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는 강물의 소리를 더 잘 들어보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의 모습, 자신의 모습, 아들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흘러가고 있었으며, 카말라의 모습도 나타났다가 스르르 녹듯이 사라져버렸으며, 고빈다의 모습과 그 밖의 다른 모습들도 나타나 모두 한데 어우러져 흘러가다가, 모두가 강물이 되었다. 모두가 강이 되어 그리움에 사무쳐서, 갈구하면서, 고통스러워하면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 소리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채, 가슴을 에는 듯한 비통함으로 가득 찬 채,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욕구로 가득찬 채, 울려퍼지고 있었다. (…) 싯다르타는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이제 온통 귀 기울여 듣는 자가 되어, 온통 듣는 데 몰두하였으며, 마음을 온통 비운 채, 온통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이제는 귀 기울여 듣는 법을 끝까지 다 배웠음을 느꼈다. 진작부터 그는 자주 이 모든 소리들을, 그러니까 강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소리를 들어왔었지만, 오늘은 그 소리의 울림이 새로웠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176쪽.
싯다르타의 그림자는 바로 누구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의 천성이었다. 카말라를 ‘사랑의 스승’으로 삼긴 했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으며, 고빈다를 참된 벗으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고빈다가 싯다르타에게 완전히 마음을 다 준 것만큼 스스로가 고빈다에게 마음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랑 때문에 인간이 바보 같은 짓을 일삼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의 돌부리에 걸려 천하의 싯다르타는 허우적거린다. 사람이 자신의 자존심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는 진실을, 그 평범하지만 숭고한 사랑의 진실을 그는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자기 자신이 늘 세상의 중심이었던 싯다르타는 아들을 향한 이루어지지지 않는 사랑을 통해 처음으로 그 견고한 자기중심성을 깨뜨린다. 융은 자신의 그림자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며, 그 그림자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아니마 혹은 아니무스를 발견해내는 것은 극소수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경지라고 했다. “나는 그림자를 인정하는 과정을 수습기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후 아니마를 알아보는 것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걸작을 만드는 일이다.”(클레어 던, 공지민 옮김 <카를 융 영혼의 치유자>, 지와 사랑, 2013, 131쪽.)
싯다르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잉태되고 태어나 어엿한 소년으로 자라난 아들을 보는 순간 첫눈에 반한다. 아들은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깨달음의 방해물이 아니라 그가 안다고 믿었지만 아직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그림자였다. 싯다르타는 어떻게든 아들의 마음을 돌려 함께 살아보고자 아들을 쫓아가보지만, 사치와 환락에 길들어버린 아들은 싯다르타를 아예 만나주지도 않은 채 마치 잡상인이나 거지를 대하듯 싯다르타를 입구에서 내쳐버린다. 최고의 현자 고타마 싯다르타 앞에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던 싯다르타는 아직 턱에 수염도 나지 않은 철부지 아들의 차가운 냉대 앞에 무릎을 꿇고 만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가슴을 찢어발기는 아들을 바라보며 이 장면이 왠지 낯설지가 않다. 아버지의 마음을 산산이 조각내는 아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아들이 자신을 완전히 저버리는 바로 그 순간, 싯다르타는 자신이 아버지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를 깨닫는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가 단 한 번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아직까지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의 슬픈 얼굴을 강물을 통해 바라본다. 매일 강물 위를 노 저어 다니는 뱃사공이 되어서도 듣지 못했던 강물의 깊은 울림, 타인의 흐느낌 소리, 사랑하는 이들의 신음소리, 사랑조차 할 수 없었던 이들의 신음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자신이 완전히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사랑의 무참한 아픔 속에서 싯다르타는 비로소 자신이 아버지에게 주었던 상처를, 그리고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주었던 뼈저린 상처를 깨닫는다. 이 참담한 아픔 속에서도 싯다르타는 아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되, 사랑하는 대상을 자기 마음에 맞게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강물의 소리를 듣는 법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 싯다르타를 향해 바주데바가 미소 짓는다. “저 소리가 들려요?” 그제야 들리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아픔,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서 완전히 버려지는 슬픔을 이해하고서야 싯다르타는 강물의 소리를 듣는 법을 알게 된다. 강물소리에 얽힌 세상 만물의 한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또 다른 ‘옴’의 전체성에 도달하는 길이었다. “자신의 영혼을 어떤 특정한 소리에 묶어두거나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그 어떤 특정한 소리에 몰입하지 않고 모든 소리들을 듣고, 전체, 단일성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 수천의 소리가 어우러진 위대한 노래는 단 한 개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바로 완성이라는 의미의 옴이라는 말이었다.”
싯다르타가 친구 바주데바의 얼굴을 바라보았을 때 이렇듯 바주데바의 미소가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이제 싯다르타의 얼굴에도 이와 똑같은 미소가 밝은 빛을 내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상처에서 한창 꽃이 피어나고, 그의 고통이 빛을 발하고, 그의 자아가 그 단일성 안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 싯다르타는 운명과 싸우는 일을 그만두었으며, 고민하는 일도 그만두었다.
- 헤르만 헤세, 박병덕 옮김, <싯다르타>, 민음사, 1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