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콜리니코프는 도끼를 쑥 빼들고 뚜렷한 의식도 없이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리고 거의 힘도 안 들이고 기계적으로 노파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 도끼는 바로 정수리 한복판에 맞았다. 그것은 노파의 작은 키 때문이었다. 노파는 악 하고 외쳤으나 아주 가느다란 소리였다. 그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가져갔으나 그냥 비실비실 마루 위에 주저앉았다. 한 손엔 아직도 저당물을 쥔 채였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도끼 등으로 정수리를 두어 번 계속해서 내리쳤다. 피는 컵을 엎어놓은 듯이 솟아나왔다. 그리고 몸은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그는 물러서서 발로 노파의 몸을 젖히고 들여다보았다. 노파는 죽어 있었다. 눈은 금방 튀어나올 듯이 부릅뜨고 있고 이마와 얼굴 전체는 경련으로 말미암아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 도스토예프스키, 유성인 옮김, <죄와 벌>, 하서, 2007, 106쪽
절망에 빠진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주도면밀하게 계획한다. 모두에게 해를 끼칠 뿐인 전당포 노파 알로냐를 ‘처벌’하기 위해, 그는 온갖 두려움을 단계별로 참아내며 드디어 노파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살인의 순간은 지극히 짧았지만, 그 순간 가난하지만 꿈 많았던 젊은 법학도가 오랫동안 지켜온 모든 신념은 산산이 부서진다. 그는 결코 주도면밀한 살인범이 아니었다. 노파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여인, 리자베타가 곧 나타날 것임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론’대로라면 온 세상에 해를 끼치는 존재는 살아있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그러나 노파를 돌봐왔던 리자베타에게는 아무 죄가 없다. 게다가 리자베타는 착하고 순하기로 소문난 여인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황한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 직후의 현장을 목격한 그녀 역시 도끼로 쳐죽이고 만다. 그는 살인 후의 도주 계획에 대해서도 미처 계산하지 못했다. 노파에게는 항상 돈을 빌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노파를 찾아온 전당포 손님들이 바로 문밖에서 노파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그는, 간신히 운의 도움을 빌어 살인현장을 빠져나온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진짜 목적은 노파를 살해함으로써 노파의 ‘돈주머니’를 훔치는 것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나락으로 빠져버린 자신의 운명을 바꿀 ‘돈’을 위해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그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노파의 ‘도덕성’을 문제 삼고, 노파를 ‘죽여도 될 사람’으로 만든 것은 사실 자신의 파괴된 인생을 구제하기 위한 자기기만이었다. 세상을 향한 증오와 자기 인생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찬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아직 모른다. 지쳐버린 그는 제대로 씻지도 않고, 세밀하게 증거를 인멸하지도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져버리고 만다. 혼곤한 잠에서 간신히 깨어나 보니 그의 양말 끝이 피투성이로 물들어 있었다. 피가 흥건한 바닥을 밟았던 행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말을 비롯하여 각종 살인의 물증이 될 만한 것들을 도대체 어디에 숨겨야 할까. 그는 물건을 태울 ‘성냥’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이제 진짜 공포가 엄습하기 시작한다. 내가 저지른 짓이 도대체 뭘까. 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한편 장발장은 라스콜리니코프와 정반대 길을 걸어간다. 그는 자신이 망쳐버린 인생을, 세상이 망쳐버린 자신을, 비로소 똑바로 대면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물건을 훔친 죄인까지 기꺼이 용서해준 주교님의 영혼이 장발장의 마비된 영혼을 일깨운 것이다. 장발장은 오로지 세상을 증오하는 일로 남은 인생을 채우려던 결심을 누그러뜨린다. 그는 자신의 인생과 주교님의 인생을 비교해보며, 비로소 자신이 나아갈 길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된다. 가련한 한 사나이의 영혼 전체를 찬란한 빛으로 가득 채운 그분의 삶을, 장발장은 닮고 싶어진다. 세상을 향해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던지고 싶어진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세상을 바꾸고 싶어졌다. 구제불능의 운명을 스스로 바꾸는 안간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졌다.
장발장은 오랫동안 울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울고, 흐느끼며 울었다. 여자보다도 연약해지고 어린아이보다도 무서움에 떨면서. 울고 있는 동안에 그의 머릿속이 차츰 밝아져왔다. 기이한 밝음, 홀가분하고도 무서운 밝음이었다. 그의 과거의 생애, 최초의 과실, 길고 긴 속죄, 그리고 짐승처럼 되어버린 겉모습, 서서이 굳어져 냉혹해진 내면, 그토록 많은 복수를 게획하며 기다린 석방, 주교의 집에서 일어난 일, 마지막으로 그가 저지른 일, 소년에게서 40수를 훔친 일, 주교의 용서 뒤에 있었던 일이니만큼 더욱 비겁하고 더욱 흉악스러웠던 그 죄,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또렷이 되살아나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밝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이제까지 살아온 자기 삶을 바라보았다. 끔찍스러운 것으로 보였다. 그는 자기 영혼을 바라보았다. 무시무시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부드러운 밝음이 그의 삶과 영혼 위에 비치고 있었다. 그는 천국의 빛을 받은 사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