘위한’ 도구로 삼을 뿐 그 자체를 누리지 못한다. 삶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일임에도 익숙한 습관처럼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갈 뿐인 것이다.
사실 밥 먹는 일만 놓고 봐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부터가 내가 얼마를 먹어야 배가 차는지를 모르고 산다. 언젠가 통도사에 들러 점심공양을 하는데 얼마만큼 먹어야 내 배가 차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았다. 큰 대야마다 밥과 김치며 국을 담아놓았는데, 제각각 식기를 들고는 대야의 음식들을 자유롭게 퍼고 떠서 먹도록 되어 있었다. 한데 문기둥에 큰 글씨로 “밥 한톨도 남겨선 안된다”는 경구가 써붙여져 있었다. 그 순간부터 움찔움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식기에 밥을 담을 때도 국을 풀 때도 담았다가 덜었다가, 밥을 먹을 때도 밥이 남을까, 국이 남을까, 반찬이 남을까 내내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니 어찌 밥맛을 느낄 틈이 있었으랴.
그날에야 반백년이 넘도록 하루 세끼씩 꼬박꼬박 먹고 살면서도, 밥과 반찬을 마음껏 먹되 남김없이 먹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처음으로 뼈저리게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껏 먹어라”는 자유에 덧붙여 “깨끗이 다 먹어라”는 책임이 함께 부과되었을 때 나는 그 자유와 책임 사이에 끼어서 식사시간 내내 불편했던 것이다. 흰머리가 그득한 중늙은이가 되도록, 밥과 반찬을 적절히 섞어가면서 식사를 즐기기는커녕 얼마를 먹어야 제 배가 찬다는 정량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밥을 제대로 먹는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님을 증거한다. 거꾸로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렀으되 내가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태이기도 하다. 매일매일 행하는 짓, 아니 ‘나’를 존재하도록 만드는 기본 동력인 먹고 자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누리지 못한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지금 ‘나’의 현실태인 것이다.
배운다는 것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먹고, 마시고, 잠자기)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누리고 사는 것을 배우는 일부터가 공부길이다. 무엇을 ‘위하여’ 먹지 않고, 내일을 ‘위하여’ 잠자지 않고, 먹을 때는 먹음 자체가 되고, 잠잘 대는 잠자기 자체가 되는 법을 배워서 익숙해지는 것이 공부의 급선무가 된다. 그 다음에라야 선생질도 아비 짓도 바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을 위하지 않고 그 자체(아비든, 선생이든)를 오롯이 구현함이란, 또 상대방을 나를 ‘위한’ 수단으로 삼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은 선생을 위해 존재하는 피사체가 아니며, 자식은 아비를 위해 존재하는 종속물이지 않을 때라야 상대방의 존재의미가 온전하게 피어난다. 나아가 대상이 일(업무)일지라도 마찬가지이리라. 공자가 업무를 뜻하는 사(事) 자 앞에 공경한다는 뜻인 경(敬)을 붙여서 경사(敬事)라느니 집사경(執事敬)이라는 표현을 거듭하는 까닭도, 일조차 활물(活物)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연이야 일러서 무엇 하리. 산과 숲, 물과 강, 천지자연은 결코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닌 것이다. 이들은 인간과 함께 더불어 세계를 구성하는 어엿한 주인공들이다. 그러기에 공자는 자연물들을 취하되 남용은 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하여 물고기를 잡을 때도 “낚시질은 하되 그물질은 하지 않았으며, 잠자는 새는 쏘아 맞추지 않았다”고 하였다. 사람도 동물인지라 남의 살을 먹을 수밖에 없으나 그물질을 해서 넘치도록 생명을 잡지는 않았고 또 새들에게는 도망갈 길을 틔어 주는 것을 생물에 대한 예의로 여겼던 것이다.
나를 위하여 자연물을 사물화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나를 자연물을 섬기는 도구(이데올로그로서의 자연주의자)로 만들지 않는 사잇길에 공자의 생태주의가 깃든다. 요컨대 공자의 생명과 삶에 대한 자세는 ‘위하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위하여’는 결국 너와 나를 소외시키고 만다. ‘위하여’에는 상대를 수단이나 도구로 보는 눈길이 탑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자연이나 일조차)을 어엿한 주인공으로 영접할 때만 서로는 서로에게 꽃송이로 피어나는 것이다.
한데 일상을 일상으로 느끼면서 살아가기가, 일상 속에서 그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게 문제다. 열쇠는 ‘눈’에 있는 것 같다. 심드렁하게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비상하게’ 재발견할 때라야만 일상은 다시금 일상으로서 새로이 다가오리라. 『중용』에서 말했듯 “누구나 먹는 밥이지만 참맛을 제대로 느끼며 먹는 사람이 드문 것”이기에 그렇다. 공자가 매일 먹는 밥 맛을 새롭게 느끼면서 먹을 수 있었기에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었던” 것이지만, 우리로선 매일 먹는 밥(일상)에 브레이크를 걸어 밥 자체를 낯설게 바라보는 눈이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눈으로 일상을 재발견하는 법을 배우기가 참된 공부의 첫걸음이 된다.
공자가 스스로를 두고 호학(好學), 곧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것도 딴 것이 아닐 것이다. 또 『논어』 첫장을 “배우고 또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으랴”라며 배움과 익힘으로부터 문을 연 까닭도 일상을 재발견하는 법을 배우고 익힐 때라야 새로운 눈을 얻고 또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면 재발견이란 어떤 것일까. 나의 배경으로나 여기고 여태 심드렁했던 산과 들이, 혹은 내내 당연시하며 시큰둥하니 보아 넘겼던 학교 가는 길이, 또는 그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침과 저녁나절이 한순간 ‘딱!’ 뒤통수를 치면서 낯설게 돌출하는 체험을 통과하는 순간이 일상을 재발견하는 때다. 세상을 관찰하는 나, 세상의 중심이던 나가 아니라, 문득 나를 둘러싼 시공간과 주변 풍경이 거꾸로 주인공이 되는 전도된 체험을 통과하기다. 이때가 재발견의 순간이다. 이런 때는 어떤가.
공자가 개천가에서 물을 보고 말했다. “이렇구나. 흘러가는 것이!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흐름이여.”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개천의 물이란 본시 그냥 흘러가는 것이거니.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던 공자에게 어느 날 물 스스로 흘러가는 사실 자체가 낯설고 새로운 광경으로 확 덤벼든 것이다. 공자는 순간 개천을 재발견한 것이다. 풍경처럼 존재하던 개천의 물이 어느 순간 자연의 주인공이 되어 불끈 앞으로 돌출하고 도리어 그간 세계의 주인공이던 ‘나’는 물가에 선 손님으로 쪼그라드는 뒤집히는 체험을 해버린 것이다. 고작 개천에 불과했던 물 흐름이 갑자기 천지자연의 ‘자연스러움’을 체현하고 있음을 목도한 것이다. 우주의 중심이 나(사람)가 아니라 저 흘러가는 물임을, 물속에 자연의 진리가 흐르고 있음을 문득 깨닫고 토로한 것이다. “흘러가는 것이 저럴진저. 밤낮을 가리지 않음이여…”
확장하면 하느님이 수천만년 동안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이토록 성실하게 운행함에 거기 온갖 생명이 싹을 피우고 기르고 또 열매 맺어 만물이 화육함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의 주인공은 나,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요 하느님이라는 각성이다. 혹 이것이 공자가 나이 오십에 획득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경지가 아닐까? 여하튼 공자는 흐르는 물속에 든 하느님의 존재를 읽어내고, 도리어 사람이란 자연의 주인공이 아니라 자연에 깃들어 사는 한 미물임을 통절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개천가에서 토로한 공자의 각성이야말로 배움의 절정이다. 덧붙여 이렇게 토로한 것이리라. ‘지혜로운 자라야만 물을 즐길 줄 아는 법(知者樂水)’이라고.
역시나 오늘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는 물이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다. 저 옛날 신라시대 최치원이 신발을 벗어놓고 자연 속으로 스며들 때도 그러하였고, 또 지난여름에도 그러하였듯 지금도 그렇게 흘러내릴 것이다. 내가 물을 보든지 말든지 물에겐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홍류동 계곡물도 공자의 개천과 똑같이 ‘제 스스로(自) 그러하게(然)’ 흘러내릴 따름인 터다. 내가 계곡을 찾아와 볼 때를 기다렸다가, 내 사진의 배경이 되기 ‘위하여’ 존재하고 있음이 아닌 것이다. 노자도 말한 바 있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 “하늘땅 곧 자연이 어찌 인간을 ‘위하여’ 존재할 것인가”라고. 저 물은 제 스스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지 어찌 ‘인간을 위하여’ 흘러가는 것이랴, 라고.
도리어 계곡물이야말로 내내 흐르고 흘러 천지자연을 구성하는 한 주인공이라면, 나는 고작 그를 잠시잠깐 만나고 돌아올 뿐인 것이다. 홍류동 계곡에게 나는 손님일 따름이다. 한데도 우리는 계곡에다 상수원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강을 운하라고 부르고, 바다를 영해라고 구획한다. 강을 풍경으로 밀어붙이고, 강을 용도로 대상화하며, 바다를 도구로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하천을 ‘관리한다’고 하고, 강을 ‘정비한다’고 하면서 물밑을 파내고 물가를 시멘트로 처바른다. 제 먹는 양조차 옳게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착각을 일삼는 나를 깨우치고, 도리어 풍경으로 소외시켰던 상대를 섬기는 것이 자연(진리) 속의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길이다. 여태 보고 들은 것을 상식이요 진리로 여겼던 ‘나’ 중심의 생각을 뒤집어 ‘나’를 의심하고 도리어 나의 배후에 웅크리고 있는 자연이 활발하게 살아 숨쉬는 체험을 하는 것이 배움이다. 그리하여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삶임을 제대로 느끼고 익히는 것이다.
이 뒤집어보기 체험(배움)이 몸에 익을 때, 기쁨이 온몸을 휘감으리라고 공자는 전망한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으랴”라는 말은 너(자연)가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세계의 주인공임을 깨닫는 순간 내 속에서 충일한 기쁨이 터져나온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논어』는 뒤집어보기, 나를 중심으로 세상보기에 길들여졌던 눈을 뒤집어서 거꾸로 세상을 보도록 가르치는 책이다.
극기복례, 발효의 과정
하면 어떻게 공부해야 일상을 일상으로서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대학』의 구절을 빌려 다시 질문하자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 심드렁한 나날을 날마다 새롭도 또 날마다 새롭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자는 극기복례의 길을 제안한다.
제자 안연이 인을 물었다.
공자, 말씀하시다. “극기복례(克己復禮)라, 단독자로서의 나를 이겨내고 상대방과 더불어 함께하는 순간 인(仁)이 되지. 단 하루라도 극기복례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문득 인(仁)으로 바뀔 거야. 그 변화는 나로부터인 게지, 상대방으로부터가 아님이랴!”
극기복례는 우리에게 낯익은 말이다. 극기란 “나를 이긴다”는 뜻인데, 여기 나[己]란 상대방을 수단으로 삼으려는 나, 흐르는 물을 사람을 위한 용도로 삼는 나를 뜻한다. 보고듣는 감각에 사로잡혀 너와 나를 구분짓고 너를 나의 도구로 삼는 나, 곧 에고(ego)덩어리가 기(己)다. ‘극기’란 에고를 부수고 툭 트인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손을 내미는 과정을 말하고, ‘복례’란 너와 나의 경계가 툭 트이면서 ‘우리’로 승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복례의 예(禮)는 리바이어던으로 몸을 바꿔 사람을 잡아먹던 조선말기의 경직된 의례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예란 상대방을 세계의 주인공으로서 영접하는 길들을 말한다. 너와 내가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길이 예다. ‘복례’에는 ‘함께 더불어 살기’가 사람의 본래적 가치라는 뜻이, 더불어 살 때라야만 사람의 사람다움이 드러난다는 생각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복례의 복(復)에는 현재 나(에고) 중심의 세계를 벗어나 ‘우리’의 세계로 되돌아가자는 지향성이 들어있다.
복례가 지향하는 세상은 ‘위하지 않는’ 곳이다. 너를 위하여 나를 소모하지도 않고 나를 위하여 너를 수단화하지 않는 세계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준다면 그건 이웃으로서 그냥 주는 것이지, 반대급부를 예상하고 주는 것이 아닌 곳이다. 주면 주는 것으로 끝나고, 받으면 받는 것으로 끝나는 세계다. 만일 그대가 나를 ‘위하여’ 무엇을 준다면, 받은 나는 얼마나 부담스러울 것인가. 부담감은 미안함으로 변하고 미안함은 상대가 나를 지배하도록 만드는 빌미가 될 수 있다. ‘위하여’ 논리의 무서움은 지배복종이라는 권력세계로 너와 나를 끌어가 끝내 ‘우리’를 파괴한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이 ‘위하여’ 논리의 속내다. 공자가 당시 정직한 사람으로 알려진 ‘미생고’의 처신을 두고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고 비난한 까닭도 이 때문이다.
공자가 말했다. “누가 미생고를 일러 정직하다고 했던고! 누군가 식초를 얻으러 왔는데, 이웃집에 가 빌려다 주었다더군.”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之.”)
식초는 우리에게 간장이나 된장처럼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갖추고 사는 필수품이다. 그러니 제 집에 없으면 이웃집에서 빌려다 줄 것이 아니라, 그냥 없다고 하면 그만이다. 그 사람이 또다른 이웃집에 가면 얻을 수 있으므로.
공자가 미생고를 ‘바르지 않다’고 비난한 것은 그의 처신에서 ‘위하여’의 굴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웃집에서 빌려서까지 식초를 얻어주는 것은 너와 나를 거리낌 없는 ‘우리’로 만들려는 노력이 아니다. 도리어 너와 나를 구별짓고 나의 속(가난함 같은 것)을 상대에게 감추고, 상대를 위함으로써 보상(명성)을 바라는 소외와 차별의 씨앗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참된 선물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받는다는 것(나로서는 준다는 것)조차 잊도록 배려하는 것이지, 이웃에서 얻어주면서까지 부담을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라 관계를 해치는 독이다. 상대를 ‘위하여’ 주는 순간, 흔하디흔한 식초는 권력의 도구로 타락하는 출발점에 서게 된다. 이 대목에서 모스의 『증여론』 독후감은 인용할 만하다.
실제로 원시부족들이 선물하는 장면들 중 비슷한 장면들이 있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에게 무언가를 선물할 때 그들은 그것을 내버리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면 다른 부족이 그것을 집어 들고는 횡재라도 한 양 즐거워한다. 여기에 선물하는 자의 배려가 있다. 받는 자가 횡재했다고 느낌으로써 아무런 부담 없이 그것을 쓰도록 주는 자가 배려하는 것이다.
- 고병권,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그린비, 2007년) 79쪽
복례의 꿈속에는 재화가 이익의 도구가 되기 이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증진하는 한 도구로 순기능하던 때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는 듯하다. 상대방을 나와 똑같은 주인공으로 배려하는 세상에의 꿈이다. 하나 이 꿈이 어찌 복고적이기만 하랴. 공자가 “극기복례가 곧 인(仁)이 된다”라며 수제자 안연에게 제 속을 드러냈을 때, 이미 그의 손가락은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공자는 몸소 친구와의 사귐 속에서 자기 꿈을 실현하기도 하였던 것이리라.
친구가 죽었는데 몸을 누일 데가 없으면 공자는 말했다. “우리 집에다 모시자”라고. 한편 친구가 준 선물은 비록 그것이 값비싼 말과 수레일지라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고맙다’라는 인사 한마디에 친구의 선물(값비싼 선물일수록)은 ‘위하여’ 논리 속으로 빠져들고 그 인사 한마디로부터 내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마음속의 그림자는 부담감으로 또 미안함으로 변질되다가 끝내 친구 사이가 상하관계로 변질될 씨앗이 피어나게 된다. 그러니까 위하지 않을수록 사람답고 또 가까운 사이인 것이요, 위할수록 거리가 멀어지고 또 상대를 소외시키는 짓이 된다. 이 벌어진 틈새에 권력이 끼어드는 것이다. 이로부터 내가 너의 도구가 되거나, 네가 나의 수단이 되는 지배복종 관계의 문이 열린다. 한편 죽어버린 친구는 나의 배려에 전혀 반응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신을 내 집에 안치한 것은 그를 ‘위하여’ 한 일일 수가 없다. 위함이 없이 해맑은 사람대접, 이것이 공자의 지향하는 예의 세계, 극기복례의 고향임을 헤아릴 수 있겠다.
‘참된 나’는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즉 ‘우리’가 될 때라야만 진면목이 드러난다. 내 등 뒤에는 수많은 타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내 몸뚱이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요, 음식은 농부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나’는 학생들과 관계 맺고 있기도 하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들이고
나의 아들의 아버지고
나의 형의 동생이고
나의 아내의 남편이고
나의 집의 가장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들이고
아버지고
동생이고
형이고
남편이고
가장이지
오직 하나뿐인 나는 아니다
- 김광규, 「나」 (부분)
그렇다. 상대를 아버지로, 아들로, 형으로 그리고 학생으로 응접할 때 그와 나는 문득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우리’로 전환된다. 복례란 상대를 나와 동등한, 그러면서도 나와 또다른 주인공으로 영접할 때 ‘우리’로 발효하는 과정이다.
극기복례는 생태적 관점에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이 과정은 꼭 콩이 소금을 받아들여 된장으로 발효되는 과정과 닮아 보이기 때문이다. ‘기(나)’는 콩에 비유할 수 있겠고, 극기는 콩이 몸을 열어 소금을 받아들이는 고통의 과정에 비할 수 있겠다. 또 복례의 복(復)은 콩이 소금을 받아들이고 소금은 콩으로 녹아들어 된장이 되는 발효과정에 비할 수 있겠고, 복례의 례는 소금과 콩이 어울려 새로운 물질인 된장, 곧 ‘우리’로 승화된 경지에 이름과 같아 보인다.
사실 콩에게 소금은 적대적일 만큼 타자다. 콩이 자기와 적대적이기조차한 소금에게 자신을 열어 영접할 때, 즉 담담하게(소금을 위하지도 않고, 또 저 자신을 위하지도 않고) 받아들일 때 그제야 콩은 콩을 벗어나 된장이라는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 발효라고 쉽게들 말하지만 실은 소금기에 섞이는 콩의 살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울까. 소금인들 제 몸이 녹아서 사라지는 과정인데 어찌 섞임이 쉬울 수 있으랴. 이 변화의 고통을 알기에 공자는 극(克)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였으리라.
그러나 만일 콩이 저 자신을 단독자로 유지하려고 소금을 영접하지 않는다면, 혹은 제 문을 닫고 상대를 고작 자신의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면 머지않아 콩은 똥이 되고 만다. 썩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콩이 소금을 영접할 때는 된장으로 발효할 기회를 얻지만, 이를 거부하고 홀로 외돌토리로 자기애에 빠져 살기를 고집하면 곧 똥이 된다는 이 절박함은 사람관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사람이 상대방을 또다른 주인공으로 영접할 때만이 사람다움(너와 나가 변모한 우리)을 이뤄내지만, 만일 상대방을 나(에고)의 확장수단으로 삼거나 자기애의 목표를 위한 도구로 삼을 때는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경고로서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극기복례의 과정은 자체로 생태적이라고 할 만하다.
공자의 생태정치학 - 내가 변하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
요컨대 “단독자로서의 나를 극복하고 상대방과 더불어 하는 순간 인(仁)이 되지. 단 하루라도 극기복례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문득 인(仁)으로 바뀔거야!”라는 구절은 “내가 변하는 순간, 세상이 바뀐다!”라는 말로 재번역할 수 있다.
공자사상의 핵심어 인(仁)이란 곧 ‘함께 더불어하기’다. ‘함께 더불어하기’의 원동력은 “그대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내가 있기에 네가 있다”라는 자기애에 가득 찬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로 전환하는 순간, 평화의 길이 툭 열린다. 공자는 이 전환의 극적인 순간을 “단 하루라도 극기복례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문득 인(仁)으로 바뀔 거야. 그 변화는 나로부터인 게지, 상대방으로부터가 아님이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태 ‘나’만이 존재하던 세계, 혹은 “내가 있음으로 네가 있다”라는 오만한 생각으로부터 “당신 곧 부모, 형제, 농부, 친구가 있기에 겨우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순간 ‘함께하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다움이란 결코 홀로, 따로, 눈에 보이는 사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다움이란 너와 나 사이 어디쯤에 있는데, 그것은 너를 나의 대상이나 수단이 아니라 도리어 네가 있음에 내가 존재함을 깨닫는 순간 문득 드러난다. 노랫말을 빌자면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김남조 시인)라며 손을 내밀어 그대를 영접하는 순간에 피어난다. 그 꽃송이의 이름을 따로 인(仁)이라 부를 따름이다.
하면 공자에게 정치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위하여’ 논리를 막고 그대가 있음에 내가 존재하는 ‘함께 더불어’의 세계로 전환시키는 것이 정치의 할 일이다. 여기가 덕치의 세계요, 또 여민동락의 세상이며, 극기복례가 실현되는 마당이다. ‘위하여’ 세계에서 너는 나의 수단이 되고 나는 너의 수탈자가 되지만, ‘함께 더불어’ 세계 속에서 너와 나는 우리로 발효되고, 또 동식물, 산과 강, 나아가 일마저도 물질덩어리가 아닌 이 세계의 또다른 주인공으로서 대접받는 세상이 된다. 생태정치가 이뤄지는 곳이 여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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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배병삼
영산대 학부대학 교수. 정치사상 전공. 저서로 『한글세대가 본 논어』, 『풀숲을 쳐 뱀을 놀라게 하다』,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고전의 향연』(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