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박경아, 내가 늘 바라듯 오늘도 행복했나요? 행복이라는 게 뭔지 오래도록 잊고 있었네요. 하긴 죽어가는 사람을 살렸을 때의 행복한 기분은 그야말로 최고죠. 하지만 그 반대의 일이 더 흔하게 일어나죠. 폭탄이 터져서, 지뢰를 밟아서 몸의 일부를 상실한 채 피투성이가 되어 실려 들어오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파티를 생각해요. 지금은 한참 무르익어가는 삶의 파티 중이다. 이 고통의 파티 속에서 나는 신나게 춤을 추는 중이다. 나의 춤은 바람 속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목숨 하나라도 더 구하는 일이다. 팔다리가 잘린 채 실려 들어오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신이 없다는 걸 매 순간 확인하죠.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 맨 처음 확인한 뉴스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어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50명이 숨지고 53명 이상이 다쳤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다. 수십 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소리를 음악으로 착각했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해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용의자는 86년 뉴욕 출생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부모 사이의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29세 ‘오마르 마틴’으로 총격전 끝에 사살되었다. 2009년 결혼한 그는 다른 범죄기록이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에 경도된 테러행위로 보이기도 하나 일단은 불특정다수를 겨냥한 국내테러행위로 보인다. 유명한 게이 전용 나이트클럽에서 벌어진 테러라 성 소수자를 겨냥한 증오범죄 가능성도 저버릴 수 없다.
맙소사 ‘오마르 마틴’, 그는 내 이웃이었어요. 그의 부모님과 우리 부모님은 나이 차는 많이 나지만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죠. 어린 시절의 귀엽던 오마르, 그 얼굴이 눈앞에 생생하네요. 결혼식도 갔었는걸요. 그 행복해보이던 오마르가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우리 부모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민을 온 분들이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분들이셔서 제 이름을 이슬람식으로 짓지 않으셨어요. 마치 유태인 이름처럼 들리는 제 이름을 저는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름 박경아, 당신은 안전한가요?
뉴스 중 내 귀를 멈추게 한 건 “사람들은 총격범의 손에 들린 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 총성이 음악소리인 줄 알았다. 20발에서 50발 정도의 총성 뒤에 음악이 멈췄다.”라는 대목이었어요. 총소리가 음악처럼 들리는 시대,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어요. 일상이 전쟁인 시대, 한순간에 전쟁터로 변하는 이곳이나 평화로운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나 위험하긴 마찬가지죠. 게다가 총기를 휘두르는 용의자는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의 군인도 아니고 그저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운 늑대라니. 오마르, 내가 아는 소년 오마르는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어요. 그의 부모님은 내 부모님들처럼 살기 위해 바쁜 사람들이었죠. 지금은 번화가가 된 브루클린의 어두운 골목어귀에서 식료품 가게를 했던 우리 부모님들은 한국인들이 너무 부지런해서 경쟁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그들은 잠도 안 자는 것 같다며 유태인 다음으로 무서운 종족이 한국인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하지만 요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죠. 알라의 이름으로 자신의 몸에 수없는 폭탄을 장전하고 군중들 사이에서 자폭하는 어린 소년 소녀들을 볼 때 마다 소름이 끼쳐요. 그들을 닮은 모방 테러가 바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외로운 늑대들의 테러행위죠.
하긴 외로운 늑대가 아니었던 젊은이가 있을까? 나는 외로워서 적십자 소속 의사가 되었어요. 박경아 당신이 외로워서 그림을 그렸듯이. 돌이켜 생각하니 젊은 날 외로움은 우리의 힘이고 용기였어요. 그 시절로 돌아가 나는 뉴욕 맨해튼 소호의 낯선 화랑으로 들어가 처음 본 박경아 당신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요. 당신과 함께 소호의 큰 길목에 잇는 극장 안젤리카에서 영화 『바그다드카페』를 보고 싶어요. 영화 속에서 들리는 달콤한 노랫소리 「calling you」를 들으며 당신의 작은 어깨를 감싸 안고 싶네요.
그 옛날의 내 이웃 오마르, 그의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자주 폭행을 당하곤 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었어요. 외로워서 오마르는 총기 난사 테러를 벌이고, 외로워서 나는 이 먼 곳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에서 실려 들어오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고, 그리고 박경아 당신은 외로워서 오늘도 그림을 그리죠. 외로움은 마치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재료지요. 오늘 나는 페이스북에 당신이 올린 신비로운 그림을 보았어요. 동양적인 접시 위에 그린 마치 박경아 당신을 닮은 붓다를 그린 그림을.
당신은 부디스트인가요?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나도 어쩌면 그쪽에 가까울지 모르겠네요. 오늘도 내게 위안이 되어준 당신의 그림에 감사해요. 내 소중한 ‘박경아’라 불리는 이름, 오늘은 이만, 굿나잇.
─ 바그람에서, 당신의 앨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