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얼굴을 그려주는 한가한 저녁 무렵을 상상합니다. 그 그림이 나의 영안사진이 된다 해도 당신이 그려준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이곳 바그람도 창밖에 겨울을 재촉하는 겨울비가 내립니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며칠 전엔 이곳에서 또 탈레반의 자폭 테러 사건이 일어나 미군 네 명이 숨지고 열여덟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테러범은 식당 건물 인근에서 아프간 노동자들과 한 줄에 서 있다가 폭탄 조끼를 터뜨렸답니다. 부상을 당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 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요. 매 순간 지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삶의 진짜 전쟁터에서, 이렇게 멀리 있는 당신을 떠올립니다. 이제 온 세상이 다 전쟁터라고 당신은 말합니다.
얼마 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테러를 모의한 사라 H를 기억하나요? 1993년 파리 북부의 소도시에서 태어난 그녀는 올해만 IS 테러범들과 세 번째 약혼을 했습니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상을 놀라게 한 잔인한 테러범들입니다. 남성요원들에 대한 유럽이 감시가 심해지자 여성들을 테러 전선에 내세우고 있는 형국이지요. 남녀관계를 촉매재로 결속력을 높여 극단적인 테러 활동을 이어가는 그들의 관계도 사랑일까요? 그들은 말합니다. 알라가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라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아픈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가 주사를 맞으면 기독교 신도가 된다고 아이에게 주사 놓는 걸 꺼리는 걸 보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머리를 다쳐 피를 뚝뚝 흘리는 어린아이와 하반신이 사라진 젊은 청년들이 병원 복도에 누워 있고 밖에서는 포성이 그치지 않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폭격은 멈추지 않고 의약품은 동이 나고 국경마다 전투가 벌어져 늘 의약품 수급이 걱정이었던 날들도 어제 같네요. 편한 인생 마다하고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환자를 돌보는 의사들은 제 생각에도 참 놀랍도록 훌륭합니다.
환자는 넘치고 의사와 의약품은 부족한 곳, 그곳이 전쟁터랍니다. 밀려드는 폭탄테러 환자를 돌봐야 하는 처지라 산모와 신생아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죠.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출산 비용 5달러가 없어서 집에서 이이를 낳다 죽은 산모와 신생아도 적지 않답니다. 그나마 카불에 사는 사람들은 병원이라도 가까이 있지만 산간이나 오지의 가난한 사람들은 진료를 받으러 올 수도 없거니와 오려고도 하지 않아요. 병에 걸리면 그저 알라가 하시는 일로 받아들이고 맙니다. 요즘은 좀 평화롭구나 싶었는데, 또 폭탄테러가 일어났네요.
작은 전쟁 큰 전쟁, 이름이 다를 뿐 이곳은 여전히 매일이 전쟁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니 박경아 당신의 나라 한국도 전쟁이군요. 촛불을 들고 시위하는 백만 명의 군중과 그들이 켜든 백만 개의 촛불을 텔레비전에서 보니 전쟁 같기도, 축제 같기도 하더군요.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소녀 적부터 친했던 단 하나의 친구하고만 국정을 논의했고, 그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국민의 귀한 세금을 마구 자신의 이익으로 빼돌렸다고요? 박경아, 당신도 촛불을 들고 광분한 시위대의 틈에 끼었을까요? 수백만의 사람들이 대통령을 향해 켜든 증오의 촛불은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인 제겐 “참 동정심 없는 세상이구나.”하는 엉뚱한 기분이 들게도 했답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잊지 못하듯, 당신들의 외로운 대통령도 두 분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의 비극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나 봅니다. ‘상처는 나의 힘’이라고 누가 그랬을까요? ‘복수는 나의 힘’이라고 누가 그랬을까요?
세계 3대 석굴인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굴을 아시나요? 탈레반 정권은 신은 유일하기 때문에 모든 불상은 이슬람에 대한 모독이라며 바미안 석굴을 비롯한 아프간 내의 모든 불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포고문을 내리고,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해 그 보물 중의 보물인 거대한 바미안 석불을 파괴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전에 그곳을 가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작년에 불교에 관심이 많은 친구와 카불의 서북쪽 230킬로미터의 지점에 위치한 힌두쿠시 산중의 고대도시 바미안, 그곳에 실제로 가보았답니다. 가는 길에 곳곳에 붙은 지뢰 표시와 전쟁의 흔적들로 울적한 구불거리는 산길은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드디어 사방이 황토빛 산으로 둘러싸인 신비한 그곳에 도달했어요. 1세기부터 7세기 이슬람에 정복될 때까지 불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그곳에는 파괴된 두 개의 거대한 대불을 모신 석굴사원으로 유명하지만, 830여 개나 되는 동굴 사원들을 지니고 있답니다.
그 많은 석굴들 속 부처상들은 다 파괴되고 주민들이 문을 달아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1500년을 지켜오던, 동쪽에는 38미터 높이의, 서쪽에는 55미터의 거대한 불상이 있던 자리는 빈 석실만이 남아 그 커다란 크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답니다. 문득 언젠가 당신이 보내준 한국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떠올립니다. 그때 당신이 이렇게 썼었어요.
허허로운 한없는 벌판에 서 있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며 “볼 것도 없네.” 했더니, 같이 여행 중이던 스톡홀름에서 사는 언니가 그곳을 먼 눈길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요. “왜 너는 저 비어있음의 여백을 볼 줄 모르니?” 바로 그런 기분이었답니다.
그 여백의 긴 끝에 당신이 서서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기다려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런 구절을 읽었답니다.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아니 곳곳에 흔적을 놓아두어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면 좋겠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중에서) 나는 이글을 이렇게 고쳐 씁니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아니 곳곳에 흔적을 놓아두어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주면 좋겠다.”
오늘은 이만, 바그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