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 오웰의 에세이 「행락지」("Pleasure Spots")는 1946년 1월 <트리뷴>지에 게재되었습니다. “인공적인 환경에서 공허한 쾌락을 추구하는 장소로서의 행락지(리조트)가 미래에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를 그리고 있는 이 글은 오웰의 자연관과 문명관, 그리고 예언적인 식견을 단적으로 드러내”줍니다(옮긴이). 60여년 전 인간 삶이 점점 기계화되고 있는 현실, 쪼그라든 인간의 의식세계를 우려한 오웰의 에세이는 지금의 “스마트” 한 세계에 대입해 읽어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오웰이 묻습니다. 여러분의 빈터는 안녕하십니까? - 편집자
몇 달 전에 반짝반짝하는 잡지의 몇 단락을 오려둔 적이 있다. 어느 여성 저널리스트가 미래의 리조트를 묘사한 글이었다. 그녀는 최근에 호놀룰루에서 얼마간 지냈는데, 그곳은 전쟁으로 인한 고난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 여객기 조종사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에다가는 온갖 창의력을 다 짜넣으면서, 지치고 삶에 굶주린 사람이 긴장도 풀고, 휴식도 갖고, 포커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사랑도 나누고, 이런 것들을 다 한꺼번에, 밤낮없이 즐겨서 생기발랄해진 다음,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곳을 아직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했다는 건 딱한 노릇이지요.” 그 말에 그녀는 ‘행락지’를 계획 중인 사업가를 그 얼마 전에 만났었던 게 생각났다. 그는 “경견競犬이나 댄스홀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는 행락지가 인기를 누리리라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그 사업가의 꿈을 꽤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몇 에이커1의 땅을 차지하는 공간을 구상 중이었다. 지붕은 자동개폐식이며(영국의 날씨는 믿을 만한 게 못 되기 때문이다), 공간 중앙엔 엄청나게 넓은 댄스플로어가 펼쳐져 있고, 바닥은 밑에서도 조명을 할 수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다. 둘레에는 다양한 편의 공간들이 여러 층에 배치된다. 높은 층에는 도시의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 바와 레스토랑이 들어서고, 1층에도 먹고 마실 수 있는 이런저런 공간이 있다. ‘스키틀 앨리’2는 곳곳에 있다. 초호礁湖를 닮은 풀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파도를 일으켜주는 곳이고, 또 하나는 느긋하게 즐기고 싶어 하는 이들을 위해 물이 잔잔하고 따뜻한 곳이다. 구름 없는 날에 지붕을 활짝 열어젖히면 햇살이 조명처럼 쏟아져 내려 풀장은 더욱 따뜻해진다. 풀장 가에는 줄줄이 놓인 침상에 선글라스와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누워 거대한 조명 같은 태양광 아래 선탠을 한다.
음악은 중앙 무대와 연결된 수백 개의 확성기를 타고 흐르며, 무대에선 춤곡이나 심포니 연주나 라디오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포착하고 증폭하여 널리 퍼뜨린다. 밖에는 자동차 1천 대를 주차할 수 있는 터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무료다. 다른 하나는 실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드라이브인 극장으로, 차들이 줄줄이 표를 끊고 들어와 정렬을 하면 거대한 스크린에 영화가 펼쳐진다. 유니폼 입은 남성 종업원들은 표를 확인하고 무료 시중과 물을 제공하며, 휘발유와 윤활유를 판매한다. 하늘하늘한 흰색 새틴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뷔페 메뉴와 음료를 주문받아 쟁반에 담아온다.
‘행락지’니 ‘리조트’니 ‘행락도시’니 하는 표현을 듣고 보니, 흔히 인용되는 콜리지의 시 「쿠블라 칸」3의 시작 부분을 떠올리지 않기가 어렵다.
쿠블라 칸은 ‘재나두’4에다
웅장한 행락궁을 지으란 명을 내렸다.
그곳엔 신성한 알프 강이
인간에겐 한량없는 동굴을 거쳐
볕 없는 바다로 흘러갔다.
둘레가 5마일의 두 배인 기름진 터를
담과 누각이 빙 둘러쌌다.
정원엔 빛나는 실개천들 휘돌아 나가고
향기 그윽한 나무들이 무성했으며,
산만큼이나 오래된 숲들은
햇살 가득한 초록 빈터를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콜리지의 상상은 전부 틀린 것으로 판명될 것이다. “신성한” 강과 “한량없는” 동굴을 끄집어낸 것부터가 벌써 잘못 짚은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업가의 수완이라면, 쿠블라 칸의 프로젝트는 사뭇 다른 게 되어버렸을 것이다. 동굴은 온도 조절이 되고 은근한 조명이 있도록 했을 것이며, 본래 바위인 벽면에 빛깔 고상한 플라스틱을 겹겹이 씌워 아랍식이나 유럽식이나 하와이식의 동굴 찻집들로 변모시켰을 것이다. 신성한 알프 강은 댐으로 막고 물을 데워 풀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볕 없는 바다는 바닥에 분홍빛 조명을 달고 그 위로 라디오를 하나씩 장착한 베네치아의 곤돌라가 다니도록 했을 것이다. 콜리지가 말한 숲과 “초록 빈터”는 깨끗이 밀어버리고 유리 지붕 있는 테니스 코트, 연주 무대, 롤러스케이트장, 아니면 9홀 골프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요컨대 “삶에 굶주린” 사람들이 바랄 만한 모든 게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앞서 언급한 리조트 비슷한 것이 지금 이 세계 전역에서 수백 군데는 계획되고 있거나 어쩌면 이미 지어지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정대로 다 완성될 것 같지는 않지만(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그렇다), 그것들은 분명 현대 문명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행락(쾌락)에 대해 갖고 있는 관념을 아주 충실히 대변해주고 있다. 그런 유의 관념은 초대형의 댄스홀이나 극장, 호텔, 레스토랑, 호화 유람선 같은 데서 이미 부분적으로 구체화된 바 있다. 호화 유람선이나 ‘리용 코너 하우스’5에 가보면 그런 미래의 낙원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다. 분석해보면, 그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아무도 혼자 있는 법이 없다.
2. 아무도 자기 힘으로 뭘 하는 법이 없다.
3. 어떤 종류의 야생 초목이나 자연경관도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4. 빛과 온도는 항상 인공적으로 조절된다.
5. 아무도 음악 소리를 벗어날 수 없다.
음악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데, 가능하면 모든 사람이 같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 음악의 기능은 생각과 대화를 막는 것이며, 만약 음악이 없다면 끼어들게 될 새소리나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 목적으로 이미 무수한 사람들이 라디오를 이용하고 있다. 영국의 아주 많은 가정에선 라디오를 그야말로 아예 끄지를 않으며, 이따금 조작하는 경우란 계속해서 경음악만 나오게 할 때뿐이다. 식사를 할 때에도 라디오를 줄곧 틀어놓고는, 음악 소리만큼 목청을 계속 돋우어 둘 다 제대로 안 들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여기엔 뚜렷한 목적이 있다. 음악은 대화가 심각해지거나 심지어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자체를 막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사람들의 말소리는 음악을 경청하지 못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생각이라는 끔찍한 것이 다가오는 것을 막는다. 이유는 이렇다.
조명이 절대 나가선 안 된다.
음악은 언제나 들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 자신이 어디 있는지 모를 테니까.
행복해본 적도 즐거워본 적도 없는,
어둠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귀신 나오는 숲에서 길을 잃었으니까.6
현대의 가장 전형적인 리조트가 무의식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자궁으로의 회귀라는 느낌을 갖지 않기가 어렵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혼자였던 적이 없고, 햇빛을 본 적도 없고, 온도는 언제나 조절되었으며, 일이나 음식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생각은 했다 해도 규칙적으로 계속 울리는 고동에 묻혀버렸던 것이다.
콜리지가 “행락궁”을 아주 다르게 상상하는 것을 보면, 그가 정원을 떠올리기도 하고, “깊고 신비로운 균열”7이 있는 동굴과 강과 숲과 산을 떠올리기도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요컨대 그는 ‘자연’이란 걸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을 찬탄한다는 관념 자체는, 빙하나 사막이나 폭포 앞에서 종교적인 경외심을 느낀다는 것은, 우주의 힘에 비해 인간이 왜소하고 미약한 존재임을 느끼는 것과 관련이 깊다. 달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그곳에 다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바다가 장엄한 것은 우리가 그곳을 무사히 건넌다는 확신을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꽃을 보는 즐거움도 그런 식의 신비감이 있기에 가능하다 할 수 있다(꽃에 대해 알 만한 건 다 안다는 식물학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원자탄을 쓰면 우리는 말 그대로 산을 옮길 수 있다. 심지어 극지방의 빙상氷床을 녹이고 사하라 사막에 물을 댐으로써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윙 음악보다 새소리를 더 좋아하는 데에는, 온 지표면을 인공 태양등이 넘치는 ‘아우토반’ 망으로 덮어버리기보다 여기저기 야생지를 좀 남겨뒀으면 하고 바라는 데에는 어딘가 감상적이고 반계몽적인 구석이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인간이 물질세계는 탐사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탐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 때문이다. 행락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 중 상당수는 의식을 파괴하려는 노력일 뿐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인간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면 인간으로서 잘 산다는 것이 단순히 일을 하지 않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등 아래서 녹음된 음악만 듣고 사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만이 다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에겐 온기가, 사회가, 여유가, 안락이, 안전이 필요하다. 또 고독도, 창조적인 작업도, 경이감도 필요하다. 그런 걸 알게 되면 인간은, 언제나 어떤 것이 자신을 인간적으로 만드는지 비인간적으로 만드는지의 기준을 적용하여 과학과 산업화의 산물을 선별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지고의 행복이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고, 포커를 하고,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한꺼번에 하는 데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울러 삶이 점점 더 기계화되는 현실에서 민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가, 옛것을 선호하는 감상적 취향에 불과한 게 아니라 십분 정당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삶에서 단순함의 너른 빈터를 충분히 남겨두어야만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의 수많은 발명품들(특히 영화, 라디오, 비행기)은 인간의 의식을 약화시키고, 호기심을 무디게 하며, 대체로 인간을 가축에 더 가까운 쪽으로 몰아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나는 왜 쓰는가』에서 전재 (조지 오웰, 한겨레출판, 2010)
1) 1에이커는 약 1,200평이다.
2) skittle alley. 볼링의 원조라 할 ‘스키틀스(skittles)’의 레인(lane). 스키틀스는 볼링보다는 규모가 좀 작으며 나무 핀 9개를 쓴다. 다트, 당구 등과 함께 영국 펍(pub)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누려온 놀이다.
3) 「Kubla Khan」(1816). 워즈워스와 함께 영국 문단의 낭만주의 운동을 주도한 시인이자 평론가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의 대표작 중 하나. ‘쿠블라 칸’은 몽고제국을 일으킨 칭기즈 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1215~1294)으로, 송나라를 쓰러뜨리고 원나라를 세워 황제(원 세조)가 되었으며, 도읍을 지금의 베이징인 ‘다두(大都)’로 정했다. 콜리지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 세조를 알현하고 세조의 고향인 몽고에 있는 여름 도읍 ‘샹두(上都)’에 가본 경험을 쓴 부분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이 시를 썼다.
4) 여름 도읍지 ‘샹두’의 유럽식 발음이 ‘사나두’ 또는 ‘재나두’(Xanadu)다.
5) Lyons Corner House. 1909년 런던에 문을 연 초대형 레스토랑으로, 체인을 점점 늘려나갔다.
6)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많이 활동한 20세기 대표 시인 W. H. 오든(Auden, 1907~1973)의 유명한 시 「1939년 9월 1일」 일부를 아주 조금 짜깁기한 것. 오든이 미국으로 건너간 해이자 2차대전이 발발한 해인 1939년에 쓴 시다.
7) “deep romantic chasm”. 앞서 인용한 콜리지 시의 바로 다음 행에 나오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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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조지 오웰 (Geroge Orwell, 1903~1950)
영국의 작가·저널리스트.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인도 아편국 관리였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인도 북동부 모티하리에서 태어났다. 첫돌을 맞기 전 영국으로 돌아와 명문 기숙학교인 세인트 시프리언스(예비학교)와 이튼(사립학교)을 졸업한 뒤 대영제국의 경찰간부로서 식민지 버마에서 근무(1922~1927)한다. “고약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경찰직을 사직한 뒤, 자발적으로 파리와 런던의 하층 계급의 세계에 뛰어들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르포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1933)을 발표한다. 1936년은 오웰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해인데, 그해 잉글랜드 북부 탄광촌을 취재하여 탄광 노동자의 생활과 삶의 조건 등을 담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을 썼고, 스페인에 프랑코의 파시즘이 발흥하자, 공화국편 민병대 소속으로 스페인내전에 참전하여 르포 『카탈로니아 찬가』(1938)를 펴내면서, 자신의 예술적?정치적 입장을 정리해나간다. 오웰의 대표작은 인생 후반기에 집필한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지만, 그 두 소설은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로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엄청난 양의 글을 쓴 그의 저술 중에서 빙산의 일각이라 할 만큼 적다. 오웰은 생전에 11권(소설 6권, 르포 3권, 에세이집 2권)의 책을 낸 것 말고도 수백 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를 썼는데(서평과 칼럼 등을 포함해서다) 그의 에세이는 예리한 통찰, 특유의 유머와 통쾌한 독설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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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이한중
전문번역가. 지속가능한 삶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연과 생태, 환경과 관련한 책을 주로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 『울지 않는 늑대』, 『인간 없는 세상』, 『핸드메이드 라이프』, 『너무 더운 지구』, 『지렁이』,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강이, 나무가, 꽃이 돼 보라』, 『나무와 숲의 연대기』, 『글쓰기 생각쓰기』, 『안 뜨려는 배』, 『작은 경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