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기적의도서관이 문을 연지 어느덧 10년이 되었습니다. 순천은 기적의도서관이 운영되면서 도서관에 대한 건립 요구와 시민 독서운동의 붐이 일어 작은도서관 및 도서관 확충으로 이어졌고, ‘도서관의 도시’라는 도시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그 동안의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고 앞으로의 발전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순천뿐 아니라 기적의도서관이 건립된 지역이라면 겪게 되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처음 기적의도서관을 통해 우리가 하고자 했던 목적을 다시금 되새겨 보면서 발전방안을 짚어보아야 하겠습니다.
기적의도서관 설립 취지와 정신을 통해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후 책사회)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다음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새로운 도서관 공간 모델의 제시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은 모든 부분에서 어린이를 배려한 공간구성이 이루어졌지요. 당연히 어른들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로 다양한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도서관 문화의 창출을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세 번째가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고 유지하는 새로운 방식의 도서관 운영 모델입니다. 지역사회 민간 인사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자원활동가가 함께 도서관 운영과 유지를 책임집니다. 지방자치단체는 그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담당하고 행정적인 지원을 합니다.
특히 제가 발제를 맡은 부분은 ‘기적의도서관의 다양한 운영 프로그램’입니다. 2003년 2월 15일,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 1호관인 순천이 선정되면서 구체적인 건립계획이 진행되면서 책사회에서는 어린이 책과 문화, 민간어린이도서관 운영 경험자, 공간에 관한 전문가와 도서관 관계자들을 불러 모아 ‘어린이도서관분과위원회’를 구성하였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이 지어진 후의 운영체제를 준비하는 작업입니다. 분과위원회 구성은 공간 디자인, 도서선정, 운영관리 및 조례제정, 운영프로그램 등 4개의 분과로 나뉘어 각 분과별로 논의하고, 확정된 안을 책사회에 제출하면 책사회에서는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진행해 나갔습니다. 저는 운영프로그램 분과에서 이용훈(서울시 도서관장)과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번 논의는 어린이도서관분과위원회에서 제시된 운영 프로그램 중 실제 도서관 운영에는 어떤 것들이 반영되었고, 그것이 도서관문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으며 앞으로의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짚어보고자 합니다.
2. 기적의도서관의 다양한 운영 프로그램
2-1. 여러 가지 논의들
먼저, 어린이도서관분과위원회 활동은 각 분과가 사안별로 검증하기도 하였고 필요에 따라 관련 분과, 또는 전체 위원들이 함께 논의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분과에서 논의된 문제들이 책사회에서 바로 추진할 수 있는가 하면 국가 정책으로 해결해야 할 도서관계의 난제들도 많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심에 두었던 것은 운영시스템에 기적의도서관의 설립정신과 취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여 만들어 낸 도서관의 의미를 운영프로그램으로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어린이도서관분과위원회 활동은 어린이도서관 운영에 관한 수많은 질문 속에서 하나씩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었습니다.
첫 설계회의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에 대해 다양한 논의를 하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건축에 대한 것입니다. 기적의도서관 건축은 어디서 보아도 ‘아, 저것이 기적의도서관이다!’ 라고 할 만큼 상징적인 건물,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의 지혜의 등대의 예) 하나의 설계로 통일해서 짓는 게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공간디자인의 전문가들이 건축은 건물을 지을 땅의 규모와 생긴 모양, 그 지역의 지형과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여 지어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건축과 공간구성에 대해서는 기용건축의 김병옥 소장님이 잘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질문은 기적의도서관이라면 같은 운영시스템과 같은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것입니다. 운영 프로그램 계획에 앞서 장서의 기준과 원칙, 도서관리 프로그램과 도서 분류의 문제, 회원관리 문제 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간 관계상 그 세세한 것들을 여기에 다 열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맞대고 논쟁을 조정하는 일은 전국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도서관 건물처럼 하나 둘 합의로 이어졌습니다.
2-2. 기적의도서관 운영 프로그램, 무엇이 다른가?
기적의도서관 운영은 어린이들이 원하기만 하면 누구나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 위에서 각자 자신의 꿈과 희망에 따라 재능을 꽃 피우는 탁월한 인간으로 자랄 수 있게 돕는 데 있습니다. 어린이로 하여금 일생에 걸쳐 책을 읽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데 프로그램 운영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기적의도서관의 운영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기준을 마련하였고 그에 따른 매뉴얼을 제작하였습니다. 이 매뉴얼은 순차적으로 건립된 기적의도서관 개관 준비를 하면서 직원과 자원활동가 교육으로, 개관식 때 기적의도서관 운영 목적과 함께 이용자들에게 공개가 되었습니다. 논의 과정에서 중심으로 삼았던 생각들, 검토사항을 토대로 초기 계획했던 프로그램은 이렇습니다.
2-2-1. 검토사항
○ 기적의도서관의 중심 프로그램은 책과 연계하여 책을 좋아하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인가?
○ 어린이들은 어떤 책을 선택하는가. 감시가 아닌 애정 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관찰하는 프로그램인가?
○ 사교육이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가급적 지양하자. 어린이 발달 단계에 맞는 책 읽기나 문화예술 활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 어린이를 잘 키우려는 엄마-아빠,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인가?
○ 자기 고장의 문화와 역사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프로그램인가?
○ 가정-학교-도서관에서의 책읽기 활동을 적극적으로 연결하고 “책 읽는 가족 문화”와 “책 읽는 교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가?
2-2-2. 초기 제시된 운영 프로그램 :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 소리박자교실
- 아기들을 위한 이야기, 음악, 미술, 체육활동을 책과 더불어 만나는 시간
○ 유아들을 위한 이야기 들려주기와 그림책 읽어주기
○ 초등학생들을 위한 이야기 시간, 북 토크, 어린이 세미나 :책 읽고 토론하기
○ 도서관에 처음 온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
○ 책을 싫어하는 어린이를 위한 특별 프로그램
○ 도서관은 해결사 : 학교 공부와 책읽기의 연결
○ 견학, 탐방, 관찰, 책 여행 프로그램들
○ 낭송과 낭독의 여행
○ 책읽기와 다매체 통합 프로그램
○ 자연관찰, 과학, 발견 등의 전시활동
○ 도서관에서의 별밤지기 : 하룻밤 보내기 프로그램
○ 작가와의 만남, 작가와 함께 하는 예술놀이 프로그램
○ 지역의 학교 도서관, 작은도서관 연계 독서활동 프로그램
○ 다른 지역 도서관 및 문화탐방 프로그램
○ “도서관은 내 무대”-책을 읽고 책 속 주인공처럼 다양한 독후활동
○ “나는야 도서관 주인”- 어린이사서와 어린이 기자 활동
○ 자기 고장의 역사, 노랫가락과 춤사위, 언어와 이야기 알아보기
2-2-3. 초기 제시된 운영 프로그램 : 엄마-아빠,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
○ 책 장난감, 이야기, 소리 등을 활용하는 새로운 육아법
○ 책 읽어주는 엄마, 아빠의 기본 훈련 : 낭송의 기술, 이야기꾼의 마법훈련
○ 자녀와 함께 책 읽고 토론하는 법 : 무슨 이야기부터 어떻게 꺼낼까?
○ 책과 이야기 고르는 법
○ 박자 노래와 소리의 마술
○ 신기한 종이접기 : 책 만들기의 세계
○ 작가 훈련 : 모든 엄마 아빠는 작가
○ 학교 교실 수업과 도서관을 연결하는 법
○ 아이들의 자발적 자료수집 활동을 자극하는 법
○ 아이들의 창조적 능력을 길러주는 방법
2-2-4. 기타 프로그램
○ 도서관학교 : 어린이를 위해서 일하는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
○ 지역문화와 함께 하는 프로그램 : 이동도서관 및 찾아가는 도서관 프로그램
○ 기념일 및 도서관 행사
○ 특별한 책읽기 : 방학 프로그램
위에 제시된 프로그램들은 어린이들이 책에서 날로 멀어지는 상황에서 어린이도서관에서 만큼은 ‘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살아있는 도서관, 재미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기적의도서관의 정신과 취지를 살리는 기본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초기에 검토 되었던 프로그램 운영방향과 프로그램이 도서관 형편에 맞게 새로이 기획되어 운영되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지역에 맞는 특색들이 반영되고 누가 운영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 전국 기적의도서관이라면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제안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각 지역에 있는 기적의도서관의 규모와 예산, 운영주체도 틀린 데다 지역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안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전국의 기적의도서관이 각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11개의 색깔을 가진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기적의도서관 운영프로그램은 도서관이 속해 있는 지역의 공공도서관 및 작은도서관, 그리고 전국 어린이도서관, 공공도서관의 어린이실 프로그램으로 확산되고 보급되었습니다. 특히 기적의도서관의 개관 준비를 하면서 교육을 시킨 자원활동가(스스로 원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 운영으로 기존의 봉사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평가와 함께 도서관 봉사를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지역의 독서문화 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풀뿌리 문화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프로그램이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들을 통해 새로운 도서관문화가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2-3. 전국 기적의도서관의 특별 프로그램
○ 금산 기적의도서관
인삼고을 금산은 군 단위에 기적의도서관을 건립한 유일한 곳입니다. 도서관은 나즈막한 비호산 자락에 있어 철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 관찰, 숲과 연계한 생태체험을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 순천 기적의도서관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대표 프로그램은 어린이사서와 도서관과 함께 성장하는 자원활동가 양성 교육 프로그램 <도서관학교>를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키스야, 나랑 같이 책 읽자’를 운영하였습니다. 키스는 잘 훈련된 독서보조견으로 일주일에 한번 도서관으로 와서 아이들의 책 읽는 소리를 잘 들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올해부터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초대해서 1:1 그림책 읽어주기를 통해 책을 좋아하게 하는 ‘달팽이 친구들’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서관과 지역 이야기가 5권의 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적의도서관 운영사례집 2권, 채인선? 배현주 작가의 『그림책 아이』, 권윤덕 작가의 『피카이아』, 그리고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김윤이 작가의 『순천만』이 그것입니다. 무엇보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은 ‘매일 책을 읽어주는 도서관’을 운영의 중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 제주 기적의도서관
제주 기적의도서관은 시립으로 운영되어 직원과 관장이 자주 바뀝니다. 그러나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의 열정이 남다른 도서관입니다. 주요 프로그램은 제주어가 가지는 독특한 맛을 살린 ‘책과 함께 하는 옛 놀이’와 제주 전래동요와 놀이마당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동화 속 그림자극을 제작하여 아이들에게 책 속의 또 다른 재미를 알려주는 활동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 제천 기적의도서관
제천 기적의도서관은 ‘호랑이 담뱃대’라는 어르신 동아리가 있습니다. 직접 지은 흙집 사랑방에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단오 등 아이들에게 날짜의 중요성과 옛 풍습을 경험하도록 도와주고 계십니다. 바깥마당의 화단 가꾸기와 농사짓기 등도 호랑이 담뱃대 어르신들의 몫입니다.
○ 진해 기적의도서관
진해 기적의도서관은 우리나라 여성학자의 대모라고 알려진 이효재 선생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자원활동가들이 밑돌을 놓아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도서관입니다. 도서관에서 제시하는 추천도서를 읽고, 읽고 생각나누기 프로그램과 자원활동가들이 운영하는 북스타트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어 있고 기적의 합주단, 어린이 기자단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 청주 기적의도서관
청주 기적의도서관은 과학 분야를 특화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6년 천체투영관을 건립하여 유아교육기관과 학년별로 방문한 어린이들에게 별자리 관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매주 토요일에는 가족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 소개하지 못했지만 울산 북구, 인천 부평, 서귀포, 정읍, 김해 기적의도서관에서도 기본적인 독서 프로그램 이외에도 각 도서관마다의 환경과 지형에 따른 특색을 살린 프로그램으로 좋은 모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를 위해 각 기적의도서관의 자료를 찾아보면서 느낀 것은 기적의도서관의 정신이나 운영 목적은 모두 그대로 이어받아 유지하고 있으나 운영 프로그램은 많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콕 집어서 이런 프로그램이 그렇다 라고 말 하기는 어려우나 학습과 연계한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었고 공공도서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프로그램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유아와 초등 저학년 프로그램에 많은 프로그램이 배정되었으나 고학년 어린이들을 위한 깊이 있는 책읽기나 학부모 강좌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함께 고민해 봐야 할 부분입니다.
2-4. 책사회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
○ 문화예술의 순회대사
기적의도서관이 개관 다음해부터 책사회에서는 문화예술의 순회대사라는 프로그램으로 각 기적의도서관에 작가와 문화예술가를 모실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이는 점차 도서관 자체에서 예산을 수립하여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북스타트 사업
북스타트 사업은 전국 기적의도서관에서 순차적으로 시범 실시되면서 후속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지역과 전국에 확산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북스타트 사업은 한 살 아기부터 도서관으로 이끄는 기적의도서관의 의미를 가장 잘 살리는 프로그램입니다. 지금은 북스타트 다음 단계인 플러스와 보물상자 프로그램까지 한 단계씩 정착해 가고 있고 찾아가는 북스타트를 통해 도서관 접근이 어려운 아가와 엄마들도 도서관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초등 1학년에게 지원되는 책날개 사업을 통해 책날개 입학식, 교사연수, 작가와의 만남으로 학교 독서교육을 바꾸어 나가는 촉매제가 되고 있습니다. 청소년 북스타트 등 생애단계별로 책을 통해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 어깨동무 책동무 :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기적의도서관은 모든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도서관입니다. 한 부모 자녀, 조손가정,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나 집안 환경이 다소 어려운 아이들에게도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합니다. 이런 프로그램일수록 더 품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늘 인력이 부족한 어린이도서관에서 쉽지 않습니다. 또한, 이 아이들의 독서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에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의 장기간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책사회에서 지원한 <어깨동무 책 동무> 프로그램은 강사 워크숍을 통해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운영매뉴얼이 제공되며 사업이 끝난 후 평가까지 체계적으로 진행 됩니다. 참여 도서관의 사서 및 강사들이 많이 훈련이 되었던 좋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책사회에서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지금은 지원을 하지 않지만 각 기적의도서관에서 형편에 맞게 접목하며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책사회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 지원과 사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기적의도서관의 과제들
2013년 11월, 순천을 시작으로 제천과 진해가 10주년을 맞았습니다. 내년이면 제주와 서귀포 등 도서관들이 건립된 차례대로 10주년의 의미와 성과에 대해 짚어보게 될 것입니다. 어린이도서관 운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무엇보다 행정적인 업무의 과중과 인력 부족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전용도서관인 기적의도서관은 그 서비스 대상의 절반 이상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손길이 더 많이 갑니다. 육아 경험이 부족한 초보 엄마-아빠들을 위해 육아와 교육, 책 관련 전반의 문제에 대해 상담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어린이 발달 단계에 맞춘 프로그램도 세심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만큼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한 자리입니다.
어린이도서관은 어린이와 사서가 관계를 이루는 곳, 또한, 책을 핑계로 어른과 아이가 만나 소통을 이루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서는 어린이가 책에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늘 지켜보는 관찰자여야 합니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게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립으로 운영되는 도서관들은 모자란 사서 수와 함께 사서를 포함한 직원들의 순회 근무 때문에 이중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순천에서도 인사 때마다 사서나 직원들이 자주 바뀌었고 얼마 전에는 전체 직원이 새롭게 바뀐 적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역량이 쌓일 기회가 없는 것이지요. 제주와 서귀포, 울산처럼 시립으로 운영되는 경우 행정 체제 안에서 관장이 여러 번 바뀌었고 직원들도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자원활동가들이 새로 온 직원들에게 기적의도서관 정신이나 취지를 전달하면서 ‘어린이들에 대한 믿음’도 같이 전달하는 상황이 되고 있습니다.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기적의도서관들도 매년 예산이 조금씩 줄어들거나 3년마다 새로이 결정하는 수탁기관이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에 놓여 있습니다. 또 관장이 바뀌면서 도서관 운영방향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특히 기적의도서관이 건립된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보다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도서관과 작은 도서관이 많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경우 기존의 도서관에 있던 사서 한 두 명을 ‘떼어서’ 새로 건립한 도서관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들은 도서관 확충은 무척이나 바람직하긴 한데, ‘사람 문제’ 때문에 새로 만든 도서관의 서비스 내용도 약해지고, 새로 개관한 도서관도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도서관의 인력 부족 현상은 전국적인 현상이라 각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도서관계의 난제입니다. 지역 안에서도 기적의도서관은 규모가 작은 어린이도서관이라는 이유로 인력 배치에 대해 배려 받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현실입니다.
3-1. 어린이를 둘러싼 위기 요소들
어린이도서관에는 어린이가 주인입니다. 그러나 매년 도서관으로 오는 어린이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선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우리나라 인구문제 현황과 정책’ 보고서와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 출생아 수는 47만 명에서 향후 20년 이후 년 32만5천 명으로 30% 이상 줄어든다고 합니다. 심각한 수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핵가족화에 따른 가족 수의 변화, 경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어린이를 둘러싼 교육환경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린이를 둘러싼 교육환경의 변화는 “모든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는 위기 상황”입니다.
또한, 지난 정부 5년 동안 일제고사 부활과 학교 방과 후 수업 확대로 경쟁체제에 놓인 어린이들의 심리적 불안이 커져서 사교육과 학습지 문제풀이에 더욱 내몰리고 있습니다. 토요 전일제 수업으로 평일 수업 시간이 늘어나면서 하교 시간이 1~2시간이 더 늦어졌습니다.
어린이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폐해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수는 3천만 명을 넘어섰으며, 10대와 유아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통신기기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스마트폰 사용이 초등학생과 유아까지 내려가면서 미처 책읽기의 즐거움을 익히기 전에 게임이나 영상 등 다양한 디지털 환경에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부모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유아의 스마트폰 중독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작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에 의하면 만 5세~9세 어린이의 인터넷 중독률이 성인의 인터넷 중독률 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투정을 부리는 유아들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들려주곤 하지만 이는 점차 아이들의 스마트폰 중독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 디지털 매체의 중독은 학습 능력의 저하와 사회성 발달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이런 현실에서 어린이도서관에서도 디지털 매체를 독서와 연결한 E-book 코너와 동화체험방 등의 컨텐츠들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적의도서관에서는 개관 당시부터 아날로그 환경을 지향했습니다. 주변 환경이 점점 디지털 매체에 노출되는 환경일수록 중독된 아이들과 이에 무관심한 부모들을 일깨울 수 있는 교육들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입니다.
유아교육비의 지원으로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영유아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독서프로그램 참여도가 떨어지고 독서 분야 사교육 시장은 더욱 활성화 되고 있습니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운영 실적의 예를 보면, 2009년을 정점으로 대출 권 수와 이용자가 매년 5%~10% 감소를 보여 왔습니다. 저는 이런 통계가 우리 어린이들을 둘러싼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앞으로 10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도서관 문화에 대한 비전을 세워야 하는 게 어려운 숙제입니다.
3-2. 지역 내 도서관의 정책 변화로 인한 장점과 위기 요소들
전국에 도서관 건립 붐이 일면서 지역 내의 도서관 간의 통합시스템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통합도서관이 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우선, 지역 내에서 각각의 도서관마다 회원증을 발급 받았던 불편함이 없어집니다. 통합 회원증 하나로 지역 내의 모든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 도서관 이용이 쉽고 편해집니다. 각 도서관에서는 회원카드 이중 발급에 드는 시간과 예산이 절약되고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집니다. 상호 대차까지 완벽하게 된다면 지역에 있는 책의 순환이 늘고 보고 싶은 책을 이용자가 자주 이용하는 도서관에서 받아보고 반납도 가능하게 됩니다. 한 도시의 도서관의 모든 책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입니다.
반면, 시립으로 운영되는 기적의도서관인 경우 그 안에서 기적의도서관의 존재가 시립도서관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될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책 뿐 아니라 점차 운영 프로그램까지 통합도서관에서 기획해서 각 도서관에서는 운영만 하는 시스템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통합도서관 안에서는 기적의도서관의 특수성, 역사 배경과 함께 하는 역할과 기능은 점점 약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순천 기적의도서관의 예를 보아도 그런 가능성은 충분히 예측됩니다. 순천시의 도서관운영과에서는 작년부터 기적의도서관 운영위원회와 시립도서관 운영위원회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엄연히 독립된 조례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기적의도서관 운영위원회는 그 기능이 시립도서관과 많이 다릅니다. 예산을 검토하고 관장을 복수 추천(면직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시립도서관의 자문기구 역할보다 한층 권한이 강화된 운영위원회입니다. 기적의도서관 운영위원들이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작년 하반기에 두 번의 회의를 통합으로 운영하면서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국, 운영위원회 기능은 대다수 시립도서관의 자문기구 역할로 약화되었고 3기 운영위원회의 임기(2010. 7. 15~2013. 7. 15)가 끝났습니다. 새로이 운영위원회를 구성되기 전인데도 불구하고 순천시에서는 운영위원회의 추천과 승인 없이 관장인사가 단행되었습니다. 절차에 문제가 있는데도 도서관운영과에서는 기적의도서관이 시 산하이면서 특별한 운영시스템을 요구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입니다.3)
그 동안 기적의도서관 1호관으로, 우리나라 어린이도서관의 모델로 상징되어 왔던 순천 기적의도서관이 통합도서관 안에서 겪는 어려운 갈등과 문제들입니다. 운영위원회 위상 약화는 비록 순천 기적의도서관 만의 문제가 아닌 기적의도서관 전체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4.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기적의도서관의 건립과 운영목적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들에게 최선의 창조적 성장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회의 사회적 평등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모형의 어린이도서관을 제시하고 구현하는 것, 이것이 기적의도서관의 건립취지이고 기적의도서관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기적의도서관에서 운영하는 정보서비스와 프로그램은 도서관의 이러한 목적에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끈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기적의도서관 10년의 운영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연어의 길’을 가르치자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반드시 돌시 돌아오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 어린이들도 성장해서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을 위해, 지역의 공동체 문화에 헌신하는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시민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려면 고향에서, 기적의도서관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 행복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이들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장의 어른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적의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아이들의 등을 떠밀어 강제로 읽히는 책읽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사교육이 극성이라지만 사교육처럼 도서관의 프로그램을 광고하면서 젊은 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책읽기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똑똑한 아이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부모들을 현혹 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린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위기 요인과 환경 속에서 앞으로 10년을 바라보는 기적의도서관의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이 깊습니다. 그에 대한 제안을 몇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기적의도서관이 고상하게 독서교육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 라며 성급하게 학습 프로그램을 접목하는 사례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지식정보사회에서 어린이들의 독서의 중요성이 절대적인 기반이 되고 있지만 모든 어린이들이 그걸 제대로 배우고 있지 못합니다. 경제 양극화 못지않게 지식의 양극화도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기적의도서관에서만이라도 지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을 제대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어린이들에게 정보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이 매번 같은 어린이들인 것 같지만 어린이들은 자라서 도서관을 떠나고 또 새로운 아가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도서관의 일상이 매일 같은 것 같지만 매일 매일 새로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적의도서관에서는 그런 일상적인 정보서비스와 연계하여 가장 기본적인 프로그램들은 지속적으로 해 나가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하나 둘 정착시켜 나가는 게 중요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어린이도서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그에 대한 전문성과 근무의 지속성,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도서관 운영의 중심은 ‘사람’입니다.
셋째, 지역의 어린이들의 독서 환경과 독서습관은 지역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가정-학교-도서관이 유기적으로 연결한 독서환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학부모 교육, 학교를 지원할 기본적인 독서 정보서비스, 독서프로그램, 교사의 독서 교육을 꾸준히 지원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전문기관과의 네트워크와 적정한 인력과 예산확보도 중요합니다. 나아가 어린이도서관의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을 맡는 전문사서, 자원활동가 양성을 통해 기적의도서관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더불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적의도서관의 정말 ‘기적’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기적의도서관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열람실로 들어선 순간 누구나 온 몸으로 ‘기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서관 안은 ‘책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우주를 만나는 곳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경계가 없는 ‘책 나라 우주 공간’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자유로운 영혼이 됩니다. 기적의도서관에서는 조금 소리 내어 책을 읽어 주어도 좋고 책을 읽다 배를 깔고 엎드려 읽거나 드러누워 읽어도 됩니다. 친구들과 같은 책을 빼내어 도란도란 읽고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책읽어주는 선생님,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덤입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도서관을 탐험하고 책을 가지고 놀다가 어느 순간 빼어든 책에 푹 빠져 읽는 아이들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모든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책을 만나 행복을 경험하는 곳, 그것이 바로 어린이도서관을 통해 전하는 ‘기적’이고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기적의도서관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