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돌아왔다. 아프리카는 그에게 너무 먼 우주였다.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에게 학교와 병원을 지어주고 우물을 파서 깨끗한 물을 먹여주는 일은 늘 보람 있는 일이었지만, 남편은 어딘가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어디가 아픈지 알 수도 없었다. 서울로 돌아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그녀였다. 그래서 그들은 말없이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또 다시 부부가 되었다. 남편은 매일 조금씩 더 어딘가 아팠다. 하루는 배가 아팠고, 하루는 머리가 아팠고, 하루는 눈이 아팠고, 하루는 귀가 아팠고, 하루는 마음이 아팠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도 이유를 모르는 병이라 했다. 그녀는 시름시름 앓는 남편을 집에 놓아두고 일을 하러 나가는 게 불안했다. 아니 어떤 날은 남편이 그녀를 따라 안경원에 같이 가서 하루 종일 같이 앉아있는 일도 있었다. 누구나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꽃미남 형으로 생긴 남편의 외모 탓인지, 남편과 동행하는 날이면 고가의 비싼 안경이 여러 개 팔리기도 했다. 그래서 안경원사장도 그녀가 남편과 함께 가게에 나오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일 뿐, 남편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남편의 병은 아프리카의 희귀종 모기에게 물려 생긴 특종 말라리아였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남편은 계속 신열에 들떠 헛소리를 했다. “네 어머니가 살아있다. 전라남도 나주 산속 어느 절에 네 어머니가 살아있다. 네 어머니가 부적을 그려주면 아무리 아픈 아이도 금세 살아난단다.”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집에 데려가 간호하라 했다. 남편의 병이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멀쩡한 시아버지가 아들을 보러 증도에서 올라왔다. 그녀는 너무 멀쩡한 시아버지가 아픈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버지, 할머니가 전라남도 나주 산골의 어느 산사에 살아 계세요.“ 그게 남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와 시아버지와 펜션 아주머니 셋이 남편의 유골을 증도 바다에 띄어 보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시아버지는 점점 더 멀쩡한 사람이 되어갔다. 모든 생각이 멀쩡했는데도, 며느리를 아내로 착각하는 것만은 여전했다. 어쩌면 그녀가 시어머니의 아바타일지 모른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가끔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워낙 점잖은 시아버지의 모습이 그녀를 마음 놓이게 했다. 시아버지가 자꾸 어머니를 찾으러 가자고 그녀를 보챈 건 남편이 죽은 뒤 스무 날이 지난 뒤였다. 시아버지와 함께 전라남도 나주에 있는 산사를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깊은 산이 휘돌아 감은 그 아득한 산자락에 암자가 하나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아름다운 사찰이 산골 깊숙이 숨겨져 있었다. 그들 일행은 주지스님이 계신다는 암자에 들러 사연을 이야기 드렸다. 때 묻지 않은 표정의 젊은 주지스님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구십은 되었을 비구니스님이 장지문을 느리게 열고 들어섰다.
시아버지는 놀랍도록 해맑은 얼굴의 노스님의 얼굴과 마주치는 순간 ‘어머니’ 하고 오열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편안한 얼굴의 노비구니스님은 그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아무 말 없이 시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는 처사님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요즘 부쩍 처사님의 어머니 꿈을 자주 꾸는 탓에 한번 꼭 뵈었으면 했습니다. 처사님의 어머니는 이 절에서 오랜 세월 공양주보살을 했던 분이지요. 음식을 하도 맛있게 해서 저도 이 절에 와서 밥을 참 많이 먹었습니다. 그림솜씨도 좋아서 신도들에게 부적을 그려주곤 했지요. 이상한 건 그분이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살았는지 전혀 기억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어느 날 갑자기 되살아난 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이었어요. 오랜 세월 피붙이처럼 지낸 제게 몇 십 년 만에 한꺼번에 떠오른 사연을 들려주며 한없이 우셨어요. 아들을 만나보고 이 세상 떠나는 게 소원이셨지요. 여기서 며칠 머무르시며 어머니를 위해 기도나 해드리시지요.”
그랬다. 산다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그저 공짜 여행이었다. 하루라도 더 살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랴. 그녀는 그날 밤, 시아버지를 암자에 두고 혼자 차를 몰아 서울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