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오밥 나무를 좋아했다. 마다가스카르 무른다바 지역에 밀집해있는 그 키 큰 나무를 처음 본 이후 그는 자신의 삶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사실이었다. 일곱 살에 미국인 부모에게 입양되어 시카고에서 이십대를 보낸 그가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딴 건, 꼭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언젠가 셍떽쥐뻬리의 ‘야간비행’을 읽고 난 뒤였다. 그는 시카고 인근의 교외 땅을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땅 부자였던 양아버지의 경비행기를 시험 삼아 운전하곤 했다. 대망의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은 건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다. 사진작가였던 절친 미국인 친구 빌이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 나무를 사진 찍으러갔다가 갑자기 하느님을 만나 선교사가 되어,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케냐의 사막지대 오지인 ‘시리’에 정착했을 때였다. 1993년, 그는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해,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마다가스카르 섬으로 향했다.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서 빌과 합류한 그는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바오밥 나무를 보러가기 위해 무른다바를 향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만난 바오밥 나무는그의 눈에 나무가 아니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기도 했고,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같기도 했으며, 거대한 스핑크스 같기도 했다.
실제로 옛날에 그 큰 나무에 구멍을 뚫고 사람이 살기도 했고, 사람이 죽으면 구멍 안에 시체를 밀어 넣고 판막이로 입구를 못질해 매장하기도 했다고 빌이 말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바오밥 나무는 죽은 시신을 껴안고 녹여 제 한 몸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그 시절, 그는 죽어서 바오밥 나무 구멍 속에 들어가 그 큰 나무와 한 몸이 되기를 꿈꾸었다. 두 달 동안 빌과 함께 아프리카 여행을 하면서 그는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가난했지만 살아있었다. 배고픈 아이들이 맑은 눈을 빛내며 그 부드러운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을 때, 그는 행복했다.
하느님이 실수로 땅에다 거꾸로 심었다는 바오밥 나무, 위로 뻗은 줄기가 뿌리처럼 보이는 하늘을 향해 뻗은 크고 힘센 바오밥 나무는 짧게는 몇 백 년 길게는 몇 천 년을 산다고 했다. 그가 맨 처음 바오밥 나무 이야기를 들은 건 세상의 많은 보통사람들처럼 어릴 적 읽은 ‘어린왕자’에서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보통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잊어버린다. 바오밥 나무도 별도 사막여우도 장미꽃도 보아구렁이도 다 잊어버린다. 무슨 찜 쪄 먹는 바오밥 나무란 말인가? 만일 그가 입양되어 미국에 오지 않았다면, 어린왕자나 경비행기 조종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는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이 너무 작아 바오밥 나무가 빨리 자라면 그 별이 두 조각으로 쪼개질까 걱정하는 페이지의 장면이 내내 잊히지 않았다. 도대체 그 큰 나무가 정말 현실 속에 있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맨 처음 바오밥 나무를 보았을 때, 한 순간에 풀려 버렸다. 그 크고 멋진 나무는 거기에 그렇게 실제하고 있었다. 그즈음 양아버지와 어머니가 아프리카를 여행할 겸 아들을 만나러 바오밥 나무를 보러오는 길에 비행기 사고로 숨졌다. 참 좋은 분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슬픔을 바오밥 나무에 묻었다. 그리고는 커다란 바오밥 나무를 그대로 축소해서 만든 기념품을 한 개 사서 품에 안고 돌아왔다. 그 안에 양부모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지 이 십 여 년이 흘렀다. 양부모가 돌아가신 후 파일럿 선교사가 되어 경비행기에 사람들을 태우고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오지로 사람들을 날라다 주는 일을 한지도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그가 선교사들을 태우고 한 달에 한번은 들어가는 ‘시리’의 낮과 밤은 완전히 딴 모습이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낮에 시리의 풍경은 앙상하고 조그만 가시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듬성듬성 서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는 불모의 땅이었다. 하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면, 시리는 딴 세상으로 변했다. 사막의 밤에 별들이 쏟아져 내려 별로 샤워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 쏟아지는 별들 속에서 그는 그저 그가 운전한 경비행기 뒷자리에 두 시간 동안 탑승했던 여자와 몇 시간 만에 사랑에 빠졌다. 그게 쏟아지는 별 때문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