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페어 레이디」 vs 『전원교향악』 8회
그녀는 거기 없었다
리자: 토트넘 코트 거리에 살았을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어요.
히긴스: (정신을 차리면서) 무슨 말이니?
리자: 나는 꽃을 팔았지 나를 팔지는 않았어요.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 버려서 나는 이제 어떤 것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아요. 나를 발견했던 그곳에 그대로 놔두지 그랬어요.
-버나드 쇼, 김소임 옮김, 『피그말리온』, 열린책들, 2011, 150쪽.
이 증오는 사랑으로부터 태어난다. 나를 구원하고,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준 자에 대한 증오. 저 높은 곳의 당신이 나를 구해줬기 때문에 아무리 애를 써도 나는 같은 눈높이에서 당신을 바라볼 수 없다. 나는 당신에게 대들고, 당신과 장난치고, 당신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당신은 결코 그래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증오한다, 나를 구원한 사람을. 일라이자가 히긴스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창조주가 피조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만족 아니면 불만족이다. 피조물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은 어머니의 것이거나 신들의 것이다. 하지만 피조물은 만족도 불만족도 표현할 수 없다. 그는 나를 만들었지 않은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피조물은 그리하여 침묵한다. 묵묵히 당신이 나에게 부여한 의무에 충실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라이자는 기죽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는다. 왜 당신을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없냐고, 당신은 내가 없으면 슬리퍼 하나 찾지 못하고 오늘 스케줄이 무엇인지도 모르지 않냐고. 그녀는 온몸으로 이야기한다. 당신이 나를 숙녀로 만들어버려서, 이젠 꽃을 팔 수도 없고, 무엇을 팔아도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고. 차라리 꽃 파는 소녀였을 때는, 이런 고민을 하지는 않았다고. 꽃을 팔아 연명할망정, 나를 팔지는 않았다고. 그녀는 발음을 교정하려고 했지 성격을 교정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발음을 바꾸니 인생이 바뀌었고, 운명 또한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신분까지, 계급까지 바뀐 것은 아니라는 점을. 고귀한 발음과 비천한 신분이라는 끔찍한 불균형을 깨닫게 된 일라이자는 소리치고 싶다. 차라리 나를 발견한 그곳에 내버려두지 그랬냐고. 나는 당신의 게임머니가 아니라고. 나는 당신이 두는 체스의 말이 아니라고.
히긴스와 일라이자의 관계처럼, 목사님과 제르트뤼드의 관계도 어느 순간 변한다. 히긴스와 목사님은 분명 아름다운 일을 했지만, 그 아름다운 일의 소유권을 포기하지 못한다. 나의 피조물, 나의 수제자인 그녀가 타인의 사랑, 타인의 우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이다. 일라이자는 귀족 청년 프레디의 사랑을 받게 되고, 제르트뤼드는 목사님의 아들 자크의 사랑을 받게 된다. 히긴스와 목사님은 스승과 제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만 생각했지, 그들이 남자와 여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깜빡 잊는다. 히긴스는 뿌리 깊은 여성혐오증 때문에, 목사님은 아내에 대한 의무감과 목사로서의 책임감 때문에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히긴스와 목사님은 ‘다른 사람의 시선’ 앞에 놓인 그녀들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 소스라친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그녀가 타인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니. 내가 없는 곳에서도 그녀가 웃고 떠들고 사랑할 수 있다니. 그녀는 거기 없었다. 그가 짐작하고 있었던 바로 그곳에는. 그녀는 거기 없었다. 그가 늘 있어주길 바라는, 바로 그곳에는.
그것은 내가 그때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인 동시에 제르트뤼드를 향해 열광적으로 쏠려 있던 내 마음 속에 금지된 어떤 것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또한 그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을 사람들이 장애아를 사랑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 애써 생각하려 했다. 나는 환자를 돌보는 것처럼 그 애를 돌보았다. 그 애를 교육시키는 것을 도덕적인 책무이자 의무로 삼았다. 그렇다, 정말이다. (……) 나는 그 감정을 사랑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앙드레 지드, 김중현 옮김, 『전원교향악』, 펭귄클래식코리아, 2009, 74~75쪽.