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문학소년일 때가 있었다. 학교 문예반에 들어가서는 시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한껏 폼을 잡으며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거울 앞에 서서 혼자 한껏 폼을 잡았던 것이다. 시를 계속 쓰려고 했지만, 결국 개구리가 연잎에 그저 앞다리 하나 걸치고 어정쩡하게 있는 모양새임을 깨닫고, 일상을 살아야 하는 생활인이 되면서 포기했다. 지금 생각하니 일찍 깨달은 것이 다행이다.
살면서 여러 시인들의 시를 읽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서점에서 이 시집을 만났다. 시인 서정춘이 누군지 몰랐었다. 그러나 시집을 펼쳐 몇 편 읽고 나니 시를 쓰기로 죽자사자 달려들지 않았던 것이 잘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은 따로 있었다. 시 한 편 한 편이 짧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시들을 만나서 놀랐다. ‘아 나의 농사는 참혹하구나/ 흑!/ 흑!’ 이렇게 단 세 줄로, 시인은 자신의 말을 했다. 지금 돌아보니 당시 나도 그랬기에 감응했을까 싶기도 하다. 살다 보니 생각도 감정도 바람도 다 변한다. 이 시집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도 변했다.
그래도 문득문득 그때 읽었던 시가 떠오른다. 그래서 몇 년 전 독서운동을 이끄는 한 시민단체가 시를 낭송하는 송년모임을 할 때 나는 서정춘 시인의 시 ‘죽편 1- 여행’을 읽었다.
竹篇 · 1 - 여행여기서부터, ─ 멀다칸칸마다 밤이 깊은푸른 기차를 타고대꽃이 피는 마을까지백년이 걸린다.
백년이 걸려야 가는 길, 그래도 하루하루를 꼼꼼하게 채워가다보면 갈 수 있는 길일 테니 일단 오늘부터 잘 살아보자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물론 하루를 잘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럴 때 시를 읽으면 용기가 난다.
★ 본 기고글은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