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심장이 격렬이 고동치고 있어 마치 금방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못 견디도록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을 그녀에게 돌렸다. (…) 소냐는 무서워졌다.
“내가 돌아가면서 이것으로 당신하고는 이제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만약 오늘 또 올 수 있다면 그때는 당신에게 말하겠다고 했지. 누가 리자베타를 죽였는가를…….”
그녀는 갑자기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 “그 녀석은 리자베타를…죽일 생각은 아니었지. 그녀를 죽인 건 우연이었어. 그녀는 할멈만 죽일 생각으로…할멈이 혼자 있을 때…찾아간 거야. 그런데 마침 리자베타가 들어왔어. 그래서…그 사람까지 죽인 거야.”
(…) “당신은 어째서, 어째서 자기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마셨어요!”
절망에 빠진 듯이 그녀는 소리쳤다.
그러더니 별안간 벌떡 일어나 그의 목에 달려들어 그를 두 팔로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라스콜리니코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슬픈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냐, 당신은 이상한 여자로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도 끌어안고 키스를 하다니, 당신도 정신이 없는 모양이지.”
“당신보다 불행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 도스토예프스키, 유성인 옮김, <죄와 벌>, 하서, 2007, 552~4쪽.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를 때, 인간은 마음속에 갖가지 방어기제를 설치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스스로를 ‘인류의 행복을 위해 악당을 퇴치하는 위인’의 반열에 올리기도 하고, 나폴레옹이나 시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악행을 저지름으로써 위대한 업적을 쌓았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논리는 또 다른 논리를 낳고, 방어는 또 다른 방어를 낳는다. 그러나 어떻게 합리화해도 ‘나는 살인자다’라는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죽인 전당포 노파의 돈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 이 앎은 라스콜리니코프를 파괴할 수도 있고 구원할 수도 있는 힘이다. 어떤 그럴 듯한 변명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치명적인 진실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만 담겨 있는 진실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백해야 한다. 발설해야 한다. 어느새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는 소냐에게, 라스콜리니코프는 마침내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도 절친한 벗과도 인연을 끊으려 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상하게도 소냐만은 버릴 수가 없었다. 소냐는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안타까운 타인에서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으로, 도와야 할 사람에서 자신과 가장 닮은 사람으로, 마침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에게서 ‘나에게 무언가를 캐내려하는 의심 많은 타인의 눈빛’ 이 아니라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모든 것을 받아줄 것만 같은, 무한한 사랑의 눈빛’을 발견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제야 자신이 살인을 해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던 끔찍한 운명의 굴레를 남김없이 털어놓는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던 가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족을 향한 무거운 책임감, 학자금조차 마련하지 못해 공부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최악의 상황, 사랑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가족을 향한 죄책감, 겪고 또 겪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 라스콜리니코프는 ‘내가 그 두 여자를 죽였어’라고 고백하지 않았다. 굳이 다 말하지 않아도 소냐는 한꺼번에 이해했던 것이다. 아니,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다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장발장에게도 고백의 시간이 다가온다. 혁명의 피바람이 몰아치는 동안, 앙졸라를 비롯하여 마리우스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던 친구들은 모두 적들의 총탄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마리우스 또한 거의 산송장과 다름없었다. 사경을 헤매는 마리우스를 짊어지고, 장발장은 정부군과 경찰의 감시를 피해 지하수로로 도망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자신도 언제 잡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발장은 딸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혁명을 꿈꾸는 한 청년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다. 죽음 직전의 마리우스는 장발장으로 인해 목숨을 구하고, 드디어 꼬제뜨와 재회하게 된다. 장발장은 ‘내가 너를 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리우스는 도대체 자신을 구한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장인이 될 장발장에게 이 모든 감사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아직 장발장은 딸에게도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마리우스의 고백을 들으면서, 자신 또한 평생 도망만 쳐왔던 이 가혹한 운명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영혼의 해방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스스로를 가두는 마음의 감옥. 그 육중한 감옥의 벽돌을 들어 올리는 힘은 가장 아끼는 사람에게 내 모든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에서 우러나온다.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는 천사처럼 전투 속에 뛰어 들어왔습니다. 전투가 한창 벌어진 그 속으로 뛰어들어 지하수도로 뚜껑을 열고 그 속으로 나를 끌어넣어 나를 매고 가야 했습니다! 무서운 지하의 통로를, 머리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고, 어둠 속을, 진창 속을, 시오리 이상이나 시체를 등에 지고 걸어야 했단 말입니다. 그것도 어떤 목적으로? 그 시체를 구한다는, 다만 그 목적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체가 나였습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 겁니다. ‘아직 틀림없이 생명의 빛이 남아 있다. 이 불쌍한 생명의 불을 위해 나는 내 존재를 걸자!’ (…) 한 발짝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지하수도로에서 나온 순간에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만한 일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욱이 그는 아무런 보수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한낱 폭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정말 무엇이었겠습니까? 한낱 패배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179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