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70년대에는 거의 모든 출판사들이 단행본 이외의 문고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없어진 사상계 출판사가 그랬고,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샘터사도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문고를 따로 출간했다. 삼중당, 동서문화사, 문예출판사, 박영사, 서문당, 탐구당, 범우사 등등, 우리나라 굴지의 출판사들은 모두 문고가 있었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삼중당 문고였지만, 특히 잊지 못하는 것은 을유출판사에서 출간된 을유문고였다. 학교 공부에는 농땡이였던 나는, 어느 날 서점에 들어가서 ‘을서문고 있어요?’하고 물었다가 창피를 당했다. 닭 유(酉)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서녘 서(西)자로 알았던 탓이다.
문고를 그토록 열독한 것은 분명 중학생의 얇은 호주머니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더 많은 용돈이 있었더라도 문고 이외의 책을 집어 들었을지는 의문이다. 싼값과 작은 부피도 장점이었지만, 본문이 끝나고 판권란 뒤에 붙어 있는 장대하고 찬란한 도서목록은 그야말로 포만감과 도전욕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읽어야 할 것들은, 문고본에 다 있다!’ 나는 별자리처럼 무수한 문고를 읽으며 청춘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등학교 진학도 하지 않은 채 문학을 공부하겠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집안의 천덕꾸러기를 가까이서 지켜본 한 친척이,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정일이는 혼자 공부를 한다면서, 왜 그렇게 작은 책들만 모아 읽느냐?’ 그러고 보니 어머니도 아들의 독서 행태가 이상했던지, 친척의 궁금증을 핑계 삼아 내게 똑같은 것을 물었다. 글쎄, 문고로 카프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휴식 삼아 아가사 크리스티까지 읽을 수 있는 데 뭐가 어쨌단 말인가?
글을 숭앙했던 유교적 전통이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서 책은 사용가치만 아니라 만만찮은 상징가치를 가진 물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본말이 전도되어 정작 책의 내용이 거론되거나 독서가 행해지기 보다도, 그저 책의 물성을 물신처럼 숭배하는 가식도 생겨났다. 양장과 금박으로 치장된 전집물 시장은 바로 그런 유교적 과시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말하자면 당대의 일류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은행원을 했던 그 친척에게 수첩만 한 문고는 책으로 보이지 않았던 거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맥락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많은 고명한 지식인들도 문고를 가리켜 ‘지식의 인스턴트화’ 내지 ‘교양의 규격화’라고 폄하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우려가 물론 없지는 않지만, 그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아직 ‘문고 사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알다시피 문고는 그 분량상 어떤 주제에 대한 최소한의 그리고 핵심적인 사항만을 담는다. 그래서 해당 문고를 읽고 거기에서 멈춘다면, 말 그대로 ‘지식의 인스턴트화’와 ‘교양의 규격화’가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문고의 진정한 역할은, 당신이 방금 읽은 주제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발심(發心)을 일으키는 데 있다.
책이 작다고 그 역할을 못하는 게 아니다. 형광등을 켜는 쵸크 전구도,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열쇠도, 인공위성을 점화하는 발사 버튼도 모두 작은 것들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 작은 것들이 형광등을 밝히고, 자동차를 나가게 하며,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다. 요즘 새로 기획되고 있는 대다수의 문고가 본문 뒤에, 더 깊이 공부할 사람을 위한 서지 목록과 간략한 소개글을 덧붙이는 까닭도 다 발심을 통해 더 큰 공부를 해보도록 권할 목적에서다. 문고를 계기 삼거나 발판삼아 철학이든, 역사든, 정신분석학이든, 뭐든 더 큰 공부로 나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한때 회사마다 독자적인 문고를 꾸렸던 출판사들이 하나 둘 씩 문고 출판을 접게 된 시기는 무척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가 2만 불 소득을 올리기 시작한 전후였다. 돈을 좀 번다고, 배부르게 되었다고, 책의 외형은 나날이 번드레해졌다. 가끔 듣는 얘기지만, 외국 사람들은 최고급 종이와 공들인 표지 장정을 한 우리나라 서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지식 세계나 교양의 층이 두터워진 것은 아니었고, 그걸 반성해 보기도 전에 나라 전체가 IMF의 된서리를 맞았다. 그때 한국인들은 아무런 자성 없이, 그저 삼겹살과 소주와 비디오테이프로 그 역경을 참아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삼보(三寶)로부터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
다행히도 IMF는 우리에게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 IMF 끝나가던 2001년, 책세상 출판사에서 새로운 문고를 기획하면서, 80년대 이후로 명맥이 끊긴 문고를 출판 시장에 부활시켰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살림과 이제이북스 등에서 야심 찬 문고가 쏟아져 나왔다. 기존의 문학과지성사 문고와 함께 새로운 문고 열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21세기형 문고들은, 옛날에 번성했던 문고들과는 다른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먼저 예전의 문고는 주로 외국 번역물과 고전에 치중하여 최근의 연구나 주제를 담아내지 못했고, 새로운 저자를 선보이지 못했다. 지식 사회와 대중이 옛날의 문고를 외면한 데에는, 문화적 지체를 해결하지 못한 이런 안이한 기획이 탓도 한몫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문고는 예전과는 몰라보게 진화했다. 외국 번역물보다는 우리나라 저자들의 신간이 새로운 문고의 대종을 차지한다. 원래 문고는 저렴한 가격과 간편성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진화한 오늘의 문고는 최근의 연구들을 실시간으로 소화해 냄으로써 현실 소통력이란 또 다른 가독성을 보탰다. 새로 쏟아지고 있는 문고 가운데는, 대학원에서 막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자신의 첫 연구물을 선보이는 기회로 문고를 선택한 젊은 필자들이 많다. 때문에 독자들은 문고를 통해 신선하고 열정적인 신예 필자들의 첫 번째 저서를 만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며, 아직 명망이 없어서 단행본 출간이 막혀 있던 신인들에게 문고는 그들을 지식 세계에 소개하는 명함 역할을 한다.
2009년, 우리는 다시 1997년의 IMF 상황과 유사한 환난을 맞았다. 또다시 삼겹살과 소주를 장복하고, 비디오테이프를 돌리며 이 고행의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바랄 것인가? 가장 내실 있는 독서 운동의 한 방법이자, 위기의 시대를 헤쳐나갈 방도로, 문고 읽기 운동을 제안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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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장정일
시인, 극작가, 소설가. 1984년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1987년 희곡 「실내극」을 발표, 1988년 단편소설 「펠리칸」을 발표하며 극작가,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했다. 저서로 『장정일 삼국지』 전 10권, 『장정일의 공부』, 『고르비 전당포』, 『장정일의 독서일기』 1~7권, 『햄버거에 대한 명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