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동화 읽는 어른》에 연재해 왔던 ‘다 같이 돌자, 동시 한 바퀴’(2012년 3월호~2013년 12월호)를 관심 있게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독자들이 보내주신 애정과 격려의 말씀 덕에 큰 위로를 받으며 글을 이어올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개인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동시 일반에 대한 관심과 애정, 격려의 반응으로 다가왔기에 더욱 큰 힘이 되었다.
연재를 계기로 여러 지역의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돌며 동시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동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결코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컨대 동시 이해와 감상에 필요한 안내가 적절하게 주어지기만 한다면 동시 감상층이 상상 이상으로 두터워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폭넓은 독자의 유입과 감상을 가능하게 하는 재료들, 즉 현장에서 창작되는 좋은 동시가 없다면, 이러한 기대는 한낱 헛된 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2014년 현재, 동시 창작과 이를 둘러싼 현실은 어떤가. 어떤 시인들이 어떤 작품을 써내고 있으며, 어떤 제도가 그것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가. 아니, 지금과 같은 동시의 부흥은 어떤 계기로 인해 촉발된 것인가. 이런 질문과 함께, 여러 지면과 강의 현장에서 주문처럼 되풀이해온 말―“1980년대가 시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는 동시의 시대다”―은 다만 개인 차원의 바람에 그칠 것인가, 그것을 뛰어넘는 우리 시단의 일대 사건이 될 것인가.
이번 호를 시작으로 200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과 그들의 대표 작품을 살펴보려고 한다. 글을 이어가는 동안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자연스럽게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다만 그에 앞서, ‘2010년대는 동시의 시대’란 말을 가능케 한 근거에 대해서는 따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른바 ‘2000년대 동시단의 3대 사건’을 살펴보는 일이다.
시인들의 동시 쓰기
순차적으로 살펴볼 때, 가장 큰 사건은 시를 전문으로 써오던 시인들이 대거 동시 창작에 참여(라기보다는 몰려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 동요 동시의 초창기이자 황금기(1920~1940년대)를 지난 이래 시와 동시는 시인/동시인으로 분리된 채 창작되었다. 즉 시는 시인이, 동시는 동시인이 쓰는 것인 양 굳어져 온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도 오규원, 이문구, 고형렬, 김용택 등이 동시집을 내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시인/작가의 예외적인 관심, 또는 가외의 여기(餘技)쯤으로 여겨졌지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육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최승호의 《말놀이 동시집》(비룡소 2005~2010, 모두 5권) 출간을 계기로 시인들의 동시 쓰기가 무시할 수 없는, 시단의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최승호의 작업이, 여러 시인으로 하여금 동시 쓰기에 나서도록 한, 직접적이고도 유일한 계기였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일련의 주목할 만한 시인들의 동시집 출간이 《말놀이 동시집》 이후에 이어졌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비슷한 시기에 안도현(2007), 신현림(2007), 김기택(2007), 최명란(2007), 도종환(2008), 이안(2008), 박성우(2008), 이정록(2009), 함민복(2009), 김륭(2009), 장옥관(2010), 문인수(2010), 유강희(2010), 송찬호(2011), 함기석(2011) 등이 첫 동시집을 출간했으니 말이다. 이와 연동하여 이들의 동료, 선후배 시인, 활동 지역을 중심으로 동시에 대한 관심, 참여가 현재까지 지속하여 고조, 확산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시인들의 동시 쓰기는 일시적 유행의 차원을 넘어 2000년대 시단의 중요한 흐름이자 무시할 수 없는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시인들의 동시 참여는 무엇보다 동시단의 인적 구성을 전례 없이 풍부하게 했다. 인적 구성이 풍부해지자 그에 비례해 비교적 단조로웠던 동시의 모습도 풍성해지고 다양해졌다. 천편일률의 일반적인 동시의 모습에 시인의 개성이 입혀지기 시작하면서 시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모색과 실험에 나서게 했다. 말하자면 자기만의 빛깔을 지닌 동시를 써내려는, 발전적인 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 만큼 이들의 유입을 받아들여 독자들에게 지속적, 제도적으로 내보내는 출판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그것을 출판사 비룡소와 문학동네가 받았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
2006년까지 의미 있는 동시집을 출간해온 출판사는 창비와 푸른책들 정도였고, 실천문학사, 사계절, 보리 등은 비지속적인 방식으로나마 동시집을 출간해 왔다. 2007년 들어 ‘동시야, 놀자’ 시리즈를 시작한 비룡소는, 테마 기획 동시집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면서 신현림, 최명란, 김기택, 이기철, 이근화, 함민복, 함기석 등을 동시 쪽으로 끌어들였다. 다만 시리즈 초기의 왕성한 출간에 비해 시리즈 10번인 안도현의 《냠냠》(2010), 11번인 함기석의 《숫자벌레》(2011), 12번인 유강희의 《지렁이 일기예보》(2013)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출간의 지속성이 많이 느슨해졌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긴 하지만 비룡소의 ‘동시야, 놀자’ 시리즈는 시인들로 하여금 동시 독자의 구체성(연령), 기획적 접근의 가능성(테마), 놀이/유희의 영역 등을 숙고할 기회를 제공했다.
비룡소보다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동시집 출간에 나선 곳은 출판사 문학동네다. 2007년 김은영의 《선생님을 이긴 날》을 시작으로 2014년 현재까지 총 27권의 동시집을 내면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동시집 출판사로서의 입지를 갖기에 이르렀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의 특징으로는 고급스러운 장정과 깔끔한 편집 디자인, 적극적인 필진 발굴, 편집자의 안목 등을 꼽을 수 있다. 들어오는 원고를 받아 수동적으로 작업하는 방식이 아니라 좋은 시인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동시집을 계약하고, 시인과 화가, 편집자가 여러 겹의 소통을 거쳐 만들어내는 각각의 동시집은 독자뿐 아니라 창작자에게도 개성적으로 다가온다. 편집 팀의 인적 변화가 크지 않은 것도 장점이다. 동시를 보는 안목이 흩어지지 않고 편집 팀 내부와 개별 편집자에게 누적됨으로써 동시를 바라보는 안목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축적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집 시리즈의 지속적인 출간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의 제정과 운영이다. 2012년 제1회 수상작으로 김개미의 《어이없는 놈》(2013년 출간)을 냈고, 2013년 제2회 수상작으로 김륭의 《엄마의 법칙》(2014년 출간 예정)을 냈다. 《어이없는 놈》은 문학적 측면에서나 대중적 측면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좋은 사례다. 어린이와 어른 독자에게 두루 사랑받을 수 있는 동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김륭의 수상은 좀 다른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주로 신인들이 응모할 것이라는(실제로 문학동네 동시문학상은 신인/기성을 가리지 않는다) 일반의 예상을 깸으로써 응모 대상자의 범위를 한껏 확장해 놓았다. 올해 이루어지는 제3회 공모에는 더 많은 신인과 기성이 수상의 영예를 놓고 경합할 것으로 보인다. 화제는 많을수록 좋다. 지속적인 화제를 통해 동시판을 키우고 창작자와 독자를 모여들게 해야 한다.
동시집 출간과 관련하여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문학동네와 같은 규모와 열정을 갖춘 출판사 가운데 한두 곳이 동시집 출간에 나서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문학동네가 적극적으로 동시집을 출간하고는 있지만 현재 동시단의 공급 과잉 상태를 해소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시인들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동시 창작층이 두터워진 만큼 동시집 출간은 전보다 한층 더 어려워졌다. 꼭 규모가 큰 출판사가 아니어도 동시에 애정을 가진 출판사 한두 곳이 동시집 출간에 가세해준다면 출판의 출구가 부족한 동시단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동시 전문 잡지
시인들의 동시 쓰기, 동시집 전문 출판사의 출현과 함께 2000년대 동시단의 부흥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은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의 창간이다. 2010년 5․6월호를 시작으로 현재 24호(2014년 3․4월호)까지 발간된 이 잡지는, 적극적으로 신인을 발굴(24호까지 14인)하고, 시단의 시인들을 지속적으로 동시의 세계로 불러들이며, 좋은 동시를 쓰는 시인이면 지역 세대 출신 잡지를 가리지 않고 초대해 매호 50편 안팎의 신작 동시를 소개함으로써 우리 동시의 현장을 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24호까지 《동시마중》 지면을 통해 처음 동시를 발표한 시인들은, 박일환 김민정 이은봉 박경희 성미정 고영민 정진규 복효근 김근 류정환 맹문재 송경동 차주일 송진권 이대흠 이종수 김남극 김성규 김영승 백무산 오은 장인수 박후기 윤제림 이면우 이상국 이승희 이상희 길상호 이윤학 김유석 김두안 정세훈(게재순) 등이다.
또한 동시를 쓰는 시인들의 자의식을 엿보게 하는 산문과 인터뷰, 동시를 둘러싼 문제의식(‘발언 대 발언’), 어린이와 시가 만나는 현장, 자료로 읽는 동시사, 동시로 만든 노래, 격월평, 지역 동시 모임 소개 등의 꼭지를 통해 창작과 비평, 감상의 현장을 소개한다. 특히 매년 마지막호(11․12월호)는 ‘올해의 동시 선집’으로 구성해 해당 기간 각종 지면에 발표된 작품 가운데 우수작을 모아 우리 동시의 오늘을 한눈에 살필 수 있게 한다. 상호 소통과 교류, 발전적인 경쟁, 자의식이 부족했던 동시단에 《동시마중》은 무엇보다 동시 창작을 둘러싼 긴장을 불어넣어 왔다. 또한 동시단의 고질적 약점이랄 수 있는 현장비평 부재 현상도 ‘동시마중 동시평론상’ 공모를 통해 얼마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창비어린이》 《시와 동화》 《어린이와 문학》 《열린 아동문학》 《오늘의 동시문학》《아동문학평론》 《어린이책 이야기》 등 어린이책 전문 잡지를 제외하고, 매호 또는 부정기적이나마 동시를 게재하는 잡지로는 《작가들》(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반년간) 《유심》(월간) 《현대시학》(월간) 《문학동네》(계간) 《문학선》(계간) 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동시를 쓰는 시인들이 대폭 늘어가고 있는 시단의 현실을 감안할 때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시인들의 꾸준한 동시단 유입(이 현상은 2000년 들어 시단을 달구었던, 이른바 ‘미래파’ ‘시의 정치성’ 논란보다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를 견인하고 담보하는 동시 전문 출판사와 전문 잡지의 존재야말로 “2010년대는 동시의 시대다”라는 선언을 가능케 한 인적 제도적 근거가 된다. 여기에 백창우를 비롯한 고승하, 성요한 등의 동요 운동, 지역별 동시 모임의 활성화 등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다음호부터는 구체적인 시인과 작품 이야기로 독자 여러분을 즐거운 동시 세계로 안내할 예정이다. 어떤 시인과 어떤 작품들이 소개될지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 이 글은 《동화 읽는 어른》에 함께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