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멜라도프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한쪽 팔꿈치를 일으켜 세웠다. 한참 동안 그는 딸이 누구인지 모르는 양 바라보았다. 이제까지 그는 이런 옷차림을 한 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로소 그는 딸을 알아보았다. 짓밣힌 몸으로 그런 옷차림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임종하는 아버지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딸. 끝없는 고뇌가 역력히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내 딸 소냐! 용서해다오.”
그는 팔을 내밀려고 했으나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마룻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 소냐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가 아버지를 안은 채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는 딸의 팔에 안긴 채 숨을 거두었다. (……) 라스콜리니코프는 카테리나에게 다가갔다.
- 도스토예프스키, 유성인 옮김, <죄와 벌>, 하서, 2007, 246쪽.
어떤 순간은 미친 듯이 ‘자수를 해야만 한다’고 마음 먹다가도, 대부분의 순간은 ‘난 잡히지 않을 거야’라고 믿고 싶은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정처없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마차에 치여 죽어가는 알콜중독자 마르멜라도프를 구해낸다. 그러나 상처가 너무 심해 마르멜라도프를 살려내지는 못했고, 그나마 마르멜라도프의 가족들에게 그의 임종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소냐는 미처 평상복으로 갈아입지도 못한 채 헐레벌떡 뛰어온다. 죽어가는 마르멜라도프는 딸 소냐를 알아보지 못한다. ‘저 여자는 창녀다’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옷차림과 화장을 한 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위독한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창졸간에 달려온 소냐는 자신의 그런 모습을 가족들 앞에서 처음 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라스콜리니코프와 소냐의 운명적인 첫 만남의 순간이기도 했다.
마르멜라도프는 알콜중독에 빠져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자신의 딸을 거리의 창녀로 내몬 죄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죽음의 문턱에서 깨닫는다. 그는 죄책감을 가지긴 했지만, 소냐의 모습이 이런 정도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 불쌍한 가족을 바라보면서 마치 일종의 ‘계시’를 받은 양 의기양양해진다. 드디어 살인자이자 룸펜이자 도망자인 자신의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은 것이다. 그는 마르멜라도프 가족을 물심양면으로 도움으로써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는 자신이 마르멜라도프 가족을 돕겠다며 앞장선다. 우리는 ‘친구’라고.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가족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마르멜라도프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자신은 ‘죽은 분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 싶다고.
그는 주머니에 있던 20루블을 꺼내 카테리나에게 건네주고, 언제든 다시 들러 소냐 가족을 돕겠다고 약속한다. 살인 사건 이후 일종의 착란 상태에 빠져 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처음으로 온몸 구석구석, 갑작스레 밀어닥친 미칠 듯이 힘찬 생명감, 어떤 새롭고 흐뭇한 감각을 느낀다. 그는 홀로 생각한다. “이 감각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뜻밖에 특사를 받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자신의 인생은 노파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라고. 그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인생 최고의 ‘구원’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시시각각으로 솟구치기 시작한 긍지와 자신은 순식간에 그를 딴 사람으로 변모시켜 놓는다. 그는 자신을 변화시킨 것이 무엇인지는 깨달을 수가 없었다. 단지 지푸라기라도 움켜잡으려고 했던 그에게 ‘나도 살 수 있다! 아직 인생이 있다. 내 목숨은 노파와 함께 죽은 것이 아니다’하는 외침이 터진 것이었다.
한편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두 여인을 알게 된다. 한때 성실한 공장 노동자였으나 어려운 생활 형편 때문에 창녀로 전락한 팡틴느. 그녀는 딸 코제트의 양육비와 약값을 벌기 위해 온갖 험한 일을 다 해보지만, 이제는 더 이상 ‘팔 것’이 없다. 오직 하나뿐인 비참한 자산, 그녀의 몸마저도 병에 걸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곤경에 처한 팡틴느를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장발장이었다. 이제 시장이 된 장발장은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장발장은 팡틴느의 비참한 삶을 목격하며 어쩌면 예전의 자신보다 더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낀다. 장발장은 모두가 ‘창녀’라는 이유로 멸시하는 그녀가 지닌 눈부신 아름다움을 알아본다. 그는 자신에게 ‘두 번째 인생’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처럼, 팡틴느와 코제트에게도 ‘두 번째 인생’의 기회를 주고 싶어진다. ‘누구도 나를 돕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세상을 증오하던 장발장이,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아름다운 인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가능한 최대의 불행한 나락에 떨어진 사람들의 영혼, 아무도 들여다보아 주지 않는 불행의 밑바닥에서 방황하는 불쌍한 사람들, 법률에서 버림받은 그 같은 사람들은, 제 머리 위 인간 사회의 모든 중량이 그 외부로 밀려난 자에게는 거대하고 그 아래로 떨어져 내려간 자에게는 지독히 무섭게 짓누르는 인류 사회의 모든 중량이 내리누름을 느끼는 것이다.
-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