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는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바보의 돌」을 에세이로 소개합니다. 진중권은 1500년을 전후해 그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그림들을 예로 들어 서구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읽습니다. 근대의 여명기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도 합니다. 이때 신을 향하던 인간의 시선이 인간 자신을 향하면서 인간 내면의 야수성 또는 광기가 인문주의자들의 중심 주제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저자는 보슈의 그림에서 당대 인문주의자들의 태도와 다른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보슈의 그림에 대한 미술사학자들의 도덕적인 독법이 ‘스투디움’이라면 저자의 직관적 느낌과 푸코의 독법은 ‘푼크툼’인 셈입니다. - 편집자
야외의 풍경 속에 펼쳐지는 수술. 머리에 고깔을 쓴 사람이 의사라고 한다. 오늘날 의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직업이나, 그림 속의 의사는 어딘지 어설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외과의의 전신은 이발사(이른바 ‘barber surgeon’)였기 때문이다. 이발관 앞 회전등 속의 푸른 띠와 붉은 띠는 정맥과 동맥을, 하얀 띠는 붕대를 상징한다고 하지 않는가. 의사는 메스로 환자의 머리를 절개하고 있다. 수사와 수녀가 이 장면을 물끄러미 구경하고, 오직 환자만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눈길을 그림 밖의 관객에게 던진다. 마치 자신을 도와달라는 듯, 그 시선이 절절하다.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우자(愚者)의 돌
“선생님, 돌을 제거해주세요. 제 이름은 루베르트 다스(Lubbert Das)랍니다.” 원형 포맷의 위아래로 환자가 의사에게 던지는 대사가 적혀 있다. 이로써 저 환자의 이름이 ‘루베르트’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루베르트는 당시 네덜란드 문학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특정인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바보’ 또는 ‘바보 같은 이’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에 가깝다고 한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는 메스를 들어 그의 머리를 절개한다. 메스에 베인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가 환자의 윗머리를 적신다. 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환자의 머릿속에서 ‘바보의 돌’을 제거하여 환자의 광기를 치료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여기서 ‘바보’란 머리 나쁜 사람이 아니라, 이른바 ‘광우(狂愚)’를 가리킨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광우라는 증상이 뇌 속에 박혀 있는 ‘어리석음의 돌’에서 비롯되었다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결국 그림 속의 의사는 이 속설을 과감하게 외과적 실천으로 옮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광기’를 물리적 대상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수술로 제거한다는 발상은 해괴하기 짝이 없다. 가령 머리 나쁜 사람을 가리켜 ‘돌머리’라 부른다 하여, 그 사람의 총기(聰氣)를 되살려주기 위해 그의 두개골을 열어 돌을 제거한다고 생각해보라.
이 속설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문학적 대구(對句)의 산물인지도 모르겠다. 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lapis philosophorum)’이 있다고 믿었다. 평범한 물질을 금으로 바꾸어주고, 늙은이를 젊은이로 되돌려주는 이 돌을 찾아내는 것이 연금술의 목표이기도 했다. ‘현자(賢者)의 돌’이 있다면, ‘우자(愚者)의 돌’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이 속설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나타나는 개념적 혼란의 진솔한 초상일 것이다. 연금술이 주술과 과학의 중간에 서 있듯이, 우석(愚石) 적출 수술 역시 주술과 의학의 경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광우 퇴치를 위한 시술
몇몇 미술사학자들은 이 그림이 당시 의료 관행의 묘사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저 수술은 허구로만(in fiction) 실행됐을 뿐, 실제로(in fact) 행해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가령 그림을 자세히 보자. 의사가 환자의 머릿속에서 꺼내든 물건은 돌이 아니라 꽃이다. 원형의 탁자 위에 놓인 것 역시 물 튤립인데, 히에로니무스 보슈(Hieronymus Bosch, 1450년경~1516년)가 살던 당시에 이 꽃은 ‘광기(=어리석음)’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로 보아 이 장면은 당시 의료 관행의 ‘사실적’ 묘사라기보다는, (보슈가 평소에 비판하곤 했던 교만·허영·사치 등과 나란히) ‘어리석음’이라는 또 하나의 악덕에 대한 ‘상징적’ 풍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슈의 시절에 실제로 저런 시술이 행해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이다. 그래서 몇몇 미술사학자들은 그런 시술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것이 진지한 의료 행위였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즉 “당시에 그런 시술이 종종 행해지긴 했지만 의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일종의 사술로서, 사회적으로도 몇몇 돌팔이들의 사기 행각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만약 이 해석이 옳다면, 보슈는 저 그림을 통해 광기를 치료해준답시고 환자의 두개골에서 돌을 꺼내는 트릭으로 우매한 대중의 등을 치던 사기꾼들을 풍자하고 있는 셈이다.
위의 두 그룹은 우석(愚石)제거술의 역사적 실존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지만, 그것이 진지한 의료 행위가 아니었다고 보는 점에서는 한 가지다. 하긴, 당시에는 병원균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고, 위생에 대한 관념조차 없었다. 제대로 소독도 하지 않은 그 더러운 이발소 도구로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도 과연 환자가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환자의 대부분은 수술 후에 뇌가 병원균에 감염되어 사망했을 것이다. 수술 받은 환자의 치사율이 높게 나타난다면, 당연히 요법의 실효성에 의혹이 제기될 터, 어떻게 그런 엉터리 시술의 관행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겠는가.
정신과 치료를 위한 천공술
하지만 보슈의 시절에 정신병 치료를 위한 두개골 천공(trepanation)이 의학계의 정규적 요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1 심지어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두개골 천공은 (머리에 외상을 입은 경우는 물론이고) 간질 발작이나 정신 질환을 치료하는 요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 의학서에도 이 요법이 수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라틴 유럽에 고대의 외과술을 부활시킨 루게로 다 파르마(Ruggero da Parma, 1170년경 활동)는 자신의 저서 『외과 실습(Practica Chirugiae)』에 이렇게 썼다.
광기(mania) 또는 우울증(melancholy)의 경우 두부의 상단을 절개한 후, 두개골을 관통하여 해독 물질이 밖으로 빠져나오게 해야 한다. 이때 환자는 사슬에 묶어야 하며… 2
심지어 이 요법으로 효과를 봤다는 기록까지 있다. 가령 옥스퍼드의 학자로 다양한 주제를 연구했던 로버트 버턴(Robert Burton, 1577~1640년)은 자신의 병력을 바탕으로 쓴 주저 『우울증의 해부(Anatomy of Melancholy)』(1652년)에서 이렇게 전한다.
검은 증기를 배출하기 위해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귀네리우스는 사부아의 한 귀족을 구멍을 뚫는 것만으로 치료한 바 있다. 구멍을 한 달 동안 열어놓음으로써 2년간 그를 괴롭혔던 우울증과 광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3
고고학적 발굴의 증거 역시 두개골 천공술이 아득한 구석기 시대부터 행해져왔음을 보여준다. 천공 시술을 받은 구석기 사람들의 두개골에는 구멍 주위로 뼈 조직이 새로 생성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는 조직 재생의 증거로, 두개골 천공이 반드시 환자의 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보슈의 시대에도 광기를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 천공이 실제로, 그것도 의학계의 정규 요법으로 진지하게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보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그림을 그렸을까? 엉터리 시술로 대중을 현혹하던 돌팔이들을 풍자하려고 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저 그림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즉 <야바위꾼>과 비슷한 주제를 가진 풍속화가 될 것이다. 저 어처구니없는 시술 자체에 대해서는 또 어떻게 생각했을까? 알 수 없다. 설사 두개골 천공이 당시에 진지한 요법으로 행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보슈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광우
미술사학자들은 대개 저 그림을 ‘악덕(=광기)에 대한 상징적 풍자’로 읽는다. 이는 도덕화하는(moralizing) 독법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광기(=광우)를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도덕주의적이었다. 중세인들은 광기를 객관적인 세계의 힘으로, 말하자면 사탄의 역사로 이해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광기를 인간의 주관적 속성으로, 즉 ‘인간이 자신과 맺는 관계’로 보았다. 그들에게 광기란 이성과 덕행을 통해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만 하는 인간적 악덕일 뿐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의 휴머니즘적 특성이 드러난다.
보슈 역시 이들 인문주의자들의 문헌에 영향을 받았다. 그것은 광우를 다룬 보슈의 또 다른 작품(<바보들의 배>)이 세바스찬 브란트의 저서를 그대로 차용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때문에 보슈의 작품을 브란트나 에라스무스의 정신에 비추어 해석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을 게다. 하지만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년)는 『광기의 역사(History of Madness)』에서 이런 일반적 해석과는 좀 다른 얘기를 한다. 그리고 이는 보슈의 그림에 대한 나의 직관적 느낌과도 일치한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에 관한 한 르네상스의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에는 무시할 수 없는 ‘분열의 선’이 존재한다.
그림과 언어가 동일한 광기의 우화를 동일한 도덕적 세계에서 표현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내 그것들은 … 서구의 광기에 대한 경험 속에서 나타날 거대한 분열의 선을 보여주면서 서로 다른 두 개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4
르네상스의 인간들이 신을 향하던 눈을 자신에게로 돌렸을 때, 그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린 것은 인간 내면의 야수성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갑자기 광우가 문학과 예술의 주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이 광기를 대하는 태도이다. 인문주의자들의 텍스트는 인간의 광기에 화들짝 놀라 그것을 서둘러 이성의 지배 아래 도덕적으로 가두려 한다. 반면 보슈의 그림은 어떤가? 온갖 기괴한 형상들로 가득 찬 보슈의 화폭은 광기가 맘껏 제 환상을 펼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는 듯하다. 그리하여 푸코는 말한다.
보슈, 브뤼헐, 그리고 뒤러는 무섭도록 경험에 철저한 관찰자였고 광기 속에 파묻혀 자신들 주위에서 포효하는 광기와 함께 어울렸으나, 에라스무스는 충분히 떨어져 위험하지 않은 거리에서 광기를 관찰했다. 에라스무스는 광기를 올림포스의 동산 위에서 관찰했다. 그가 탄성을 질렀다면 그것은 그가 신들의 그칠 줄 모르는 웃음을 가지고 광기를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5
광기의 매혹, 더 은밀한 매력
환상적 형상들은 원래 고딕 이전의 현상이었다. 가령 로마네스크 예술에는 온갖 기괴한 동물들이 등장한다. 고딕에 이르면 이 환상적 존재들은 일제히 사라진다. 이 시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장인들에게 “신의 창조 질서대로 그리라.”고 요구했다. 보슈의 화폭에서 기괴한 형상들이 부활한 것은 고딕의 몰락을 보여준다. 하지만 보슈는 그저 로마네스크를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니다. 중세의 장인들은 자신들이 그린 기괴한 존재가 지구상 어딘가에 실재할 가능성을 믿었다. 하지만 보슈는 자신의 형상들이 인간의 환상 속에서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현대의 초현실주의자에 가깝다.
신을 향하던 사람들의 눈이 다시 인간을 향하던 시대에 광우가 문학과 예술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필연적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갖게 된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한 것은 찬란한 이성만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어두운 광기도 있었다. 그러니 거기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광기는 인간을 매혹시켰다. 광기가 생성해내는 환상적인 형상들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들이 아니다. … 가장 지독한 정신착란에서 생겨나는 현상은 이미 존재의 본질 속에 비밀처럼, 접근할 수 없는 진리처럼 숨어 있었다. 사람이 광기의 임의적 특질을 노출시킬 때, 그는 세계의 어두운 필연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릴 때, 그 꿈속에서 어슬렁거리는 동물은 사실 그의 본성이고, 지옥의 무자비한 진리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 르네상스는 자신이 세계의 위협과 비밀들에 대해 파악한 것을 바로 이 형상들 속에서 표현하고 있다.6
보슈가 그린 성 안토니우스는 보슈 자신인지도 모른다. 푸코의 말대로, “성 안토니우스는 욕망이라는 폭력의 희생물이 아니라 호기심이라는 더 은밀한 매력의 희생물”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광적인 것에 대한 낭만주의자들의 열광, 정신착란에 대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집착,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다다이스트들의 찬양이 말해주는 것은, 17세기 이성주의 이후에도 광기는 여전히 저 깊은 어둠 속에서 은밀히 인간의 본성으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광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협적이다. 그리하여 광기를 바라보는 보슈의 시선은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보슈의 작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은 광기에 들어 있는 애매모호한 표현들은 에라스무스에 와서는 전부 제거되어 있다.7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저 그림에서 보는 것은 외과적 수술을 통한 ‘광기의 제거’이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저 의사는 에라스무스가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광기이고, 무엇이 이성인가? 우리 눈에는 저 무지막지한 제거술 자체가 또 하나의 광기로 보일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 우스꽝스러운 수술이 17세기 서구 사회에서 벌어질 ‘광인들의 감금’이라는 드라마의 서막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슈는 “이성의 그칠 줄 모르는 웃음으로” 광기를 비웃고 있는 게 아니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은 외려 모욕당하고 능욕당하는 광우를 바라보는 시선의 깊은 멜랑콜리다.
『교수대 위의 까치』에서 전재 (진중권, 휴머니스트, 2009)
주(註)
1 Charles G. Gross, ‘Psychosurgery in Renaissance art’ in:TINS Vol. 22 No. 10, 1999, pp. 429~431
2 E. S. Valenstein, A History of Neurosurgery (S. H. Greenblatt edi.), 1997, pp. 29~36 (위의 글에서 재인용)
3 Robert Burton, The Anatomy of Melancholy, Cripps & Lod, 1652 (위의 글에서 재인용)
4 미셸 푸코, 김부용 옮김, 『광기의 역사』, 인간사랑, 1991, p. 38
5 위의 책, p. 50
6 위의 책, p. 44
7 위의 책, p.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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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진중권
미학을 전공해 「유리 로트만의 구조기호론적 미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독일 유학길에 올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한신대와 연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미학자, 문화평론가, 지식인, 진보논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는 스스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미학자로서 좋은 책을 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하곤 한다. 대표작으로 ‘미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친구 같은 책 『미학 오디세이 1, 2, 3』을 비롯하여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서양미술사 1』, 『춤추는 죽음』, 『진중권의 현대 미학강의』외 다수가 있다. 옮기고 엮은 책으로 『컴퓨터 예술의 탄생』, 『미디어 아트-예술의 최전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