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나비가 소개하는 에세이는, 아이들에게 시를 선물하는 안준철 교사의 이야기입니다. 교직생활 20년을 훌쩍 넘겼지만 ‘나는 벌거벗은 진실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가?’라며 끊임없이 교사로서의 자기 자질을 묻고 시험하는 안 교사의 교직생활에는 권태도, 무기력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안 교사는 말합니다. ‘좋은 교사=무능한 교사’ 취급 받는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하고 느리게’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쑥스럽게 고백합니다. “이제 교사로서 내 꿈은 사랑의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아이들이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요. 안 교사와 아이들의 ‘사랑 노래’ 세 편을 함께 나눕니다. - 나비
2% 부족한 아이들과의 사랑
서러움에 겨워 잠에서 깰 때가 있다. 그리움 같기도 하고 배고픔 같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후회스러움이나 죄의식 같기도 한 일종의 결핍감은 내가 느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다. 찬 새벽 명치끝에서 전해져 오는 서러운 감정만큼 나를 안심시키는 것도 없다. 행복감이나 자기존중감에 사로잡혀 있는 어떤 순간보다도 2%가 부족할 때 나는 내가 안심이 된다. 2%가 부족한 그 순간은 속옷 바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시가 써지는 창조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내와 놀이 삼아 짓던
호박 농사 깨 농사 모두 끝나고
무성하던 잡풀마저 다 스러진 밭두렁에
지상에서 더는 고울 수 없는
산구절초 몇 송이
선연하게 피어 있다
나는 알겠다
저 꽃을 피운 것은
햇살도 바람도 아니라는 것을
꽃을 피운 것은
무슨 그리움 같은 거
무슨 배고픔 같은 거
어두운 땅 속에서
햇살을 그리는 마음이
바람에 살이 닿고 싶어
몸을 흔들어 대던 그 마음이
해마다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졸시, 〈결핍〉 부분
나를 닮아서인지 학교에도 2% 부족한 아이들이 있다. 화초에 물을 주듯이 나름대로 사랑을 쏟아 붓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방식으로 그 부족한 사랑에 반응하면서도 늘 2%가 부족하다. 초기의 결핍이 너무 컸던 탓이리라. 그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 역시 2%가 부족하다 보니 다 큰 어른이 되어 볼썽사납게 아이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나와 말을 놓고 지내는 두 아이가 있다. 나야 제 선생이니 말을 놓는 것이 당연하지만 언제부턴가 녀석들도 덩달아 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이거 이렇게 쓰면 돼?”
“그래. 잘하네.”
“나, 정말 잘하지?”
교사와 학생 사이라기보다는 영락없이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아니,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고맙고 반갑다. 그만큼 나를 따르고 내게 마음을 주고 있다는 증표가 아니겠는가. 물론 그것이 나 혼자만의 즐거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두 아이와 나 사이에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학교에 손님이 오기로 되어 있어서 부랴부랴 도서관을 청소하고 있었을 때였다. 마침 두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으로 책을 빌리러 왔다. 반가운 마음에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하다 말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오늘 이쁜 짓 좀 할래? 밀걸레로 바닥 좀 닦아 주면 고맙겠는데.”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 번 더 똑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못 들었다는 알리바이라도 만들려는 듯 책장에 더욱 눈을 가까이 대고 있거나 서로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을 향해 다시 한번 이렇게 소리쳤다.
“애들아, 오늘 선생님 무지 바쁘거든. 선생님 좀 도와주지 않을래?”
잠시 후, 도서관에 있던 다른 한 아이가 마음을 바꾼 듯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며 책장에서 몸을 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걸레로 바닥을 닦고 있을 때까지도 두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내버려 둘까 하다가 뭔가 아쉽기도 하고 은근히 화가 치밀기도 해서 조금은 성급한 목소리로 아이들을 이렇게 다그쳤다.
“너희들 조금 귀찮다고 그동안 선생님과의 인간관계를 끊겠다 이거지? 좋아 마음대로 해. 지금 밀걸레를 들고 안 올 거면 내일부터 선생님 아는 체도 하지 마.”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내심 이 정도면 되었겠지 싶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두 아이가 대화를 멈추고 청소 상자 있는 쪽을 향해 가는가 싶었는데 그대로 도서관을 나가 버린 것이었다. 나는 당장 뛰어나가 혼을 내 주고도 싶었지만 선뜻 그럴 만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의 행동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다른 아이들도 아니고 그렇게 친하고 허물없이 지내던 아이들이었는데…….
슬프고 허망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터벅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당도해 보니 문을 열어 주는 아내의 안색이 나빠 보였다. 오랜 지병인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내의 건강도 늘 2%가 부족하다. 아내는 파리한 낯빛으로 간신이 입을 떼어 내게 말했다.
“여보, 미안해. 나 죽 좀 끓여 줄 거야?”
쌀죽을 끓이면서 줄곧 두 아이 생각을 했던 것일까? 나는 평소와는 달리 서두르지 않고 아주 천천히 죽을 끓일 수가 있었다. 약한 불에 다섯 번도 넘게 끓이고 한 번 더 물을 부었다. 그러자 다시 물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뜨거운 물에 쌀의 몸피가 터지면서 단단하던 경계가 허물어지고 물과 섞이어 죽이 되는 지루한 여정이 끝이 났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런 깨달음이 왔다.
‘보석 같은 쌀도 화탕지옥에 다녀와서야 비로소 밥 구실을 할 수 있구나! 그런데 아내는 그 밥조차 소화할 능력이 없어 더 부드럽고 더 짓이겨진 쌀죽을 나에게 요구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두 아이도…….’
학교에는 약한 불에 다섯 번을 끓이고도 한 번 더 물을 부어 부드러운 죽으로 만들어서 먹여야 비로소 소화를 시키는 아이들이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소화기능의 문제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더욱이 아무리 교사와 인간관계가 좋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선뜻하겠다고 나서기는 쉽지 않을 터.
내가 여러 차례 부탁을 했는데도 매정하게 외면하고 도서관을 나가 버린 것은 아이들이 나빠서가 아니다. 다만, 2%가 부족한 것일 뿐. 부족한 것을 채워 주기 위해 학교가 있고 교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로 인해 애간장이 다 탄다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교사의 일이다. 그걸 깜빡 잊곤 하는 것이 탈이지만 말이다.
다음 날 나는 두 아이를 만났다. 우린 5분가량 이야기를 주고받은 뒤에 서로 화해의 의미로 손을 잡고 환히 웃었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보니 내 잘못도 있었다.
“선생님이 내일부터 아는 체도 하지 말라고 해서 섭섭해서 나갔어요. 그래도 저희가 모른 체 한 건 죄송했어요.”그날 우리 사이에 마지막으로 오고간 말은 이랬다.
“선생님이 너희들 사랑하는 거 알아 몰라?”
“알아.”
네가 내민 사탕에서는 언제나 담배냄새가 났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는 푸른색이다.
어떤 먼지도 그것의 색깔을 바꾸지 못한다.
-기형도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가끔 교무실 통로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본다. 무슨 잘못을 했을까? 궁금해서 물어보면 지각을 한 아이도 있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린 아이도 있다. 사람을 얼굴이나 용모만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게 귀엽게 생긴 여학생이 담배를 피우다 걸려 기합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경우, 나는 그 아이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해진다.
혹시라도 내 표정을 통해 ‘네가 그런 아이란 말이지’라는 식의 함의가 담긴 묵언의 메시지가 전달될까 봐서 그러는 것일 게다. 내가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해도 벌을 받고 있는 아이의 처지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하긴 이렇게 노심초사(?)하는 나를 보고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학생을 두고 별 걱정 다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도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몇 해 전에 학교를 졸업한 현아는 한 마디로 좀 센 아이였다. 중학교 때 놀 만큼 놀아서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그런 것들이 싱겁게 느껴졌는지 말썽 없이 학교생활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그러다가도 가끔 한 번씩 일을 저지를 때는 세게 저지르곤 했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센 편이어서 선생님들도 웬만하면 현아와 충돌을 피하려는 눈치였다.
고백하자면, 나에게는 은근히 학생들을 못살게 구는 구석이 있다. 특히 공책 정리를 하지 않는 아이들은 내 등쌀에 못 배겨나 결국은 하게 된다. 고집 세기로 유명한 현아도 나한테는 두 손을 들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려운 고비 때마다 나는 케케묵은 사랑 타령을 했다. 너를 사랑하니까 너를 포기할 수 없다는 식으로. 그것이 통하는 곳이 학교였다.
하루는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가는 길에 현아를 만났다. 가만 보니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다. 현아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아이의 손에는 사탕이 쥐어져 있었다. 물론 그 사탕은 나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 뒤로도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었다. 받기만 하는 것이 미안해서 사양하려고 하면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주먹으로 마구 내 등짝을 내려치기도 했다. 아이의 폭력(?)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사탕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아가 내민 사탕에서는 늘 담배 냄새가 났다. 종이를 벗기고 사탕을 입에 넣으려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다. 그 사탕 종이에서 나던 담배 냄새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역겨운 담배 냄새가 나는 종이를 곧바로 쓰레기통에 버리지 못하고 몇 번 더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 보기도 했다.
현아가 나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 고마웠고, 사람에 대한 깊은 정이 있고 예의를 아는 아이를 나도 사랑하고 존중해 주고 싶었다. 역겨운 담배 냄새까지도 말이다. 물론 나는 현아가 담배를 끊기를 바랐다. 건강에도 좋지 않고 학생 신분에도 맞지 않는 일이어서 몇 차례 담배를 끊을 것을 종용하기도 하고 마침 학교에서 운영 중이던 금연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독려도 해 보았지만 그리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담배를 끊지 않는 한 네가 준 사탕을 받을 수 없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현아는 내게 생일 시를 써 달라고 했다. 생일 시는 내가 담임을 맡은 아이들에게만 써 주었던 터라 현아는 그것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현아의 청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현아에게 생일 시를 써 준다면 다른 아이들도 써 달라고 할 것이 뻔하고, 그것을 거절했을 때의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도 현아는 복도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사탕을 쥐여 주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나는 녀석의 생일날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에게는 꼭 비밀로 하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고 점심시간에 급조한 생일 시를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런데 생일 시를 받고 날아갈 듯 기뻐하던 현아의 얼굴 표정이 금세 일그러졌다. 바로 이 대목 때문이었다.
‘네가 내민 사탕에서는 언제나 담배 냄새가 났지.’
현아는 정말 실망했는지 내게 눈을 흘기며 이렇게 말했다.
“좀 예쁘게 써 주지 않고 이게 뭐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현아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한 아이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 대목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공책 정리 안 한다고 늘 못살게 군 선생을 미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사탕을 손에 쥐여 주려고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복도 저편에 매복했다가 나를 급습하곤 했던 현아! 그 가슴 따뜻한 제자가 지닌 아름다움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현아는 흡연 학생이 아닌, 정이 깊고 가슴 따뜻한 제자로 남아 있다. 먼지가 살짝 내려앉은 푸른 종이 같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걸린 학생에게 교칙을 적용하여 벌을 주는 것은 불가피할 수도 있다. 어린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적절한 지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만으로 수치심을 유발하기 위해 하루 종일 교무실 통로에 꿇어앉히는 것은 심각한 인격 침해임이 분명하다. 법적 절차나 학부모의 동의도 없이 임의로 학습권을 박탈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성서는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라고 가르친다. 내가 현아에게 배운 것도 바로 그 사랑이다. 받은 사랑을 조금밖에는 돌려주지 못하고 현아를 떠나보낸 것 같아 못내 아쉽고, 그래서 더욱 현아가 보고 싶다. 지금쯤 애기 엄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지금이라도 현아가 원하는 예쁜 시를 써서 전해 주고 싶다. 어떤 시구로도 현아의 아름다운 내면을 표현해 낼 수는 없겠지만.
그 아이의 싹수가 노란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도 손님처럼 찾아온 슬픔을
아침이 올 때까지
잘 대접하여 보내 주었다.
-졸시, 〈손님〉 중에서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눈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착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가끔은 내가 진실하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울기도 하니까 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 문제로 마음이 상해서 울 때도 많다. 그때만큼 막막하고 억울하고 슬픈 적도 드물지만, 가끔 나 자신이 싫어지거나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을 때 나를 구원한 것은 아이들 때문에 울었던 기억들이다. 돌이켜 보면, 내가 고통을 느끼거나 슬퍼 있었을 때만큼은 죄악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손님처럼 가끔 찾아오는 아픔이나 슬픔을 박대할 일만은 아니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종종 눈물을 보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심 쾌재를 부른다. 억지로 울고 싶다고 울어지는 것도 아닌데 때를 맞추어 나오는 눈물이 반가운 것이다. 아무리 문제가 많은 아이라도 교사의 눈물에는 약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헌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런 희망마저 없는 경우도 있다. 죄의식이 없는 아이에게 죄의식을 심어 주는 일만큼 막막한 일이 또 있을까? 너무도 막막해서 울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준 적이 있다.
“인마, 너 대신 내가 운다!”
흔히 자라나는 아이들을 ‘싹’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싹수가 노랗다’라는 말이 있다. ‘싹수없는 녀석’이란 말도 있다. 유감스럽게도 ‘싹’에 관한 비유는 대개가 이렇듯 부정적이다. 학교에서도 “싹수가 노란 놈들은 모가지부터 잘라 버려야 해!”라는 극단적인 언어 표현을 종종 듣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되묻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 아이가 싹수가 노란 것을 어떻게 알지요?”
시비를 걸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정말 궁금한 것이다. 아이의 머리 부분에 노란 싹이 돋아나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정말 그런 것을 잘 아는 비상한 능력이 있다면 그는 상담 전문가가 되면 좋으리라. 암도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아이의 인격적인 결함을 미리 알아서 적절한 조처를 취해 준다면 아이를 위해서나 학교를 위해서나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아이의 노란 싹수를 식별하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내 앞에 있는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할 때도 많다. 물론 그것은 내 능력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숙함’은 아이들의 본질이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미숙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싹수가 노랗기 때문에 그런 건지 평범한 눈을 가진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니 일단 골고루 물을 줄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두 아이가 학교를 떠났다. 이른바 ‘사고’를 쳐서 전학을 전제로 한 퇴학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죄명은 금품 갈취였다. 약하고 착해 빠진 급우를 골라 신변 보호를 해 주는 조건으로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받은 것이었다. 나는 두 아이의 담임 자격으로 그들의 잘못을 가리고 벌을 내리는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두 아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육하원칙에 따라 낱낱이 이야기할 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 아이의 모친께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사실은 나도 간신히 울음을 참고 있던 참이었다. 아이를 바로잡아 주지 못한 책임감과 함께 이제 막 양심의 눈이 떠진 아이의 손을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아팠던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모친처럼 드러내 놓고 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킨 채 허공으로 눈을 돌리다가 한순간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도 속울음을 우는지 눈이 젖어 있었다. 눈물의 삼중주라고나 할까?
나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만약 퇴학 처분이 내려진다면 이 아이는 어떤 태도를 보일까? 전날 나는 그 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만약 학교에서 널 퇴학시키면 네 마음에 학교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니?”
“조금은요.”
“그래? 그럼 네가 괴롭혔던 아이들에 대해서는? 그들 중에서 네 이름을 댄 아이들을 찾아내서 어떻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니?”
“그런 마음은 없어요. 그땐 몰라서 그랬지만 지금은 제가 잘못한 거 알고 있어요.”
“그래. 그래야지. 근데 네가 잘못한 것을 깨달은 게 언제부터야?”
“선생님이 저 때문에 우셨잖아요. 그때부터…….”
“그래. 고맙구나. 한 가지만 부탁하마. 난 널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하지만 잘 안 될 수도 있어. 그래도 학교를 원망하면 안 돼. 네가 잘못한 거니까. 그리고 이제 잘못을 깨달았으니까 된 거고. 무슨 말인지 알지?”
“예, 선생님.”
이런 대화가 오간 뒤였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난 아직 아이를 다 안다고 말할 수 없으니까. 그가 인격적으로 미숙한 아이인지, 아니면 이미 싹수가 노란 아이인지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으니까.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 아이에 대한 눈이 제대로 떠졌다. 그날 저녁 아이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급우들에게 사과하고 싶으니 하루만 더 학교에 가게 해달라고 간청을 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이는 급우들에게 울먹이며 진심 어린 사과를 했고, 슬픔이 복받치는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서 있는 동안 나 또한 아이들 몰래 속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바로 그때, 교실 어느 쪽에선가 손이 눈가로 가는 아이가 보였다. 가만 보니 그 아이 말고도 눈알이 벌게진 아이가 서너 명이 더 있었다. 그들 모두 평상시 행동이 썩 좋은 아이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싹수가 노란 아이들은 결코 아니었다.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에서 전재 (안준철, 교육공동체 벗,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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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안준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저녁 산책하러 나가고 글을 쓰는 일이 주된 일과다. 이런 단순한 일상의 반복을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 특기라면 특기다. 그 덕분에 늘 행복에 겨워하다가도 문득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거야?” 하고 묻곤 한다. 그 물음은 “지금 아이들은 행복한가?”라는 물음과 잇대어 있다.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교직을 선택한 일과 제자들의 생일 때마다 시를 써 준 일이다. 교사로서 별다른 재주가 없어도 한 아이의 고유한 생명에 대한 설렘만 잃지 않는다면 교육의 실패란 없을 거라는 다소 낭만적인 믿음에 아직도 푹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