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경향신문에서 진행한 릴레이 인터뷰 중에서, 5월 7일 경희대 청운관에서 진행한 도정일 교수(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의 인터뷰를 경향신문의 동의를 얻어 아래 게재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고, 우리 사회를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 주)
세월호 침몰 사태를 어떤 심정으로 지켜봤나.
“선실에 갇혀 물에 잠기던 아이들이 무엇을 느꼈겠는가. 절망의 순간에 구원의 손은 보이지 않고 절망만 닥치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절망적인 일이 또 어디 있겠나.”
어떤 대목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나.
“세월호에서는 사람보다 짐이 먼저였다. 생명의 존엄을 압도하는 가치 체계가 작동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는 가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됐다. 이러한 가치의 전면적 붕괴 또는 전도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이러한 가치 파괴 현상이 왜 이토록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사회의 전면적인 인식 마비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 다른, 그 어떤 대책도 무의미하다.”
누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나.
“이론의 여지 없이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 수습에 실패하고 무능했던 정부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단 한 사람도 구하지 못한 게 얼마나 창피하고 놀라운 일인가. 다만 정부의 실패만이 아니라 사회의 실패라는 점도 함께 지적해야 한다. 이렇게 무능하고 마비된 정권이 만들어진 데는 사회와 국민의 책임도 있다.”
참사를 빚은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가와 사회가 어느 때 실패하고 무너지는가라는 질문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을 안 던진다. 한국 사회는 생각하는 능력이 마비된 반지성주의 사회다. 이런 사회는 성찰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회피하고 문제를 과학적으로 풀지 않는다. 윤리적 판단의 마비와 사회적 사유의 정지가 한국만큼 철저히 일어나는 곳도 없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마치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돼 있다. 이런 현상이 수십년 쌓였다.”
한국 사회가 이처럼 무능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벼운 사회는 약간의 성취 앞에서 자만에 빠진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이룬 얄팍한 성취에 대한 과도한 자만과 ‘우리가 탄 배는 침몰하지 않는다’는 오만이 이번 참사의 바탕에 깔려 있었다. 어떤 사회든 실패하고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 가능성을 상상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자만과 오만이다.”
저서를 통해 시장전체주의의 문제점을 거듭 지적해왔다. 시장전체주의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해석한다면.
“시장전체주의란 쉽게 말해 돈 말고는 다른 가치가 맥을 추지 못하는 사회다. 사회는 시장을 포함하는, 시장보다 훨씬 큰 실체인데 사회를 마치 시장을 경영하듯 해왔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어떻게 탈피할지 지금부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비 절감을 목표로 하는 경영합리화, 비정규직 양산을 통한 경비 절감 등 돈을 인간보다 우선시하는 시장전체주의적 발상을 걷어치우고, 일자리 안정과 기본소득을 보장해 국민들을 생존의 공포로부터 건져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무엇을 해야 하나.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권력과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지금은 마치 대통령이 권력의 주인인 것처럼 돼 있다. 지금 우리 정치권, 특히 여당 쪽에서 하는 일들을 보면 약속을 파기하는 것을 정치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야비한 동물이라는 마키아벨리적 인간관을 따르고 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다른 모든 중요한 원칙을 포기해도 되는 것이 정치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대통령의 사과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대통령은 국민의 고통을 흡수하는 무한한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진도 팽목항에서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피해자 가족 앞에서 옛날 왕이 신민들을 대하듯 뻣뻣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통령이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결손된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수습책이란 것도 진부하고 뻔한 소리들이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분명하지만 하야가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책임을 면제받을 수 없지만 대통령이 책임을 수행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책임을 지도록 시민사회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가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려는 조짐들이 보인다.
“비판의 목소리를 억누르면 더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처럼 촛불시위가 확산되면서 식물정권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비판의 길을 터주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당했을 때 항의하는 국민을 향해 종북론을 꺼내는 관행도 이번에 청산하라. 대통령이 책임지고 청산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참사가 남길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무엇이라고 보나.
“국가를 믿지 못할 때 국민들은 가치의 허무주의에 빠져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한다. 시장전체주의가 이미 각자도생의 문화를 만들어놓았는데 그런 경향이 이번 참사의 여파로 더 심화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가치의 허무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공공성과 공공의 가치가 희생된다. 공동체의 붕괴가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참사 앞에서 일부 공직자들이 보인 말과 행동이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런 행태를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 정치인들과 관료들은 입으로는 국민을 떠받들지만 실제로는 우습게 여긴다. 대통령은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이런 정신 상태와 관료문화를 어떻게 척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 자신이 제왕적 사고를 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시민사회가 대통령이 제왕적 행동을 버리도록 끊임없이 유도해야 한다.”
애도와 비판 이외에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돈만 생각하며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뻔히 쳐다만 보는 가치 전도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 제대로 된 교양 교육을 해야 한다.”
희망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게 정치인들과 관료들이다. 반면 국민들은 서로의 고통에 대해서 반응하고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넘치게 갖고 있다. 거기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