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르는 무엇을 맨 먼저 건져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텅 빈 벽에 모피만을 걸친 여자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재빨리 기어 올라가 액자 위에 몸을 붙였다. 그의 몸은 유리에 찰싹 달라붙었고, 유리 덕분에 뜨거운 배는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가 지금 온몸으로 가리고 있는 이 사진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 “그럼 이젠 뭘 옮길까요?” 하고 그레테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벽에 달라붙은 그레고르의 시선과 마주쳤다. 어머니가 계신 탓인지 그레테는 정신을 잃지 않고 얼굴을 어머니 똑으로 숙여 어머니가 돌아보지 못하게 했다. (…) “가요. 잠깐 실로 는 게 좋겠어요.” 그레테의 의도는 명백했다. 어머니를 안전한 곳에다 모셔놓고 그를 벽에서 내려오게 할 작정인 것이다. 그럼, 어디 멋대로 해봐라! 그는 사진 위에 앉아서 그것을 내주지 않았다. 그는 그레테의 얼굴에 뛰어내리고 싶었다.
-프란츠 카프카, 이재황 옮김, 『변신』, 문학동네, 2005, 110쪽.
그레고르는 한 번도 가족들에게 애원하지 않았다. 나를 도와달라고. 나에게 먹을 만한 것을 좀 가져달라고. 나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살펴달라고. 그는 벌레이기 이전에도, 벌레가 되기 이전에도, 가족들에게 어떤 SOS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자신의 꿈마저 잃어버리고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발 벗고 뛰던 시절에도, 이제 벌레가 되어버려 그 중노동마저 하게 될 수 없게 되어버린 지금도. 그런데 그레고르는 『변신』에서 딱 한 번, 가족들에게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의사표시를 한다. 바로 그레테와 어머니가 그레고르의 방에 있는 모든 가구를 치우려 하는 날이었다. 그레고르는 어머니와 여동생이 액자를 치우려 하자, 액자 위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만약 이 액자를 치우려 한다면, 그레테의 얼굴 위로라도 떨어지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한다. 그 순간, 그레고르는 이것까지 양보해버리면 영원히 이 집안에서 ‘그레고르의 자리’, 장남의 자리, 한 인간의 자리는 없어질 것임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아직 여기 살아있다고, 자신은 ‘인간’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레고르’라고, 당신의 아들이며 너의 오빠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레고르는 온몸을 액자에 철썩 붙인 채 저항한다.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렸으니, 온몸을 사용해 벌레의 언어로 말한 것이다. 제발 내가 ‘벌레’가 아니라 ‘그레고르’라는 것을, 당신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폭력과 그레테의 폭언뿐이었다. 그레고르의 흉측한 모습을 처음으로 제대로 목격한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실신해버리고, 그레테는 오빠에게 노골적인 경멸을 표시하며 아버지에게 모든 사태를 일러바쳐 버린다. 그레고르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는 다짜고짜 사과를 던져 그레고르의 등에 치명상을 입히고 만다. 커다란 사과가 등에 박힌 채로, 그레고르는 이제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되어, 병에 걸린 벌레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은커녕 ‘가족’으로도 대접받을 수 없게 된 그레고르에게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무엇일까.
한편, 뫼르소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역시 참담하기는 마찬가지다. 뫼르소의 연인 마리를 향한 검사의 질문은 매우 혹독하다. 마리와 뫼르소가 처음 관계를 맺던 날의 자세한 정황을 꼬치꼬치 캐묻던 검사는, 마침내 어머니의 장례식 바로 다음 날 두 사람의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알아내고 그것을 ‘단죄의 근거’로 삼는다. 어머니의 장례식 바로 다음 날부터, 시시껄렁한 희극영화를 보고, ‘난잡한 관계’를 맺었으며, 아무런 ‘애도의 정황’도 연출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뫼르소가 ‘위험한 인물’, ‘이상한 인물’인 증거가 된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자신의 살인이 아니라 어머니의 장례식이 재판의 이슈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보인 뫼르소의 태도는 ‘뫼르소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근거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리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뫼르소는 아무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항변하지만, 아무도 그녀의 진심을 들어주지 않는다.
서류를 뒤적이고 있던 검사가 갑자기, 언제부터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었느냐고 물었다. 마리는 그 날짜를 말했다. 검사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것은 엄마의 장례식이 있은 다음 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고는 약간 비웃는 말투로, 그러한 미묘한 사정을 더 캐묻고 싶지도 않고 또 마리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의 어조는 모질어졌다) 그는 자기의 의무상 부득이 예의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검사는 마리에게 나와 관계를 맺게 된 그날 하루 동안의 일을 요약해 말해달라고 요구했다. 마리는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검사의 강권에 못 이겨, 해수욕에 갔던 일, 영화 구경을 갔던 일, 그리고 둘이서 우리 집으로 돌아온 일을 말했다. 차석 검사는 예심에서 마리의 진술을 듣고 그날영화의 프로그램을 조사해보았다고 말한 다음, 그때 무슨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는지를 마리 자신의 입으로 말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과연 마리는 거의 질린 목소리로, 그것은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였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이 잠잠해졌다. (…)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사망한 바로 다음 날에 이 사람은 해수욕을 하고, 난잡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린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알베르 카뮈, 김화영 옮김, 『이방인』, 민음사, 2011, 104~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