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콜리니코프는 그곳을 나오다가 술집에서 거스름으로 받은 동전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어 그 집 문턱에 슬쩍 내려놓았다. 그러나 층계를 다 내려오기도 전에 그는 자기가 한 행동을 곧 후회했다. 그는 다시 올라갈까 하고 생각했다.
(…) ‘그들에겐 그래도 소냐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내게도 필요한 돈이다.’ 그러나 이제와서 되돌아가기도 쑥스러워 그는 손을 내저으며 그냥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소냐에게도 루즈가 필요할테지.’ 한길을 걸으면서 그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생각을 계속했다. ‘몸치장에 돈이 든다지. 흠. 그러나 소냐는 당장 오늘이라도 파산할지 모르지 않는가! (…) 값비싼 털가죽 짐승을 사냥하듯이..... 금광을 찾아 헤매듯이...그러니까 그들은 내 돈이 없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굶어죽게 될지도 몰라..... 아아, 장하다. 소냐! 그렇지만 그들은 정말 좋은 우물을 파낸 셈이군. 게다가 이미 그 우물을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벌써 파렴치한 짓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단 말이다! 잠깐 눈물을 흘리고는 그걸로 그만이지! 비열한 동물은 무슨 일에나 곧 익숙해지는 법이니까 말이야!“
-도스토예프스키, 유성인 옮김, 『죄와 벌』, 하서, 2007, 40쪽.
죄의 바다에 깊이 빠져 본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죄의 철학자, 인간 본성의 철학자가 된다. 라스콜리니코프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고향을 떠나 문화의 중심지 페테르부르크로 왔지만, 가난한 고학생 신분으로는 그 무엇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쥐꼬리 만한 사례비를 받고 해왔던 가정교사 일조차 그만두고, 그는 거의 부랑자처럼 지내고 있는 와중에 자신보다 더 불쌍한 인간 마스멜라도프를 만난다. 그리고 마스멜라도프보다 더 불쌍한 존재, 소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어린 소녀가 자신의 가망 없는 가족들 돌보기 위해 몸을 팔아야 한다니. 자신도 가난하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소냐의 집에 돈을 놓고 온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인간 본성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 시작한다.
가난하고 힘없지만 도저히 연민조차 할 수 없는 인간 마스멜리니노프를 바라보면서, 라스콜리니포크는 혐오감을 느낀다. 몸을 팔아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딸의 마지막 남은 돈을 빼앗아 술을 퍼마시는 아버지. 인간에 대한 믿음이 점점 허물어져 가는 라스콜리니코프. 그는 마스멜리니노프 가족의 참상을 바라보면서 ‘정말로 구제불능인 인간들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빠져든다. 구원받을 가치도 없는 인간들, 용서받을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한편 라스콜리니코프는 ‘착한 것’에도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대책 없이 ‘착한 것’은 바보짓이 아닐까. 소냐처럼 모든 것을 희생해버리면, 남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악한 자들에게 맞서는 최고의 방법이 진정 ‘선한 것’이란 말인가.
장발장 또한 자신을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신부님에게 공감할 수가 없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을까. 난 한 번도 인간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20년 가까이 복역하는 동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고, 이제는 취직은커녕 여관방에서 돈을 내도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왜 신부님은 이렇게 나에게 무한한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것일까. 신부님의 선의는 곧바로 장발장에게 감동을 주었다기보다는 또 다른 의심에 빠지게 한다.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선할 수가 있는가. 이런 선함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는가. 장발장은 자신을 ‘죄인’으로 바라보지 않는 첫 번째 인간을 만난 것이다. 이 기이한 친절에 장발장은 당황한다. 내가 태어나서 받은 것이라고는 냉대와 멸시뿐이었는데, 내게 이토록 잘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 사람의 선행은 정말 진심일까. 게다가 이 사람은 나를 ‘형제’라고 부른다. 형제라니, 아무리 신부님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장발장은 신부님의 조건 없는 선의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주교는 장발장 곁에 앉아 그의 손을 부드럽게 만졌다.
“당신은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좋았소. 여기는 내 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집이오. 이 문은 들어오는 사람에게 일일이 이름을 묻지 않고, 다만 괴로움이 있는가 없는가를 물어볼 뿐이오. 당신이 괴로움을 겪고 굶주림과 목마름을 느끼고 있다면, 잘 찾아오셨소. 내게 감사하지 마시오. 내가 내 집에 당신을 맞아들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오. 이 집은 안식처를 구하는 사람 모두의 집이오. 나는 한낱 지나가는 사람인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오. 여기는 내 집이기보다 당신 집이오. 여기 있는 것은 모두 당신 것이오. 내가 어찌 당신 이름을 알 필요가 있겠소? 그뿐 아니라, 당신이 말하기 전부터 나는 당신 이름을 하나 알고 있었소.”
사나이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정말입니까? 사제님은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고 계셨습니까?”
“그렇소. 당신은 내 형제라고 불립니다.”
-빅토르 위고, 송면 옮김, 『레 미제라블』, 동서문화사, 2012, 1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